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8일 목요일 오전 9:24
[CEO포커스] 조명재 LG생활건강 사장 매일경제
<심윤희> 평사원으로 출발해 97년 1월 LG생활건강 사장에 취임한 조명재사장(56)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축하를 받았으나 얼굴은 어두웠다.외부에는 국내 굴지의 회사로 알려져 있었으나 내부적으로는 무리한 사업강행으로 적자가 쌓여 위기감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회사 사령탑을 맡은 조 사장은 취임후 아무리 늦게 잠자리에 들더라도새벽3시면 어김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기도를 드렸다. 회사와 임직원들의 얼굴이 떠올라 깊은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다 마지막으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했다.
그는 위기는 곧 기회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채칙했다. 어둑어둑한 새벽녘그는 책상에 앉아 새로운 경영전략 수립에 골몰했다.
그 동안 회사의 오류가 무엇이었나를 찾아내고 바닥으로 떨어진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였다. 새시대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회사목표와 행동지침을 담은 '비전수첩'을 직접 만드는 등 직원들을 독려해 나갔다. 7개월 정도가 지나자 회사와 직원들에게서 변화를읽을 수 있었고 1년만에 그는 수년간의 적자를 흑자로 돌리는 기적같은일을 이뤄냈다.
올 4월 LG화학이 3개사로 분할되면서 독립법인 LG생활건강 대표를 맡은조 사장의 표정은 암담했던 97년과 사뭇 달랐다. 위기를 느끼기 보다는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다. 성격이 다른 사업을 분리시키면 경영효율과 사업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분사후 경기침체속에서도 꾸준히 매출이 증가했다. 3분기에는 2분기보다 매출 12%, 영업이익이 83% 신장됐다. 또한 지난달에는 도래한450억원의 회사채 전액을 잉여자금으로 상환함으로써 4월 독립법인 출범당시 219%였던 부채비율을 178%까지 감축했다.
LG그룹에 몸을 담은지 33년, LG생활건강 사령탑으로는 5년이 되는 조 사장은 입사후 단 한번도 옆눈질 하지 않고 한우물을 팠다.
69년 서울대학교 상과대를 졸업한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국책은행으로 가는 동료들과 달리 LG생활건강의 모체인 락희화학에 입사했다. 그가 은행대신 기업을 선택한데는 대학은사였던 조순박사의 영향이 컸다.조순박사가 기업체로 가는 것이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수 있는 기회가 될것이라고 권해 그는 미련없이 LG그룹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28년만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조 사장이 평사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중 하나는 'Opportunity is now here(기회는 지금 여기 우리앞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물쭈물하는사이 기회는 쉽게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말보다 행동과 실천을 먼저하라고 그는 늘 강조한다.
조 사장은 분사하면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생활용품 사업은지속적으로 확고한 시장우위를 유지해가고, 38%의 매출비중을 차지하는화장품사업은 2003년 43%까지 확대해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이를 위해 해외진출 청사진도 새로 마련했다. 조 사장의 해외전략은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된다.
"자금력과 마케팅에 엄청난 우위에 있는 로레알이나 P&G와 같은 글로벌전략을 세우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중국 베트남 등 결실을 거두고 있는지역을 중심으로 마케팅력을 집중시키는 '국소우위' 전략을 펼쳐나갈 생각입니다"
조 사장은 인터뷰 도중 LG생활건강의 중장기 사업전략을 설명하면서 국내외 경영실적, 성장률, 성장목표 등 모든 수치를 마지막 자리수까지 서류한번 보지않고 줄줄 외웠다. 상대출신이라 숫자감각이 있기도 하지만보고서를 수십번 읽고 회의에 임하고 업무를 꿰차고 있기 때문에 수치에대해선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사람보다 훤하다.
이런 꼼꼼한 성격때문에 그는 다소 살벌한(?) 닉네임을 갖고 있다. 칼,면도칼, 나이프... 한치 오차 없이 업무처리를 하는 그에게 직원들이붙여준 별명이다. 행동하지 않고 말만 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하지 않는 직원들에게는 추상같다.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지 못할 땐 불호령이 떨어진다.
"70의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70의 성과를 내면 칭찬을 합니다. 하지만 능력이 100인 사람이 일을 게을리해 70~80의 성과를 내면 저는 심할정도로 질책을 합니다."
일에 있어서는 '칼'이지만 딸 셋을 둔 아빠답게 영업현장에서 자주 나가여성들과 제품에 대한 평가를 듣고 설명도 하는 부드러움 남자다.
회사 신제품은 꼭 사용해 보고 가방에도 화장품을 넣고 다닐 정도로 자사제품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그는 친구들을 만나면 화장품 아줌마처럼 샘플을 건네주며 '꼭 써보라'고 권유하는 세일즈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