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스도 희랍철학의 영향을 받았고, 그와 암모니우스 삭카스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에게서 철학을 배운 오리겐도 희랍의 영향하에 “성자는 제2의 하나님이다, 성부로부터 현현하였다. 두 하나님, 한 하나님을 말한다“ 고 하였다는 것, 그의 이러한 교의로부터 우익과 좌익이 [그리스도/말씀]의 대한 견해차이로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 우익의 대표자는 알렉산드리아 감독이었던 알렉산더(정통쪽,318-328)이고, 좌익의 대표자는 교회사가였던 유세비우스(265-338)였다고 합니다.(나중에 유세비우스는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유대출신, 아리우스와 친함)
그 유명한 아리우스(250-336)가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였으나 그는 안디옥 신학파에 속한 사람이였다는 것,(리비아와 레바논 출신??), 우익의 대표자인 알렉산더와 가까운 관계에 있었던 사람이였으나 나중에 알렉산더에 의해 공격을 받다가, 콘스탄티노스 황체의 권력 강화의 일환으로 소집한 니케아 회의(325, 6)에서 알렉산더와 그의 후임 아타나시우스에 의해 정죄를 받고, 길을 가다가 장이 터져서?? 죽었다고 함, 콘스탄티노플 회의(381)에서 정죄를 받고 아리우스파들은 추방되었다는 것,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전체적으로 필론(유대교 철학자, 유대인의 종교가 진정한 철학이다)과 오리게네스의 영향을 받고 있어서 전통적 교리에 대해 소극적이였습니다. 알렉산더와 아타나시우스(296-373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그리스인)도 그러했는데 어느날 알렉산더 감독이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같다라는 설교하고 있었는데 아리우스(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고 함)가 자기 외에 5명의 장로, 6명의 집사 그리고 3명의 감독과 함께 자기가 이해하고 믿는 방식의 신앙을 고백하므로서 자극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 318년 성자 예수에 대한 이해를 놓고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와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319년 알렉산드리아 교회로부터 출교를 당했다. ##
## 필론 [BC 15?~AD 45?] 희랍철학과 유대사상의 조화를 시도한 이, 최초의 신학자,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철학의 대표적인 존재이며 신플라톤주의로 가는 길을 연 사람 ##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회의(325년 318명정도 모였다고 함) 후에 알렉산더가 죽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고, 니케아 회의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정치적 결정에 의하여 승리를 하였으나 그후 콘스탄티우스 2세(황제)와 결탁한 아리우스파의 박해로, 5번이나 교구장직을 박탈당하고, 17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리우스(Arius,250-336)는 안디옥 신학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안디옥 신학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에 강한 역점을 두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인간일 뿐이다라고 주장한 안디옥의 루키안에게서 수학을 했다. 그러나 후에 루키안은 자신의 주장을 번복했다. 루키안은 아리우주의의 아버지라고 한다, 4세기의 모든 아리우스주의자들이 그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아리우스는 신플라톤주의자로서 그것은 신성의 절대적 단일성만이 최고의 완전성을 의미한다는 주장이였다.(유대적 유일신관과, 신플라톤주의의 일자관이 맞물려)
알렉산드리아는 알레고리 해석을 사용하였고, 안디옥은 축자영감설을 사용하였음
<니케아 회의(325) 소집 배경이 된 아리우스와 알렉산더 논쟁>
니케아 회의 결정사항 = 1) 아리우스 처리 문제, 2) 유월절 문제
아리우스(60대)와 아타나시우스(30대)의 쟁점 사항은 성자가 성부와 같은 동일본질(호모우시우스/우시아/숩스탄티아)로 구성된 신적 존재인가 아닌가라는 것, 이는 유대 유일신관과 신플라톤주의의 중심하에 이론을 구축한 아리우스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의지한 아타나시우스의 대결이였다는 것, 물론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앞서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오리겐의 영향이 지배적인 곳이였다는 것과 아울러 그 오리겐의 스승인 암모니우스 삭카스가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이고, 클레멘스도 희랍철학의 관점하에 성경을 해석하였다는 점에서 알렉산더 감독과 아타나시우스도 그런 영향하에 있었을 것은 분명하나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두고 각자가 서 있었는가 하는 것이 초점이 될 것이라는 것,
덧붙여, 앞서서 오리겐의 그리스도론의 이해에 따라 좌익과 우익이 있었던 바, 오리겐 좌파인 알렉산드리아 장로 아리우스와 오리겐 우파인 알렉산드리아 감독 알렉산더 사이에 일어난 논쟁이 된다는 것, 아리우스는 악렉산더 감독이 감독하는 알렉산드리아의 12교구 중 하나인 바우칼리스(Baucalis)를 담당한 수석 사제 신분이였다는 것, 또한 아리우스는 역동적 단일신론을 주장한 사모사타의 바울의 제자였던 루키안(Lucian)의 문하생이었다는 것 입니다.
루키안의 지적 세계는 오리겐의 많은 사상을 계승했는데, 아리우스는 루키안보다 훨씬 더 오리겐적으로 신학을 재구성했다. 이로 보건대 아리우스는 동방에 유행하던 두 가지 신학 사조, 곧 알렉산드리아와 가이사랴를 중심으로 전파된 오리겐의 사상과 안디옥을 중심으로 전파된 루키안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종합하면 오리겐의 그리스도 이론의 좌익쪽 견해 즉 성부와 성자의 성별성을 수용한 가운데 안디옥의 사모사타 바울(260,268)의 역동적 단일신론(역동적 군주신론/양자론)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루키안의 이론을 종합하였다는 것 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역동적 군주신론의 창시자인 데오도투스(190, 210)에 이른다는 것, 주님은 보통 인간이였으나 세례를 받을때 로고스가 내려와 그에게 신적능력을 부여 하였다. 예언자이기는 하나 하나님은 아니였다. 부활후 처음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라는 이론,
주님의 신령인성 곧 하나님의 아들의 두가지 이미지에서 본래적 신령인성과 성도의 표징으로서 신령인성(양자) 중 후자의 따르면 위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이 된다는 것, 성모로부터 잉태되는 것은 성도안에 주님의 크신 능력과 성령의 강림으로 탄생하는 새사람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양자/Adoption/휘오데시아) 입니다.
그것이 속에서 겉사람으로 진전하여 출생하게 된 것과 자라고 성장하다 때가 차자 신적능력이 임재하여 그리스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우리의 신령인성 곧 하나님의 아들은 성화와 영화로 가야 한다는 것, 그 어느때가 되면 합일로 인해서 신적능력이 생기게 된다는 것, 그러므로서 성도는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는 것, 사도들이 그랬던 바와 같은 신적능력의 발출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 입니다.
그때로부터 영화와 겸비 상태를 오가며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다가 십자가 고난과 같은 고난으로 죽게 되면 부활하여 영원한 합일(신화/Deification)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부활인성과 부활체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중생의 표징으로서 볼때 그렇다는 것이지 주님의 본래적 신성의 상태에서는 그렇게 군주신론의 성자의 신성부정과 양자로서 입양하였다는 것은 그릇된 것이 된다는 것 입니다.
### 주님에게 있어서 인성이 신령인성으로 완성되는 것은 겸허와 영화라는 상태순환의 법칙(음양의 원리와 다를바가 없음)을 사용하므로서 입니다. 주님의 겸허는 성도의 겸허와 달리 완전한 비움/텅빔을 말 합니다.(총서개요 상 p97) 여기서 비워지는 것은 마리아로부터 받은 유전악과 인성과 몸을 말 합니다. 이것들은 피조물에 속한 것이기 때문 입니다. 성도의 경우는 악만 비워지고, 인성과 몸은 정화가 될뿐 입니다.
마리아에게 속한 것이 현재 남아 있다면 마리아는 그 부분적인 것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어머니(데오토코스: 하나님을 잉태한자, 에베소 공의회 431, 칼겐돈 신조 451)라고 불리울수가 있을 것이며, 피조물이 조물주 위에 놓이게 될 것 입니다.(총서개요 상p80, 85, 86)
만약에 인성과 몸이 벗어진 것이 아니라 정화가 되었다고 한다면 물질적인 것과 피조물적인 것이 태초부터 신성으로서 주님과 함께 있었다가 될 것이라는 것, 내지는 세상만물은 주님의 본성으로부터 유출된 것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라는 것, 곧 범신론으로 기울게 될 것이라는 것, 또 피조물에 속한 것은 신성으로 경배가 될 수가 없다는 것, 신성과 피조성은 이질적인 것이라는 것, 신인합일은 있을수 있어도 주님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신성과 피조성으로서 말할수 없는 것, 주님의 신인 양성론에서 인성은 피조물의 인성을 말하지 않고, 신령존재로부터 나와 신령하게 된 인성을 말한다는 것 입니다. 후자의 인성과 전자의 인성은 본질과 기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
이 이론으로부터 더 올라가면 [에비온주의]가 되는데 유대 기독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 사조를 말 합니다. 예수는 인간이였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뛰어난 품격과 공로로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하였다고 하는 이론을 말 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한 신이고, 아들이 다른 신이라면 아버지가 하나님이고,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면 한 하나님이 아니라 두 하나님이 동시에 표출된다 즉 아버지와 아들 양자가 하나님이 된다. 이는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씀에 위배가 된다.”
첨가하면 사모사타 바울(안디옥의 감독)은 에비온주의와 데오도투스의 역동적 군주신론의 가르침을 깊게 이론화한 사람이라는 것, “말씀의 실체를 부정, 예수는 성부와 다른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성자의 신성을 부정” 하였다는 것, 그후의 이 이론을 수용한 집단은 유니테리안, 재세례파가 있다는 것,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다른 가운데 페르소나의 구분을 말하는 것과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동일하다고 하는 가운데 페르소나의 구분을 말하는 것이 이단과 정통의 차이라고 한다는 것,
이렇게 종합하면 아리우스[Arius, 250?~336?]는 유대의 유일신 관념과 희랍의 신플라톤주의라는 거대흐름들을 이어받은 후손이 된다는 것, 알렉산더와 아타나시우스 [Athanasius, 295~373]는 예수님으로 인해 생성된 기독교계의 흐름하에 있었던 존재들이 된다는 것, 그 당시 중동의 주된 패러다임이였고, 서구의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정신세계를 장악하고, 있었던 헬레니즘(희랍철학)과 헤브라이즘(유일인격신)의 틈바구니에 있었던 사람들이였고, 그 중동의 시간과 공간이였다는 것 입니다.
이 논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선재하신(영원하신 아들) 성자께서 개별적인 위격을 지니고 계셨으며,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의지(유출설과 양자설 부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본성(본질)에 의한 것이었다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알렉산더의 주장이었다.(동일본질설 성부와 성자의 본질은 같다. 호모우시우스)
알렉산더의 장로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아리우스는 이러한 알렉산더의 주장에 반대하여 성부의 본질은 자존적인 것이며, 또한 성자는 참으로 아들이신 까닭에 성자의 본질은 성부로부터 산출(유출)된 것으로 성부와 성자의 본질은 다르다, 아노우시우(anomoios) 또는 아노모이안(Anomoean) : "비유사"라는 뜻의 헬라어에서 온 말로서 아들이 아버지와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아리우스와 아리우스파가 사용한 단어이다.
다시 말해서 아리우스는 성자께서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 마찬가지로 성부의 창조의지에 의하여 이 세상의 창조 질서에 따라 무로부터 창조되셨음을 주장하였던 것이다.(신플라톤주의의 유출설에 따라) 따라서 그의 주장에 의하면 성자는 성부와 같은 선재적인 존재(영원 어느때이기는 하나 존재하지 않았던때가 있었다.)가 아니며, 또한 성자는 하나님이시기(유출설의 이론에 따라 제2의 하나님)는 하지만 성부로부터 신성을 부여받은 존재로서 성부께서 낳으신 아들, 곧 "로고스"이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성자가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지니고 계신가 그렇지 아니한가 하는 것이였다.
이 논쟁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장로 아리우스와 감독 알렉산더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실은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에 대한 안디옥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간의 신학적 논쟁이었다는 것, 아리우스는 안디옥 학파에 속하는 루키안(Lucian)의 제자였다. 아리우스에 의하면 로고스(말씀)가 하나님(성부)의 대리자로서 우주를 창조했는데, 그 로고스는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로고스는 역사적 시간 이전이긴 하지만 “그는 존재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옹호하다 보니까(헤브라이즘도 그렇고 신플라톤주의의 하나님인 일자도 유일성이다) 아리우스는 성자와 성령이 성부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동일 본질설(homoousios/호모우시우스)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강조하고 있는 바였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로고스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존재하고,(영원하신 아들) 신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피조 될수가 없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중심적인 관심은 구원에 있었다. 그러므로 로고스가 비록 우리와 같지는 않다 해도 피조물이라면 인간의 구원은 불가능해 진다. 그리하여 논쟁의 초점은 로고스(말씀)의 신성성의 문제였다. 즉 성부와의 본질의 있어서 성별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였다.
아리우스는 알렉산더의 주장에 대해서 “동일한 신성을 지닌 존재가 둘 있다는 것이 되므로 그것은 기독교의 기본적인 유일신관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고, 반면에 알렉산더는 아리우스가 말씀의 신성을 부인하므로 결국 그리스도의 신성까지 부인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아리우스나 알렉산더는 오늘날과 같은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것, 단순히 성경의 표면에 드러난 문구와 단어를 가지고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것, 아리우스의 정곡을 찌르는 비판대로 알렉산더의 영원부터 영원까지 성부와 성자가 본질이 같은 채로 둘이 있었다라는 것은 오늘날의 삼위일체 관하고는 차이가 난다는 것, 위격을 둘이나 셋으로 숫자적으로 말할수 없는 것이고, 인격적으로 말할수 없는 것이라는 것, 양자가 다 부족했으나 알수 없는 주님의 뜻 하에서 알렉산더와 아타나시우스의 승리가 허용 되어진 것,(비의)
감독 알렉산더(Alexander, 312?-328 재위)는 장로 아리우스의 교훈을 정죄하고, 교회의 모든 직분을 박탈하였다.(320) 이에 아리우스는 승복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다른 감독들에게 호소를 하였다. 이 논쟁으로 교회가 분열되는 것은 제국의 통치에 유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콘스탄틴 황제는 그 해결의 길을 찾기 위해서 전체 교회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콘스탄틴은 종교 문제에 관한한 그의 고문이었던 코르도바(Cordova) 감독 호시우스(Hosius)의 견해에 따라서 니케아 회의(325년)를 소집한 것이고, 호시우스는 알렉산더를 지지한 사람이였다는 것 입니다.
320년 파문당하기 전에 아리우스는 318년에 말씀에 관한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 책에서 “그(성부)는 모든 것의 근원이며, 시작되지 않은 근원이다. 그분만이 출생하지 않는 자존적 존재다. 영원하고, 참되며, 주권적이고, 지혜와 선과 모든 것을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불사적이고, 불멸적이며, 영원적이다”
이것은 구약의 여호와 신관과 동일하지요. 아리우스가 말한 하나님은 유대인들과 동일한 믿음에 따른 것으로서 다른 모든 존재와 절대적으로 구별이 되고, 그의 본체를 다른 존재에 분여해 줄수도 관계를 가질수도 없고, 직접 교류하지도 않는다는 그 당시 예수님을 죽이며 유대인들이 외쳤던 신념에 다름이 없다는 것, 이것은 지금의 이슬람교(모세오경을 가진)의 알라에 대해서 아랍인들이 말하면서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관을 비난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다는 것, 물론 힌두교와 불교와 통일교와 여호와 증인 등등이 대동소이하게 가지고 있는 신 관념 입니다. 무형의 하나님, 원초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하나님, 유한이성을 초월한 무한자,무엇이라고 그 어느 것으로도 정의할수 없는 그것, 불교의 경우는 불성이라고 하나 신성의 다름 이름으로서 본다는 것,
“그 분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나 그 분은 일용할 양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꾸란 6:14) “그 분은 살아계시나 영원하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도다. 졸음도 잠도 그 분을 엄습하지 못하도다. 천지의 모든 것이 그 분의 것이다.” (꾸란 2: 255) “그 분을 닮은 것은 아무 것도 없도다.” (꾸란 42:11)
꾸란(Quran) 112장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답하시기를: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러 가로되: 하나님은 단 한 분이시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성자와 성부도 두지 않으셨으며 그분과 대등한 것 세상에 없도다(112:1-4) (4:172) "알라(Allah)와 그분의 사도들을 믿으며 그분들은 세분이다라고 말하지 말라 단념하라 그것이 너희에게 더욱 좋으니라 실로 알라(Allah)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니 그 분께서 아들을 두셨다 함은 그분의 성스러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라"
첫댓글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