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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회 2월 정기월례회에서 한강축제설명회를 통해...
전통한선한강축제주비위원장이기도한 아호회회장 이의영은
경기도 무형문화제 이사장이며
전통한선경기도 무형문화제11호인 김귀성(아호회회원)과
2005년 12월부터 영월에서 마포나루에 이르기까지 황포돗배 통행로를 시연해 보이고자,
통행지역의 시군지역의 역사적 고찰과 환경 및 전통한선 학술대회등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는 사업을 기획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여건상 행사를 진행시키지 못하고,
이번 사업설명회를 통해 5월중 실천해보자는 뜻을 밝혔다.
설명회를 요약해본다
한민족의 혼을 찾아서(기획안)
건강정보신문사/ 무형문화제 11호 조선장 김 귀성
우리 민족의 젓줄인 한강의 맥과 전통한선 축제
주최. 주관: 전통한선한강문화축제추진주비위원회(가칭) 고대전통한선연구소.
협찬(예상):. 각 언론사 (협의 할 사항임)
후원(예상): 문화관광부, 한국관광공사, 문화제청, 경기관광공사, 한국선박안전협회
한국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경기도.강원도.서울특별시.하남시.남양주시.고양시.
양평군. 평창군. 영월군. 여주군(협의 할 사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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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와 목적:
우리 민족의 젖줄인 한강!
서울을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을 중심으로 우리 민족은 하나의 맥을 이어 왔다.
그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의 삶의 애환과 한강의 유일한 교통 및 역사 속에 큰이벤트행사(왕의 선유락 평양관사 부임 환영 연등행사 그리고 땟목 행사 와 고기몰이 축제, 생계수단이었던 옛 전통한선에 이동통로의 역사적 고찰과 한강전통문화제인(전통한선 축제와 예능인들의 공연 이벤트 등) 큰 축제를 통하여 온 국민에게 희망 과 화합의 축제를 창출해 내는데 큰 목적을 둔다.
행사계획 : 2008년.5월 예정
경유지 및 향토문화 축제:
태백시-영월-여주-이포-양평-두 물머리(양수리) - 미사리-덕소-광나루-마포나루-고양시(행주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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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역사적 고찰
1.도담 행 정기 순조23년(1823년)
2.다산(열수)정 약용의 행 정기, “다산과 춘천”
3.한국과 이웃
4.조행일록(1875년)12일간의 항해 일기
5.황 계희 평양관사 부임 축하 연등행사.
6.정조 대왕 배다리 능 행차
2.전설 및 지역소개
1.평택, (송탄) -숯 고개
2.양서면, (목 왕리)
3.달래나보지
4.동의부인의 정조 관
5.한강의 발원지(강원도태백 검용 소)
오늘도 한강은 흐른다. |
한강은 태백산에서 흘러오는 남한강과 금강산에서 흘러오는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나 서울의 남북을 가르며 서해로 흘러가는 강이다. 총 514Km로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길며 넓이로는 압록강 다음으로 넓다. |
한강의 유례
한강은 꼭 이곳을 점령해야 나라가 번성할 만큼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
한사군과 삼국시대 초기의 한강은 한반도의 중간 허리부분을 띠처럼 둘렀다는 뜻에서 '대수' 라 불렀고, 고구려에서는 '아리수' 라 했으며, 백제는 '욱리하' 라고 했다. 또 신라는 상류를 '이하', 하류를 '왕봉하' 라고 불렀다. 한편 '삼국사기' '신라편' 지리지에는 한강을 '한산하' 또는 '북독' 이라고도 했다. |
한강의 시대적 역사와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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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사시대의 한강 한강유역에서 구석기, 신석기시대 유물이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는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며 그들의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 토기, 석기 또는 골각기 등이 발견되고 있다. 이들은 구릉이나 야산에서 집중적인 채집활동을 벌였을 것으로 생각되며 원초적인 어로기법인 낚시어법이나 자돌어법이 일찍부터 성행하여 창 또는 작살을 이용하여 물고기를 찔려 잡기도 하였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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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동기 시대의 한강 지리적으로 한반도 중앙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한강유역의 청동기시대는 한반도 동북지방(함경 남북도)의 민무늬토기, 구멍무늬토기, 붉은간토기문화, 서북지방(평안남도, 황해도)의 팽이토기문화의 영향을 받아 민무늬토기문화 및 청동기문화가 성립되었으며 이들 양지역의 문화는 자체적인 발전과 혼합을 통해 한강유역의 독특한 청동기문화를 이룩하고 한편으로는 한반도 남부지방으로 문화를 전파시켜 주는 중간 매개지역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한반도에서는 민무늬토기 시대에 이르러 신석기이래의 농경이 더욱 발전된 것으로 보여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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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삼국시대의 한강 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한강유역의 득실이 나라의 흥망성쇠와 지대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 이유는 한강유역이 반도의 중앙부를 축으로 관류하는 큰 강인 만큼 한반도의 중심무대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군사, 경제, 사회, 외교적 제조건을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 지역이 삼국쟁패의 주요 과녁이 되었고 한강유역을 점유한 국가는 영토적 확장과 더불어 국가발전의 강력한 터전을 마련한 결과가 되었다. 결국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강유역을 번갈아 지배했던 사실을 전 역사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한강유역을 점유하면 나라가 번영하였고 상실하면 쇠퇴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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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려시대의 한강 송악의 호족 출신인 왕건은 918년 왕이 되어 고려를 건국하고 935년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문종 21년에 한강유역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당시 양주(현 서울)를 남경으로 승격시켜 개경 및 서경과 함께 3대요지가 되었다. 이후 고려말 1382년(우왕 8년) 9월에 한양천도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왜군의 창궐, 대명관계의 복잡성등 정치,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고 풍수지리설이 성행하자 도읍이 불길하다 하여 이듬해 2월에 개성으로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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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선시대의 한강 태조 이성계는 즉위후 불과 16일만인 1392년 8월 3일에 도평의사사에게 한양천도를 명하여 태조3년(1394년) 10월 25일(음력) 천도를 실현하였다. 한양천도의 배경은 다음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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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근세의 한강
한강변에 입주했던 최초의 외국인은 프랑스인 신부들이었는데 1887년 현 원효로4가 1번지의 6,500평의 땅을 구입하여 신학교를 건축하고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
한강의 발원지
남한강 유역
서울지역의 역사 유적 (예)
(지역별 유적지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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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행주산성 |
2. 약사사 |
3. 공암진 |
4. 염창터 |
5. 망원정 |
6. 양화진 |
7. 절두산 순교성지 |
8. 외국인묘지 |
9. 광흥창터 |
10.공민왕신당 |
11.밤섬 |
12.토정터 |
13.새남터 순교성지 |
14.사육신묘 |
15.노량진 나루터 |
16.이태원터 |
17.동빙고터 |
18.잠실 뽕나무밭터 |
19.제천정터 |
20.한강진 나루터 |
21.천일장터 |
22.독서당터 |
23.압구정터 |
24.입석포 |
25.저자도 |
26.살곶이 다리 |
27.뚝섬나루터 |
28.낙천청 |
29.봉은사 |
30.송파나루터 |
31.석촌동 백제초기... |
32.삼전도비 |
33.몽촌토성 |
34.풍납토성 |
35.광진(광나루터) |
36.암사동선사주거지 |
동강 뗏목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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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동강 |
동강둔치에서의
선유락
제작과정
행사에참여할 전통한선중의 한척(부여 백마강에서 운항중인 한선)
무형문화제 11호 조선장 김 귀성
“금년6월에는 어찌됐든 쌍돛황선을 한강에 띄워 지금까지 내 놓은 작품(배)를 집합시켜 한강의 발원지인 동강에서 출발하여 고양시 행주대교까지 옛 항로를 재현시킬 생각입니다.”
지난해 새우젓·소금, 숯과 산나물을 싣고 한강을 오르내리던 황포돛배를 복원해 화제를 모았던 조선장(造船匠) 김귀성씨(55·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1호이며 경기도 총연합회 회장이기도한). 이번엔 ‘쌍돛황선’을 만들어 왔고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하남시 강변고수부지. 그의 작업장 한쪽 깊숙한 곳에서 다듬어지고 있다.
“옛날 벼슬아치들이 강을 유람하며 시회(詩會)도 하고 유희도 즐길 때 쓰던 배입니다. 평안감사도 이 배를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올라 평양성에 부임했지요.”
쌍돛황선은 가운데가 붕어 배처럼 불룩하고 앞뒤는 제비처럼 날렵한 배. 갑판 위에는 누각이 있어 여럿이 둘러앉을 수 있으며 배 바닥의 널찍한 공간에는 음식을 싣고 광대, 관기들이 탔다.
“넉넉잡아 1년이면 다 지을 수 있는데 돈이 없어 중단을 거듭하다보니 아직 갑판도 못올렸어요. 누각까지 빨리 지어야 단청을 하는 분 모셔다 단청도 올리고 할 텐데….”
정부에 도움 없이 개인 자비로 문화제를 살리려는 그의 깊은 뜻을 표현 못해하며 한숨짓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겁게 처 올라왔다.
“이런 사업은 정부에 도움을 청할 수가 없나요.” 무슨 사연이 있는지 그는 입을 꾹 다물며 한숨만 내 지른다.
-아버지 대이어 황포돛배 복원-
그는 우수한 우리 한선이 잊혀져 가는 것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작업장 부근의 마른 풀들도 겨울 강바람에 손을 비벼대며 조바심을 냈다.
“임진왜란 때 일본 수군이 조선 수군한테 참패당한 이유를 아세요?”
느닷없이 그가 물었고 뒤이어 그의 ‘한선 찬가’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조선 배는 못을 밖에서 안으로 지르는 데 반해 일본 배는 못을 안에서 밖으로 지릅니다. 두 배가 부딪치면 조선 배는 못이 더 깊숙히 박히게 되죠. 반면 일본 배는 못이 빠져 부서지게 됩니다. 또 조선 배는 나무판을 턱지게 깎아 판끼리 서로 맞물리게 해 웬만해서는 부서지지 않습니다.”
그는 중학생 때 배 만드는 연장을 처음 손에 잡았다. 그의 아버지, 고 김용운 선생도 배 만드는 조선장이었다.
“중학교 때만 해도 한강을 오르내리는 황포돛배가 200~300척은 됐어요. 우리 마을(그는 예전에 나루터로 유명했던 하남시 배알미동에서 8대째 살아왔다)에도 20~30척씩 돛배들이 묶여 있었어요. 배 주문이 몰려 아버지 일손을 돕는답시고 연장을 만지게 된 거지요.”
그는 인천으로 다니며 전통 못을 사오는 심부름을 하며 일을 배웠다. 그는 아버지가 만든 돛배가 3,500척쯤 된다고 했다. 대개는 5~6인용이라고 했다. 그의 마을에서 셋이 대학에 들어갔는데 자신도 그 중 하나였다면서, 당시 배 만드는 일이 얼마나 호황이었는지 짐작하겠느냐고 했다.
한강에 댐이 들어서며 뱃길을 막아선 1970년대 말부터 배 만드는 일은 사양산업이 됐다.
“그때는 먹고 살기 위해 연장을 놓고 보험회사를 다니기도 했지요.”
-전통 한선 우수성 알리고 싶어-
최근 전통문화재가 조금씩 각광을 받자 그의 배 만드는 일도 점차 늘어났다. 최근 그는 5척의 돛배를 지어 부여, 양평, 하회마을, 하남시, 석촌호수로 시집보냈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은 황포돛배를 불러 모아 한강에서 문화축제를 벌일 생각이다.
“예전에 하던 그대로 돛배선단을 구성해 정선에서 시작해 나루마다 들러 숯과 산나물을 사 싣고 한강을 따라 고양시까지 내려가는 거지요. 정선에서 하고 있는 뗏목축제를 같이 하면 더 멋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리고 4월에 열리는 세계국제 무역박람회와 연계 시키려 합니다.”
“이 축제를 계기로 우리민족이 하나 되어 즐기고 마음이 하나로 모아져 화합을 이끌어냈으면 좋겠어요.”
“또한 관련 지자체와 많은 단체의 성원, 그리고 행사지역 주민은 물론 온 국민의 참여해 민족의 정기를 되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 진심이 담긴 작은 소망은 큰 희망의 꿈이 실현 되어 지리라 봅니다.”
“큰 축제의 마당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지요."<다음호에 계속>
행사추진 본부 <본사 기획업무국>
자료준비
1.한강의 지도
2.지역별 나루터 이름 전설
3.지역별 장터 5일장 등
4.지역별 농수산 특 작물
5.지역별 특징 및 홍보자료
6.배 제작 및 보도자료.
7.배 박물관 추진계획서
사업계획
1.지역별 행정책임자 방문
2.지자체별 문화행사계획
3.강원도/경기도/서울시 공동개최 추진
4.홍보
전통한선한강축제주비위원회 주비위장 이 의영
Tel:02)736-5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