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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이퍼 리얼의 표현, 광고사진- 프랭크 메이저(Frank Majore)
새로운 사진은 과거에 존재했던 사진의 보는 방식을 바꾸어 버린다. 즉 사진은 항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살아 있는 자유자재한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사진은 늘 새롭다. 1987년에 페이스 맥길 화랑에서 개최된 「범죄사진(Crime Photographes)」전은 항상 새로운 사진 즉, 구성사진의 맥락에서 파생된 사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전시된 사진은 1920년대부터 30년대에 걸쳐서 발생한 흉악사건의 범인들 초상사진이었다. 당시의 신문이나 범죄 전문지에서 사용된 빈티지 프린트(vintage print)를 그대로 전시한 것이다. 이 프린트는 범인의 얼굴 특징을 뚜렷이 하기 위해서 수정되어졌고, 배경은 하얗게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트리밍을 위한 화살표 표시가 사진에 그려져 있다. 물론 이것은 한 시대의 범죄인을 특집으로 한 저널리스틱한 사진전은 아니다. 현재의 새로운 사진의 상황 속에서 바라볼 때, 이들 사진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비록 직접적인 유용성은 상실하고 있지만 또다른 의미를 갖고 우리들 앞에 출현한다. 이것을 의도로 한 사진전인 것이다. 또한 오래된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 사진은 금이 가 있으며, 암갈색으로 변색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의외로 훌륭한 것으로 느껴지게도 된다. 이 사진들은 1백 달러에서 5백 달러 정도로 판매되었다.
사진은 새로운 사진에 의해서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짐과 동시에 그 놓여진 장소에 따라서도 변화한다. “한 장의 사진은 그것들이 보이는 문맥에 의해서도 변전(變轉)한다. 예를 들면, 유진 스미드(Eugene Smith)의 미나미타 사진은 밀착지, 화랑, 정치적 운동, 경찰의 파일, 클럽 잡지, 뉴스 잡지, 책, 거실의 벽에서 보았을 경우에 각각 다르게 보일 것이다.” 수잔 손탁은 사진이 용도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특히 주목되고,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는 것이 광고사진이다. 많은 구성사진은 광고사진의 인유(引喩)에 의해서 성립하고 있다. 구성사진의 최대의 전략인 패스티쉬의 극치는 광고사진이기 때문이다.
프랭크 메이저, 푸른 마티니, 1983
1986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그란셀 핏츠(Grancel Fitz)/광고사진, 1929-1936년」전은 새로운 문맥에 의해서 부활한 광고사진이었다. 핏츠는 이 사진전 이전까지는 완전히 잊혀진 인물이었다. 그는 포스터 신문, 잡지 등의 광고에 사진이 사용되기 시작한 20년대부터 30년대에 걸쳐서 활약한 광고사진가이다. 핏츠는 1894년에 태어나 1920년대 전반은 오로지 아마추어 사진가로서 활약하였으며 각종 콘테스트에 응모, 88개의 상을 획득했다. 당시 유행하던 살롱사진(pictorialism)에 영향받아, 처음에는 인상파풍의 연초점 사진을 찍었다. 26살 때 필라델피아에 스튜디오를 개설한 것을 계기로 대상을 샤프 포커스로 묘사하는 그래픽 스타일로 작품을 전환시켜 광고사진을 다루었다. 30년대에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부각되었다.
이 사진전에서는 그의 전성기인 29년부터 6년간에 걸쳐서 촬영된 광고사진 36점이 전시되었다. 이 시기는 29년 월가의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의 시기와 시대가 겹쳐져 있었다. 그러나 당연한 것이지만, 이들 광고사진에는 당시의 불황의 그늘은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 전시되어 있는 작품은 포드, 폰티악 등 자동차 광고용으로 촬영된 것이 많았지만, 그 중에는 파이를 오븐에서 꺼내고 있는 부모와 자식, 셀로판을 손에 들고 있는 여성 등의 사진이 보인다.
핏츠는 50년대에 들어와서 잊혀졌고, 63년 실의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사진들은 반세기가 지난 현재, 어떤 광고를 위해서 사용되었으며, 어떠한 카피가 붙여졌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광고였는가라는 직접적인 유용성은 잃었지만 이 시대의 일상적인 현실, 적어도 사람들이 동경하던 이상적인 이 사진의 흥미는, 배경이 없는 순수한 표층의 빛남, 광고 사진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에 있다.
또한 88년에 ICP(국제 사진센터)에서 개최된 「설득의 예술/광고사진의 역사」는 광고사진을 예술로 복권시키려는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이 광고사진은 상품명과 카피를 배제시켜 순수하게 사진으로서 전시되었다. 현대의 사진적 상황의 특징은 사진이 ‘전달의 매체’에서 ‘유희의 장치’로 변해가고 있는 점이다. 물론 ‘유희’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일상생활에 범람하고 있는 매스 이미지, 특히 광고사진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광고사진은 우리들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에 구애받지 않고 가차없이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어간다. 즉 현대사회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갖는 매체인 것이다. 그런데 광고사진협회 등 동업자에 의한 전람회는 있었지만 사진의 차원에서 광고사진이 사진사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미를 규명하는 사진전은 미국 국내에서는 거의 없었다.
아마도 이 「설득의 예술/광고사진의 역사」는 광고사진을 예술의 수준으로 그 위치를 부여하려는 미술관 차원에서의 첫 사진전이 아닐까 한다. 작품수는 총 150점의 소규모로서, 미국 광고사진의 역사와 전모를 알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었다. 그러나 첫 시도치고는 작품 선정도 그런대로 좋았다고 평가할 만하다. 전시된 사진은 광고문안이 들어가 있지 않은 오리지널 프린트로서, 150점 중 약 50점에는 그 사진을 사용한 광고가 축소되어 옆에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많이 선정된 것은 패션 분야로서 리차드 아베든(Richard Avedon), 어빙 팬(Irving Penn), 데보라 터버빌(Deborah Turbeville), 히로(Hiro), 사라 문(Sarah Moon), 롯데 요한나 야코미(Lotte JoHanna Jacobi) 등 패션 사진가의 작품이다. 이색적인 작품으로는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모홀리 나기의 사진, 현대미술관에서 재평가받은 그란셀 핏츠의 사진도 몇 점 전시되었다.
프랭크 메이저, 세실 비튼의 어떤 정물, 1984
에드워드 스타이젠(Edward J. Steichen)은 20년대 초기부터 『보그』지 등에서 패션사진을 정력적으로 발표했다. 이 무렵, 친우인 스티글리츠는 상업 사진 촬영에 분주해 있던 스타이켄을 ‘사진관 실업가’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타이켄이 패션사진을 크게 진전시킨 것도 사실이다. 이 사진전에는 <더글라스 라이터(28년)>가 선보이고 있다. 이것은 스타이켄의 사진집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광고사진은 60년대를 경계로 하여 현대광고가 갖는 개념으로 격변한다. 그때까지의 광고사진은 상품을 가능한한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많았다. 오늘날 우리들이 오래된 광고사진을 보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려운 향수에 빠지는 것은 일종의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의 정감인 것이다. 촬영자 미상인 <이스트만 코닥(1912년?)>, F.W. 웨스트레이(F.W.Westley)의 <낙농조합(1938년)>, 폴 라드카이(Paul Radkai)의 <하사웨이 셔츠(1958년)> 등 그 시대의 대중적 이미지가 도상(圖像, icon)으로서 정겹게 빛나고 있다. 이들 사진은 아베든이나 펜의 사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또한 1865년, 링컨 대통령이 암살되었을 때에 사용된 범인의 얼굴사진 즉 ‘지명수배(Wanted)'포스터가 이 사진전에서는 광고사진의 효시라 하고 있다.
필자는 「설득의 예술/광고의 역사」를 본 직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상영된 ‘일본의 텔레비전 광고 우수작’을 보았다. 그런데 미국에서 본 일본의 광고사진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일본에 대한 현시점에서의 정보로서는 흥미롭지만 이것들은 정감에 호소하는 힘을 잃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무의식중에 다른 세계로 놓고 보게 된다. 광고에 나오는 상품을 구입할 일도 없으며 또한 그러한 사회에 살고 있지도 않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여행지에서 외국의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 있는 기분과 비슷하다. 또는 유용성을 잃은 과거의 텔레비전 광고를 접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결국 심미적으로 보게 된다.
그런데 미술관에서 본 1백 개 가까운 텔레비전 광고 우수작에서 받은 감상은 모두 일본의 도시적 환상을 표출하고 있다. 시세이도, 레나운, 산토리, 네스카페, 세이코, 다이쇼 해상화재(이상은 일본 기업 이름) 등 여러 기업의 광고가 선별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경비를 아끼지 않고 사용한 해외 로케이션도 있었고, 일본의 시골을 찍은 것도 있었지만, 총체적으로는 도시적 감각을 느끼게 한다. 이를 공동체 환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공동체 환상이야말로 현대 일본의 물질적 정신환경이며, 사람들 생활의 본질에 가까운 곳에 접하고 있다. 그것들은 가볍게 떠돌아다니는 것이기는 하지만 현대 일본인의 생활을 표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들 광고가 미술관에서 상영되었다는 의미는 하나의 예술로 환원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관객은 일본어를 모르는 미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웃어야 하는 장면에서는 웃는 등 광고의 제작 의도에 따라서 민감하게 반응하였던 점이었다. 텔레비전 광고가 그만큼 강력한 매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았다. 광고는 본래 상품의 개념을 정확히 영상화하여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광고에는 상품의 실체에서 탈구축하여 이미지만이 자율하고 있는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상품을 호소하는 것보다도 미적 영상을 발광시키기 위한 매체로 변용해 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즉 미의 차이를 즐기는 오락으로 변해 있다. 지금 우리들은 그 커뮤니케이션의 홀림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미국인 관객 속에서 일본의 텔레비전 광고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광고 제작자들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일상의 회화체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통속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어떤 미지의 감성을 표명하고 있었다. 일찍이 야나기다 구니오는 대화식 언어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보통사람을 ‘둥근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 했고, 문장식 언어에 지배당하는 지식인을 ‘사각형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둥그런 언어야말로 진짜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우리들 주위에는 ‘둥그런 언어를 사용하는’ 서민은 소멸해버렸다. 서민은 현대 미디어 사회에 있으면서 이미지에 연마되어 고도의 감성을 갖는 이미지의 표현자로 변모해 버리고 말았다. 보통사람들이라는 것은 이미지를 매체로써 대화하는 사람들이다.
범죄사진전
지금까지 광고사진가는 순수사진이 개척한 새로운 시각을 자신들의 사진에 탐욕스럽게 흡수했다. 그러나 현대의 새로운 사진가들은 광고를 대범하게 인용하여 패스티시로 삼고 있다. 이는 이미 고도소비사회가 어떤 종착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대중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지성, 문화, 생활의 수준이 향상되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오래된 경계가 용해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대중문화(광고)는 미지의 시스템에서 무의식적으로 산출하는 새로운 감성을 우리들에게 얻게 해주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생각되어 오던 것보다 더욱 복잡한 내용을 갖고 있다. 지금 우리들이 ‘지(知)의 배치’의 전환을 체험하고 있다고 하면 대중문화의 부상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 역현상에 눈을 돌린 것은 무엇이든 탐욕스럽게 광고로 만들어 버리는 아트 디렉터였다. 그들은 광고를 인유하는 사진가에게 진짜 광고를 주문한 것이다. 물론 빈틈없이 계산한 후에 기용한 것이다. 이런 기용에 부응해서 사진가들은 자기 스타일로 도전하여 각종 광고사진을 제작하고 있다.
86년에 이들 뉴 웨이브 사진가의 제작동기에 해당하는 광고사진을 모은 「예술과 광고」가 ICP(국제사진센터)에서 개최되었다. 일층 전시장만을 사용한 소규모의 사진전이었으나, 구성사진가가 매스 미디어, 특히 광고를 어떻게 주제로 삼고 있는지를 역탐조할 수 있는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전시였다. 9명의 작가가 선출되었는데 특히 흥미를 끈 사람은 구성사진가인 로리 시몬즈와 바바라 카스텐이었다. 시몬즈는 자작 <위조된 패션(1984년)>속에서 <시골길(Country Road, 1984)>을 사용하여 모델의 인물을 구두로 대체시켜 구두 광고사진을 제작하였다. 배경에 비해서 구두가 비정상적으로 크기 때문에 신비스러운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카스텐은 기하학적인 추상사진과 같은 스타일로 PR지의 표지를 구성하였다. 그 구성은 스폰서인 컴퓨터 회사의 이미지와 조화되어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아트 디렉터 기용의 승리로 보여진다.
광고사진의 문맥을 가장 빠른 시기에 인유한 구성사진의 개척자, 윌리엄 웨그먼은 작품의 주제인 애완견을 기용한 패션사진을 제작하였다. 셔먼의 것으로는 82년부터 3년에 걸쳐서 찍은 패션사진의 셀프 포트레이트가 선정되어 있다. 이것은 『보그』지에 게재되었던 것이다. 광고사진에 있어 가장 완벽한 것은 지금까지 많은 광고를 제작한 메이플소프(Robert Maplethorpe)의 사진이다. 1930년대의 광고를 연상시키는 스타일의 영상으로 상품의 이미지를 사도록 권함과 동시에 그 자신의 작품 특유의 우아한 남자의 신체와 빌로드의 감촉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지금 ‘지(知)의 배치’에서 큰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고 하면 그건 문장 언어가 아닌 이미지의 무의식적인 감성이 앞서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이것은 예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와 관련되어 있는 문제이다. 구성사진가가 광고를 인용하고 인유하는 기점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프랭크 메이저만큼 일관되게 광고 그 자체와 같은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도 없다. 그러한 작품을 눈앞에 대할 때 우리들은 특정 사진가의 작품이 아닌 포도주, 담배, 향수 등의 광고를 위한 무명의 사진원고를 전달받는 기분에 놓인다. 메이저의 사진은 아이덴티티가 아니라 무명성을 감돌게 한다. 예를 들어, 대표작 <네페르티티(Nefertiti, 1984)>,는 테이블 위에 배치된 네페르티티의 흉상, 3개의 칵테일 잔, 백합이 꽂힌 꽃병 등이 베네치아 블라인드로부터 들어오는 핑크빛의 햇살에 염색되고, 그 아랫 부분에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다리가 떠오르고 있는 작품으로 광고사진과 흡사하다. <세실 비튼의 어떤 정물(Still Life with Cecil Beaton)>로부터는 메이저의 소년기 육성이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세 개의 포도주잔이 있는 사이드 테이블, 그 위의 벽에는 세실 비튼의 패션사진이 액자에 넣어 걸려 있고, 우측에는 여성의 두 개의 얼굴이 유령처럼 비춰지고 있는 정물사진이다. 비튼은 제2차 세계대전중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패션사진가임과 동시에 「마이 페어 레이디」등 영화의 의상 디자이너로도 알려져 있다. 1948년에 뉴욕의 퀸즈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도시인이다. 메이저에게 있어서 비튼은 화려한 도시를 구체적으로 실현한 선망의 표현자였다. 이처럼 메이저는 광고사진과 동질의 세련된 ‘도시적 환상’을 창조해내고 있다.
그는 필라델피아 예술대학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그 당시부터 광고와 매스 이미지의 강력한 매력에 매료되어 그 환상을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그 후 70년대 말경부터 시작한 것이 도시 풍경을 탁상 위의 정물로 표현한 ‘가짜 광고사진’이다. 그는 고급예술에 대한 열등감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광고를 칭찬하고 찬미하였다. 현대의 사진가는 에드워드 웨스턴이나 안셀 아담스(Ansel Adams)와 같이 사물을 찍는 것으로 진실이 표현된다는 따위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조명 등 완벽한 기술과 스타일로 정물(상품)을 세트하고, 표층을 두껍게 화장(化粧)시키는 것으로 20세기 말의 욕망을 표출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두꺼움’과 '화장‘은 사진가의 인공적인 기술에 달려 있다. 광고사진은 욕망을 추켜세우고, 욕망의 환상을 눈앞에 나타나게 한다. 그는 광고사진을 아이러니로 바꾸어 버린다. 메이저는 “나는 광고사진에서 상품을 제거한다. 그리고 배경을 앞으로 갖고 온다.”고 말한다. 즉 광고사진에 설치된 욕망의 올가미를 전면에 제시하여 우리들의 고도소비사회 시스템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고도 소비사회라는 것은 현실원칙이 소실되고 모든 것이 하이퍼리얼한 기호의 욕망으로 지배되는 시대이다. 우리들은 지금 그러한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란셀 핏츠, 광고사진, 1929-36
메이저에게서 특히 현저하게 볼 수 있지만, 구성사진의 출현은 이 현실원칙에서 하이퍼리얼한 시대로의 이행과 호응하고 있다. 패스티시를 비롯한 알레고리적, 분열적인 표현이라는 것은 하이퍼리얼한 사회로부터 출현한 전략인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하이퍼리얼’이라는 개념을 장 보드리야르로부터 빌려왔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소비사회를 분명한 태도로 명시하고 있다. 즉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진실 조합(照合), 객관적 원인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시뮬라시옹(simulation)과 시뮬라크르(simulacra)라는 개념으로 해명한다. 이 두 개의 개념은 난삽하지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를 기호체계의 닫혀진 둥근 쇠고리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기호적 둥근 쇠고리 속에서, 마치 거울의 방 안에 있는 것처럼 무한한 반사운동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 거울의 방 안에서 사람과 사물의 무한한 반사를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이라고 불렀다. 그 시뮬라시옹 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이나 사물 모두 시뮬라크르라고 부른다. 따라서 그 거울 속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비춰지기 때문에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모사(copy)인지 알 수 없다. 모두가 모사의 모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만물은 완전한 시뮬라크르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보드리야르의 기호체계의 닫혀진 둥근 쇠고리라는 파악이 현대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올바른 것이라 한다면, 즉 모든 것이 모사의 모사이므로 새로운 것을 낳는 생산의 개념은 완전히 죽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이 복제(reproduction)인 것이다.
이와같은 체계속에서 보드리야르는 “그것은 이미 실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이퍼리얼이다”라고 말한다. 더욱이 하이퍼리얼이란 “현실계와 상상계 사이의 모순이 소멸해 버리는 듯 한, 훨씬 더 앞으로 진전된 단계를 대표하고 있다. 이 단계에서는 비현실은 이미 꿈이나 환각이 아니다. 비현실이 현실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하이퍼리얼로 전환하는 매체로서 “현실은, 하이퍼리얼리즘 즉 현실 그 자체를 치밀한 모사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과정에서 붕괴하는 것으로 이 과정은 그 중에서도 광고나 사진 등 복제적 매체에 의해서 시작된다”고 했다. 여기서 사진과 광고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필자는 현대의 의미없는 기호가 떠돌아다니는 시뮬라시옹 지배의 하이퍼리얼한 사회라고 하는 것에는 전적으로 긍정할 수 없지만, 하이퍼리얼한 세계에 사회의 기초부분부터 전도되고 있는 시대에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로 프랭크 메이저에 의거해서 생각하면 광고를 욕망의 표현으로 보고 ‘광고와 꼭 닮은’ 사진을 제작하는 것은 하이퍼리얼한 일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광고에는 고도소비사회의 각종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상품 본래의 모습이 사라지고 이미지로서 자율한다는 것은 현대사회가 놀이, 구경거리, 춤, 다채로운 환상이 어지럽게 떠다니는 황홀한 모태로 변화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광고가 없는 생활은 물건이 그곳에 있다는 것뿐, 텅빈 공간일 뿐이다. 모든 광고가 배제되면 침울한 늪에 빠질 것이다. 지금의 광고는 사람들의 꿈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에 참가시키고 있는 현대의 장치이다. 메이저의 광고 아닌 광고는 그것을 시사하고 있다.
포도주를 마시고 향수를 뿌린다는 것은 사실은 광고가 품어내는 참신, 사치, 우아, 기품 등 각종의 소비사회의 환상을 맛보는 것이다. 이것은 메이저의 말로 표현하면 욕망이고,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하이퍼리얼이다. 단 아깝게도 메이저의 작품은 광고의 문맥의 무명성(無名性)을 너무나 충실하게 위장해 버린 나머지 과격하며 자극적인 비전에서 결여되고 있다. 이러한 사진들을 저속한 작품으로 볼지, 예술로 볼지는 물론 보는 이쪽에 달려 있다.
『현대사진의 전개』, 고쿠보 아키라, 김남진 역,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