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공세*
김성구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1. 자본의 세계화의 현단계: 이론적 도전?
1) 오늘날의 자본의 세계시장운동은 초국적 금융자본의 전지구적 운동으로 특징지워진다. 자본의 세계화는 오늘날에 이르러 하나의 새로운 단계에 도달하였고 이러한 운동을 추동하는 이른바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정책은 자본의 발전경향에 합법칙적으로 보이며 심화되는 세계시장 경쟁하에서 자본의 가치증식 요구에의 적응이라는 것 외에는 어떤 대안도 제시될 수 없는 듯하다. 반독점변혁과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자본의 지양과 노동자계급의 해방으로 나아가는 전통적인 변혁전망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도 사실 추동력을 상실하여 왔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하여 진보진영의 논의는 전통적인 국독자론뿐 아니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비판까지 폐기 또는 재구성이라는 이름하에 기각하고 새로운 이론적 모색을 시도하여 왔다. 예를 들어 경제학에서 조절이론, 세계체계론이라든가 정치학에서 시민사회론, 신사회운동론 그리고 철학/문화론에서 포스트모던이론 등이 그것인데 이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논쟁은 결여되었고 일방적 지적 유행이 지배하여 대체로 불모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새로운 이론들하에서 정치적 전망은 기대난이라고 생각한다.(현실의 정치사회운동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을 요구한다.)<주1>
2) 자본의 세계화가 오늘날 어떠한 특징을 동반하면서 진행되었다 하더라도(그것은 주지하다시피 생산자본의 국제화, 초국적 금융자본, 초국민화와 국민국가의 모순 증대 등) 그것이 그에 대한 분석의 이론적 토대로서 정치경제학비판의 체계와 독점자본주의론/국독자론을 혁신하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현대 세계경제의 역사적 변모를 근거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비판을 비판하고자 하는 논자는 대개 마르크스의 방법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하며 오히려 마르크스의 이론적 토대위에서 그리고 국독자론의 발전위에서 현대의 자본의 세계시장운동의 특징들을 이론적으로 일관해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전통적인 이론과 해석에 대한 자기비판적 재구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구성의 길, 마르크스의 유산으로부터 남겨진 과학적인 길을 독단적인 마르크스 왜곡/해석을 통해 봉쇄하고 나서는 생산적인 이론발전과 정치적인 전망은 기대하기 어렵다.
3) 자본의 세계화 경향과 세계시장의 국민국가로의 분열이라는 모순적 경향은 현대자본주의에 이르러 보다 심화되기는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전체역사에서 관철되는 경향이고 이러한 모순속에서의 자본의 세계시장운동에 대한 분석은 이미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비판체계에 의해 주어져있다. {자본}은 정치경제학비판체계의 핵심이긴 하지만 부분적인 완결에 지나지 않았고 따라서 마르크스의 전체 계획과의 관련하에서만 {자본}의 위치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자본}에는 세계시장에서의 자본의 운동의 분석이 추상되어 있지만, 그것은 정치경제학비판의 상향의 방법에 따라 세계시장의 분석으로까지 나아감에 있어 일정한 추상의 단계에 조응하는 것이었다. 자본의 세계시장운동의 분석을 경험주의적인 일반화를 통해서 수행하지 않고 이같은 분석적 우회로를 추구한 것은 다름아닌 자본주의세계경제의 객관적 현실에서 비롯하는 불가피성이었으며 그것이 정치경제학비판의 과학성을 담보하는 것이었다. 자본주의는 구체적, 역사적 자본주의로서 항상 (국민국가로 분열된) 세계자본주의로서 존재하며 그것은 자본주의의 생성과 발전의 전체 역사에서 그러하였다. 그런데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기본적인 이론으로서 {자본}은 마르크스 자신의 표현대로 자본주의생산양식의 내적 편제를 그 이념적 평균에서 서술하고 있고 세계자본주의의 서술 또는 분석은 {자본}에서 명백히 배제된 것 같아 보인다. 이것이 {자본} 해석상의 통상적인 오류(즉 {자본}은 19세기 영국자본주의의 이론모델이다 또는 {자본}은 유럽/ 영국중심적인 일국자본주의 이론모델이다는 테제들)를 가져왔고 그 결과 '현대'의 (세계화하는) '세계경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자본}을 대체하는 또는 {자본}의 한계를 너머가는 새로운 이론구성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이러한 견해들은 그러나 마르크스를 전거로 하여 받아들이기 힘들다. 마르크스는 {자본}을 집필하는 그의 초고들에서 정치경제학비판 체계와 그 방법, 그리고 그 체계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위치와 남은 과제 등에 대해 풍부한 서술을 남긴 바 있는데 그 초고분석들에 따르면 위와 같은 {자본} 해석은 전혀 설 자리를 갖지 못한다. 대부분의 {자본} 비판가들은 초고분석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자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학비판의 방법문제를 제기하고 {자본}의 형성사 논쟁 즉 플랜논쟁의 이해를 요구한다.(정치경제학비판플랜과 그 변화 참조.)
4) 자본의 세계화와 세계시장에서의 자본의 운동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정치경제학비판에 토대를 두면서도 자본주의세계시장의 역사적 변모(독점의 형성과 지배를 핵심으로 하는)를 이론화하는 독점이론/국독자론의 매개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현대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분석하기 위한 독점자본주의론이 자본주의일반의 이론의 수정으로서 서술되는 것을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전통적인 독점자본주의론/국독자론은 레닌의 {자본주의 최고의 발전단계로서 제국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레닌은 그 저작에서 독점자본주의/제국주의의 주요특징을 5개의 표지에서 서술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론적 서술이라기 보다는 현상적 나열, 기술적인 서술에 그치고 있다. 기본적으로 레닌의 이 저작은 위에서 설명한 이론적 과제를 수행하기에는 너무도 정치적인 성격의 저작이기 때문에 이론적 정치화를 전혀 주고 있지 않다. 즉 레닌의 {제국주의}는 우선 {자본}으로부터 정치경제학비판 체계로의 상향의 과제를 이행하는 문제가 인식조차 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초고가 그에게 알려져 있지 않는 한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자본주의의 제국주의단계에서 세계경제는 보다 명백하게 자본주의의 존재형태로서 나타나며 따라서 제국주의론의 구성에 앞서 상향의 과제이행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또 레닌의 {제국주의}는 제국주의의 범주들을 {자본}의 범주와의 관련하에 즉 {자본} 범주들의 독점적 수정으로서 이론화한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1980년대 이래 구 동독에서 '국독자의 조절위기 테제'와 관련하여 주요하게 제기되었고 또 부분적으로 이론적 성과가 제출되었다.
5) 이상의 이론적 토대위에서 이제 자본의 세계화(세계시장에서의 자본운동)와 그 현대적 특징을 '범주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제국주의의 하나의 경제적 지표로서, 19세기의 상품수출로부터 20세기의 자본수출로 전화하였다는 레닌의 서술은 부정확한 표현이다. 자본주의하에서도 상품은 물론 하나의 독자적인 개념범주이지만 그것은 자본의 하나의 운동형태로서만, 즉 자본개념의 총체성과의 관련하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현재의 자본수출형태, 즉 직접투자까지를 포함하여 자본의 세계적 운동의 형태변화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개념파악이 필요하다. 보다 상론한다면, 1) 자본의 일반적 정식 즉 G-W(Pm+A)---P---W'-G'에서 보여지는 자본의 형태변화 또는 자본의 순환형태를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산업)자본은 자신의 가치증식을 위해 화폐자본의 형태, 상품자본의 형태, 생산자본의 형태로 끊임없이 자태변환을 수행한다. 2) (산업)자본의 가치증식, 끊임없는 자본의 자태변환이 특별한 장애없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수준에서 총자본중 일부가 상품 및 화폐를 취급하는 자본(상업자본 및 화폐자본)으로 독립해야 한다. 즉 총자본은 산업자본, 상업자본, 화폐자본의 3분파로 분할된다. 여기서 상업자본 및 화폐자본은 자본의 일반적 정식에서 나타난 상품자본, 화폐자본과 달리 산업자본의 자태전환한 형태가 아니라 스스로 가치증식하는 독자적인 자본분파이다. 3) 자본주의의 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과 함께 총자본은 독점자본과 비독점자본이라는 2분파로 분할되며 그것이 현대자본주의 구성의 핵심을 이룬다. 이 규정은 앞의 두 규정으로 환원될 수 없다. 세계시장에서의 자본은 이제 경쟁자본(산업자본)으로부터 독점자본(금융자본)으로 전화되었고 이때 비로서 자본의 세계팽창을 보다 구체적으로 충동하는 불가피한 요소로서 '과잉자본'의 문제가 설정될 수 있다. 따라서 자본규정은 1)과 2)의 자본규정에 더해 3)의 규정이라는 중층적 구조를 갖는다. 이제 통상적으로 말해지는 상품수출 또는 자본수출을 이상의 개념규정에 의거하여 다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상품수출인가 자본수출인가라는 구분은 잘못된 것이다. 레닌이 19세기 (영국)자본의 세계적 운동의 특징으로서 파악한 상품수출은 이러한 관점에서 파악하면 산업자본의 상품자본형태로의 운동형태이고 그것도 경쟁적 산업자본의 운동형태이다. 그에 반해 레닌이 20세기 제국주의의 주요한 특징으로 보았던 자본수출은 주로 독자적 자본분파로서의 화폐자본(대부자본)의 운동이었으며 더욱이 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과 함께 그것은 금융자본의 운동형태로서의 화폐자본의 운동이었다. 반면 20세기 중반이래 현재에 이르는 역사시기를 지배한 것은 직접투자이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초국적 금융자본의 생산자본형태에서의 운동이었다.(이 분류에서 주의를 요한다. 현대의 직접투자는 산업자본의 생산자본형태로의 자본운동이지만 그것이 19세기의 산업자본과 달리 초국적 금융자본의 운동형태라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즉 그것은 단순한 산업자본이 아니라 은행자본과 결합한 금융자본의 운동하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직접투자에 의한 가치증식은 단순한 생산과정에서의 이윤착취만이 아니고 초국적 금융자본의 전체 가치증식기구에 포섭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분류는 과도하게 도식적인 것이다. 이것은 자본의 세계시장운동의 역사적 형태변화를 상대화해서 비교한 것일 뿐이며 자본의 운동은 여전히 그 총체성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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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 분류 자본의 순환형태 총자본의 3분파 독점/경쟁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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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상품수출 상품자본 산업자본 경쟁자본
20세기 초 자본수출 화폐자본 독점(금융)자본
20세기 중반- 직접투자 생산자본 산업자본 독점(금융)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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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현대의 초국적 금융자본은 20세기 초의 금융자본과 다음점에서 그 내용을 달리한다. 20세기 초의 금융자본이 국내적으로는 카르텔, 국제적으로는 국제카르텔을 독점지배의 주요형태로서 조직하였다면, 현대의 금융자본은 국내적으로는 콘쩨른, 국제적으로는 초국적 콘쩨른을 주요형태로 조직한다. 국제카르텔에서 국민적인 금융자본들은 다국적인 형태로 결합, 국외자에 대해 독점력을 행사하고 카르텔내에서는 경쟁하였던 반면, 초국적(transnational) 콘쩨른은 대체로 단일한 국적성의 지배가 관철되는 보다 강력한 형태를 취한다. 또 20세기 초의 금융자본은 화폐자본형태의 수출에서 지배적인 운동형태를 보이는 반면, 현대 금융자본은 생산자본의 형태에서, 아니 그것과 화폐자본형태의 결합의 방식으로 운동한다. 따라서 자본의 세계화가 현대의 금융자본하에서 보다 고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국민자본적 성격 또한 강화되었고 그 결과 자본의 세계화경향과 국민국가로의 세계시장분할의 모순은 더욱 심화되었다.
7) 이상의 논지를 요약하면, 자본의 세계화가 오늘날처럼 고도로 추동되는 역사단계에서도 그것이 자본의 세계시장운동의 분석을 위해 전통적인 이론적 수단(정치경제학비판과 국독자론)을 혁신할 것을 요구하는 어떤 근거도 없다. 자본운동의 초국민화와 초국적 금융자본, 국민자본으로서의 초국적 자본의 각인과 세계시장운동간의 모순, 제국주의간 경합 등 어느 것도 전통적인 이론범주에서 분석할 수단이 주어져 있다. 1980년대 이래 초국적 금융자본의 금융적 가치증식의 의의가 폭발적으로 증대되는 상황하에서도 그 분석의 과학적 토대는 최종적으로 노동가치론과 잉여가치론이며 이를 떠나서는 그 운동의 불안정성과 위기의 근거를 밝힐 수 없다.(금융적 초과이윤의 원천도 여전히 생산과정에서의 생산된 가치와 잉여가치의 재분배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세계화의 진전을 가져오는 축적양식의 변화 즉 그 기초로서 생산력의 변화, 그에 따른 잉여가치생산의 변화라든가 이러한 변화와 세계화의 진전이 가져오는 노동자 조직 및 생활세계의 변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효과, 노동자계급의 대응 등등에 대한 분석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분석의 의의를 절대화하면서 정치경제학을 혁신하려는 시도, 그럼으로써 정치경제학을 왜곡, 폐기시키려는 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요컨대 한편에서 생산력과 축적양식의 변화 분석과 (초국적) 독점범주간의 이론적 통일을 유지하는 것,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이 결과하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조직적 효과의 분석으로까지 나아가는 것, 이것이 다름아닌 전통적인 국독자론의 자기비판적 계승일 것이다.
2. 세계경제의 구조위기와 신자유주의
1) 자본의 세계화경향은 자본에 내재한 경향이며 그것은 자본주의발전의 단계에 따라 그 운동형태를 달리하면서 자본의 전체 역사에서 관철하였다. 그 역사속에서도 특히 1980년대 이래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지배하에서 그 경향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화되었다. 그것이 현재의 축적의 역사를 지배하고 있는데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70년대 중반 이래의 구조위기(케인즈주의의 위기)를 배경으로 하여 그에 대한 비판과 정책대안으로서 등장하였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위해서는 축적의 위기, 그 원인을 분석하지 않으면 안된다. 74/75년의 세계공황에서 비롯되는 세계불황은 자본주의역사상 3번째의 구조위기 또는 장기불황으로 평가된다.[제1의 구조위기: 1873-1900(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속에서 이 조절위기를 극복하였다), 제2의 구조위기: 1930년대 대공황(이 위기를 통해 독점자본주의는 국독자로 성장전화하였다.)] 이 위기는 케인즈주의로 불리우던 계급타협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성장의 한계를 드러냈던 것으로 그것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최초의 조절위기이었다. 정치경제학적으로 설명하면 이러한 장기적 위기의 근저에는 그 이전의 위기에서처럼 평균이윤율의 장기적 저하가 놓여 있었다. 물론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의 역사적 내용은 그 이전 시기와 달리 특수-고유한 것이었고 추상적으로 반복해서 설명되어질 그런 것은 아니었다. 케인즈주의적 정책의 유효성을 상실케 한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는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검토할 수 있다. 첫째, 재생산조건의 변화. 전후의 고도성장과정에서 에너지가격을 비롯한 원재료 가격의 등귀와 인플레의 진전, 그에 따른 임금가격의 등귀 등 비용조건의 악화. 둘째, 독점가격의 지배와 결합한 인플레적 경향에 덧부쳐서 축적의 둔화에 따른 만성적 재정적자의 중첩. 셋째, 자본의 국제화의 진전과 일국적 케인즈주의적 정책과의 충돌, 또 IMF의 고정환율제도에 의한 반위기정책의 제한 등. 이처럼 인플레와 요소비용의 증대, 재정적자, 국제화의 전개라는 '비케인즈적 상황'에 직면하여, 그에 기인하는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에 직면하여 지배적인 독점자본은 탈조절, 노동조합과 임금공격, 과학기술혁명의 가속과 생산의 유연화, 자본자유화라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써 이윤율의 회복과 자본운동의 무제한적 확대를 기도하였다.
2)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그러나 20년에 이르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세계경제를 구조불황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했다. 세계경제의 주요지표들은 세기말의 자본주의가 70년대 중반이래의 구조불황의 그림자에 아직도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보여준다.<주2> 정책의 결과는 불균등하고 그런 점에서 불안정하다. 탈조절정책과 반노동자정책(탈복지정책) 그리고 생산과 시장의 유연화정책에도 불구하고(또는 그 결과로 일부 새로운 성장주도산업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사회전체적으로 물질적 생산부문의 이윤율은 회복되지 못했고 그 부문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으며 호황과 성장국면으로의 탈위기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투자처를 찾는 화폐자본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누적되었는데(실물자본의 축적과 화폐자본의 축적의 구조적 괴리) 과잉된 화폐자본은 결국 신자유주의정책에 의해 급속하게 탈조절되고 세계화되는 자본운동에 조응하여 또 고이자정책과 결합하여 투기적인 금융자본으로서 세계시장운동을 폭발적으로 확장하였다(투기적 금융부문의 전세계적 확대). 신자유주의적 계급대립정책과 불황의 지속이 가져오는 노자간 계급갈등은 강화되었고 세계시장에서의 초국적 자본의 국민적 경쟁은 보다 격렬할 수 밖에 없었다. 변동환율제하에서 통화제도는 만성적으로 불안정하였고 미제국주의 헤게모니의 위협은 그 불안정성을 강화하였다. 통화위기는 통화부문을 금융투기의 하나의 대상으로 전화하였다. 세계적인 성장낙후지역은 그 부정적 정책효과를 집중적으로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반면 성장의 세계적 불균등속에서 성장을 주도하는 지역은 무엇보다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과 중국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부분적인 성장과 물질적 생산부문 전체적인 정체, 그에 대비한 화폐, 금융부문의 국제적 확장, 통화, 재정의 만성적 위기, 계급갈등 및 남북격차의 심화, 이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정책 20년의 결과이었다. (어떠한 비젼도 상실한 국제통화제도의 지속되는 위기와 카지노화 되어가는 국제적 금융자본의 팽창은 현대불황의 구조적 성격을 무엇보다 각인하는 것으로서 설사 성장국면으로 전화한다 하더라도 그 효과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가치증식은 신자유주의적 탈조절정책하에서 점차 사회적 통제력을 벗어나 가고 있음에 반해 그 자체는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관계일 뿐아니라 실물적 생산부문에서의 가치증식에 최종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것은 현대불황의 지속이라는 조건속에서 폭발적인 붕괴의 길도 열려져 있다. 그것을 제한하는 힘은 아직도 사회적인 통제일 것이다.) 신자유주의정책은 결국 현대의 축적위기에 대한 독점자본의 반동적 대응책이었으며 그 기도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복귀할 수 없었고 국독자의 틀 내에서의 정책전환을 너머서지 못했다.(전통적인 국독자론에서는 이를 케인즈주의적/국가주의적, 개량적 국독자와 비교하여 사적독점적, 반동적 국독자라고 발전유형을 구분한다). 그것은 결코 자본의 객관적 운동에 합법칙적인 방식으로 대응한 불가항력적인 정책선택은 아니었다.
3) 이렇게 보면 신자유주의정책은 전후 자본주의의 최초의 위기를 배경으로 하여 극소전자, 컴퓨터, 정보, 통신 등 새로운 생산력의 발전과 그것이 추동하는 생산력의 국제화를 전세계적인 수준에서 자본의 가치증식과 결합하도록 자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정책전환이었지만, 새로운 생산력과 자본의 세계화라는 객관적인 경향에 합법칙적인 불가피한 정책대안은 아니었다. 그것은 국내적, 국제적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었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과 국독자의 재편, 국제적 자유화를 통해 이윤율의 새로운 조건을 회복하고 그위에서 새로운 성장국면으로의 전화를 기도한 것이었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과 이윤율의 회복을 통한 성장국면으로의 전화라는 고전적인 시도는 그러나 국독자로까지 발전한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에서는 그 이전시기의 구조불황에서 보다도 더 더이상 유효한 정책일 수 없다.(그 이전의 구조불황에서 어떻게 자본주의가 벗어났는가를 상기하자.) 일련의 중심자본주의국들에서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실패는 그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자본주의 발전에 합법칙적인 탈불황정책은 국제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자본운동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확대에 있으며 이윤의 논리에 의한 축적의 회복이 아니라 이윤논리의 제한을 통한 축적의 사회적 강제 즉 사회적으로 조절되는 축적범위의 확대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유관계의 사회화 확대, 처분권의 민주적 통제 강화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반노동자적 계급투쟁을 통해 이윤율을 높여 축적의 동인을 확보함으로써 불황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자본가적 이데올로기(모든 공황과 위기에서 제기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입장을 곤혹시키곤 하는 탈불황의 계급투쟁 문제)는 자본주의적 사회화가 불가피하게 진전된 국독자의 발전단계에 이르러 그 설득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그 대안은 낮은 이윤율하에서도 사회적 투자의 확대를 통해 생산과 고용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의 세계화가 오늘날 국독자의 국제화속에서 추동되고 있는 만큼 세계화와 자유화는 불가피한 하나의 기본경향이다. 그럼에도 그것의 무제한적인 전개와 세계시장에서의 국민자본간의 격렬한 경쟁, 국가간경쟁이 강제하는 노자간의 생산성연대의 불가피한 귀결은 그 기본경향이 관철하는 하나의 방식, 그것도 파괴적인 방식일 뿐이다. 우리에게 열려 있는 사회발전의 보다 합법칙적인 길은 세계화와 자유화라는 기본경향(자본에서 비롯하였고 자본에 의해 추동되지만 자본의 이후에도 발전되지 않을 수 없는 객관적인 경향)의 운동을 허용하면서도 국제적인 수준에서 그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실현하고 또 그 전제로서 국민적인 수준에서 사회적 통제를 확대하는 것이다.(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통한 국민간경쟁의 문제 해결.)
3. 신자유주의 : 개념과 역사
1) 위에서 본 경제정책은 대체로 신보수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로 명명되어 인구에 회자하고 있는데, 그러나 신보수주의나 신자유주의 이론 자체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 듯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사상을 자유주의 또는 보수주의와의 연관하에서 이해해야 하는데도 자유주의 또는 보수주의의 개념 자체가 역사적 내용을 가질 뿐아니라 그 내용 자체도 역사적 변화를 해 왔기 때문에 명확한 정의가 주어져 있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 또 자유주의 또는 보수주의에 대해 신자유주의 또는 신보수주의라 할 때 "새로운 것"은 어떠한 내용을 의미하며 그러한 새로운 내용을 가져온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화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에 대답이 주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제제기 자체가 부재한 상태이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란 1970년대 이래의 세계공황을 배경으로 하여 케인즈주의의 이론과 정책을 비판하는 보수주의/자유주의의 새로운 경향이라는 통속적인 방식의 이해가 지배적이다.(우리도 서술의 편의상 그렇게 서술하였다.) 그러나 그 새로운 경향의 내용을 이론적으로 차별하지 못함으로써 상당한 질적 차이를 지니는 상이한 이론체계가 무차별하게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라는 이름하에 분류되고 있는 것같다. 내 생각으로는 통상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로 분류되는 이론들 중에는 크게 2개의 상이한 이론적 조류, 즉 자유주의이론과 신자유주의이론이 차별되지 않은 채 포괄되어 있다. 주로 영미권에서는 자유주의경제학(새고전파경제학, 통화주의, 공급측면의 경제학)이 그리고 독일어권에서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이른바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의 토대를 이룬다. 그러나 자유주의경제학과 신자유주의경제학은 동일한 자유주의의 뿌리를 지니면서도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모(자본주의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역사적 이행)에 대응하여 그 이론구성이 질적으로 상이하며 엄밀하게 말하면 자유주의이론은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의 분류에 포함시킬 것이 아니다. 즉 신보수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란 단순히 1970년대 중반 이래 새로 나타난 보수주의 또는 자유주의는 아닌 것이며 전통적인 보수주의 또는 자유주의에 대비해서 질적으로 새로운 이론구성을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인즈주의에 대한 비판 명제라는 의미에서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를 이해하는 통속적인 견해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이론(무엇보다 오이켄 및 사회적 시장경제론)을 역사적 실천의 맥락에서 케인즈주의에 대한 비판연관이 없다는 이유에서(그것은 독일에서의 신자유주의 실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오히려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에 낯설은 흐름으로서 배제하고 영미권에서 케인즈주의에 비판적 기치를 들고 나온, 사실은 자유주의이론 흐름들(하이에크, 프리드만 등)을 신보수주의로 이해해 버린다.
2)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개념에 대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자유주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자유주의라 함은 봉건제와 그 정치적 지배형태에 대항한 투쟁(부르조아 민주혁명, 무엇보다 영국, 프랑스, 미국의 시민혁명)에서 성립한 부르조아운동 및 그에 조응하는 세계관과 정치사상을 지칭한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유주의는 절대주의권력을 제한하는 자연권사상, 사회계약론, 권력분할론에 기초하고 있는데 그것을 통해 자유로운, 무제한적인 개인의 발전을 실현함으로써만 사회적 진보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때 문제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사적소유의 발전과 보호, 자유무역 그리고 영업의 자유에 대한 것이다. 즉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와 다원주의를 토대로 구성되지만 부르조아지배라는 계급적 내용을 갖는다. 이렇게 자유주의 개념은 정치적 자유주의뿐 아니라 경제적 자유주의 또한 포괄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발전의 역사에서 두 개의 자유주의는 선험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 사이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일치와 배반, 긴장이 놓여 있었다. 그것이 자유주의라는 개념을 역사-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어렵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다. 3) 자유주의의 개념을 정의하는 또 하나의 어려움은 근대의 다른 사상들과의 교류속에서 자유주의의 내용 자체도 변화하였다는 데에 있다. 19세기의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운동 및 이념과 경쟁하면서 평등주의적인 민주주의의 대중실천과 사회적 정의에 대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어떤 것(자유주의에 모순적인 것)을 자유주의내에 포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함께 자유주의적 최소국가가 자유민주주의적 복지국가로의 전화의 토대가 주어졌다. 즉 한편에서 공리주의적 사회개혁 세력이,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주의이념에의 접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엄미한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사상의 생명력과 창조력이 감소하던 동일한 시기에 전개되었다.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후 자유주의가 근거하던 계급, 즉 유럽 부르조아지의 역사적 패배, 그리고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발흥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렇게 자유주의 사상은 그 개념 자체가 내적인 긴장감과 함께 역사적으로 형성, 변화되었을 뿐아니라 사회주의라든가 민주주의, 민족주의와 같은 근대의 다른 사상들과의 정치적 투쟁속에서 그 일부를 수용, 자신의 내용을 확대 또는 수정해 오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자유주의사상의 원천과 이론적 모습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자유주의 앞에 형용사를 붙이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즉 고전적 자유주의(영국의 자유주의), 대륙적 자유주의(프랑스와 독일에서 처럼 절대주의의 정치지형에서 성립한 자유주의)라든가 근대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등이 그것이다.
3) 원래 보수주의란 근대의 해방조류 및 민주주의조류에 대항하여 현존의 위협받는 사회경제적 계급구조를 정치적으로 방어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는 사상흐름을 지칭한다. 그 이론적 토대는 주로 현실주의적 인구학과 제도이론에있다고 한다.(페히만). 이들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본성상 결함체이기 때문에 결함의 보정으로서 사회적 제도에 강제되었다는 것이다. 전통, 고향, 가족, 소유, 교회, 국가 등이 그러한 사회적 기관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구학적 토대위에서 보수주의는, 결함의 원인을 인간 본성에서 찾지 않고 정치사회적 지배관계 및 그 극복에서 찾는 진보와 민주주의의 이론 및 운동에 대항한다. 보수주의의 역사적 원천은 프랑스혁명에 대한 봉건세력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반동에서 비롯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보수주의는 발흥하는 부르조아관계에 대한 봉건적-신분적 반대로부터 나왔다.(신분제에 기초한 소유제 수호, 신분적-절대왕정제 수호)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보수주의는 처음부터 반혁명적 성격을 띄었다. (부르조아계몽의 합리주의 및 무신론 비판). 이렇게 개혁으로부터 왕정복고와 반혁명에 이르는 다양한 정치적 구상들은 보수주의가 하나의 프로그램이라는 공통성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논쟁모형들의 군비창고임을 나타낸다. 이렇게 이해하면 보수주의는 근대부르조아사회로의 이행에서 구체제를 변호하는 일련의 사상으로 구성되는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는데 그 주요한 논쟁대상은 다름아닌 이행을 주창하고 변호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사상이었다. 이러한 보수주의-자유주의라는 사상적 대립은 근대부르조아사회가 완성되어 감에 따라, 그와 함께 자유주의사상의 속류화가 진행됨에 따라 해체되어 간다. 즉 자유주의는 이제 '맨체스터주의'라는 속류화형태에서 기존 자본주의질서의 변호론으로 전락하게 되고 보수주의의 하나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전화하였다. 이제 '자유주의=보수주의'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의 유력한 지주의 하나가 되었다.
4)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속류화된 자유주의와 달리 고전적 자유주의도 자본주의시장경제가 국가활동으로부터의 자유속에서 작동될 수 있다고 이해한 것은 아니다. 국가는 이 시기에 헌법적 토대와 민법(소유법과 계약법), 형법과 특허법 등 시장경제가 작동할 수 있는 법률적 토대를 창출하였을 뿐아니라 화폐제도의 정비와 노동력계급의 형성과 재생산, 하부구조의 정비 등을 국가정책의 대상으로 하였다. 또 대외적으로도 자본주의국가는 자국자본의 경제적 이해를 대변하였으며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주장은 이러한 자본주의국가의 국민적 성격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즉 자본주의국가는 관념적 총자본가로서, 국민자본의 국가로서 자본주의생산의 외적 조건을 창출하는 과제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고 대외적인 관계에서 국민자본의 이해를 보호하였다. 역으로 말하면 자본주의시장경제, 국민경제는 국가의 이러한 활동을 전제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전적 자유주의의 세계에서는 국가에 의한 이러한 외적 조건의 창출과 이에 따른 개별 경제주체들의 법규칙의 준수는 자기이해의 추구가 시장경쟁을 매개로 하여 사회전체의 이익을 가져오도록 보장한다고 상정하였다. 즉 시장경제작동의 외적 조건이 주어진다면, 시장메카니즘은 자본주의재생산의 균형, 그것도 모든 경제주체의 사적 이익을 최대화하는 그러한 균형을 보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경제활동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자유주의의 테제는 국가가 재생산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그러한 것이며 국가의 경제활동과 경제정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은 자유주의자들이 상정한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현실자본주의는 1825년 이래 주기적 공황을 통해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을 폭발적으로 표출하였고 하나의 공황에서 다음 공황으로 진행할수록 자본주의모순은 심화하였다. 자본주의는 영원불변의 사회제도가 아니고 역사적으로 제한된 제도임이 점점 더 명백해졌다. 자본주의의 모순의 심화와 함께 고전적 자유주의, 그 이론적 토대로서 고전파 경제학은 속류화의 길을 걸으면서 자본주의의 변호이데올로기로 전락하게 되었다. 한편 자본주의모순의 심화는 자본주의의 독점자본주의로의 단계이행을 가져오게 되었다. 독점자본주의의 역사적 현실, 즉 자본주의재생산의 불안정과 계급대립의 격화, 제국주의 국민자본간의 경쟁강화라는 현실과, 자본주의의 계급조화와 조화로운 생산력발전을 선전하는 속류경제학과의 극명한 대비는 속류경제학이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하나 이상의 어느 것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었다.
5) 자유주의의 위기에 직면하여 1920-30년대 한편에서는 케인즈가, 다른 한편에서는 케인즈에 대항하여 신자유주의가 대안으로서 등장하게 된다. 신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는 모두 이러한 경제이론과 자본주의현실간의 괴리를 이론적으로 대결하고자 시도하였다. 신자유주의(오이켄의 Ordo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불균형의 심화와 계급대립의 격화가 시장경제의 본성에서 비롯되는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국가정책의 오류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였다. 자본주의시장경제와 경쟁기구는 경제의 합리성(효율성)과 공정성을 보증하는 역사상 유일한 경제질서이지만, 그것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고전적 자유주의가 상정하고 있는 시장경제의 외적 조건(경쟁질서)의 창출만이 아니라 경쟁질서의 유지를 위해서도 국가의 개입(정책)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자본주의시장경제하에서는 그 외적 조건의 형성도, 경쟁질서의 유지도 시장에 위임해서 자생적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국가가 정책적 개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이켄은 고전적 자유주의가 외적 조건의 창출만 보장하면 자본주의경제는 경쟁을 통해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다고만 함으로써 시장경쟁 자체에 의해 발전하는 경쟁질서의 파괴경향(독점화경향과 계급불균등화경향)을 간과하였고 국가는 경제정책을 통해 그러한 경향의 발전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대신 현실추수적인 방식으로 재생산과정에 개입함으로써 그러한 경향을 강화시켰다고 비판한다. 이렇게 오이켄은 시장경제의 외적 조건의 창출과 경쟁질서의 유지를 위한 국가의 질서정책을 통해 경쟁질서를 유지하는 한 자본주의시장경제는 조화와 균형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고 그러한 국가의 경제정책의 원리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오이켄의 경제정책은 한편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발전하는 자본주의하에서의 국가의 포괄적인 경제개입의 현실에 대해 속류경제학의 교조와 달리 이론적 설명을 주려고 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진영에서의 합리적인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완전경쟁질서로의 복귀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역사적 현실을 왜곡하여 경쟁질서 및 그하에서의 계급조화와 시장균형을 선전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여전히 속류경제학의 연장선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구자유주의에 대해 신자유주의가 시장경쟁의 결과로서 경쟁질서의 파괴경향을 지적하고 그 방지를 위한 국가의 경제정책을 요구하였지만, 그러한 경제정책을 전제할 경우 자본주의시장경제는 시장균형 및 그에 따른 효율성과 공정성을 실현하는 유일한 질서라고 하는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구자유주의의 연장선위에 있다.
6) 이에 반해 케인즈는 당대의 영국자본주의처럼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함에 따라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축적의 동학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보았다. 즉 고도로 성숙한 자본주의하에서는 내적 불균형의 경향이 지배적이 된다는 것이다. 케인즈는 자본축적이 진행됨에 따라 한계소비성향의 하락으로 소비수요가 상대적으로 제한되고 또 자본의 한계효율의 저하에 의해 투자수요 또한 저하함으로써 총수요가 둔화되어 자본주의시장경제는 불균형과 정체가 그 자연적 경로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비관적인 자본주의전망은 구자유주의 및 신자유주의의 낙관적 자본주의관과 근본적인 대조를 이룬다.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장기적 축적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장의 지배를 제한하는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한데, 케인즈는 한편에서 국가의 소득재분배를 통한 소비수요의 확대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투자의 사회화를 제시하였다. 투자의 사회화란 사적 이윤에 지배되는 사적 투자에 대비되는 형태로서 낮은 이윤율하에서도 공공의 이해를 목적으로 공공적 성격의 법인체에 의해 수행되는 투자를 의미한다. 케인즈의 투자의 사회화 테제는 고도성숙한 자본주의경제의 역사적 한계를 설정하는 것으로서 당시의 독점자본의의 현실적 모순으로부터 케인즈가 당대자본주의의 이행적 성격을 이론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케인즈는 부르조아경제학자로서 이행이론을 이론화하지는 못했고 오히려 이러한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 국가개입(자본주의개혁)을 통해 자본주의를 구원하고자 하였다. 즉 케인즈는 투자의 사회화정책을 끝까지 추구하여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지양한다기 보다는 이 정책을 통해 사적 투자를 정상적인 상태로 끌어 올리고자 하였다. 다시 말하면 케인즈는 자본주의 축적의 장기적 위기와 그에 대한 진보적인 대안을 이론적으로 끌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대안을 사적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의 하나의 전제조건이라는 의미로 축약시킴으로써 구자유주의의 세계가 다시 작동될 수 있다는 서술을 곳곳에서 남겨 놓고 있다. 이것이 다름아닌 케인즈를 해석하는 데서 중대한 차이를 가져오는 요소인데, 케인즈 저작의 이론적 분석을 올바로 따라 간다면 후자의 서술들은 과학적인 결론이라고 보기 어렵다.
7) 2차대전 종료후 독일에서는 오이켄의 신자유주의사상이 사회적 시장경제론으로 발전하며 이론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헤게모니를 장악한다. 사회적 시장경제론은 그 지지자인 L. 에르하르트에 의해 전후 독일재건(아데나워정권)의 경제정책의 이론적 지주가 되어 사회적 시장경제는 그야말로 독일의 국시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엄밀하게 살펴 보면 오이켄의 이론으로부터 사회적 시장경제론의 발전은 정치적 긴장 및 그에 의해 매개되는 이론적 긴장으로 점철되었고 중요한 쟁점들에서 오이켄의 이론은 수정되었다. 또 사회적 시장경제론 자체도 단일한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원리와 사회정책의 어느 것에 강조점을 놓는가에 따라 상이한 이론적, 정책적 대립을 가져온 것 또한 사실이다. 사회적 시장경제론의 발전에서 중요한 기여를 하고 또 그럼으로써 오이켄이론과의 긴장관계를 초래한 논자는 무엇보다 A. 뮐러-아르막이었다. 오이켄의 이론과 비교해 보면 무엇보다 사회정책과 경기안정정책 그리고 구조정책에 대한 그의 강조이었다. 이것이 66/67년 공황시에 사회적 시장경제론이 이론적으로, 정책적으로 케인지안과 결합하게 되는 주요한 토대를 이룬다. 독일에서도 60년대 중반에는 전후 상대적 안정이 종료하고 1966년 이른바 대연정이 성립하면서 사회적 시장경제론과 케인즈주의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사회적 시장경제론에서 오이켄의 입론은 명백하게 후퇴하게 되었다.(사회정책의 강화, 재정금융정책의 도입 등). 이제 대연정(그리고 그후 사민/자민당 연정)에 의해 사민당의 정책 즉 (우파)케인즈주의가 득세하게 되고 총량적인 조절정책과 성장정책이 관철하게 되고 그 성과가 다름아닌 반순환 재정정책을 주요수단으로 하는 1967년의 "경제안정 및 성장촉진법"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시기이래 사민당정책의 실현속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론의 헤게모니는 위협받지 않고 이른바 "계몽된 시장경제"(Aufgeklaerte Marktwirtschaft) 또는 "총량조정적" 시장경제의 모델에서 오히려 발전, 유지되었다. 사회적 시장경제론과 케인즈이론과의 결합은 독점문제를 둘러싸고도 진행되었는데 이른바 과점의 인정과 유효경쟁이론(10-20의 공급자 모델)이 그것이다. 완전경쟁의 조건이라는 오이켄의 반역사적인 정책과제는 이에 의해 독과점의 유효한 조절이라는 과제로 대체되었다. 70년대 초이래 인플레의 진전과 함께 사민당내에는 경제의 계획과 조절의 강화를 주장하는 분파와 시장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분파간에 논쟁이 발전하며 마침내 1974/75년 공황의 장기공황적 효과하에서 우파케인지안의 지배하에 긴축재정이 실시됨으로써 사민당은 신자유주의로 경사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경향은 1982년 다시 보수적인 신자유주의정권의 등장과 함께 완성되는데 이 시기 사회적 시장경제론은 사회적 시장경제론이 형성되던 시기의 그것과 달리 강조점은 자유시장경제쪽으로 상당히 이동하였다. 물론 오이켄적인 이론구성으로의 복귀는 이미 불가능한 역사조건이기는 하였지만 그러한 이론조건하에서도 자유주의적 경향이 상당히 강화되었다.
<미주>
* 이 글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문제와 관련하여 필자의 2개의 논문에서 발체요약한 부분(제1절의 주요부분, 제3절)과 신자유주의적 축적의 분석을 위해 새로 집필한 부분(제2절)으로 구성되었음을 밝힌다. 관련 부분의 자세한 논의에 대해서는 김성구, [{자본}과 현대자본주의: 세계경제론의 방법에 대하여], {이론} 제16호, 1996년 겨울/1997년 봄 합본호; 김성구, [신자유주의 경제사상의 비판적 연구: W. 오이켄을 중심으로], 한신논문집, 1997(예정)을 참조하라.
1)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비판 및 재구성의 방향과 관련한 필자의 입장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엥겔스 선집 출판 기념토론회 (1997. 3. 28)에서 행한 김세균교수의 발제, [오늘의 마르크스주의- 재구성을 위한 하나의 시도]에 대한 필자의 논평문을 참조할 수 있다. 발제문과 논평문은 {이론} 제 17호, 1997년 여름에 수록 예정이다.
2) 이에 대해서는 J. Goldberg, "Die Weltwirtschaft im Abschwung - Rezession in Deutschland," in Z. Zeitschrift Marxistische Erneuerung, Nr. 13, 1993 Maerz; H. J. Hoehme, "anhaltende weltwirtschaftliche Krisenprozesse - verschaerfte zyklische Krise in Deutschland," in Z. Zeitschrift Marxistische Erneuerung, Nr. 17, 1994 Maerz; ders., "Konjunktur-Analyse: Verstaerktes Wachstum der Weltwirtschaft - gespaltener Abschwung in Deutschland," in Z. Zeitschrift Marxistische Erneuerung, Nr. 21, 1995 Maerz; ders., "Zur aktuellen Entwicklung der Weltwirtschaft," in Z. Zeitschrift Marxistische Erneuerung, Nr. 27, 1996 September를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