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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녀 교육
1. 가정교육에서의 아버지의 참여와 역할
홍기형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자녀교육은 대부분 어머니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우리네 가정에서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런 인식의 근거는 아마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어머니만의 책임이라는 생각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자녀를 임신하고 출산하며 젖을 먹이는 일은 여성들의 생리적 특성과 관련된 어머니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녀의 출산을 제외하고는 갓난아이의 양육에 있어 목욕시키고 기저귀나 옷을 갈아 입히는 일, 아이와 놀아주는 일 등은 반드시 어머니만이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아이의 양육문제는 말 할 것도 없고 자녀교육 전반에 관해서도 아버지가 어떠한 책임과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는 지가 분명하게 정립되지 않고 있다. 이유가 어떻든 아버지가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 관해 별로 할 일이 없다고 본다면 이는 크게 잘못된 고정관념이라 하겠다. 자녀 교육이 으레 집안에서 살림하는 어머니가 맡아해야 할 일이라는 고정관념은 자칫하면 아버지를 자녀교육에 있어 간접의 주변적인 존재로 불러나게 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 따라 가장으로서의 권위나 역할이 축소되어 그 지위가 상실된 채 단순히 아이들의 친구나 낯익은 손님 같은 위치로 전락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바쁜 시간에 쫓겨 휴일에도 자녀들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아버지의 입장으로서는 아버지의 교육적 역할수행은 고사하고 우선은 아이들과 친숙하려다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몇 해 전 국민학교 아이들에게 가정에서의 아버지 모습을 알아보는 면담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유형을 다양하게 말해주는 그들의 반응 속에 드러난 놀라운 사실은 아이들에게 비쳐지는 아버지의 모습들이 아이들에게 대단치 않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10%에 가까운 아이들이 귀가한 아버지는 TV나 신문을 보고 있거나, 혹은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는 모습에 익숙해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존재가 아이들에게 이처럼 무기력하거나 손님 같은 입장에서는 아버지로서의 권위는 물론 어떠한 교육적 지도도 먹혀 들어갈 수 없음은 물론이다.
전통 사회에서의 자녀교육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삼촌들이 함께 살아가는 확대 가족 형태에서 이루어졌다. 확대 가족 형태는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아동 성장 발달에 필요한 좋은 환경과 역할을 맡아줄 수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면서 인생전반 - 결혼, 출산, 사랑, 미움, 질병, 갈등 등-에 대한 자연스런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또한 그 시절 우리 아버지들은 자녀에게 친근하지는 않았지만 의연한 자세 속에서 아이들 교육에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왔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핵가족 형태에서는 그러한 아버지의 역할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은근한 사랑을 지니면서도 엄격한 권위를 갖춘, 자녀 교육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던 근엄하신 할아버지나 아버지들의 모습은 어느덧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오늘날 우리 아버지들은 그 시절 근사했던 아버지의 모습과 가정의 중심 인물로서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갈등과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권위에 존중을 보내고 규율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함으로써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데 방황하기 일쑤이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건전한 가치관과 질서를 가르쳐 주어야 하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구분하도록 해 주며,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단호하고도 엄한 가정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존경과 권위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현대 산업사회 변화에 대한 이해 속에서 아버지 자신이 추구해야 할 자세와 자녀지도를 위한 지식과 지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또한 평소 아버지 자신이 가정에서 아내와 자녀 그리고 이웃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한다. 이른 아침에 바쁘게 뛰어나가 밤늦게 술에 만취되거나 지친 모습으로 귀가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아버지란 아내와 자녀에게 돈이나 벌어다 주는 존재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어려운 조건과 사정이 있다손 치더라도 아버지는 최소한의 권위를 지킬 수 있도록 아버지 스스로가 노력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아버지의 권위를 높이 받들어 주는 어머니의 사랑과 내조가 뒷받침되는 것이 중요하다. 어머니가 자녀와 식구들 앞에서 아버지에게 무심코 던지는 말과 태도는 자녀들에게 비쳐지는 아버지의 모습과 권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가정교육은 바람직한 아버지상과 어머니상을 두 개의 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양부모교육체제(兩不母敎育體制)일 때 완전하다고 할 수 있다. 자녀 교육은 아버지의 합리적이고도 냉철한 교육적 판단과 어머니의 무한한 애정이 담긴 섬세한 지도가 조화를 이룰 때 이상적이다.
아버지는 가정의 경제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막강한 위치와 권위를 지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녀의 장래를 위해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방향과 지혜를 가지고 어머니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아버지가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보여주는 동일시 모델로서의 역할은 인성발달 측면에서 볼 때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즉, 딸은 아버지를 통하여 여성다움을 배우게 되며 아들은 어머니를 통해 남성다움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여성인 어머니만으로는 해내기가 어려운 남성영역의 일들을 남성인 아버지가 도와주어야 함은 당연하다.
2. 훌륭한 아버지상은 가정교육의 기본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한 가정의 정신적 지주로서 다양한 역할수행의 대표자이다. 아버지의 사회, 경제적 지위나 권위는 직접, 간접적으로 모든 가족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이웃이나 외부 사회와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는 한 가정을 보호하는 울타리 같은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즉, 아버지는 사회와 가정을 연결시켜주고 조정해주는 역할을 통해 사회활동의 모델이 되는 등 자녀들에겐 중요한 동일시 대상이 된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자녀교육에 있어 아버지의 사랑과 권위가 상실된 가정을 '부성 실조 가정(不性失調家庭)'이란 말로 훌륭한 아버지상을 강조하고 있다. 부성 실조 환경이란 아버지가 없거나 또는 오랫동안 떨어져 살고있는 가정환경을 뜻한다. 가정에서 따라서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어도 아버지가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권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다시 말해, 아버지로부터 받아야할 부성애와 지도가 결핍되어 결과적으로 자녀의 지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에 여러 가지 장애를 주게되는 부적합한 환경을 의미한다. 대개의 부성실조의 문제는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 그리고 부친의 사망 등에서 나타나는 부적절한 아버지상과 아버지 역할의 부재로 야기된다. 그러나 문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아버지가 자녀의 양육과 지도에 무관심하여 역할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던가 아니면 아버지의 이미지가 거부감을 주거나 공포의 대상이 될 때에도 나타난다.
해밀톤(Hamilton)이라는 아동 교육 전문가에 따르면 부성 실조 현상은 아이들의 사회적 발달뿐만 아니라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가치관 형성 등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몇 개의 연구들이 어머니 없이 자라는 모성 실조아(母性失調兒)와 부성 실조아들을 놓고 각종 사회적 범죄율을 비교한 결과 부성 실조아가 더 높은 범죄율을 나타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는 가정교육에 있어 아버지의 존재란 양육과 교육의 후원자나 보조자가 아니라 여러 가지 정서적, 사회적 덕목(도덕성, 정의감, 절제, 인내, 윤리)을 직접적으로 가르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밖에도 아버지의 교육적 역할과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입증하는 우리들 주변의 일화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녀교육에 있어 아버지의 존재를 일깨워준 이야기 한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6.25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혼자의 몸으로 남매를 키우는 안 어머니는 마루에 전사한 아버지의 사진을 항상 걸어두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어머니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나, 아이들이 잘못한 행동을 했을 때 아버지 사진 앞에서 말씀드리고 반성하도록 시키면서 아이들을 훌륭히 키우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아버지가 전사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아이들이 어릴 때 가정을 버리고 떠난 처지였고, 그 사진은 6.25때 전사한 외삼촌의 사진이었다. 다만 혼자된 어머니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훌륭하고 권위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는 홀로 된 어머니가 갖가지 아픔을 감수하면서 부성실조의 환경을 극복하고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운 좋은 본보기라고 하겠다. 옛말에 '애비없이 자란 자식'이란 말도 따지고 보면 아버지와 자식간에 있어야 하는 유대감의 부족 내지 상실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아를 지칭하는 말이 분명하다.
이혼가정에도 아버지는 필요하다
부성 실조 환경에 관련된 자녀 양육 및 교육에 관한 몇 개의 외국의 연구들을 보아도 아버지의 역할은 중요한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네 사정과는 기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아버지의 존재여부는 자녀의 사회적, 정서적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래서 이혼한 가정에도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우리네 보다 이혼율이 비교도 안될 만큼 높다보니 이혼을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면서 자녀의 장래 교육 문제만큼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부부간의 불일치와 파경의 결혼생활이라 하여 아이들의 불행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헤더링턴(Hetherington)이라고 하는 교육 전문가는 이혼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볼 때 아이의 양육권이 부모 어느 쪽에 주어지든 간에 정서적 혼란과 갈등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특히 이혼 후 1-2년 동안은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가 바람직한 부모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혼한 부모들은 정상 가정의 부모들에 비해 아이들 교육에 대한 심리적 관심과 격려를 줄 여유가 없고 잘못된 자녀의 사고나 행동들에 대해서도 쉽게 포기하거나 만족해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서구의 이혼한 어머니들은 남편과의 심리적 혼란과 저주 속에서도 아이들 아버지와의 접촉만큼은 허용 내지는 권장하는 자세를 취한다고 한다. 우리네 이혼가정과 비교해 볼 때 합리적이면서도 냉철한 판단 속에서 아버지의 존재와 역할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국 가정의 경우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하게 되면 아버지들을 매주 한 번씩은 반드시 만나게끔 아예 이혼 수속상의 법정에서 합의를 보는 예가 많다. 그렇지 못하면 비록 떨어져 살고 있으나 이혼 당사자들의 형편에 따라 가끔씩 혹은 전화로라도 부모와의 접촉이 가능하도록 한다. 헤어져 살고 있긴 하지만 주말 오후엔 으레 아이들을 공원이나 식당으로 데려가서 함께 놀면서 맛있는 음식도 사주는 등 아버지로서의 애정과 역할을 다하는 모습들은 흔히 볼 수 있다.
최근 아버지의 자녀교육에 관한 연구는 이혼 가정이 증가함에 따라 생물학적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재혼에 따른 계부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과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어머니의 재혼에 따른 두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속에서도 생물학적 아버지와 계부 모두가 아이의 성장발달에 크게 영향을 준다고 연구들은 보고하고 있다.
첫댓글 소중한 글귀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에 감사 드리고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