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차스/사윤수-/현대시학23회 신인상
줄줄이 꿰인 짐승의 회색 발톱들이
반질반질 매끄럽다
안데스 라마들은 죽을 때
제 발톱이 잘 뽑혀서 악기가 된다는 것을 안다
마지막 눈을 감으며 안간힘으로
제 생의 기억을 밀어 넣어 준 발톱의 안쪽이 깊다
흔들면
오래전에 살점과 물렁뼈가 빠져나간 흔적이
착-착-착 흔들리는 소리
흙바람 속을 저물도록 걸었을
착-착-착 찰찰 기억의 껍질들이 부딪치는 소리
찰찰찰찰찰
소리가 소리를 자꾸 흔들게 만드는 소리
그것은 살아서 이룰 수 없는 구음이므로
돌아오지 못할 협곡을 맨발로 건너간
라마 떼가 물끄러미 이쪽을 돌아본다
파란 잉카의 하늘이 짐승의 속눈썹에 젖어 있다
차르르 차르르르
야윈 뒤편에서 와락 안고 싶은 소리
맑은 물살처럼 뒤집어쓰고 싶은 소리
죽어서 나도 악기가 되고 싶은 소리
* 착차스 : 안데스 지방의 민속 타악기.
문예감성-신인상 시부문 당선작/지느러미외 4편/김영석
늦은 밤 다림질하는 여자, 손길이 사뭇 진지하다
먼 항해에서 돌아 온 나는 늘 피로에 축 늘어져있다
조심스럽게 때로는 한껏 거칠게 구겨진 깃에 빳빳한 힘을 불어넣고
무뎌진 핏줄을 끌어당겨 날카로운 현실감각을 세우고는 어쩌겠어요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요
언제부터인가 나는 발기되지 않는다 솟대처럼 갈망의 높이였다가
펄떡이는 숭어의 생명이었다가 파도에 잘 길들여진 후 부터는
고개를 조아리는 일상이 습관이 되어버린,
관성으로 열려오는 하루 저항 없이 익숙한 물길에 몸을 실으며
이젠 없이도 지낼 수 있겠다 싶을 때 문득
저 달인들 갈 수 있으리라던 갈매기 조나단처럼
젊은 날 푸르던 이상이 생각나는 것이다
긴장을 놓쳐버린 등뼈 그녀의 손놀림은 정확하다
비창조적이지만 팽팽한 시위를 걸어놓는다
내일도 나는 바다로 달려갈 것이다
지느러미 하나 꼿꼿이 가슴 속에 간직한다는 건
때론 무력감을 부추겨 외면하고 싶지만 가끔은
죽은 신경을 자극해선 불쑥, 희망을 일으켜 세우기도 할 것이다
다림질을 끝낸 여자가 품으로 안겨온다
그나마 살아있는 동안 좌초된 배처럼 쉽게 기울어질 일도 바다 깊이 가라앉을 일도 없으리란 걸 그녀는 알고 있다
날마다 죽고 날마다 다시 일어서듯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