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는 대전, 내전, 대비전, 대왕대비전, 동궁전, 세자빈전 등 각 전각에서 독립적으로 마련합니다.
먼저 기미상궁이 모든 음식을 銀수저로 조금씩 시식하여 독살을 방지하고 왕에게 휘건(냅킨같은 수건)을 협시(핀)에 꽂아 권합니다.
왕은 동치미 국물로 먼저 입을 적시고 마지막으로 숭늉에 밥을 말아 입을 헹굽니다.
흰수라(쌀밥)엔 곽탕(미역국)이 팥수라엔 곰탕이 따르고 토구(吐具-비아통)라 하여 가시나 찌꺼기를 뱉는 그릇도 옆에 놓습니다.
수라상궁은 따로 화로에 철판을 달구어 생선, 완자, 표고, 호박, 고추 등의 각종 전유아(전), 화양적, 사슬적, 누름적, 떡산적, 파산적 등의 꼬치구이인 적(炙), 각종 생선이나 육류의 구이 특히 석쇠에 굽는 너비아니구이(불고기), 열구자탕(신선로) 등은 즉석에서 조리하고 탕, 찜(육류와 어류), 선(호박,오이, 가지,두부 등의 채소찜) 조치(두부나 굴 등 맑은 찌개) 감정(고추장이나 된장 등의 토장 찌개)등 더운 음식도 다시 한번 데워서 올립니다.
장과-醬果(장아찌), 송송이(깍두기), 갑회(양,처녑 등 내장을 데친), 강회(미나리, 파 등 채소를 데친), 숙회(해물을 데친), 육회(生소고기), 어회(생선회), 어란(魚卵), 수란(水卵 계란을 데친) 등 궁중음식은 부르는 이름은 따로 있었답니다.
왕은 기상하자마자 응이(죽이나 미음)를 젓수시고(잡수시고) 오전 10시 경 조반을 점심은 각종 면(국수)이나 병시(떡국), 골동반(비빔밥) 등 낮것상으로 간단히 들고 6시 경에 저녁식사와 심야 밤참까지 젓숟는다. 특히 고종은 물냉면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모든 음식은 소주방(燒廚房)에서 준비하는데 소주방은 안팎 소주방으로 나뉘어 안소주방은 평상시 식사를 밧(바깥)소주방은 연회음식을 전문으로 준비합니다. 특히 밧소주방은 궁밖에 살던 남자 조리사들이 출장식으로 담당하는데 그 아들들이 대를 이어 조리를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후식과 음료는 생과방의 나인(內人)들이 준비합니다.
생과방(生果房)은 각종 떡 특히 석탄병-惜呑餠(감과 찹쌀로 반죽하고 녹두고물을 입혀 씹기에도 아까운 떡), 두텁떡(봉우리떡), 숙실과-熟實果(밤,대추 등 열매를 통째로 엿에 조린 초(炒). 모과, 유자, 도라지 등을 달게 조린 정과(正果)나 삶아서 으깨어 무친 율란(밤), 조란(대추), 강란(생강) 유자란) 녹말로 과일즙을 굳힌 과편(젤리), 각종 茶류와 冷음료(각종 화채,창면(녹말면),원소병(찹쌀경단 화채),식혜(감주),배숙,수정과,밀수-송화 꿀물) 송화, 검은깨, 콩가루를 볶아 꿀과 섞은 다식, 약식(찹쌀 약밥), 강정(땅콩,콩,잣,호두,호박씨 등 견과류를 엿에 굳힌), 빙사과(산자류), 유밀과(약과류), 화전류 등 각종 다과상이나 후식을 담당합니다.
영조(英祖)의 장수 비결은 아무리 중요한 회의 도중이라도 식사시간을 꼭 지키는 것이었답니다.
현재 창덕궁에 근대식으로 개량한 소주방이 있는데 1926년 순종이 승하할때까지 수라를 바치던게 그 소주방의 마지막이랍니다. 거기엔 서양음식이 들어온후 오븐이나 양식 조리기구도 보이며 서양사신의 접대나 오후 tea time에 맞추어 양과자나 케익류도 구워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고종과 순종은 매운 음식을 싫어하고 커피를 매우 즐겼죠. 순종을 우둔하게 만들려고 커피에 무슨 약을 넣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순종에게 바치는 깍두기는 무를 삶아서 연하게 담그었다고 합니다.
궁중음식은 북-玄(김이나 석이채), 동-靑(미나리로 부친 초대), 서-白(달걀 흰자 지단), 남-朱(고추), 중-黃(노란 지단)의 五方色의 화려한 고명(토핑)으로 장식하고 재료 본래의 맛과 향을 살려 조리하고 결코 맵거나 짜게 조리하지 않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