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다. 어제 말이 다르고 오늘 말이 다르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의 당사자는 다름 아닌 히딩크 감독과 트루시에 감독. 아마 본인들도 이런 주위의 분위기를 누구보다도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대표팀을 맡은 뒤 천당과 지옥을 번갈아가면서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일본의 '스포츠닛폰'과 '닛칸스포츠' 기자가 며칠 간격을 두고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로 히딩크 감독에 대한 것을 물었다. 그것도 여자 문제를.
난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할 수가 없었다. 히딩크 감독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인터넷에 들어가 한 두 번 그의 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읽은 적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섣불리 이야기해 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 그들은 내게 물었다. 히딩크 감독이 그렇게 인기가 없느냐고.
그들은 히딩크 감독에 대한 정보를 아주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스포츠신문을 탐독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축구에 대한 게시판에는 꼭 들어가 본다고 했다. 히딩크 감독의 여자친구에 대한 정보도 게시판에서 얻어왔다고 '스포츠닛폰'의 기자가 말했다.
며칠 후, 히딩크 감독에 대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났다. 그런데 위의 두 신문이 아닌 다른 매체였다. 한국의 스포츠신문에 난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다.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외국인으로서 처음으로 한국대표팀의 감독을 맡았으나 잦은 휴가, 그리고 여자친구를 대동한 캠프 이동 등으로 한국 내 축구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반면 같은 외국인으로서 일본의 대표팀을 맡은 트루시에 감독은 다른 팀의 경기를 보면서 전략을 분석하고 노력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때문에 한국인들은 트루시에 감독과 비교하며 히딩크 감독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
이같은 반응은 인터넷의 게시판을 보면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고 일본 신문은 친절한 설명문까지 붙여놓았다.
그리고 월드컵이 시작되기 불과 1개월 전, 이번에는 반대로 트루시에 감독에 대한 기사가 일본신문과 주간지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한국의 히딩크 감독은 자국 네덜란드팀을 우승으로 끌어올린 명감독답게 평가전에서 놀랄만한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고 극찬하면서, 대신 트루시에 감독은 나카다 등 선수들과 내분을 일삼으면서 실력 있는 선수를 기용하지 않고, 독선적인 운영을 하고 있으며, 일본대표팀을 맡은지 4년이 됐는데도 일본어를 배울 생각은 커녕 오히려 기자들에게 프랑스어를 배워 인터뷰를 신청하라는 오만을 일삼고 있는 등 주객이 전도돼도 한참 됐다'고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시작된 월드컵 첫 경기. 많은 사람들이 너무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저 선수들 한국선수 맞어? 언제부터 저렇게 잘한 거야?" 라며 역사적인 첫 승의 기쁨ㄷ을 만끽했던 폴란드전. 누구하나 히딩크 감독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부정적인 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이같은 반응은 일본도 역시 마찬가지. 경기를 하면 할수록 선수들의 기량이 향상되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일본인들은 더 이상 트루시에 감독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부 신문에서 그를 비난하는 곳이 있었으나 14일, 16강 진출이 확정되고 난 뒤부터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비난성 기사는 쏙 들어갔다.
기가 막힌 것은 이 두 감독에 대한 언론과 국민들의 태도.
지금 한국에서는 염원인 16강 진출을 이뤄냈다하여 히딩크 감독에게 한국 국적을 부여하자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국보다 더 구체적이다. 역시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처음으로 16강 진출에 성공한 데 감동한 나머지, 일본선수들이 묵고 있던 숙소 옆에 '트루시에 공원'을 벌써 조성해서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고, 도쿄에서는 '트루시에 신사'까지 등장했다는 것이다.
도쿄 시부야구에 있는 스페인 거리의 한 스튜디오에 '트루시에 신사'가 만들어 진 것. 이 신사에는 황금으로 된 축구공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절이니 만큼 참배객도 받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신사에 찾아온 참배객들이 설치해놓은 녹음기에 응원 메시지를 남긴다는 것이다.
이렇듯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에는 바닥을 기던 외국인 두 감독이, 경기에서 연달아 이기고 나란히 16강에 오르자 평가가 180도 확 달라졌다.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된 것이다.
아무튼 이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마음은 웬지 씁쓸하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오래 전에 두 감독을 난도질 할 대로 난도질 해놓고, 이제 와서 경기 결과가 좋으니 영웅 취급을 하는 것.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리는 '냄비근성'이다. 한일 양국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