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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출사 겸 트레킹
2015, 8, 6 ~ 9 (3박4일) 일정으로 대구 산사협회원들이 주축이되어 추진하였다.
참석자 - 곽경보, 조정호, 김병철, 이호섭, 한상관(산사협회원)
양재윤, 김종복
박호택, 박용현, 박순해, 박순섭, 김정진(청도 금천팀) 합 12명
현지 가이드 - 조송운 (조선족이라며 우리보다 한국말 잘 함)
여행사 상품이 아니고 우리만의 이밴트로 하나투어에선 일정에 맞는 비행기 호텔등을
현지에 부탁하여 현지 가이드1명을 붙여줄 것을 계약하고 준비하여 떠났다.
3박4일 - 첫날 : 인천-황산공항(전세버스)-황산공원(셔틀버스)-운곡케블카(곤도라)-북해호텔
둘째날 : 청량대(사자봉)-호텔(아침)-휴식-점심식사후-서해대협곡-모노레일-광명정-북해호텔
셋째날 : 사자봉 - 휴식 - 점심식사후 - 비래석 - 광명정 - 북해호텔
넷째날 : 태풍으로인해 비, 강풍으로 서둘러 하산실시 - 운곡케블카(곤도라)운행중지 - 태평 케블카이용 하산
- 황산시 명,청대거리 - 한강식당(한인운영) - 황산공항(15:50) - 인천공항(19:10) - 대구도착(24:50)
황산지도
♠ 황산여행 첫날
7 : 58분 ktx를 이용 하여 동대구역 출발(창원 박순섭씨 합류) 10 : 50분 인천공항도착 (서울 박용현씨합류)
하나투어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짐을 꾸리고 분주하게 출국수속을 마치고 라운지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탑승시간을 기다림.
화물을 붙이기 위한 준비
인천공항 라운지에서 - 앞줄외쪽부터 이호섭,박순해,양재윤,한상관, 곽경보,조정호
- 뒷줄왼쪽부터 김병철,김종복,박용현,김정진,박순섭,박호택
13호 태풍 사우델로스의 예상진로(예상과 꼭같이 실제로 진행되었음)
7월 30일에 발생된 13호 초특급 태풍 사우델로스의 진로에 대해 관련부처에 근무하는 병철씨의 출국 향방에 대해
비상한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결과 괌 북서해상을 지나 대만을 관통하여 황산에 도달한다는 예보에
1차적으로 병철씨 출국에는 파란불 황산기후에 먹구름을 가슴에 안고 출국하기에 이른다.
대한항공 kal
드디어 대한항공편으로 1:30분 이룩하여 2시간 이상을 날아 황산비행장에 안착 인천공항에 비교가 안될 만큼 작고
조용한 공항분위기와는 달리 출국수속 담당자의 서투른 업무능력 때문에 많은 시간을 지체하며 수속을
마치고 나와 현지 가이드를 만나 간단한 인사만 나눈뒤 바로 전세버스에 올라 황산을 향해 달렸다.
중국 황산시 주변
전세버스에서 내려 황산공원 셔틀버스를 갈아타는 과정
한국보다 1시간이 늦은 현지시각 3가 넘은시각 케블카가 5:00까지만 운행한다며 전세버스로 황산공원
입구까지가서 다시 셔틀버스로 운곡 케블카 승강장까지 가야 하기에 시간이 없다며 화장실 가는 것도
좀 참아달라는 가이드의 지침에 숨가쁘게 달려 4:58분에 케블카 승강장에 도착하여 간신히 올라갈수 있었다.
처음 맞이하는 황산 비경에 도취되어 모두들 감탄사가 절로 났다.
케블카에서 내려 첫 촬영
우리가 산에서 먹을 간식류와 무거운 짐은 짐꾼에게 부탁하고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시신봉과 북해의 갈림길
흑호송앞에서 좌측내리막길로 내려와 몽필생화란 곳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운곡 케블카에서 내려 20~30분정도
만에 우리가 머물 북해호텔에 도착했다.
북해호텔은 1979 등소평이 머물렀던 호텔이며 등소평이 황산을 보고 황산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란 지침에 개발이 되었고
강택민이 자연보호 녹색사업에의해 대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전한다.
북해호텔에 앞 마당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우리는 2인1실 룸메이트을 정해 여장을 풀었다.
(8110조정호-양재윤, 8112김병철-김종복, 8111곽경보-한상관, 이호섭및 금천의 친구들 복도가 꺽인 호실에 각각 배치됨.)
저녁을 먹고 경보씨, 호섭씨와 함께 내일아침 포인터 미리 보러가지며 청량대에 갔다와서 총무방(8112호)에
조송운가이드와 모두 모여 서로인사하고 준비해간 소주와 양주를 마시며 황산의 첫날밤을 보냈다.
♠ 황산여행 둘째날
5시30분 일출에 4시에 도착하면 늦다는 가이드의 말에 02 : 30분에 기상하여 출발했다.
1차적으로 청량대에 도착했고 2사람 만 겨우 설수 있는 공간이라 나와 재윤씨만 남고 나머지 5명은 출입이 금지된 사자봉으로 올라 갔다.
청량대의 아침
약한 운해에 아직 일출시간이 많이 남아 별사진을 찍으면 황산의 아침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운해는 없어도 빛이 좋아 분위기는 좋았다.
여기서 촬영을 마치고 짐을 꾸려 몽필생화로 내려왔다.
몽필생화(夢筆生花)-우측 , 필가봉(筆架峰)-왼쪽
몽필생화(夢筆生花)는 이백(이태백:중국사천성 출신시인으로 "달아달아 밝은 달아"로 잘 알려진 시인)이 꿈속에서
바위에 꽃이 피었는 꿈을 꾸었는데 황산에 뾰족한 바위 끝에 소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이 꿈에 나타난
것이구나 하고 몽필생화라 이름 붙였다 한다.
관관객도 점점 많아지고 시간이 많이 지나 재윤씨와 함께 호텔에 돌아 와서 사자봉에 간 일행을 기다리며 쉬고 있었다
문득 휴대폰을 사용하려고 찾는데 조끼를 입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생각하니 차가운 아침공기에
긴팔 남방을 입었다 더워서 벗으면서 위에 걸친 조끼를 난간대에 걸어 놓고 긴팔 남방만 배낭에넣고 그냥 왔다는
생각이 미치자 재빨리 현장에 달려갔으나 없었다.
조끼속에는 휴대폰, 지갑이 들어 있었는데 순간 눈앞이 깜깜했다.
한국에서도 휴대폰을 잃어버리면 잘 돌려주지 않는데 중국에선 당연히 돌려주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갑에 든 카드는 정지하면 되고 현금은 감수하면 되지만 문제는 휴대폰이다 요즘은 휴대폰에 모든 정보가 들어있고
항상 통화대기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큰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 다시 돌아와 재윤씨 폰으로 전화를 거니 한참만에야 전화를 받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뭐라 뭐라
얘기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 옆에 있는 조송운현지가이드에게 전화기를 주니 바로 호텔앞
상점주인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
가서 조끼의 주인이라고 하니 소지품에 신분증을 꺼내어 몇번이나 확인하고 돌려 받았다.
너무나 고마워 사례를 좀 하려 했더니 손사래를 하며 한사코 거절하는 것이었다.
잠시동안이었지만 지옥에 갔다 온 느낌이었다.
지금껏 알고 있는 중국사람들의 인식이 180도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황산 초입에서 느꼈지만 중국인들의 의지력과 질서의식이 우리가 평소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소동이 있고 잠시 후 사자봉으로 갔던 일행들이 호텔에서 나오며 조끼는 찾았나며 되뭍는 것이였다
호텔로 들어오는데 우리를 부르며 내신분증을 보이며 이사람 아느냐고 뭍길래 우리 일행이라며 달라하니
본인이 직접 오라는 시융 했다한다.
이렇게 조끼 잃었던 얘기며 사자봉에서 일어난 얘기를 하며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후 일정을 약속하고 자유시간을 보내게 된다.
조총무 얘긴데 3번의 장애물을 넘어며 다리에 상처까지 내면서 어렵게 사자봉에 올랐는데 사진을 몇컷 찍다
카메라(펜탁스645n2)가 작동이 안되 속을 태우고 있는데 아무도 도와 주지 않고 자기사진만 찍더라며 동료애도 없더라면서 저주를 퍼부어댄다. (아침촬영시간대는 무지바쁜데 누가봐주겠나...)
병철씨, 경보씨가 호텔방에서 건전지를 사바꾸며 한참을 고치려고 애를써도 작동이 안된다.
셔터막이 엉킨 듯 아무리 애을써도 못 고친 다는 것을 알고 본인도 이제 고치기를 포기한다.
오후 일정 전에 경보씨와 난 주변 정찰에 나선다.
백아산장
어제 오후에 우리가 걸어온 길을 운곡케블카 타는 방향으로 흑호송에서 우측길로 백아령을 넘어 철탑이 서있는
봉우리 앞으로 해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 짐을 나르는 짐꾼들이 무척 힘들어 보이고 대단하다는 생각이든다
짐을 나르는 사람들을 사진을 찍으면 싫어 한다기에 사진찍기가 조심스러웠다.
힘들게 올라가다 쉬고 있는 분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니 내 팔을 잡으면서 한번 져보라고 한다
그래서 어깨에 매보니 굉장이 무거워 땅 바닥에서 간신히 떨어지긴 했으나 중심 잡기가 어려웠다 옛날
어린시절 물지게를 지고 중심 잡기가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이 난다 무게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니 내 손바닥에
150이란수자를 쓴다 150kg 아니 경보씨가 중국은 근을 사용하니까 150근이면 80kg 이겠지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며 백아산장 호텔에 이런다
여기에서 광명정쪽으로 발길을 향했고 광명정을 약500m 남겨둔 지점에서 오후 일정도 있고해서 북해호텔로 되돌아왔다.(10:30)
단결송-55(중국이민족을 뜻함)개의 가지가 단결하여 살아가는 것이 중국 국가의 단합을 뜻한다함.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 11:30에 점심을 먹고 1시에 출발하여 단결송이란 곳에서 쉬면서 촬영도하고 서해빈관,
배운정을 통해 서해대협곡 북쪽입구에 도착했다. 황산은 시작부터 돌계단으로 시작되어 계단으로 끝이 난다는
가이드말이 증명이라도하 듯 깍아자런 듯한 절벽에 계단을 만들고 바위를 깍아 동굴을 뚫고 주변의 기이한
바위 절벽을 보니 가이 압도적이었다. 첫 날의 황산은 우리나라 설악산에 비해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 서해 대협곡을 걷는 순간 황산을 설악에 비교하면 안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서해협곡을 내려오는길
우리 일행들이 복이 많았는지 오늘 따라 날씨가 너무 좋았다.
좁은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면서 옆으로 붙어 카메라와 휴대폰으로 사진도 변화하는 비경을
감상하면서 천길 낭떨러지를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뒤따라오던 경보씨가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린다 뒤돌아 보니 발이 걸리면서 뒤뚱하며
손에 들고있던 핸드폰이 케이스만 남긴체 낭떨어지로 뜨러 떠리고 말았다.
이곳은 한사람만 겨우 통과 할 수 있는 좁은 길에다 밑에는 작은 동굴을 통과 해야 하는 곳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있으면 올라가는 사람은 대기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대기하고 있기에 그 곳에 오래 머물수도 없었다.
넓은 곳으로 나와 가이드에 얘기하니 돈받고 주워주는 사람이 있는데 알아 본다고 전화를 했는데 그 곳은
너무 깊어 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고 한다. 하는수 없이 포기하고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119소방대원이 두명이나 있으면서 그것도 못 건지느냐고 핀잔을 준다.
그렇게 주변경관을 감상하면서 하산을 했는데 모노레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45도 경사에 170명을 태운 객차2대가 중간의 둥글게 생긴 부분에서 서로 교행하면서 운행하는데 우리는
오랜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탑승해 수 km거리를 순식간에 정상부에 도착했다.
모노레일-45도 경사길
정상부에 도착하자 마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강풍 뇌우를 동반한 소나기가 퍼붓는다.
일행은 준비해간 비옷을 갈아 입고 소나기가 조금 잦아지기를 기다려 비속을 강행하여 광명정에 도착했다.
광명정(光明頂1860)은 황산의 연화봉(1864)에 이어 2번째 높은봉으로 연화봉과 천도봉(1829)이 바로 가까이 보인다.
이곳에서 일몰을 계획했으나 이날은 소나기가 내린 이후로 계속 비가 오락가락 하고 안개가 시야를 가려
더이상 일몰을 기대하기 어려워 숙소로 돌아왔다.
♠ 황산여행 셋째날
아차 하면서 눈을 떠니 5시20분 벌써 해가 뜰 시간 ~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가이드가 사준 중국의 빼갈를(52도의 독주)
몇잔 마신 탓인지 내일 아침의 촬영 약속도 못 한체 숙소에 들어오자 마자 잠이 들었고 새벽1시경에 잠이 깨 뒤척이다
4시경에 다시 깜빡 잠이든 모양인데 늦잠을 자고 말았다. 경보씨는 휴대폰을 잃어버려 알람을 할 수 없는 실정 이었고
내게 책임을 전가한다 서둘러 배낭을 챙겨 호텔을 나서니 동쪽하늘이 벌겋게 물들고 있었다.
청량대에 가봐야 자리가 없을 것 같고 어제 저녁에 봐둔 몽필생화 포인트로 갔다.
조총무, 김병철, 양재윤, 김종복씨가 촬영을 하고 있었다.
운해는 들어 오지 않았고 붉은 노을도 두터운 구름에 가려 별로 좋은 상황은 이니었다.
다시 청량대쪽에 가니 그 곳은 골짜기에 운해가 보였다 그래서 경보, 병철, 나 3명은 사자봉을 올랐다.
사자봉에서 바라본 "후자관해"
금지구역으로 3번의 철조망을 통과하여 사자봉에 올랐는데 노을 빛은 벌써 없어지고 운해마져 피어오르고 있었다.
몇군데의 포인트를 찾아 다니다 어느한 곳을 정해 변해가는 상황을 바라 보다 늦은 시간에 내려왔다.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먹고 가이드를 만나 오늘 오후 일정을 비래석에 다녀오기로 하고 오전은 각자 자유시간을 가졌다.
11:30분 점심을 먹고 1시에 출발하여 어제와 같은 길로 단결송, 서해대반점, 서해빈관, 배운정을 거처 비래석에 도착했다.
비래석(飛來石)
비래석에서 바라본 서해협곡
비래석으로 가는 도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배낭 커버와 비옷으로 갈아 입었다.
비래석은 황산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는 정례코스로 알려져있다.
거대한 돌이 누군간가 반석위에 올려 놓은 듯이 서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곳에서 바라본 경관은 서해협곡이 한눈에 보이며 좋은 듯 했으나 구름이 덥혔다.
오랜시간을 기다리다 그러나 구름이 점점 더 깊게 끼어 오늘은 희망이 없을 것 같아 병철씨와 호섭씨는
다시 광명정으로 올라가고 나머지는 왔던길로 되돌아 숙소로 돌아왔다.
7:30분 저녁을 먹고 황산에서의 마지막밤을 보냈다.
조총무, 양재윤이 있는 방~ 이번여행 일행12명과 현지가이드까지 모두 모여 기분좋은 송별연을 했다.
병철씨는 청도 금천의친구들을 만난 것이 청도 지역 사람들이란 이유로 기분이 좋았는지
많은 양의 술을 마시며 좋아 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 가는 내내 비몽사몽 고통스러워 했다.
어째던 모두들 기분좋게 황산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 황산여행 마지막날
어제 과음한 탓에 조금 늣게 일어났다.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고 비가 그치면서 좋은 상황이 나타날까 싶어 배낭을 메고 밖을 나가보니 강한 비바람 탓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13호 초특급 태풍 사우델로스는 타이완을 강타하여 많은 피해가 났다고 뉴스가 나온다.
태풍의 영향인 듯 이곳에도 강풍을 동반한 강한 비가내린다.
마음 한 구석엔 바람이 많이 불면 케블카가 운행할지 걱정이 되었다.
일찍 아침을 먹고 나니 가이드가 우리가 타고온 운곡 케블카는 운행을 중단 했다고 한다.
서둘러 내려 가는 것이 최대의 관건으로 대두 된다.
그래서 상의 결과 태평케블카는 운행을 한다니 그 쪽으로 내려가기로 의견이 모아진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위해 서두른다 모두들 본인의 배낭1개씩을 메고 나니 한개의 케리어가 남는다
그것은 호섭씨의 케리어다 그리고 박용현씨는 배낭대신 케리어를 가져왔기에 자기 것은 어떻게던 가져갈 수 있다한다.
그럼 호섭씨 케리어는 무게도 무거웠는데 박호택씨가 자청하여 자기 배낭을 메고 그 위에 케리어를 포개 메고 가기 시작한다.
내리는 비 바람과 흘러내리는 땀이 범벅이 되어 30여분을 걸어 9시경에 태평케블카 승강장에 도착했다.
다행하게도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혹시 우리 앞에서 바람이 많이불어 운행을 중단하지나 않을까 가슴이 조인다.
더디어 케블카에 탓고 정상적으로 운행하여 무사히 산아래 까지 내려왔다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태풍의 영향으로 제시간에 비행기가 떨까 걱정되긴 했으나
산에서 못내려와서 비행기를 놓치는 것 보다는 훨씬 났다고 생각했다.
얼마후 셔틀버스가 도착하여 1:30 여을 달려 황산시에 도착했고 시간이 많이 남아 명,청대 거리를 관람했다.
황산시 명,청대 거리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한강식당)에서 삼겹살과 된장찌게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가까이에 있는 공항으로가서
조송운가이드와 작별인사를 하고 출국수속을 마쳤다.
그 때 까지도 병철씨는 비몽사몽간이다. 라카룸 빈 의자에 드러눕고 고통이 많은 듯 보였다.
다행이 비행기는 정시간 15:50(중국시간)분에 이룩하여 19:10(한국시간)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대구행 ktx는 자리가 없고 리무진 버스는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경보씨는 휴대폰이 없어 가족들 전화번호도 모른다. 어렵게 집에 연락이 되어 터미널에 나와 줄것을 약속했다.
21:10분에 공항리무진 버스를 타고 24:50분에 대구동부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모두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번 황산 출사는 비록 멋진 사진은 촬영하지 못해도 의미있는
출사였고 대구 산악사협가협회의 비회원으로 함께해주신 양재윤,김종복,박호택,김정진,박순해,
박순섭,박용현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번 계획을 추진한 이호섭,조정호총무님 고생 많았습니다.
2015, 8, 12
- 한상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