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생방송'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1.인생은 생방송 홀로 드라마 되돌릴 수 없는 이야기 태어난 그날부터 즉석연기로 세상을 줄타기하네 미움이 넘칠 땐 사랑을 붙잡고 눈물이 넘칠 땐 기쁨을 붙잡고 비바람 부딪치며 살아온 세월 하루가 백년이네 인생은 재방송 안돼 녹화도 안돼 오늘도 나 홀로 주인공 2. 인생은 생방송 모노드라마 되돌릴 수 없는 이야기 태어난 그날부터 숙제를 안고 세상을 줄타기하네 미움이 넘칠 땐 사랑을 붙잡고 눈물이 넘칠 땐 기쁨을 붙잡고 정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세월 하루가 백년이네 인생은 재방송 안돼 녹화도 안돼 오늘도 나 홀로 주인공 이 가요는 김동찬 작사 박현진 작곡 송대관의 노래입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노래입니다. 인생을 생방송이라고 합니다. 홀로 드라마 모노드라마라 합니다. 되돌릴 수 없는 이야기라 합니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길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로망 로랑의 대하소설 '매혹된 영혼'에서 "인생이란 차표는 왕복표를 발매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인생 길은 일방통행입니다. 잘못된 인생 삶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회개해서 용서는 받아도 역사는 남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역사에서 그것을 생생하게 교훈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을 잘살아야 합니다. 모든 인생이 나그네이지만 더욱이 우리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임을 역설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은 창세기 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의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년이니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의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애굽의 바로 앞에서 말합니다. 이 때의 야곱은 130세였습니다. 그의 조부 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고 그의 아버지 이삭은 180세를 살았습니다. 그후로 야곱은 17년을 애굽에 내려와서 총리대신의 아버지로 후한대접을 받으며 살아 147세에 생을 마감합니다. 그런데 그는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인생이 화려한 것 같아도 사는 것이 고생입니다. 오래 전에 부르던 虛事歌란 복음성가에 "人生百年 산대도 슬픈 歎息뿐 우리인생 무엔가 雲霧로구나 요소칠척 적은 몸 滄海일속에 終身석사 浮游의 生涯로구나. 紅顔少年 美人들 자랑치 말고 英雄豪傑 烈士들 뽐내지 말라 流水같은 歲月은 널 재촉하여 저 적막한 공동묘지 널 기다린다. 욥기 5:7을 보면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하였습니다. 뚜이네스의 애가에 "슬기로운 자는 이미 깨달았노라 우리에게 해득 된 이 세계에선 마음을 놓고 두 다리를 펼 곳이 없다" 고 했습니다. 도스도에프스키는 그의 저작 '까마라조프의 형제' 중에서 이반의 입술을 통하여 "이 땅위의 생의 조건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내생의 입장권을 조물주에게 물려드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시인 뻔스 "나는 몇 백 번이나 인간은 마치 어떤 관리가 그의 임무를 사임하는 같이 나의 생을 사임할 수 있으면 하였다"고 했습니다. 시인 꾀태는 "내 일생의 기쁜 날은 일주일밖에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실라는 "인생은 백년을 채우지 못하나 만년의 근심을 품는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성인들도 이 세상은 고해와 같다고 합니다. 썸머셑드 모음의 '인생의 굴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어느 동방나라에 인생에 대하여 깊이 알고 싶은 임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라안에 있는 학자들을 모아 인생의 대하여 강의를 요청하였는데 평소에 인생에 대하여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전에서 강의하자니 마땅히 할말이 없었습니다. 500명의 학자들이 모였는데 500권의 책을 소게 하는 것입니다. 그때 임금은 내가 어떻게 이 많은 책을 정사도 바쁜데 읽겠소 연구비를 줄 터이니 10년 동안 연구하여 간편하게 만들어 오라 하였습니다. 10년 뒤에 그들은 500권의 책을 50권의 책으로 만들어 와서 페하 여기 있습니다. 그때 임금은 정사도 바쁜데 이 많은 책을 언제 다 읽겠소 다시 연구비를 줄 테니 더 간단하게 만들어 오시오 10년이 지나서 50권의 책을 1권의 책으로 만들어서 임금 앞에 오니 임금은 인생의 마감을 하기 위하여 병석에서 숨을 거두는 판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책을 읽고 가셔야지요? 죽는 사람이 책을 어찌 읽으랴 그는 '한마디로 딱 부러지게 말하시오 인생이 무엇인지를' 그때에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인생은 나서 고생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때에 임금은 '맞았어, 맞았어 인생은 나서 고생하다 죽는 것'하고 목숨을 거두었습니다. 왜 인생이 이렇게 고생이겠습니까?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합니다. 그러나 영어 성경NIV에 보면 'Dear friend, l urge you, as aliens and strangers in the world'라고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왜 고생이야 하면 이 세상이 우리에겐 객지이기 때문입니다. 나그네요 행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여행을 해보면 고생입니다. 호텔이 아무리 좋아도 내 집 만 못합니다. 나그네 생활은 만족이 없습니다. 보물섬의 저자로 영국의 수필가인 스티븐슨의 수필 중에 '만족이 없는 인생이란'이란 글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깁니다. 어떤 신혼부부가 결혼을 하여 살집을 지으려고 합니다. 요새로 말하면 전원주택을 하나 짖는데 앞에 물이 흐르고 뒤에는 좌청룡 우백호로 산이 둘러 섰는 좋은 장소를 구해 집을 설계하여 지으려고 하는데 저쪽을 바라보니 여기보다 더 좋은 장소가 있어서 거기로 가서 또 집을 설계하여 지으려고 하는데 또 저쪽은 보니 그곳이 더 좋아 보입니다. 이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처음자리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만족이 없습니다. 객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그네 된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고향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덴마크의 우수의 철학자 Kierkegaard 는 "인간은 고향을 떠난 영원한 객이다 본향을 잃었기에 돌아갈 곳이 없다"라고 하였고, 독일의 철학자 Heidegger는 "현대인은 고향상실성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습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인생에게 고향을 찾아주려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나그네로 살아도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우리의 돌아갈 곳 우리의 고향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479장 찬송입니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쉴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빌리브 네리 신부에게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은 데 집이 가난하여 할 수 없습니다. 장학금을 주세요라고 하였습니다. 장학금을 줄 테니 공부를 하여 무엇을 하려는가 법학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변호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 그리고 다음은 돈을 많이 벌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리고 그 다음은 집도사고 땅도 사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리고 그 다음은 요조숙녀 만나서 장가를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청년은 말이 없었습니다. 할 것을 다했기 때문에 그 다음이 없습니다. 그때 빌리브네리는 땅바닥을 치며 '그리고 그 다음은 영원이란다'했습니다. 그 길로 그 청년은 가서 수도사가 되어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로마의 울반대학교 정문오른 쪽에 '그리고 그 다음은 영원이란다' 라고 큰 돌비석이 서있습니다. 이 대학을 더나드는 학생들에게 그것을 읽고 그리고 그 다음은 영원인 하늘나라를 찾도록 하는 교훈입니다. 톨스토이의 동화집에 '땅 한 평'이라는 이야기는 너무 유명합니다. 어느 황제가 한 청년을 불러놓고 오늘 귀한 특혜를 자네에게 주겠는데 여기다 말목을 하나 쳐놓고 하루종일 돌아오면 그 안에 있는 땅을 자네에게 주겠네 그것 정말입니까? 짐의 말이 법이 아닌가 주고 말고 그리하여 그 청년은 하루종일 달렸습니다. 소변도 대변도 밥 먹는 것도 시간이 아까 워 제대로 못하고 말목이 있는데 까지 흘득이며 돌아왔는데 그만 너무 과로하여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땅 한 평에 무덤밖에 차지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땅 한 평'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땀을 흘리고 애를 써서 돈을 모으고 땅을 사지만 결국우리 인생은 땅 한 평에 묻히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土地 많아 무엇하나 나죽은 후에 三尺壙中 一葬地 넉넉하겠고 의복 많아 무엇하나 나 떠나갈 때 壽衣한벌 棺한개 족하지 않나. 땀흘리고 애를 써 모아 논 財物 안고가나 지고가나 헛수고로다 빈손들고 왔으니 또한 그같이 빈손 들고 갈 것이 명백하구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나는 알몸으로 이 세상에 왔고 그리고 나는 알몸으로 이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경고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이 세상에서(In the world) 나그네와 行人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靈魂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하였습니다. 우리성도들은 이 세상이 우리 집이 아니라고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히브리서11장은 믿음의 열전입니다. 히11:13-16 "이 사람들(믿음의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歡迎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을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本鄕을 思慕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니 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豫備하셨느니라" 나그네와 行人같은 우리는 우리의 본향 되는 하늘나라를 늘 사모하며 이 땅을 살아야합니다. 미국의 부흥사 무디는 "나는 하늘나라가 가고싶어서 향수병이 걸렸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순례자'란 노래 '이 세상은 나그네길'을 부르고 마치겠습니다. 1 .이 세상은 나그네길 나는 다만 나그네 나의 집은 저 하늘 저 너머 있고 천사들은 하늘에서 날 오라고 부르니 나는 요 이 땅에 있을 맘 없어요 후렴 이 세상 이 세상 나의 집은 아니요 우리구주 머지않아 다시 오실 때 천사들은 하늘에서 날 오라고 부르니 나는 요 이 땅에 있을 맘 없어요 2.이 세상은 고독불안 슬픔 괴롬 된 세상 나의 주님 의지할 것밖에 없어요 앞에 가신 성도들의 순교정신 따라서 천한 몸 이나마 싸워서 가리라 3. 이세상은 어제 밤의 꿈과 같은 천막집 그 기쁨은 저마다 물거품 같고 해아래서 바람 잡는 것과 같이 헛되니 나는 요 주님만 섬기고 살래요
첫댓글 아멘~ 입니다.
목사님의 풍부한 인생 경험과 함께 생방송으로 살아오신 모습속에서 울려 나오는 말씀이 그저 은헤입니다 감사 합니다.
희한한 거는 읽기만 하는데도 그 우렁찬 쌤 목사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니.... 은혜는 벌써부터 챙겨지고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