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1구간 산행기
일시 : 2005년 7월 10일
코스 : 모래재-곰재-오두재-만덕산 삼거리-만덕산(호남정맥에서 조금 벗어나 있음)-마치-슬치
참석자 명단 : 장미, 솔잎, 네모, 항아, 공산, 수월, 마스터 초이, 산꾸러기
장마철이라 일기 예보에는 엄청난 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전하지만 우리는 멈출수 없는 길을 나선다.
폭우와 낙뢰가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출발은 예상대로 하기로 한다.
이제 거리도 멀어지고 날씨도 무덥기 때문에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출발하기로 한다.
3시경 일어나 이것저것 준비를 해서 네모님과 함께 황실 고수부지로 가다가 김밥을 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도착을 하니 4시다.
출발을 해야 하는데 공산님이 보이질 않는다.
대신 등대지기님이 배웅을 나와 계신다.
시경계 산행때도 그렇고 금남호남에 이어 호남정맥에도 간식을 준비해서 이렇게 배웅을 나와 주시니 너무 너무 고마울뿐이다.
오늘은 동보님께서도 영덕대게를 준비해서 보내주시니 모두들 고마운 마음 금할 수가 없다.
공산님께는 몇 차례에 걸쳐서 전화 연락을 하지만 휴대폰이 꺼져 있다.
약 20여분이 지난후 우리끼리 출발을 할려고 하는데 전화 연락이 오는 것이 아닌가.
깜빡하고 늦잠을 잤다면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한다.
4시 27분 공산님이 도착하고 우리의 백마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을 한다.
잠시 산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두들 취침을 한다.
6시 23분 함양휴게소에 도착하니 평소와 마찬가지로 약 두시간이 걸린 것이다.
휴게소 벤치에서 장미님이 미리 준비해온 쇠고기국과 밥으로 맛있게 아침을 해결한 후 7시에 다시 휴게소를 출발한다.
이제 모두들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다보니 모래재에는 8시에 도착을 한다.
다행히 걱정했던 비는 내리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지난번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시작하여 주화산까지의 금남호남정맥을 마치고 곧바로 호남정맥을 시작하는데 호남정맥은 주화산에서 광양의 백운산까지 도상거리 400km로서 장장1,000리를 걸으면서 호남의 명산들을 두루 만난다는 희망과 즐거움을 안고 출발한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전국의 많은 산악회에서 9정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여기 호남정맥에도 산악인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진 느낌이다.
8시 15분 출발을 하는데 길가에는 산딸기가 먹음직스럽게 익어 있다.
그리고 맞은편의 금남호남정맥 기슭은 온통 파헤쳐져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밤새 내린 비로 인해 선두로 올라가니 잡목들 잎사귀에 맺힌 빗물이 온통 옷을 적시게 한다.
8시 23분 지난번 하산지점인 모래재 안부에 도착을 한 후 33분 첫봉우리에 올라서니 벌써 바지는 물에 젖어 버린다.
그래서 공산님과 솔잎님이 스패츠를 착용하고 선두에 서서 가기로 한다.
나무에 붙어있는 매미라는 놈들은 벌써 한여름을 알리는 듯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으며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태양은 뜨겁게 느껴지지 않지만 습도가 매우 높아 온몸을 후덥지근하게 만들며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산행 속도도 느려지게 된다.
이후 동쪽으로 봉우리 오르내리다 45분 동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진행을 하게 되고 49분 안부에 도착을 하고 53분 봉우리에 올라서서 휴식을 취한다.
곧이어 산죽길이 이어지고 9시 12분 정맥길 좌측에 문이 나온다.
9시 27분 우측으로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32분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 직진길로 진행을 하면 된다.
좌측길은 아니다.
9시 49분 철조망 울타리가 끝나면서 곰티재가 나온다.
이곳 곰티재는 임진왜란때 한산도 대첩과 같은 날에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좌측에 곰치재(熊峙戰迹地)라고 적힌 스테인리스 입간판이 서 있다.
여기에는 이 재는 예전 신작로가 나기 전 진안-전주간의 주요 교통로였다.
진안-전주간 교통로로는 이 길 말고도 북동쪽으로 약 2km 지점에 적내재가 있기는 하였으나 경사가 급하고 험하여 짐이 있는 사람이나 일반 길손은 이 길을 주로 택하였다고 한다라며 아래로 장문으로 이어지는 설명이 되어 있다.
58분 임도에 도착을 하니 철조망 울타리가 끝나고 10시 14분 남쪽으로 진행하던 정맥길은 서쪽(우측)으로 꺾이고 10시 22분 웅치 전적비에 도착을 하니 남녀 네분이 전적비를 둘러보고 있다.
전적비의 3면에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의 장수가 왜적을 물리치는 장면이 양각되어 있었고, 정면에 웅치전적비에 대한 설명이 세로글로 음각되어 있다.
전적비를 둘러보면서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불멸의 이순신과 임진왜란를 상기해 보면서 휴식을 취하면서 주위의 산딸기를 따먹는다.
전적비에서 시멘트 임도로 2분가량 내려오니 비포장 2차선 도로가 나오고 도로 옆에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 25호인 웅치전적지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이 서있다.
이곳은 임진왜란때 우리의 조상들이 왜적에 맞서 전투를 벌인 현장이다.
왜군은 해로를 통해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장악하려고 했으나, 이순신의 활약으로 해로가 막히자 육로로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
왜적은 무주, 금산, 진안 등지에 군대를 집결시키고 선조 25년(1,592년)7월 8, 9일에 웅치로 쳐들어왔다는 설명과 함께 자세하게 그때의 상황을 적어놓았다.
비포장도로를 건너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올라가는데 좌측에 기계음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이곳은 바위를 분쇄기로 부수는 소리로 골재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계속되는 오름길을 올라가니 10시 55분 웅치를 지나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서고 11시 2분 익산-포항간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11시 8분 좌측 내림길 내려가니 수확을 끝낸 인삼밭이 나오고 우리는 여기서 한동안 심마니가 되어 이곳저곳을 뒤져본다.
결국 수월님과 공산님이 심봤다를 외치고 우리는 헛수고에 거친다.
인삼밭을 지나 11시 30분 봉우리에 도착을 하여 또다시 휴식을 취하면서 횡재한 인삼을 구경한다.
11시 52분 의자가 두개 설치되어 있는 곳에 도착을 하고 계속 이어지는 오름길에 12시 바위 봉우리에 올라서서 우측으로 암자와 터널공사 현장을 구경한다.
그리고 멀리 마이산과 부귀산, 그리고 모래재도 보인다.
북쪽으로는 대둔산이 시야에 들어오니 이곳은 멋진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물론 대둔산에 다음 산줄기때 지나가야 할 산줄기이기에 더욱 유심히 바라본다.
12시 14분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 봉우리 갈림길에서 우측길로 접어들게 되는데 이정표에는 정상 0.5km, 헬기장 2.8km라 표시되어 있다.
이후부터는 바위능선으로 산행을 멋을 더하는 곳이며 12시 24분 만덕산 정상 761m, 호남정맥 정수리 3.0km, 슬치 13.2km, 곰치재 2.5km로 표시된 전북산사랑회에서 세운 이정표와 무선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따지면 만덕산 정상은 이곳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그러니 이곳은 만덕산 갈림길 삼거리인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다 배낭을 벗어두고 만덕산을 갔다온다고 하니 네모님과 항아님, 마스터 초이님이 뒤따라 오시고 잠시 후 만덕산 정상에 올라서니 오늘 산행 중 최고봉우리인 것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맞이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역사적 전적지요, 6.25동란때 공비의 출몰이 심했던 곳으로 곰티재를 지키고 있는 수문장과 같은 산이다.
만덕산의 유래는 한자로 일만만(萬), 큰덕(德)을 써서, 만인에게 덕을 베푸는 산이란 뜻이다. 지역주민들에 의하면, 임진왜란과 6.25를 비롯한 수만은 전란을 겪으면서도 지역주민들이 전화를 입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만덕산이 덕을 베풀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또한 고구려 때 보덕화상이 이 산자락에다 만덕사를 개창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부처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만 가지에 달하는 덕을 가진 이는 부처뿐이라는 것이며, 또는 삼신사상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12시 30분 만덕산 정상에 도착하니 763.3m, 상달길 3.5km, 우측으로 헬기장 3.3km, 삼각점 등이 설치되어 있다.
기념촬영을 한 후 곧바로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바위 위에서 점심 식사를 맛있게 하는데 20여명의 산꾼들이 올라온다.
이곳은 바위지대라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어 식사를 한 후 잠이라도 한숨 자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13시 오후 산행을 시작하여 내려가는데 가끔씩 산꾼들이 올라오고 있으며 1시 12분 정상 0.3km, 원불교 수련원 2.3km, 정수사 3.1km라는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으며 우측으로 정수사 내려가는 길을 알리고 있다.
다시 멋진 암벽지대를 통과하는데 전망대 구실을 하며 아마 이 봉우리가 관음봉인 것 같다.
로프도 설치되어 있고 오늘 산행중 가장 재미있고 조망이 뛰어난 곳인 것 같다.
13시 28분 제5쉼터에 도착하니 플라스틱 벤치가 설치되어 있는데 보기가 조금은 어색해 보이며 정상 1.5km, 온천개발지역, 마치 등을 알리는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하늘에는 검은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이제 비를 피하기 위하여 산행 속도를 빨리하는데 13시 30분 지금까지 참아주던 비는 드디어 내리기 시작하고 능선의 높낮음이 그리 크지 않아 정맥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14시 4분 묘 2기를 지나고 9분에는 사거리 갈림길을 지나는데 아마 이곳이 마치가 아닌가 추측을 해 본다.
18분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고 35분 566봉으로 추측되는 봉우리를 올라서고 이후부터는 좌측으로 길이 휘어지면서 이곳은 많은 산꾼들이 다니질 않았는지 온통 가시넝쿨과 잡풀들이 길을 가로막으면서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15시 16분 임도 비슷한 길이 나오고 21분 묵밭을 통과하니 다시 오솔길이 나오고 길가에는 만덕산 4km, 죽림온천 9km라는 이정표가 땅에 떨어져 있으며 아직도 비는 내리고 갈길은 멀다.
아직도 슬재까지는 3시간 이상 진행을 해야하기 때문에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곳에서 잠시 간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하산을 하기로 결정을 한다.
15시 38분 슬치로 추측되는 안부에 도착한다.
우측으로는 죽림온천으로 내려가는 길인 것 같고 우리는 도로와 가까운 좌측 상월리로 내려가기로 한다.
그리고 마부님께 상월리로 오라는 연락을 취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좌측으로 밭들이 나오고 계곡 아래에는 도로도 보이고 논에는 벼가 자라고 있으며 맞은편 산기슭에는 인삼을 재배하는 모습도 보인다.
농로를 따라 내려가니 계곡이 나오고 잠시 후 상월리 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이 마을은 고추와 담배를 많이 재배하고 있으며 신흥사로 연결되는 큰 포장도로가 있는 곳까지 천천히 걸어서 내려온다.
농산물 판매장 건물에 도착하니 16시다.
마침 마당에 있는 수도가에서 대충 씻은 후 마부님을 기다리니 금방 도착한다는 연락이 오고 아침에 동보님이 준비해 주신 음식을 먹기 위해 관촌에서 소주를 몇 병 산후에 조용한 곳을 찾는다.
16시 50분 사선대 유원지에 도착하여 동보님과 등대지기님이 준비해 주신 음식을 맛있게 나누어 먹은 후 17시 44분 출발을 한다.
경주로 돌아오면서 공산님은 지각한 잘못으로 회비를 5만원 자진 납부를 하고 경주에 도착하여 충효 아구찜에서 저녁을 먹고 23시에 각자 집으로 헤어진다.
오늘도 변함없이 안부 전화를 주신 방산회장님과 여러 회원님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동보님과 등대지기님에게도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