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산행 일정 : 8월 4일 20시 출발, 8월 5일 1시 5분 빼재 도착, 1시 12분 등산시작. 17시 20분 삼마골재 도착
3. 종주자 명단 : 최현찬(산행부대장, 경주교도소), 권종훈(산행부대장, 경주월성중), 손승락(경주월성중)
4. 운전자 : 최병윤, 정달교
5. 차량 제공 : 우성열
6. 도움 주신 분들 : 정해전
처음 백두대간 종주 계획은 5구간 산행이 8월 4일∼5일, 육십령에서 빼재까지로 잡혀 있었지만 중간에 한 구간을 단축시키고 또 최현찬 산행부대장의 휴가와 맞추다보니 5구간 산행부터는 5∼ 7구간 연속산행이 되면서, 빼재에서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8월 4일 가서 5∼8일까지 연속산행을 하기로 하고 코스도 되도록이면 짧게 잡을려고 했지만 막상 가서 산행을 하다보니 약간의 차질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집에서는 약간 일찍 출발하여 가면서 손승락 회원과 최현찬 산행부대장을 태워서 회장님 가게로 갈려고 했지만 마침 서천교에서 사고가 발생해서 차가 막히는 바람에 겨우 시간에 맞추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20시 20분에 출발하여 가스 넣고 고속도로에 올라가 광명근처에 도착하니 차가 밀리기 시작했는데 영천 근처에서 사고가 발생해서 지체되는데다 모량을 지나면서 갑자기 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얼마 걸리지 않을 경산휴게소까지를 2시간이 지난 22시 25분에야 도착하니 갑자기 몰려든 차량과 사람들로 주차 공간이 없을 정도였으며 휴게소 안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경산휴게소에서 22시 55분에 출발하여 빼재에 도착하니 1시 7분이었다. 대구 근처까지는 비가 내렸는데 빼재에 도착하니 하늘에는 밝은 둥근 보름달이 두둥실 떠 있었다.
낮에 내려올 때는 빼재가 높은 줄을 몰랐는데 밤에 올라가니 무척 높은 고개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번구간 운전하시는 분들은 연속종주가 되다보니 태워만 주고 다시 돌아가야 되는데 새벽에 다시 돌아가야 된다니 미안한 마음 무엇이라 해야할지(?). 돌아갈 길이 먼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 종주대를 걱정해 주시니... 감사, 또 감사할 뿐. 차가 밀려 경주에 5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고 한다.
1시 10분에 수령비에서 출발하여 절개지가 끝나는 지점으로 오르면 가파른 오르막이 10여분 이어진다. 평탄한 길을 지나 완만하게 오르면 잡목이 우거진 봉우리에 닿으며 계속해서 잡목이 이어지고 거의 평지길이다. 완만하게 오르면 1,050m의 수령봉이 나오고 1시 32분에 도착했다.
얼마가지 않아서 밤에 내린 비로 잡목 숲을 헤치고 가는 터라 바지와 신발은 물에 젖어 답답하고 무거울 뿐이다. 지금까지는 선두에 서서 길을 갔지만, 이번 5구간부터 연속 종주기간은 최현찬 산행부대장이 선두에 서기로 했다. 만약 내가 앞에 서면 너무 빨리 산행을 하기 때문에 연속종주를 하다보면 지쳐서 다음날 산행이 힘들어 진다면서...
철쭉터널이 이어지고 떡갈나무숲 아래 길은 양호하며, 완만한 오르막을 지나 왼쪽으로 약간 휘어 공터를 지나면 잡초가 있지만 길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대부분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된새미기재에 이르면 왼쪽에 공터가 있고 잡목지대를 지나 키높이 정도의 억새밭이 길게 이어진다. 잡목과 잡초지대를 오르면 싸리와 억새가 무성한 갈림길이 나오며 왼쪽엔 길을 덮고 있고 오른쪽으로 오른다.
내리막길은 넓지만 미끄러지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키보다 더 큰 싸리와 억새가 있지만 성가실 정도는 아니고 갈림길에서 왼쪽을 택한다. 초지를 지나 약간 급하게 올라선 후 내려서면 호절골재이다. 이때 시간이 2시 15분이었다.
우리는 호절골재에서 조금 올라가다 길을 잘못 들어, 금봉암쪽으로 가는 오른쪽길로 접어든 것이다. 15분 가량가니 용바위 용굴이 나왔고 여기서 급경사길을 내려가다 대간 종주하면서 처음으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조금 더 내려가다 다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평소 같으면 미끄러져도 넘어지지는 않는데 이상하다. 아마 길 아닌 길(?)을 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용바위 용굴에서 10분을 더 내려가니 갈림길 이정표가 나왔고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지만 마침 나무가지에는 대간 종주 리본이 달려 있어서 계속 내려가니 갑자기 개가 짖기 시작했다. 이때 시간이 2시 50분쯤 되었다. 바로 금봉암이었다. 개가 짖고, 불청객이 갑자기 침입하자 보살님들이 주무시다가 뛰쳐 나오셨다. 나중에는 스님도 주무시다가 깨신 것 같다.
우리는 몇번이나 미안함을 표시하고는, 물을 한잔 마시고 왔던 길을 되돌아오는데 갑자기 목탁소리가 들렸다. 아침 예불을 볼 시간도 아닌데... 이때가 3시였다. 곤히 잠들어 있는 산사에 무단침입하여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친 것 같다. 죄송하고, 미안하고...
삼봉산 오르는 길로 되돌아 오니 3시 25분이다. 1시간 10분을 허송세월했으며, 두번이나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으니 조금은 기분이...
오르막을 15분 정도 오르니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그렇지만 어두운 밤이라 보이는 것은 검은 물체인 산봉우리와 민가의 불빛만 반짝일 뿐...
억새와 싸리지대를 조금 오르면 편평한 봉우리에 이르게 되고 오른쪽에도 길이 있지만 왼쪽으로 내려선다. 바위봉을 지나면 바위쪽으로 하얀 밧줄이 보이고 곧 돌탑쌓인 봉우리이다.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바윗길을 내려선 후 돌길을 오르면 1,254m의 삼봉산이며 3시 45분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덕유삼봉산 1,254m, 거창산악회, 1990년 6월 24일이라는 표지석과 삼각점이 있으며, 표지석에서 약 4m앞 바위에는 진달래라는 멋있는 시를 새겨 놓았다.
직진하여 바위길을 내려서면 오른쪽에 바위 봉우리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 지점에 흰 밧줄이 처져 있으며, 바위를 오른쪽으로 끼고 내려선다. 왼쪽으로 꺾어지면서 급경사 내리막이다. 오른쪽으로 가보니 바위봉에서 내려오기가 상당히 힘이 드니(가장 위험한 곳임) 왼쪽으로 다시 꺾어서 급경사 내리막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비박굴에 닿는다. 이때 시간은 4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삼봉산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특히 오늘 산행에서 가장 어렵고 위험한 구간이니, 약간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박굴을 왼쪽에 두고 내려섰다 다시 올라서면 계속되는 오르막에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안부에 도착하니 4시 30분, 잠시 오르다 오른쪽으로 90도 꺾어 가파르게 내려선다. 여기서부터 20여분간은 상당히 급경사길이 되니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 한다.
소사고개로 내려서는 능선과 대덕산 오르막 능선이 대간 종주자들이 종종 마루금을 비껴가기 쉬운 구간이니 조심을 하셔야 될것 같습니다.
급경사길을 내려오고 나면 임도가 나오게 되는데 왼쪽으로는 계속 임도가 이어지고, 오른쪽에는 묵밭이 있다. 내려오던 길을 계속 직진하면 소나무 지대를 거쳐 오래된 철문이 방치되 있고 싸리나무가 몇나무 자라고 있는데 여기를 지나면 바로 큰밭이 나오는데 이때 시간이 5시 10분이었다. 왼쪽에는 조금전에 지나왔던 임도와 연결된다.
처음 나오는 큰 밭에서 길을 조심해서 찾아야 한다. 마침 여름이라 밭에는 배추가 심어져 있었는데 얼마전에 배추를 심어면서 밭둑에 있는 나무가지에 매달아 놓은 리본을 주인이 전부 잘라버린데다 밤에 소나기가 심하게 내려 높은 곳의 흙이 대간길로 쓸려 내려와 길을 찾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다 한참을 내려오면 밭두렁에도 들깨를 심어 놓아서 처음오는 초행자는 여기가 대간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지경이었다.
대간길은 큰 밭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6∼7분 정도 내려오면 오른쪽에 첫 전봇대가 보이고, 파란색 물통이 밭 가운데 있으며, 낙엽송 숲이 끝나는 부분, 즉 첫 전봇대 있는 곳에서 밭 경계가 되며, 밭 경계 30∼40m 정도 못간지점에 큰 소나무 두그루가 서 있고 약간의 공간이 있다.
대간길은 소나무 옆으로 해서 왼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게 된다. 능선을 잠시 내려가면 다시 밭이 나오고, 무풍과 거창을 잇는 108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소사고개에 닿는다. 왼쪽으로 조금 걸으면 소사마을 표지석이 있고 가게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큰 밭 입구에서 길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큰 밭 입구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니, 사태가 난 지역이 있고, 밭이 있으며 임도같은 도로가 나오고 묘가 나오며, 다시 밭을 지나면 왼쪽에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게 되는데, 우리는 이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마을에 와서 주민에게 길을 물으니 여기서 소사고개로 가도 되지만, 정확한 백두대간길은 큰 밭에서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가야 된다기에 우리는 되돌아섰다.
이때 시간이 6시 10분이었으며, 되돌아 가는데 때늦은 일출이 구름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큰 밭에서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 가면서도 대간길을 찾지 못해 계속 내려가니 밭이 끝나고 농로가 나왔다. 농로를 잠시 내려가니 왼쪽에 묘가 있었고 농로는 오른쪽으로 꺾였다. 왼쪽 묘로 해서 소사고개에 도착하고 보니 대간길은 삼도봉에서 내려와 직진을 하고 있어서 우리는 다시 그 길을 따라 올라가니 좀전에 내려오면서 표시리본을 달았던 곳으로 나왔다. 그만큼 정확한 길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렇게 두번이나 오르내리면서 길을 찾다보니 벌써 시간이 두시간이나 흘러간 7시 10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어느길을 택했어도 관계는 없었지만, 그래도 되도록이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가장 정확한 대간 마루금을 밟아보기 위해서...
가져간 김밥과, 가게에서 라면 두개를 끓여 달라고 해서 아침을 먹었다. 가게에서 30m정도 떨어진 곳에 느티나무가 있고 옆에는 계곡물이 있어 젖은 신발과 양말을 빨아서 다시 신고는 8시 10분에 가게를 출발했다.
맞은편으로 나무에 백두대간길 표시리본이 많이 매달려 있다. 10분쯤 올라가니 배추밭 중앙으로 대간길이 있어서 이곳을 지나 계속 올라가면 왼쪽에 비닐하우스가 있고, 사람이 생활하는 하우스도 있었는데, 마침 우리가 지나갈때 아주머니가 전구지(부추)전을 부치고 있었다. 먹음직스러워 보였지만 차마 달라고는 못하고 다들 침만 꼴깍(?)... 오른쪽에는 부산농장 농산물 수송 트럭과 몇대의 승용차도 있었다.
그곳에서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었다. 완만한 오르막에 묘 4기를 지나고, 왼쪽에 밭을 끼고 오르면 묘 1기가 나온다. 싸리지대를 지나 약간 가파르게 내려서면 밭에서 우회전 한다. 임도가 두번 나온다. 오른쪽에 밭이 있는 지점에서 왼쪽 임도로 들어서서 진행하다 왼쪽에 소나무 숲이 있는 지점에서 오른쪽 숲으로 들어선다.
배추밭에서 오른쪽 숲으로 들어서서 초원지대를 지나면 계속 가파른 오르막인데 뒤를 돌아보면 소사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소사마을은 30여호가 사는 작은 동네이지만 산을 개간해서 고냉지 채소를 주로 재배하고 있었다. 삼봉산, 삼도봉 기슭을 전부 개간을 한 것 같다.
억새와 잡목들이 우거져 있으며 계속 오르막으로 묘 1기가 있는 잔디밭에서 전망이 좋으며, 우리가 지나온 삼봉산과 소사마을, 고냉지 채소밭, 도로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간길 양쪽에는 소사마을을 출발하여 40여분을 오를때까지 고냉지 채소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대간길은 왼쪽으로 꺾이어, 북동방향에서 북서방향으로 바뀐다. 싸리와 다래 등의 잡목길이 이어지며, 억새지대를 지나 숲길로 들어서면 삼도봉이 보인다.
삼도봉 정상은 초지와 이깔나무로로 이루어져 있으며, 오른쪽 길은 가야산 줄기로 이어진다. 삼도봉 정상에는 9시 35분에 올랐으며, 초점산, 삼도봉 1,248.7m, 무심이라는 글이 적혀 있으며, 거창군 극북점이 있다.
삼도봉 정상은 초지와 이깔 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며, 오른쪽 길은 가야산 줄기로 이어진다. 삼도봉 정상에는 9시 35분에 올랐으며, 초점산, 삼도봉 1,248.7m, 무심이라는 글이 적혀 있으며, 거창군 극북점이 있다.
첫 번째 삼도봉은 지리산 삼도봉이 있었고, 이번이 두 번째 삼도봉으로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상남도 거창군, 경상북도 김천시 삼도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봉우리...
밋밋한 능선길을 가다가 급한 내리막을 만나게 되고 다시 억새밭을 지나면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싸리를 비롯한 잡목숲길을 오르면 넓은 초지가 나온다. 대덕산 앞봉부터는 잡목도 없고 억새만 있다. 여기서 부터는 밋밋한 능선으로 나무도 별로 없으며 1,290m의 대덕산 정상이다.
옛날에는 다락산, 다악산으로 불리었고 정상에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전하는 명산이다. 부드럽게 생겼으면서도 우직한 남성다운 덕기가 어린 이 산은 옛날부터 수많은 인걸들을 배출했고, 또한 이산이 있는 무풍동은 남사고의 십승지지 중 하나로 알려진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정상에는 넓은 헬기장이 있으며 주변은 억새밭이어서 동서남북 막힘이 없고 오른편에는 초라한 묘 1기가 있다. 그러면 옛날 사람들은 왜 1,000m가 넘는 고봉에까지 힘들게 올라와 묘를 썼는지(?)... 그리고 대덕산 1,290m, 소사재 3.5km, 853봉 6.5km, 백두대간길, 전북산사랑회라고 쓰여진 전일상호신용금고에서 설치한 스텐레스 표지판이 헬기장 왼쪽편 전라북도 무주군 지역에 세워져 있다.
오른쪽편 경상북도 김천시 지역에는 1988년 2월에 설치한 삼각점이 있으며, 대덕산 정상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해룡고등학교 전교생 수련회 기념비로서 2000년 7월 25일 해룡고등학교장 권재홍 선생님께서 세운 비가 있다.
10시 12분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맑던 하늘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가져간 복수박을 먹다하니 순식간에 먹구름과 운무로 덮히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전화를 하는데 갑자기 통화도 제대로 되지를 않았다. 비가 오는 관계로 기념촬영도 못하고 서둘러 하산을 하였다.
하산은 헬기장 왼쪽 모서리로 하면 된다. 직진해서 북쪽 봉우리를 넘어가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약간 경사가 있으니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완만하고 뚜렷한 길을 지나면 다시 가파른 내리막에 키 높이 정도의 산죽지대를 통과하면 오른쪽에 샘터가 나온다. 샘의 물은 그리 깨끗하지 않아 먹기에는 좀 찝찝해서 그냥 지나친다.
키 높이 정도의 산죽 내리막길이 나오고 다시 철쭉숲을 지나 오른쪽으로 휘어지면 가파른 내리막에 산죽은 계속되고,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면 가파른 내리막에 산죽이 없어진다. 오른쪽에 너덜지대를 끼고 왼쪽으로 휘었다 오른쪽으로 다시 휘면 두번째 샘이 나온다. 경사길을 계속 내려오는데 11시경 처음으로 등산온 사람들을 만났다. 부산서 7명이 왔는데 자기들은 대덕산만 올랐다가 내려온다고 한다. 한참을 더 내려와서 또 다시 백두대간 종주자 4명을 만났다.
내리막 지점에선 덕산재 도로가 보이고 이깔나무 숲을 내려서면 앞에 임도가 보이면서 640m의 30번 국도인 덕산재가 나온다. 시간은 11시 30분이며 덕산재에는 산불조심 깃발이 펄럭이고 현수막도 있다. 빗줄기는 처음보다 더 굵고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기념촬영을 했다. 오른쪽으로는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이며 파란색 표지판이 있고, 왼쪽으로는 무주구천동 덕유산 표지판이 있는 2차선 길이다.
휴게소와 주유소는 폐허가 된지 오래된 것처럼 보이며, 비까지 내려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폐허가 된 쌍방울주유소 뒤 전봇대에서 능선으로 접어들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잡목으로 뒤덮인 능선에는 군데군데 철쭉나무가 눈에 띄며 가파르게 오르면 833.7m봉 직전에서 왼쪽으로 틀며 810m봉까지는 평탄한 잡목숲을 헤치고 나가면 절개지가 나오고 넓게 터를 닦은 공터도 보인다. 옛날 광산이다.
백옥같이 새하얀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1992년 7월 30일자로 금릉군수가 1997년까지 허가해 준 광산이다. 복원이 되어 있지 않아서 왼쪽으로는 약간의 산사태가 난 흔적도 있다. 광물 채굴이 끝났으면, 원상회복을 제대로 시켜놓았으면 좋으련만...
절개지를 오르면 임도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잡초와 억새로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거의 기복없는 능선을 오르내리다가 철쭉이 보이기 시작하면 넓은 내리막길이 나타나는데 급경사여서 미끄럽다.
다시 급경사 오르막길로 낙엽송 밑은 둥굴레 군락지다. 경사지대를 올라서면 능선이 오른쪽으로 휘지만 잡목숲이라 전망은 시원치 않다. 870m봉을 지나 싸리와 억새지대를 지나면 오랫동안 방치된 헬기장이 나오고 나무깃대가 세워져 있는 삼각점이 있는 853.1m봉에 이르니 12시 40분이다.
오르내림이 반복되다가 오르막에는 조금 가파르다. 북서방향으로 진행하면 또 다시 헬기장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포장된 도로가 보인다. 약간 너른 공터가 있고 임도는 풀로 덮여 있고 좌우에 길이 보인다.
790m의 부항령에는 13시 10분에 도착하였다. 아직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지만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진 상태다. 오늘 계획은 부항령까지였지만 숙박관계와 지금 하산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고, 오늘 민주지산·삼도봉까지 산행을 하게 된다면, 백두대간 5구간을 5일 만에 다섯도를 밟아 볼 수 있기 때문에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연장 산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동쪽으로 오르다가 왼쪽으로 휘면서 안부에 묘가 하나 있고 오른쪽은 사면길이고 왼쪽은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왼쪽 방향의 오르막길을 가다 보면 너른 공터에 묘가 있고 이를 지나 오르면 정상에는 조그만 묘가 있는 970m봉에 이른다. 13시 55분이다.
왼쪽으로도 길이 나 있지만 오른쪽으로 90도 꺾어 가파르게 내려간 후 오르기를 반복하며 북동방향으로 진행한다. 1,030m봉(삼거리)에는 넓은 헬기장이 있으며, 14시 20분이다. 오른쪽 모서리에 길이 나 있으나, 신갈나무 숲을 이룬 좌측 능선으로 들어서면 약간 가파르게 내려선 후 돌길과 잡초 능선을 오르내린다.
북서쪽으로 급하게 올라서면 1170.6m봉이며 약간의 공터가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마루금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특히 스키장으로 훼손된 향적봉까지 보이며 주위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오른쪽으로 약간 휘면서 흙비탈길이라 미끄러지기 쉬운 내리막길이다. 이번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손승락 회원은 심심하면 미끄러져서, 엉덩이에 새로운 몽고반점(?)이 생겼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젊음이 있고 도전 정신이 있기에 산행 경력은 얼마되지 않는 초보자지만 반드시 완주하리라 믿으며...
왼쪽은 목장지대이며 마루금 서쪽 밑으로 목장도로가 반원을 그리며 휘돌아 내려간다. 헬기장이 나오고 목장도로를 따라 5분정도 진행하다 오른쪽 능선으로 들어서면 잡목 오르막이다. 왼쪽길을 택해 오르다 미끄러지기 쉬운 내리막을 지나면 양쪽으로 길이 희미하게 나 있는 사거리 안부다.
이 사거리 안부는 김천 해인동에서 올라오는 길과 무주 대불리에서 올라온 길이 만나는 지점으로 이정표에는 삼도봉 0.5km라 표시되어 있으며 15시 40분에 통과했다. 삼도봉 정상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급경사 오르막에는 잡초와 잡목, 억새등이 있으며, 돌길을 올라서면 1,177m의 삼도봉 정상이다.
환희와 감격의 순간이다. 빼재를 1시 10분에 출발하여 16시 46분에 삼도봉 정상에 우뚝 선 것이다.
6월 3일 1시 15분 중산리를 출발하여 8월 5일 16시 46분 삼도봉에 서기까지... 총 산행시간 70시간 8분에 하루평균 산행시간 14시간 1분 36초가 걸렸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무더위와 싸우고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옷과 신발은 물로 범벅이 된 상태에서도 꿋꿋이 참고 견디며 오로지 완주를 목표로 해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 빨리 이 길을 걸어왔으며 앞으로도 걸어 갈 것입니다. 원효대사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듯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우리나라에는 삼도를 경계로 해서 지어진 삼도봉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는 봉우리는 세개가 있으며, 모두 백두대간상에 위치해 있다. 그 중에서도 조선시대 8도로 나누었을때 삼도에 해당되는 삼도봉은 유일하게 여기 밖에 없다.(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넓은 공터의 삼도봉에는 1991년 10월 10일에 세워진 삼도봉 대화합 기념탑에는 세마리 거북위에 세마리 용이 조각되어 있으며, 경북 금릉군(지금은 김천시), 전북 무주군, 충북 영동군이 표기되어 있으며, "태백산맥에서 분기하여 동, 서로 뻗어내린 소백산맥의 큰봉으로 충청, 전라, 경상도가 이 곳에서 갈린다 하여 삼도봉이라 하였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여기를 끝으로 전라도는 완전히 벗어난다. 대간길에서 만나는 마지막 삼도봉이다. 대간길에서 만나는 마지막 삼도봉이다. 그렇지만 원래 삼도봉은 바로 앞에 보이는 높은 바위봉이 삼도봉 정상이다.
조선 태종때인 1414년 조선을 8도로 나눌 때 충청, 경상, 전라 삼남의 분기점이 되면서 얻은 이름이 삼도봉이다.
백두대간 본줄기에 속하는 이 삼도봉에서 1,200m의 석기봉, 1,242m의 민주지산, 1,176m의 각호산으로 이어지는 늠름한 산줄기가 뻗어나간다.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적인 경계를 이루었던 민주지산은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원래 이름은 백운산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충청, 경상, 전라 3도 방언권은 물론 풍습과 음식·문화 등의 경계가 되기도 한다.
이 민주지산을 중심으로 한 신라의 금물현(김천)과 길동현(영동), 소라현(황간), 백제의 무산현(무주)은 신라와 백제가 격돌하면서 힘겨루기를 했던 곳이다
이곳 삼도봉은 올해만도 세번째가 된다. 특히 2월 정기산행 때 본 상고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대 장관이었다.
대간길은 석기봉쪽이 아니고,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드문드문 바위도 있고 경사가 심한 길을 내려가면 1,010m의 삼도봉 안부(삼마골재)가 나온다. 안부에 도착하니 17시 20분, 헬기장이 있는 안부에서 왼쪽 길은 물한리로 내려서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해인동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지금까지 대간을 타면서 처음으로 계곡으로 내려와 물을 구경한다. 미나미골로 해서 물한리 민박촌에 도착하니 18시 20분이다.
황룡사 근처에 있는 민박집을 알아보니 저녁은 되지만 아침을 해 줄 수가 없다고 해서 다리를 건너 오니, 지난번 산행 때는 없던 새로 지은 민박집이 있어 물으니 들어오란다. 우리는 사정을 이야기하고 아침을 먹고 가야 된다니까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신발과 양말을 벗으니 3구간 때와 마찬가지로 발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16시간 이상을 물과 전쟁(?)을 치루었으니까. 샤워를 하고 젖은 옷과 신발과 양말을 씻은 후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도 한잔 곁들였다.
내일 먹을 간식을 준비하러 가는데 마침 주차장에는 각설이들이 와서 흥겹게 흥을 돋우고 있었다. 잠시 구경을 하다가 물건을 사고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었다.
17시간 10분이라는 긴 시간을 산행하신 종주대원들과, 9시간이라는 긴시간을 운전하신 최병윤, 정달교 회원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비록 종주대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항상 걱정하시고, 격려해 주시는 여러 회원님들께도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