택견원형논쟁이 무술과 경기라는 관점의 대립이라고 정리되었으므로 무술과 경기의 개념을 자세하게 검토하고 두 개념의 차이를 살펴봐야 한다. 먼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무예, 무도의 용어사용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무술(武術)이라는 용어는 5~6세기 남북조시대에 간행된 문선(文選)에서 처음 발견되고 무예(武藝)는 호한대(漢代,BC202~AD220)의 「삼국지」에 나오는 말이다. 무도(武道)는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 초기부터 사용되던 용어로 보인다. 무술과 무예는 한문의 의미가 동일하고 현재에도 같은 개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무도는 형이상학적 의미를 보다 강조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술, 무예와 동일한 개념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인용하는 글에서 세 가지 용어가 경우에 따라 특히 의미를 달리 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느 것이나 모두 동일한 개념으로 본다.
한편 무술의 본래 의미이던 병장기를 사용하여 싸우는 기술이 가장 발달한 형태가 현대 군사과학기술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를 일반적으로 무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한 상고 인류의 주류 무술이었던 사냥 기술 역시 총포를 사용하는 레저스포츠로 분류되고 있어서 근대에 와서부터 무술과 별개로 취급되는 것도 의미 심장한 점이 있는 것이다.
2. 무술의 개념
무술은 대개 무기를 가지고 사람끼리 싸우는 기술, 먹이로서 동물을 사냥하는 기술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무기가 사람의 근력에 의거하는 비중이 높았던 과거에는 맨손으로 싸우는 기술도 무술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임진왜란 직후인 1598년 간행된 무예제보(武藝諸譜)에는 맨손무술은 제외된 무예 6기가 실려 있다. 그러나 200여 년이 지난 영조 때 사도세자가 만든 무예신보의 18반 무예와 1790년에 간행된 무예도보통지의 24반 무예 중에는 권법이 하나 끼여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 전투는 단병접전(短兵接戰)형태보다는 활과 총포를 이용한 진법(陳法)의존 형태였다. 왜군이 개인 무술 능력 면에서 조선군이나 명군보다 월등한 점이 있었지만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그런데 무기와 전투술이 임진왜란때보다 훨씬 발전한 시대에 단병무술, 그것도 맨손무술이 군사교재 과목에 포함된 것은 그 무술이 직접적으로 전력증강에 목적을 두었다고 보기 어렵다. 과학병기가 고도로 발달된 현대 군대에서도 도수무술이 군대훈련 과목이 된 것처럼 개인체력과 정신력 강화 등의 훈련 효과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맨손으로 싸우는 기술을 자연스레 무술(武藝)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무예도보통지의 스물 네 가지 무술 종목 중에 권법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와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무예 24반의 일기(一技)로 맨몸 무예(武藝)가 포함된 점이 맨몸 기예를 무예로 취급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중국무술에서도 개별적으로 맨손 무술 종목을 지칭 할 때는 태극권, 소림권, 당랑권… 따위로 부르고 병기술 역시 삼재검, 풍파곤 육합창, 태사수마편… 따위로 부르지만 이들을 모두 무술이라고 통칭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맨손무술이나 무기술 모두 무도(武道)로 부르고 있다. 근대에는 태권도, 유도 같은 맨손무술 종목의 관점에서 보면 무술이라고 하면 으례 맨손으로 하는 것으로 이해 해버리는 경향도 있다.
필자 역시 맨손무술의 시각으로 무술을 이해하고 있던 터여서 무의식중에 수박(手搏)을 무술을 총칭하는 것이라고 책에 기록했다. 제대로 말한다면 수박은 맨손무술을 일컫는 일반 명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택견의 원형이 경기라고 강변하는 협회에서도 처음부터 택견에 민족무예라는 수식어를 사용해 왔던 것도 그렇고 문화재지정 이전에 택견에 대한 신문보도 기사의 대부분이 택견을 무술로 표기하는 제목을 달았던 것도 용어 사용의 특정한 습관 때문이다. 김용옥은 이러한 현상을 격의(格義)라고 하였다. 그런데 말이란 사회의 언어 관습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맨손무술은 그것을 하는 사람의 인식으로 그냥 무술이라고 부르고 그 의미의 통용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면 무술의 용어 개념도 그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현대적 무술의 개념
「우리 나라 전래 무예를 병장무술(兵仗武術)과 도가무술(道家武術)로 나눌 수가 있다 한다. 병장무술이 실제 전쟁에 활용된 것이라면 도가무술은 심법(心法)에 의한 권장술(拳掌術)을 위주로 하며 심신의 수련에 그 주안점을 두었다」 (김광석 1987. 한국무예 바탕골 소극장 팜플렛)
「전통무예는 지역적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삼아 공방의 의미를 포함한 기격 동작을 주요 단련 내용으로 공법(功法), 투로(套路), 격투의 수련 형식을 갖추어 내외를 함께 단련하는 것」 (최복규 1995. 석사학위논문 서울대) 무술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대체로 무기술과 도수무술이 혼재되어 있는 중국 무술류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 공법, 투로 등의 용어 역시 중국무술에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견해는 다분히 일본 무술의 시각이다.
「사람들이 무예 수련을 하는 목적은 건강, 호신술, 수양, 전통계승의 네 가지로 요약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최복규 석사 논문)
김용옥은 태권도의 구성원리에서 ꡐ무술은 개인과 개인의 몸을 전제로 한 것이다. 무술은 인격의 원리(Principle of personality)에 의하여 지배된다ꡑ고 말하고 술(術)에서 도(道)로의 전환은 곧 무술이 근대성을 획득하는 과정과 일치하는 것인데, 그 근대성의 원리는 평화의 원리와 건강의 원리이다」라고 하였다. 대단히 수사적이고 철학적 문장이지만 사고의 근저에는 일본무도의 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
평화의 원리는 무술의 폭력성을 역용(逆用)하여 폭력을 부정하는 순수한 방어의 논리와 자신이 가진 힘(폭력)의 행사를 절제하는 논리인 수신(修身)의 유형이라고 해석하였다. 또 건강의 원리는 무술이 개개인의 몸과 몸의 집합인 인간 사회의 건강을 실현해야 하고 무술 학습이 몸의 불 건강을 초래한다면 무술의 가치가 상실된다고 하였다. 또 이 건강원리는 심미적 원리와 직결된다고도 하였다. 이것은 아이키도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무술사상을 연상케 한다.
오랫동안 검도를 찬하여 왔으므로 일본 무도에 정통한 김재일은 ꡐ일본인들에 의한 무도, 무술이 오늘날 한국의 무계(武界)를 형성 해왔다ꡑ고 하고 ꡐ신체 단련과 정신수양을 다루는 무계에 있어서 더욱 일본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ꡑ고 단언하였다. 아마 실제 무술을 많은 시간에 걸쳐 체득한 사람이라면 이 주장을 수긍하는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실제 하는 우리 나라 무술의 현상을 사실대로 직시하여 고대와 현대의 무(武)의 의미를 비교하여 원래 무기술이 원조였던 무가 현대에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개념이 변화하였고 전쟁과 투쟁의 방법이던 것이 건강과 스포츠로 변하여 생사를 초월하던 절대적 의식이 스포츠 형식의 승패 의식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하였다.19)
19) 김재일(2002) ꡐ무에 대한 담론ꡑ국무논총 배달국무연구원
허건식은 ꡐ일본의 경우는 선(禪)의 영향을 통해 예도(藝道)형태의 무도로 발전하였으며, 권투, 펜싱과 같은 서양 무술과 근본적으로 다른 매우 정제된 교육전통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 점이다. 중국무술의 경우 오랜 실천생활을 통해 발전해 온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중국철학, 미학, 예술학, 문화의 정신이 응집되어 있다. 무술은 보건성, 격투성, 예술성을 핵심으로 하는 종합적 문화실체로써 스포츠로 변화하고 있다. 현대 무도는 동양사상에 있어서 신체 수련의 의미로 도(道)의 개념에 철학을 둔 문화로 본다. 이것은 무술이 깊은 내층의식에 대한 규범의 현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ꡑ이라고 무술의 개념을 정리하였다. 20)
양진방은 사람들이 무술에 접근하는 동기와 추구하는 가치를 유형별로 구분하였다.
① 호신술 수련 (실용적) ② 스포츠의 일종 (기호적)
③ 정신적 가치 (철학적) ④ 고수준의 기술추구
이에 대하여 나영일은 이론적 필요성에 의한 구분일 뿐 오히려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하였다. 21)
김대식과 Allan Back은 그들의 공저인 무도론에서 무도의 다양한 활동목적을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요약하면 기술의 전문성, 격투능력, 스포츠의 숙련도, 형의 숙련도 등을 거론하고 특히 정신적 혹은 종교적 예의, 의식이행을 중심과제라고 하였다. 그들은 무도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스포츠의 숙련을 제외하고 무도는 형, 대련, 정신수련의 세 가지를 목적으로 해야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현대무술의 개념이 스포츠와 접근하거나 혼합적 개념으로 변모하고 있는데 대한 강한 저항감이 느껴진다.
20) 허건식(2002) ꡐ현대 동양무술의 문화적 이해ꡑ.국무논총 배달국무연구원
21) 나영일(1982) ꡐ조선조의 무사체육에 관한 연구ꡑ서울대 발사논문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현대 무술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대체로 개인의 심신 수행과 이를 통한 사회적 덕성 함양으로 집약할 수 있다. 유도, 태권도, 우슈, 가라데 등이 경쟁적으로 국제스포츠로 변모함에 따라 최근에 새로이ꡐ무도스포츠ꡑ ꡐ무술 경기ꡑ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이에 대해서는 인간의 생명을 직접적 대상(對象)으로 하는 무술의 엄격함을 내세워 개념을 분리해야 한다는 견해와 스포츠화를 발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무술과 동일한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회자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무술의 스포츠화가 해당종목의 발생지인 동양에서, 그리고 대중적 지지를 많이 얻고 있는 주류종목에 의해 선도되고 있고 반면에 무술에 대한 과거의 개념을 고수하려는 쪽은 소수파 종목이거나 서구 사람들이라는 특징이다.
4. 맨몸 무술의 개념
1) 용어의 정의
용어 사용을 보다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으므로 도수(徒手)무술, 맨손무예 등의 용어를 택견에서는 맨몸무술(또는 무예, 무도)로 부르기로 한다.
맨손과 맨몸은 무기를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보호구를 착용하는 경우에는 맨 손 일수는 있어도 맨 몸이라 할 수는 없다. 보호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와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태권도의 호구(護具)와 가라데의 방구(防具)따위이고 후자는 권투 글러브 따위이다. 물론 손에 장갑을 낀 것을 맨손이라고 하는 점은 언어상의 모순이 있지만 공격의 효용성을 저하시킨다는 의미에서 맨손의 범주에 넣어도 무방하다는 판단이다. 이런 보호장비가 없는 그야 말로 맨몸의 무예는 유도, 레슬링, 씨름, 등과 같은 유술(柔術)종목이다.
택견은 태권도, 가라데와 외형상으로 유사하여 격술(擊術)로 분류할 수 있으나 맨몸으로 하고 승부방법이 타격을 엄격하게 금하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유술로 분류되는 것이 타당성이 더 있다.
2) 맨몸무술의 의의
인류가 두 발로 곧추서서 걷게 된 주원인은 장기간에 걸쳐 앞다리로 도구를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 가설을 토대로 인류의 무술 기원을 생각해 본다면 최초의 무술 형태는 돌맹이나 나뭇가지 같은 구하기 쉬운 자연상태의 물건을 사용하여 싸우거나 동물 먹이를 잡는 형태였을 것이다.
인류의 진화 과정을 차례로 나열한 가상 그림에는 최초의 사람 과(科)로 분류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손에 뾰족한 자연석이 단단히 들려 있다. 사람은 다른 맹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인 신체적 조건을 보강하기 위해 다른 물체를 이용하였고 매우 오랫동안 이런 활동에 적응하면서 두 발로 걷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류로 분류되는 시기에는 꽤 발달한 무기사용방법을 터득하고 숙달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냥이나 맹수와의 경합, 다른 종족과의 서식역을 두고 싸울 때는 맨몸으로 싸우는 것은 애써 피하고 사용하기 좋은 도구를 고르고 또 이를 더 잘 사용하는 신체기능을 발달시켜 나갔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무술의 향상에 따라 더욱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류는 차츰 집단을 이루며 살게 되었고 이때 사냥이나 전투에서 효과적인 협동 작업을 하기 위해서 지휘계통이 필요해졌다. 또 협동으로 한 사냥과 전투에서의 수확물에 대한 분배의 질서를 위해서 반드시 서열을 정해야할 필요도 있었다. 초기 인류 사회에서 공동체의 구성원끼리 하는 경쟁방식으로 직접적인 대결이 선호되었을 것이고 이때 도구를 사용한 싸움에서 죽거나 심한 부상으로 잡단의 전투력과 노동력의 손실 등과 같은 시행 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상호간의 안전을 고려하여 무기 사용을 제한하고 맨몸으로 싸우는 방법을 개발하였을 것이다. 한자(漢子)로 맨몸 격투를 각력(角力)이라 하는데 이것은 숫컷 초식동물끼리 뿔로 들이받는 싸움을 의미하는 말이다. 경쟁에서 승리한 숫컷은 암컷과 교미 할 수 있는 특권과 가장 좋은 서식지를 차지한다. 그렇게 해야 강한 숫컷의 유전인자를 이어받은 튼튼한 새끼가 태어 날 것이고 또 암컷들과 새끼들이 보다 나은 환경과 조건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은 교미기에 맞춰 정기적으로 이행되므로 기회는 항상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주어진다. 따라서 승자나 패자 모두 다음 대결에 대비하여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 열심히 하게 된다. 이런 동류간의 경쟁에서는 상대방을 죽이거나 큰 상해를 주지 않는 룰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동물들의 이런 모든 행동은 종을 번성시키고자 하는 본능에서 나온다.
무기의 효용성을 터득하고 있는 초기 인류들이 맨몸으로 싸우는 격투를 개발한 것도 집단을 이루고 사는 동물들의 생태와 동일한 유형으로 이해 될 수 있다. 인류가 맨몸으로 싸우는 행위는 무기를 버린다는 행위 자체가 제한성과 규칙성을 뜻하며 하나의 격식(格式)이 되는 것이다. 이런 논점에서 본다면 맨몸 무술은 원초적으로 규칙을 지키며 싸우는 경쟁 기술, 즉 경기(競技)가 본질인 것이다. 이런 논리를 이해한다면 동양의 무술이 현대스포츠로 변모하면서 생긴 이데올로기의 공백 상태를 메우는 모티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3)현대 맨몸 무술의 허구성
앞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택견에서 신비한 무술의 가치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동양의 무술이 고도의 훈련을 통하여 인체의 기능을 얼마든지 확대, 확장, 보강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중국무협지에서 보이는 축지법, 경신술, 장풍, 격파력, 발경, 천리안, 염력, 공간이동, 유체이탈… 등의 이른바 초능력을 훈련만 하면 누구나 소유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잠재능력을 인식시켜 자신감과 용기를 주고 개체 생명의 위대함을 깨닫게 하는 긍정적 기능도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 이런 자기 내부지향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지구의 반대편 사람들은 도구를 활용하는 방법을 더욱 발전시켜 인간의 능력을 확대, 보강하는 과학무기 개발에 주력하였다. 그 결과는 동양의 문명이 과학병기를 앞세운 서양 세력에 굴복한 근대 세계사가 말해준다. 동양문명은 신체의 열세를 도구 사용으로 보강 하므로서 생존경쟁에서 승리하여 진화 해 온 조상들의 행적을 잠시 일탈 한데 대한 혹독한 댓가를 치룬 것인지도 모른다.
세계 문명의 중심지라고 자부하던 중국의 청대말에 일어났던 의화단(義和團)사건은 동양 무술의 허구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에 걸쳐 청에 대한 반란을 주도했던 비밀결사 대도회(大刀會)를 계승한 의화단은 백련교 계통의 의화권(義和拳)을 수련하는 무술 단체였다. 그들은 의화권이 총알을 피할 수 있고 총알이 뚫을 수 없는 몸을 가질 수 있는 비법이라고 선전하였다. 당시 청의 지배자였던 서태후와 조정 고관들도 이런 황당한 주장에 기대를 걸고 정치적으로 이들을 이용하려 했다. 의화단은 구경화기를 앞세운 일본,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4개국의 연합군대에 의해 1900년에 패망하고 마는데 중국의 전통무술로 무장한 의화단 수십만 명이 신식무기를 가진 불과 2100명의 외국군대에게 궤멸 당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후대 사람들은 의화단이 과학병기로 무장한 서구열강의 군대에 맞서 전통 무술로 장열하게 저항했다는 사실에만 촛점을 맞추고 신비한 동양무술의 처절한 패배는 애써 외면해 버린다.
1930년대에 일본에 보급되기 시작한 가라데는 맨손으로 일본 본토 군대의 철갑무장병에 대항한 오끼나와 데가 원류라고 밝혔다. 당시 전쟁 분위기였던 일본에서 맨손으로 총칼을 이길 수 있다는 가라데의 선전이 효과가 컷음은 물론이다.
우리 나라 역시 구전 민담이나 이야기책에는 사명대사, 홍길동, 전우치 같은 신출귀몰하는 무술 고수들의 이야기가 많고 의병과 독립군이 맨손으로 일본군과 싸운 설화도 더러 있다. 특히 해방이후, 일본 무술을 한국화 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객관적 증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 모순투성이인 ꡐ산속으로 피신한 전통무술 고수들이 항일수단으로 사용했던 무술ꡑ이라는 과장 선전이 여과 없이 전통무술 개념으로 정착되어 갔다. 일본 가라데의 경우를 그대로 답습했다고 보여지는 맨손무술의 허구적인 개념이 오늘날 택견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현실로 되어 있다.
오카나와에는 실제로 오끼나와데가 존재하였다. 하지만 오끼나와가 1609년 사쯔마 한에 의해 정복되어 금무정책(禁武政策)이 실시되었을 때 무기를 빼앗긴 오끼나와 인들이 국권회복을 위한 지하운동을 할 때는 맨손무술이 아니라 농기구와 생활용구를 무기화 하여 사용하는 형태의 무술을 개발하였다. 맨손보다는 간단한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 전투력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을 오끼나와 사람들이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필자가 2002년 가을에 오끼나와데를 조사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하였을 때 오끼나와 사나이의 조국에 대한 열정으로 총칼에 적수공권으로 맞섰다는 그 자랑스러운 무술은 그 형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다만 생활용구를 이용한 무기술만 남아 있었다. 애초에 오끼나와데 나 가라데의 연원이 조작되었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우리 나라의 의병이나 독립군도 맨손 무술로 일본군대를 쳐서 일본군을 수 없이 살상하고 산속에 숨어서 신비한 무술을 연마하였으며 이런 고수들에게 비밀 전수 받아 하산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통무술이 더러 있다. 그러나 우리의 독립군이나 의병들이 총을 든 일본군에게 그렇게 무지스럽게 맨몸으로 대항하지는 않았던 것이 자명하다. 간혹 김구의 치하포 사건이나 신돌석의 의병 활동 기록에서 보이는 맨손으로 적과 싸웠던 사례가 없지 않았으나 그것은 상황적으로 부득이하게 그렇게 하게 된 것이지 맨손이 도구 사용보다 효과적이어서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런데 우리사회 현상은 이런 터무니없는 무술들의 주장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거나 혹세무민의 책임을 묻기는커녕 그것을 욕구정화 차원에서 너그러이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사이비 무술의 끊질긴 생명력은 미숙한 인간심리의 틈새에서 종양처럼 유지 되고 있는 것이다.
5. 경기의 개념
1) 무술과 경기의 목적
여기서 경기란 곧 운동 경기(athletic sports)를 말하며 운동경기는 스포츠와 동일한 의미로 이해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마추어 스포츠를 관장하는 기구를 대한체육회라 하고sport for all을 생활체육이라 하고 있다. 이렇게 sports를 체육(體育)으로 번역하여 사용되기도 하므로 일단 운동경기와 스포츠, 체육은 동일한 의미를 가진 용어로 본다. 경기는 스포츠의 어원인 기분전환, 장난, 위로, 유희의 의미로 해석 될 수 있으며 Gillet는 스포츠의 구성요소를 유희, 투쟁, 신체 활동의 격렬성으로 보고 특정한 형태의 게임으로 파악하였다. 무술과 경기를 별개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포츠의 유희성이 무술의 엄격함과 진지성에 배치된다고 보고 있다. 그들은 무술에 스포츠의 요소인 유희성이 존재하고 또 무술 스포츠(운동경기)로 행해지기도 하지만 무술은 스포츠의 한 종류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무도의 근원은 격투기 형태였으며, 자기 방어와 군사적 목적으로 수행되었고 발전 과정에서 종교적 가치와 정신적 개발의 의미가 부여되었다는 견해이다. 22)
22) 김대식. Allan Back (2002) 무도론 PP58~P60 교학연구사
무도라는 용어에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에는 경기 개념이 개입된 무술 종류와 용어 사용상 구분하려는 엄격한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일본 가라데의 창시자 후나코시는 ꡐ시합이 무도를 삶의 한 과정으로 승화시키는데 방해가 된다ꡑ고 하였다. 또 ꡐ가라데는 삶을 살아가는 한 방법이며 스포츠를 통한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인성을 도야한다ꡑ, ꡐ행동하는 사람이 노력의 실용적인 측면을 떠나 변화 무쌍한 현상으로부터 영원한 세계로 마음을 돌리면 그때 비로소 참되고 영원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ꡑ고 하는 견해들은 무술을 종교적 수행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견해는 권위있는 무술가들의 훌륭한 태도라고 보지만 삶의 형태와 방법이 특정한 가치관으로 단정 될 수 없는 것처럼 무술의 수행목적과 방법, 그리고 그 효과는 시대와 공간, 그리고 개개인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그리고 스포츠, 체육분야에서도 신체적(physical)교육 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인간의 몸이 마음과 분리되지 않고 조화적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이를 구체화하려는 실용주의적 체육 학자들도 많이 있다. Zeigler는 ꡐ넓은 의미로 체육은 경험에 의한 인간의 변화ꡑ이며 체육 활동이 단지 근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성 교육이 주라고 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무술과 경기는 방법상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에 대한 교화(敎化)라는 동일한 목적 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격투경기
격투(格鬪)의 사전적 해석은 ꡐ서로 맞붙어 치고 받고 싸움(fisticuffs)ꡑ이다. 의미상으로 볼 때 무기를 갖지 않고 맨몸으로 싸우는 것이다. 격(格)은 격식(格式:격에 어울리는 법식, 규칙, 법칙)이다. 환경이나 사정에 맞는 체제나 품위, 또는 자격, 지위, 등을 의미한다.
투(鬪)는 싸우다. 다투다(경쟁), 만나다 라는 것이 사전의 해석이다. 갑골문의 투는ꡐ鬥ꡑ이며 글자꼴은 두 사나이가 손과 팔을 서로 붙들고 힘을 겨루는 것을 표현 한 것이다.
따라서 격투는 사회적, 문화적 틀에 의해 정해진 격식을 갖추어 맨몸으로 싸우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격투에는 경기라는 개념이 함의되어 있어서 격투 경기라는 용어는 동일한 의미가 일부 중복되는 명칭이다. 그러나 축구경기, 권투경기의 용례처럼 축구, 권투라는 용어에는 이미 공차기 경기, 주먹으로 싸우는 경기의 의미가 있지만 중복 된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택견의 사전 풀이도 ‘발로 차서 쓰러뜨리는 경기’ 이지만 택견경기로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다.
맨몸무술, 즉 격투의 발원(發源)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초기 인류가 소집단을 구성하며 사회를 형성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격투는 인류의 시원 문화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초의 격투는 단순히 집단 생활의 필요적 행위였다. 즉, 종을 보존하고 개체의 생존을 위한 동물의 본능 활동이었다. 이것이 문화적인 형태로 변모하는 과정은 ꡐ문화는 놀이의 형식 속에서 성립되었고 문화는 처음부터 놀이되어 진 것이다ꡑ라는 호이징하의 이론으로 설명 될 수 있다.
호이징하는 ꡐ원시인의 공동체 생활에서 가치가 높은, 단순한 생물적인 것을 넘어선 특성을 지닌 바의 것. 그것이 여러 가지 형태의 놀이ꡑ라고 정의하였다. 원시 격투는 분명히 유희적 성격이 가미되었다고 볼 수 있다.23)
초식동물의 각투(角鬪)가 단순한 생물적 행위에 그치고 있으므로 그것은 문화의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인류의 격투는 유희성 또는 제의성과 결합하여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문화로서 훌륭하게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23) 이용복(1990) 한국무예 택견 PP24~32 학민사
3) 격투의 진지성
여러 논의 속에서 맨몸무술과 격투스포츠는 모두 원시 격투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일부에서는 무술은 진지함과 엄격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놀이성이 가미된 격투경기와 차별을 시도하고 있지만 호이징하의 주장은 다르다.
「흔히 진지함과 놀이는 대립적 의미로 쓰이지만 진지함의 언어적 분석은 ꡐ급함ꡑ, ꡐ열중하는ꡑ, ꡐ노력하는ꡑ, ꡐ애쓰는ꡑ 등이고 이런 의미는 놀이와도 잘 연결된다. 그러나 진지함의 의미 내용은 놀이의 부정이다. ꡐ진지함ꡑ이란 곧 ꡐ놀지 않는 것ꡑ으로 통한다. 이에 비해 놀이의 의미 내용은 결코 ꡐ진지함이 아닌ꡑꡐ진지하지 않는 것ꡑ이라고 규정되어질 수는 없다. 놀이는 무언가 각자 고유의 것이다. 놀이에는 개념 그 자체가 ꡐ진지함ꡑ보다는 높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진지함이 놀이를 배척하는 것임에 비해 놀이는 진지함을 내포할 수 가 있다」
로제 카이와는 그의 저서 「놀이와 인간」에서 놀이의 진지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ꡐ확실히 놀이는 금지 행위를 준수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재원(능력)을 최대한 발휘함으로서 이기려고 하는 의지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요구되는 것은, 예의를 지키면서 상대방을 능가하며, 원칙에 따라서 상대방을 신뢰하고, 중오심을 품지 않고 상대방과 싸우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있을 수 있는 실패, 불운이나 불행을 처음부터 각오해야 하며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으며 패배를 감수해야 한다. 놀이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자기 억제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게 하며 또 그러한 습관이 붙게 할뿐만 아니라 인관 관계와 인생의 부침(浮沈)전체에 까지 그 교훈을 확대하게 된다」24)
24) 로제 카이와(1994) 놀이와 인간 P19 이상률 역 문예출판사
이쯤이면 우리는 무술과 놀이, 또는 경기의 본질이 매우 유사한 개념으로 접근되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렇게 진지함 뿐 아니라 무도의 엄격(嚴格)함도 격투경기 또는 놀이의 개념에서 쉽게 발견된다. 호이징하는 일본 무사가 위험과 죽음 앞에서 필요하지 않는 고상한 자제(自制)를 보여주는 행동도 일종의 충성심과 의무, 인내와 용기, 절제의 시합형식을 띠고 있어서 제 일인자가 되려는 놀이 정신과 동일하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시합이란 직접적인 경쟁은 아니다. 그러나 무사도(武士道)규범 수행에 대한 역사상, 또는 세간의 평가라는 점에서 경쟁적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일본 무사도의 기본 자세인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의미에서 호이징하의 견해에 수긍할 수 있다. 제 일인자가 되려는 것은 제 일인자로서 존경을 받으려는 바램 때문이다. 그래서 경쟁 ꡐ본능ꡑ은 먼저 힘에 대한 갈망이라든가 지배하려는 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남보다 빼어나 보려는 욕망인 것이다. 이러한 경쟁 본능의 특성은 이기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기느냐가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된다. 따라서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로제 카이와가 말한 여러 가지 태도가 요구된다. 경기의 핵심은 규칙을 잘 지킨다는데 있고 이것은 절제를 기르는 훈련에 의해 수행된다. 이것을 반대로 보면 경기를 통하여 규칙을 잘 지키고 절제를 기르는 것이 된다. 경기를 통해 절제된 경쟁 원리를 익히는 것은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지혜를 기르는 일이다.
이러한 원리는 격투경기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진지성이라 할 수 있는 상대에 대한 배려에서도 나타난다. 경기의 과제는 ꡐ이기는 것ꡑ이지만 이것은 ꡐ지는ꡑ상대방을 전제로 한다. 격투- 즉 맨몸으로 싸우는 상대방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타도해야 할 적(敵)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일원(一員)이며 경쟁의 파트너이다. 자신과 상대방은 대립에 따른 긴장을 유지하면서 각자가 자기 향상에 대한 욕구를 강하게 촉발시켜주는 동기 부여를 해주는 호혜적 관계이다. 격투 당사자는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살상의 위험이 있는 무기를 버리고 오로지 몸만으로 싸우자는 합의가 성립되어 있는 공생의 사이인 것이다.
그리고 격투에서는 비록 생명을 걸고 싸우지 않는다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긴장감을 사생결단의 대결 못지 않는 수준으로 경기자를 지배 할 수가 있다. 명예, 지위, 돈, 여자 같은 대상이 어느 때는 목숨보다 우선 되는 가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싸움의 긴장감이란 이겨야 한다는 이유와 함께 상대방에게 상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이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Ⅴ. 택견원형의 재인식
1. 택견원형의 문제점
1992. 7. 11자로 이용복은 문화재관리국에 질의서를 제출하였다. 이 질의서는 문화재는 고유한 전통의 원형이 온존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1.택견조사보고서 제102호 (1973년 예용해)와 제146호 (1982. 임동권)에 수록된 기술 내용이 다르다. 1971년 제작된 VTR의 송덕기 동작과 1983년 문예진흥원 제작 VTR의 신한승 동작 간에 큰 상이점이 있다. 신한승은 송덕기의 택견을 계승한 것인데 이 차이점은 변형에 따른 것이다.
2. 현재 문화재 당국이 관리하고 있는 택견 전수자들은 신한승의 택견만 전수하였으므로 송덕기 기법이 인멸 될 소지가 있다.
3. 택견은 19세기초까지 서울 일원에서 경기를 해 온 것이 유일한 택견 전승의 맥이다. 그러나 현재 문화재 택견 발표회에서는 경기가 아닌 현대적으로 재구성 된 연습 체계만 보여 주고 있다. 택견경기를 발굴, 재현하는 것이 택견원형을 되살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4. 민속은 지역성을 가진다. 택견은 유독 서울 일원에서만 행하였던 민속이다. 그러나 현재 택견 보유자가 거주하는 지역(충주)이 택견 전승지로 잘못 알려지고 있다.
5. 결련(結連)택견과 결연택견의 오류를 바로 잡아야 한다.
6. 택견원형 정립을 위해 공청회, 토론회를 열고 당국이 재조사해야한다.
이상과 같은 질문에 대하여 1992. 7. 25 문화재관리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회신을 하였다.
1. 무형문화재는 관계 전문학자의 조사․연구 및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다.
2. 1982년 관계전문가(임동권)의 조사 당시 송덕기옹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신한승에게 가르쳐 안심한다고 말하였고 이를 재차 송옹에게 확인하였으므로 보고서 내용은 타당하며, 현재 신한승의 기예를 전수한 보유자 후보(정경화)가 전수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그 전수실태를 관계 전문가에 의해 수시 점검하고 있다.
이용복의 문제 제기가 고식적 답변으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택견협회 명의로 택견기능 보유자 추가 인정 신청서를 문화재관리국에 제출하였다. 민원에 대해서는 당국이 어떠한 형태로든 조처를 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택견을 다시 조사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신청서의 요지는 「현재 택견원형은 재구성 과정에서 변형되었다, 따라서 송덕기 택견 형태인 민속경기 놀이인 결련택견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 기능을 가진 이용복 등을 보유자로 추가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앞에서 살펴 본대로 당국의 답변은 「1982년 조사 보고서는 정확한 것이고 송덕기의 기능은 신한승에게 계승되어 정경화에게 전승됨이 인정되고, 결련택견은 택견경기를 의미하지만 택견의 개념에 포함되어 있어 추가 지정은 불필요하고, 이용복은 신한승 택견을 하는 것으로 판단되고, 송덕기는 83년 당시 고령으로 지도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택견협회에서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관련 기관등에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하여 진정을 하였으나 대답은 문화재 전문가로 구성된 집단인 문화재 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것 뿐 이었다. 그 뒤 행정소송까지 있었지만 여전히 처음 제기한 원형에 대한 문제점은 어느 것 하나 검토되지 않고 고스란히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20여 년의 논쟁 속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첫째로 당국이 「결연택견=쌈수」가 아니라 「결련택견=경기」 라는 점을 인정하였고 둘째, 경기를 하면 원형이 훼손된다고 주장하던 보유자측이 경기를 하게 된 것. 셋째, 택견이 경기라는 것을 대한체육회가 공인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화재청에서는 최근「전통무예로서의 택견」을 원형이라 하고 「민속경기로 하는 택견」을 변형이라는 견해를 2003. 3. 8 문화관광부와 체육회에 낸 공문으로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문화재원형문제는 ꡐ과거의 것이냐, 아니냐ꡑ를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재당국의 원형에 대한 판단은 ꡐ전통무예이냐, 민속경기냐ꡑ 하는 개념인식의 문제로 원형논의가 다소 궤도를 이탈한 방향으로 전환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2. 비속무술로 보는 인식
택견이 전통무예라는 인식은 택견인들간에는 이론이 없다. 이것은 모든 택견인들이 택견앞에 민족무예, 전통무예라는 꾸밈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그렇다. 다만 문제가 돠는 것을 무예에 대한 해석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최복규는 ꡐ택견을 무예라고 할 수 있는가ꡑ 라는 의문이 생긴다고 하였다.25) ꡐ무예는 본질적으로 생사의 문제가 걸리는 전투기술, 싸움기술과 관련 된 것이다. 택견에서 그런 심각성을 발견할 수 있는지, 검토의 여지가 있다. 택견의 성격은 첫째, 기능면에서 투기나 대인격투술이라는 무술의 본래 기능이 거의 퇴화해 버리고 놀이나 경기에 초점이 있으며 둘째, 발기술에 집중되어 있고, 셋째, 기술이 어떤 형(型)이나 체계 속에 구조화 되어있지 않고 개별기술로 남아 있다ꡑ고 지적했다. 택견에 대한 외부의 이러한 시각에 대하여 택견을 무술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정경화나 문화재청이 명쾌한 답을 내려야 할 입장일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런 문제 제기에 대응하는 논리를 정경화나 문화재청으로부터 듣지 못하였다. 다만 택견이 현재 하는 기술이나 행위로써 무술임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언급은 정경화가 ꡐ결련수(쌈수)를 (신한승이)복원하여 무예의 면모를 보였다ꡑ26)고 한 한 구절이 있다. 그런데 쌈수란 것이 낱개로 8개 뿐 이고 기술의 구조측면에서 살펴보면 위력면에서 다른 맨손무예에 비해 많이 부족하며 형이나 체계 속에 구조화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내용은 오히려 택견을 무술로 보지 않을 수 있는 근거만 될 뿐이다.
박종관은 택견은 옛부터 체계적인 구성이 없었으며 일반적인 권법의 형태와 판이하게 다르다. 기법에 강(剛)은 거의 없고 유(柔)로 구성되어 있고, 낱기법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린이나 어른을 막론하고 쉽게 배울 수 있다. 이것은 씨름에도 여러 가지 기법이 있지만, 이것들을 연결한 일정한 형식이 없다. 택견도 이와 비슷한 조건이다.27) 라고 하였다. 그러나 박종관도 “택견은 우리 선조들이 하던 무술임에 틀림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실제로 송덕기의 택견을 습득한 사람이나 이에 대한 연구를 한 사람들은 모두 택견이 다른 무술들과 달리 놀이, 유희, 경기적 요소가 강하다고 하면서도 무술이라고 하거나 그렇게 알아듣는데 아무 저항감이 없다. 이것은 이미 스포츠로 변모한 유도, 태권도, 우슈, 가라데가 무술이라고 하는 것과 동일한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앞에서 무술과 경기의 개념을 검토하였으므로 외부사람이 택견의 무술성을 시비하는데 대한 대답은 충분히 검토 된 것으로 본다. 앞에서 맨몸의 무술이 생사와 관련된 진지성이 퇴화된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보호와 집단의 생존을 위한 본능의 진화된 형식이며 이것이 사회 구조의 영향으로 유희성, 제의성이 가미되어 문화적으로 더욱 발전된 형태로 검토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사를 건 전투, 싸움 기술만을 무술이라고 규정하는 것부터 논리가 비약되어 있다. 근거가 될만한 어느 문헌에도 무술의 개념을 딱부러지게 규정한 것은 보지 못했다. 현대에 와서 무술에 대한 여러 개념이 생겼지만 어느 것도 전적으로 수긍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형이나 체계적 구조가 생사를 건 전투기술, 싸움기술과의 연관성이 어떤 것인지도 사실상 모호한 것이다. 이소룡은 형과 체계를 벗어나야 비로소 강한 싸움기술이 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그는 자신의 주장을 실천해 보였다. “거리에서의 격투를 무술 전문가의 처지에서 관찰하더라도 그 전체를 파악할 수는 없다. 전문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고정된 인식의 함정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격투의 실제는 일정한 형식이나 제한된 문파의 기술에 치우치지 않는 시각이 있어야 승리 할 수 있다” 요컨데 그는 모든 생활을 생명을 건 전투(戰鬪)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형식과 체계를 탈피한 ꡐ자유스러운 무술ꡑ로서 절권도(截拳道)를 창안해 내고 “절권도의 묘는 단순화”라고 자부하였다. 이렇게 무술에 대한 개념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실제로 송덕기가 전수해 준 택견기법은 품밟는 것부터 응용수까지 합쳐도 30여 종 밖에 되지 않는다. 흔히 택견을 백기신통 비각술이라고 자랑하지만 송덕기의 발기술 중 날아 치는 비각술은 고작 두발낭상 뿐이었다. 너무 나이가 많아 실연을 할 수 없었을 것이지만 말로써는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는 문제이다. 이외 얼굴이나 몸통을 차는 기술도 발따귀, 복장지르기, 곁치기, 등 대 여섯 개를 넘지 않는다. 그렇다고 택견이 퇴화되었다고 하기보다는 형식이나 체계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해서 꼭 필요한 기술만 발전되었다고 시각을 바꾸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태권도의 경우 꽤 오래전부터 옆차기가 사라지고 있다. 물론 경기에서 이런 현상이 있는데 이것은 옆차기가 경기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술 구조가 매우 단조로워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경기가 활성화된 무술종목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택견을 무술로 보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무기술과 격투를 구분하여 생각하지 않은데서 온 것으로 보이며 또한 무술과 경기에 대한 기존의 인식체계로 택견을 평가하려한 잘못이 있다. 김용옥이 “택견은 무술이 아니다”라고 단언한 것도 자신만의 격의(格義)로 택견을 평가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수긍하면서도 그 말의 의미 모두를 납득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술은 realism이 먼저이고 ldealism은 후위개념이다. 무술 정신은 기술의 연마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3. 무술로 보는 인식
다른 사람들이 택견은 무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정반대로 ꡐ택견은 분명 무술이다ꡑ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보유자 정화씨다. 정경화의 무술에 대한 가장 최근의 인식은 그가 최근에 지은 「택견원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무술은 한 마디로 삶의 근본이요, 원천이다. (무武)를 하나의 기능으로만 생각하고 인간을 만드는 산교육의 요소로 생각하지 않은 탓으로 천대받는 경우가 있었다. 무는 활기에 넘치는 기(氣)의 뭉치로 볼 수 있다. 우주속에 살아 움직이는 존재의 삶 자체가 무이다. 모든 생명의 탄생, 모든 물질의 이합집산하는 것은 자체가 힘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무는 자연의 근본이요 원천이다. 모든 생물의 움직임 속에는 반드시 길이 있다. 이 길(도리)이 있기에 우주는 영원히 존재한다. 무란 도로서 생성된다」
이상이 정경화의 무술 개념을 정리 해 본 것이다. 다음은 정경화가 스스로 무술 개념을 요약한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무도(武道)란 삼라 만상의 생명력인 것이며, 항상 살아 숨쉬는 활력소라 하였다. 기(氣)의 움직임을 따라 막힘 없이 돌아갈 때 몸의 건강을 찾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적의 위험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무술인 것이다」
그는 이 말 끝에 ꡐ이제 무술의 참 뜻을 알았을 것ꡑ이라고 하였지만 그 자신이 파악하는 무술은 그런 것일 수 있는지 모르지만 ꡐ택견은 무술이다ꡑ 라는 주장과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좀 현학(衒學)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의 앞쪽에 자신이 원형이라고 소개한 택견의 실제 기술, 학습체계, 경기구조 등과 연계되는 설명으로서 구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 의문스러운 것은 그의 경기에 대한 견해이다.
「경기란 재주를 겨루어 보는 것이다, 무술이란 경기를 하기 위한 대상물이며, 경기란 무술의 우열을 가리는 행위자이다. 무술은 순수한 기운의 발동체이며 경기는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 나가는 행위 일 뿐이다」「이와 같이 순수한 수련을 해 간다면 심신을 단련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으나 경기를 하게 되면 반드시 rule(경기규칙)이 적용되어야 하고, 그로 인해 무술의 기법 자체가 시합술로 변해 가는 것이다」
무술과 경기에 대한 일반론이라면 이와 유사한 견해들도 있을 수 있으므로 큰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재 문화재 택견의 원형이<서기택견=경기택견>이라는 점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자기부정, 혹은 자기비하적 논리가 되므로 대단히 혼란스러운 것이다.
정경화는 자신이 보유자라란 신분적 입장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정부로부터 전통무술로서 문화재로까지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면 보급하기 쉽다하여 굳이 쉽게 변질 될 수 있는 스포츠(놀이)로 전락하려고 하는 저의는 무엇일까? 참으로 통탄 할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가 전통무술로 분류하여 문화재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는 전통무술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규정하지는 않았다. 현재 원형이라고 지정한 택견형태가 무술의 기준이라면 그것은 충분히 경기라고도 말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로 전락이라는 주장은 개념이 전도된 논리이다. 택견을 현대 스포츠로 활성화하는 것은 전통문화 계승의 발전적 양상이며 그 저의는 우리 민족의 문화자산을 확대 재생산하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우리 택견이 무술로 발전되느냐 아니면 문헌의 일부분이 유희나 놀이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하여 무술임을 망각하고 우선 보급 발전의 일환으로 놀이형태로 발전시킨다면 무술의 본체를 잃어버리고 개체를 살리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현존하는 무술의 원형을 지켜 나가기는 쉬워도 이미 왜곡되어 변질 된 형태를 다시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무술을 줄기라 할 수 있으며 경기란 그 가지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고 하였다. 무술과 경기에 대한 이러한 견해가 보편성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논리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설득력이란 사실에 근거해야 하며 이를 논증할 수 있는 자료가 제시되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 본 것과 같이 택견이 놀이, 유희, 경기라는 점은 초기의 택견 기술과 경기구조, 학습체계와 여러 자료가 일치되고 있고 그 양도 풍부하다. 그리고 택견을 접하였거나 연구를 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고 있다. 반면에 무술이라는 주장은 유독 문화재 택견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만의 논리이며 대부분 객관적 입증 자료가 없는 자의적 해석이거나 지향성향의 수준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현행 택견의 실제 기술과 학습형태와 무술이라는 논리가 부합되지 않는 점이다. 또한 무술경기, 무도스포츠라는 개념처럼 두 개념이 복합되어 확대되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고, 우리 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 등 동양무술의 대표적 무술 종목들이 앞 다투어 국제경기로 변모하고 있어서 경기를 무술의 부수적 가치로 치부하는 것은 택견 발전의 전략적 측면에서도 불리하다. 택견에 대한 객관적 시각이 모두 경기, 놀이 따위로 보고 있는 터에 경기, 놀이의 개념을 무술의 하위 개념으로 취급하기보다는 호이징하의 이론을 빌려서라도 무술을 놀이 개념에 포함시키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대의 추세는 가장 큰 세력을 가진 동양의 전통무술이 스포츠로 탈바꿈하면서 이미 무술이라는 용어의 개념이 확실히 변질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일부러 역류해서 택견과 별 관계가 없는 일본, 중국의 무술, 또는 이들 무술이 한국화 하여 정체성이 모호한 무술들이 광고 선전 차원에서 내놓은 무술개념을 택견에 적용시키는 것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겪이 될 것이다. 다른 무술들이 18~20세기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본래의 형태나 가치를 잃어버리거나 왜곡되고 변질되는 과정을 겪을 때 택견은 타율에 의해 휴지기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불우했던 과거가 현재에 와서는 다른 무술들에서 찾기 힘든 맨몸무술의 본질적 가치를 제대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술에 대한 기존의 막연한 인식에서 탈피하여 택견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재조명을 통하여 무술에 대한 개념을 새롭고 분명하게 정립하는 것이다.
Ⅵ. 결론
1. 요약
이 글은 최근 문화재청이 대한체육회와 문화관광부에 보낸 공문내용에 대한 반론 적인 것이다. 이 공문에서는 대한체육회에 가맹된 대한택견협회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택견이 아닌 민속경기로 변형된 택견을 하고 있으므로 체육회 가맹으로 인하여 택견 고유의 원형을 훼손하고 맥을 끊을 수도 있으니 체육회 가맹을 신중히 해 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연히 택견협회내에서는 반발이 일어 날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체육회 준가맹은 이미 결정되었고 문화재청의 이런 견해는 묵살하고 넘어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택견 단체간의 주도권 다툼 차원의 원형 논쟁이 아닌 순수한 원형논의는 택견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며, 그리고 원형논쟁에 있어서 당사자의 한 축인 문화재청에서 문제를 제기한 만큼 새로운 논의의 기회로 삼고 싶었다. 이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 해보려고 20여 년의 긴 시간동안 평행선을 그려온 논쟁의 실상을 대체적인 시기별로 정리하고 그 과정에 따라 원형에 대한 인식의 변화추이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다음 항에서 다룬 원형논쟁의 쟁점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택견원형 논쟁의 쟁점은 택견을 무술이라는 주장과 경기라는 주장의 대립이었다. 논쟁의 시발은 문화재지정에서부터였다. 문화재만 아니라면 아무도 관심을 가질 필요조차 없는 원형 문제는 그래서 수많은 무술 중에서 택견만이 안고 있는 고민거리였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택견이 다른 무술과 경쟁하는데 유리 할 수 있는 특수한 소재가 되므로 회피해서는 안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재지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문화재 지정 조사보고서에는 그 이전까지의 택견에 대한 몇 가지 자료나 기록과 달리 택견을 무술로 육성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현 택견보유자가 ꡐ정부로부터 전통무술로서 문화재로 지정 되어 보호를 받고 있는ꡑ것을 전가보도(傳家寶刀)로 이용하게 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질의서 제출, 명예훼손 고소사건, 행정소송 따위 격렬하고 다양한 방법과 형태로 논쟁이 벌어졌지만 아직까지 해결 된 것은 없었다.
이것은 문화재 당국이나 보유자측이 논리적 대응을 하기보다는 기득권과 국가 권력의 권위로 대응하여 항상 논점을 비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택견협회는 논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료의 정리와 논리개발을 진전 시겼고 그 결과 공청회, 또는 공개토론을 요구 하는 입장이 되어있다. 최근에는 택견협회가 대한체육회 준가맹이 결정 되므로서 위상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국가 체육을 총괄하는 대한체육회의 공인은 문화재의 권위를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보유자측을 자극하게 되고 이들의 요청으로 문화재청이 대한체육회 가맹문제에 개입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원형논쟁 재발의 동기가 되었다. 재발발 한 논쟁에서도 쟁점은 처음이나 현재나 여전했다.
협회는 ꡐ택견은 경기가 원형이고 경기가 맨몸무술의 본질ꡑ이라는 주장이고 문화재 당국과 보유자는 ꡐ택견은 무술이 원형이고 경기는 원형을 훼손한다ꡑ는 종전의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먼저 무술과 경기에 대하여 각각의 개념을 파악, 비교, 검토하는 용어 개념의 정리 작업이 필요하였다.
무도, 무예, 무술을 동일한 개념의 선택적 명칭으로 전제하고 일본무도의 개념에서 보이는 생사를 건 엄격함, 수양의 진지함, 기술의 오묘함 따위를 주로 무술의 특징이나 가치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맨손 무술과 맨몸 무술을 엄밀한 의미로 구분하고 택견을 맨몸 무술로 분류했다. 격투, 각력 등이 맨몸 무예이며 그 출발은 종의 보존과 번식을 위한 동물의 본능 활동과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맨몸의 무술은 곧 경기와 동의어라는 논리가 가능하였으며 언어의 개념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보편성의 획득으로 변화 한다는 것을 파악하였다. 또 동양의 무술들이 국제 스포츠로 변모하면서 이미 무술의 개념이 경기, 스포츠와 혼합 또는 통합 확대되었음을 검토하였다. 이를 근거로 택견의 개념은 무술, 또는 경기 어느 것이나 동일한 의미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와 같은 결론은 사실상 1970년대부터 이미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것이었으나 그동안 논쟁을 위해 무리하게 개념 구분을 해온 측면을 새삼스레 발견 할 수 있었다.
또한 이상주의적 동양무술의 허구성과 과대 포장된 맨손 무술의 실체을 밝혀 택견이 가지고 있는 경기, 놀이의 성격이 폄하 될 대상이 아님을 역설하였다.
마지막 장에서 택견원형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하기위해 현재 문화재청이나 보유자가 가지고 있는 원형인식의 문제점을 다소 조심스럽게 제기 하였다. 이 글에서는 되도록 택견의 본질과 그에 대한 가치개념에 초점을 맞추기 위하여 직접적으로 원형과 관련된 실기 부분에 대한 논리 전개는 유보하였다.사실 문화재 원형논의에서 규명되어야 하는 것은 누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인식의 구별이 아니라 현재 문화재 당국이 원형으로 인정한 택견이 과거의 형태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볼 때 택견원형 논쟁이란 사실상 택견이 무엇인가라는 본질에 대한 논쟁이다. 따라서 원형논쟁 과정의 실상과 쟁점을 되짚어 보면서 택견의 본질에 접근해 간 것이다.
그 결과 일본, 중국의 무술개념을 답습하고 있는 기존의 무술인식체계를 택견적인 무술인식론으로 대체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지금까지의 전개된 논리는 결국 택견 속에 내재한 택견의 본질이 다른 유사 체기 보다 변질이 덜 되어 맨몸무예의 정체를 찾을 수 있는 유용한 통로라는 것을 확인해 본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관점에서 무술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2. 향후의 과제
택견은 현재 중요무형문화재의 범주를 훨씬 벗어나 있다. 이미 1999년에 국민생활체육 종목이 되었고 2003년에는 대한체육회 준가맹 경기종목이 되었다.
매년 전국규모 경기대회가 10개 이상 개최되고 있고 시, 도, 단위, 시, 군, 구 단위 이상의 지역 공식경기 대회만 50여회 이상 개최되고 있다. 금년에는 국무총리기와 대통령기가 신설된다. 2004년에는 우리 나라를 위시하여 미국, 캐나다, 호주, 프랑스, 독일, 스페인, 불가리아, 일본, 중국, 카자흐스탄, 인도 등 12개국이 참가하는 국제경기대회를 서울에서 개최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택견이 생활체육, 전문체육, 나아가 국제스포츠로 급속히 발전해 가는 마당에 ʻ무술이다ʼ, ʻ경기다ʼ라는 원형논쟁은 진부하고 무의미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립해 두는 것은 앞으로 택견의 진로에 중요한 일이다. 택견협회가 문화재청의 원형인식에 문제를 삼고 이를 전향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태도는 택견에 대한 인식론적 기반을 단단히 해야 할 필요가 현실적으로 상존 하기 때문이다.
나영일은 「전통무예의 현황과 과제에 관한 연구」에서 전통무예의 현대적 과제로서 철학화, 조직화, 체계화, 대중화하는 네가지를 제시하였다. 대한택견협회가 창설된 것은 조직화, 체계화, 대중화의 기반 조성을 위한 첫 단계였다. 그리고 택견협회는 그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국민생활체육 전국택견연합회 역시 택견협회가 본연의 노력을 해오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실이었다. 2002년 12월에 창설된 재단법인 세계택견본부는 국제택견조직의 구심체로 택견전수의 총지휘부이다. 재단 설립은 택견 메카 건설에 주춧돌 하나를 놓은 셈이다.
2000년부터 전면 시행되고 있는 새 학습체계를 만든 것도 96년 이 후 해외 보급 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을 토대로 국제무술시장에서 경쟁력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 이로써 남은 하나의 과제는 택견의 철학화이다. 철학화란 무엇인가? 바로 택견을 규명 하는 것이다. 택견의 본질을 캐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인 것이다. 본질은 형식속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그리고 원형의 규명은 택견의 미래에 motive를 제공해 주는 것이므로 중요한 것이다. 유사이래 철학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택견원형을 통한 본질의 규명 역시 하나로 귀착되는 해답을 얻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같은 귤나무 모종이라도 그 토양과 기후 등 생장 여건에 따라 모양과 크기와 맛이 달라진다. 또한 동일한 기후와 토양에서 같은 시기에 피는 꽃도 씨앗에 따라 개나리가 되고 진달래가 된다. 무술이든 경기이든 우리가 추구하는 택견에도 원래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 어려운 문제를 또한 간단하게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이란 실제로 택견을 해보는 것이다.택견을 오래 오래 해나가는 도중에 문득 자신이 체득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이 곧 정답일 것이다.
인간의 행위가 실체인 것이면 아무리 정교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론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체험도 없고 자료도 불충분한 상황에서 기존의 무술 논리에 의존하여 접근한 문화재 조사 방법에서부터 오류의 소지를 안고 있었던게 아닌가. 그리고 순수한 택견의 정체성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주도권을 의식한 원형논쟁이 끝없는 갈등의 평행선 궤적만 남겨 놓았던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원형에 대한 논의가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미래에 필요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논쟁 당사자들은 보다 진지하게 생산적 논의를 재개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앞서서 택견의 길을 가는 사람이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해야하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 글이 건강한 원형논의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