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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4일 일 맑음 글: 이계성
늦잠자다 5시 반에 일어났다. 피곤했던 것 같다. 저녁에 박회장님이 목욕하고 물이 넘쳐
카펫이 많이 젖었다. 5시 40분에 밖에 나가니 청명한 날씨 상큼한 공기가 공해 없는 도시
같다. 270만이 산다는 로마는 숲 속에 도시는 아니라도 도시가 밀집되어 있지 않고 숲이
많아 공해가 적은 것 같다.
호텔 뒤에는 큰 마트가있고 호텔 양 옆에는 각종 스포츠센터와 문화시설(극장 오락시설 등)
이 호텔과 붙어 있다. 호텔 앞에는 농사를 짓지 않는 밭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옆길
을 따라 내려가니 예쁜 4-5층짜리 아파트와 관공서들이 있고 한쪽에는 밀밭과 올리브과수원
과 경주 말 같이 큰 말을 기르는 목장도 보인다. 작은 농가에서 오리, 거위,닭이 모이를 주어
먹다 나를 보고 국국 소리를 내며 위험신호를 보낸다. 정겨운 모습이 한국농촌에 온 기분이
든다. 내가 뛰니 말들도 목장 안을 뛰어 돌고 있다. 길가에는 엉겅퀴 같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밀밭은 누렇게 익어가고 유채 밭은 꽃이 지고 열매를 맺어 영글어가고 있다.
메마른 땅에도 튤립같이 붉은 색으로 자라는 꽃이 있어 양귀비다 아니다 서로 말다툼을
했는데 나중에 가이드에 물으니 이태리 양귀비라고 한다.
아파트는 3-4층으로 20-30가구의 규모가 작은 단지로 지었는데 도색을 아주 튀게 보라색
으로 칠해 푸른 들과 조화롭게 보였다. 이곳 나무 중에서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키가 큰
측백나무가 운치 있게 보였다. 자귀나무도 마트 주변에서 자라고 있어 고향분위기를 느끼
게 한다. 호텔 뜰에는 장미가 곱게 피어 있는데 엊그제 내린 눈 때문인지 잎은 시들어 있다.
종려나무 야자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니 기후는 제주도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집들이 많이
들어서지 않아 신흥 개발 지역 같다. 동북쪽 알프스에는 검은 구름이 덮여 있고 동남쪽에는
맑개 갠 하늘에 흰 구름이 둥둥 떠가고 있어 운치를 한껏 더해 주고 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활동하기에 좋은 날씨다. 끝없이 넓은 들을 바라보면서 이 넓은 곡창지대를 배경으로
여기에서 힘을 얻어 2000년 찬란한 로마 역사가 이루어 졌다는 생각이 든다.
① 아침식사
7시에 식사하러 내려오니 백인들 식사가 끝나고 7시 30분부터 오라고 한다. 동양인들이 빵을
다 가지고 가기 때문인지 아니면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서 그러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1) 호텔출발 - 8시
<이태리 축구> 광이 아니라 신앙적이라고 한다. 자기편이 지면 직장에 가지 않고 머리
싸매고 누워있다고 한다. 서울월드컵에 이태리가 한국한테 진 뒤에 보복이 두려워 한 달간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했다고 했다.
이태리는 기상변화가 심하다고 한다. 지중해성 기후라 겨울은 우기고 따뜻하며 여름에는
건기라 시원한데 여름에도 금방 개었다 금방 비 내려 날씨를 종잡을 수 없다고 했다.
호텔 주위에는 구릉성 산지로 올리브 밭과 포도밭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태리 사람에게
길을 물으며 서로가 가르쳐 주겠다고 싸우고 이기는 사람이 2-30분 설명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길을 몰라도 사설을 늘어놓으며 가르쳐 주기 때문에 반드시 3사람한테는 물어보고
가야 정확하다고 했다. 민족성이 다혈질이라 말이 많고 말을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 했다
맑은 하늘에 흰 구름과 구릉성 산지에 과수원과 초원이 있고 허름한 농가가 보인다.
초원에는 소가 풀을 뜯어 평화롭게 보이고 올리브 밭과 포도밭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풍경화 같다. 이태리어로 먹는 것을 만쏴레(먹는다)라 하는데 먹고 즐기는 문화가 발달했
다고 한다. 이태리 3대 음식이 피자, 스파케티, 이태리정식이라고 한다. 정식은 보통 2-3
시간 먹는데 식전 요리, 정식, 식후 요리로 구분되어 나온다고 했다. 정식에는 와인 1잔이
정석이라고 한다. 이태리는 음주단속은 없지만 음주하고 사고내면 사고의 경중 따지지 않고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결혼식은 오후 5시에서 새벽 1시까지 하며 먹고 마시고 즐긴다고
한다. 하루에 결혼식이 두 집이면 한 집에 가서 먹고 토해내고 또 다른 집으로 가서 먹는다고
한다, 옛날 로마인들은 하루에도 두 번씩 연회를 했는데 연회에 갈 때는 모자에 깃털을 꽂고
갔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잔치에 갈 때는 모자에 깃털을 꽂고 간다고 했다.
이태리 사람들도 한국의 불고기, 갈비, 잡채를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잡채를 꼬레아 스파
게티라며 즐겨 먹는다고 한다. 가이드의 집주인 아저씨는 한국음식을 좋아해 김치를 사다
먹고 한국음식을 해서주면 매우 좋아하고 가끔 해먹기도 한다고 했다. 이태리는 전세는
없고 월세만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매우 좋은 분인데 월세 3일만 밀리면 사람이 달라진다고
했다. 한국인이 보신탕 좋아하듯 이태리인들은 말고기와 송아지 고기를 즐긴다고 한다.
개는 가족이나 같고 개를 고의로 죽이면 3500유로 벌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미국령 쾀에서
는 뱀의 천적이 멧돼지인데 이태리에서는 멧돼지 천적이 들개라고 한다, 들에 가면 개의
천국이라고 한다. 이태리에서 한국인의 천적은 한국인이라고 한다. 외국에서 한국인 등쳐
먹는게 한국인이라고 한다.
① 까따레(노래부르다)의 나라 이태리
선천적으로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나라다. 한국과 같이 반도국가의 특징이 가무를 즐긴다.
이태리 남부지방에 노래가 발전 깐소네(남도창)가 있고 프랑스에는 샹송이 있다고 한다.
나폴리의 방언 노래로 ‘돌아오라 소렌토로’ ‘산타루치아’ 같은 노래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나폴리를 떠나면서 다시 돌아오겠다는 한의 정서를 노래 한 것들이 많다고
한다. 한과 정을 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정서와 갖기 때문에 한국인이 즐겨 부른다고 한다.
한과 정의 노래들이 이태리 남쪽 민요라고 한다. 예전에는 이태리 사람들에게는 죽기 전에
이태리를 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북부의 밀라노 베니스 같은 도시에 밀려 빈민도시
로 바뀌어 가난한 어부나 상공인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이태리의 GNP는 25000불인데
북부 밀라노지역은 35000불이 넘고 남부 나폴리 지역은 2만 불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나폴리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외국으로 떠나면서 나폴리는 슬럼화가 되어 한의 노래 발생지
가 되었다고 한다.
이태리는 날씨 변덕이 심해 게으르고 노는 것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가난해도
자존심이 강하고 다혈질로 성격이 거칠다고 했다. 유학생은 음악의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평균 10년을 유학해서 공부해도 성공하여 돌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동양인이 오페라 주역을 맡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주연 맡은 배우가 급한 용무
가 있을 때 대타로 끼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했다.
② 아모레(사랑)
이태리 사람들은 사랑을 즐기며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이들의 사랑은 정열적이라 뜨겁고
아모레를 하루 100번 이상 표현한다고 한다. 이들은 마음속의 사랑을 속에 담아 두지를
못하고 느낀 대로 표현한다고 했다. 이런 성격이 예술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인생은 사랑 있기 때문 즐겁다고 한다. 이태리인들은 느긋하고 여유가 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빨리 빨리와 대조가 된다.
이태리인들은 여보 당신 대신에 아모레 아모레 하고 부른다고 한다. 부부가 싸울 때는 부수
고 던지고 무섭게 싸우고 5분 뒤면 아모레 아모레를 연발한다고 한다. 이태리인들은 즐기기
위해서 돈을 번다고 한다. 열심히 돈을 모아 휴가철에 다 써버린다. 7,8월 바캉스 때 다 써버
리고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태리인들은 삶이 캐세라 세라(될대로 되라)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산다고 한다. 즐기고 사랑하며 천천히 살아가는 민족이라고 한다.
이태리인들은 자기가 태어난 고장에서 살다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동해서 사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자기가 태어난 고장에서 욕심 부리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간다고 한다.
한국에는 세계 문화유산이 7개(석굴암, 팔만대장경판, 수원성, 종묘 등등)인데 이태리에는
10만개라고 한다.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고 로마도 세계 문화유산 아닌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로마는 하루 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이런 엄청난 유적들은 일주일 관광으로는 다 볼 수가 없다. 로마관광은 수백종류가 있어
뷔페식당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먹는 것과 같다고 했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
수를 제한해 달라는 국민들의 청원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폼페이 유적지는 2000년 전에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도시전체가 화산재로 덮여 2만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1700년경부터 지금까지 발굴하고 있다고 했다. .
고속도로변 푸른 초원에는 많은 건초덩어리가 눈에 띄고 소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는다.
길에는 노란 좌이니라 노란 꽃이 곱게 피었다. 한국의 태백산 같이 등줄기 역할을 하는
아페닌 산맥을 버스는 힘차게 달리고 있다. 박회장님이 노래하신다고 일행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현지가이드가 성악전공이라고 노래하라고 하니 한국에가 공연할 때는 초대하
겠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지금 노래하라고 하는 것은 새벽에 남의 집을 방문해서 문을
두드리면 준비 안 된 주부가 당황하는 것과 같다고 사양하면서 성악가는 목소리가 생명
인데 아껴야 한다면서 성악가는 함부로 노래하지 않는 다고 했다. 독일에서 성악 공부
한다는 가이드와는 대조적이다. 박회장이 가이드 대신 노래한다고 해서 일행이 폭소를
터뜨리니 자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다.
버스가 산속을 달리는데 전철이 고속도로와 같이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 협곡사이를
지나고 분지지대를 지나 버스는 계속 달리고 있다. 여기저기에 관수원도 보인다.
북쪽에는 넓은 평야지대고 남쪽으로 갈수록 험준한 아펜닌 산맥을 타고 달리고 있다.
남쪽으로 내려 갈수록 나무 하나도 없는 민둥산들이 눈에 띄는데 화산지형 바위산이라
나무가 자랄 수 없다고 한다. 바위로 덮인 화산지형에는 우기에 풀들이 푸르다가 건기가
되면 누렇게 시든다고 하는데 산이 온통 누런색이다.
버스가 낮은 구릉성 산지로 빠져 나오니 올리브나무 거목들이 즐비하게 서있어 터키
에게해 근처를 지날 때 보던 모습과 흡사하다. 고속도로 주변에는 울창한 삼나무 숲이
한참 동안 계속되어 나타났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이등변삼각형 모양 측백나무가
운치를 더해준다. 구릉을 달리는 버스의 차창 밖에는 누런 밀밭과 올리브 농장도 보이고
시원하게 야자나무에 가려진 허름한 농가도 보인다. 농촌으로 갈수록 가난의 티가 흐르는
집들이 많이 보인다. 창문도 없고 짓다가 만 집들이 많이 보여 사람이 사는 집이냐고
물으니 집을 완공하고 신고하면 세금이 나오기 때문에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완공이 덜된
상태에서 그대로 산다고 한다. 세금을 내더라도 내 명의로 등기하려는 한국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2) 휴게소에서 휴식
10시 17분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찾아가니 나이든 노인이 있는데 돈을 안 받아 ‘샤오’
‘그라지에’를 연발하고 나왔나. 화장실에는 꼭 돈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유로화장실 팻말이 붙어 있으면 반드시 내야 한다고 했다.
이태리도 유로스타 라는 고속전철이 있는데 15분 배차간격으로 다니는데 연착이 잦다고 한다.
기관사 마음대로라 파업도 하고 연착도 하기가 일수라고 한다.
① <아빠오-성경책에 나오는 말>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가 1000년간 유라시아 전역을 지배하면서 모든 길을 로마로
연결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로마에 연결 되는 길을 알리기 위해 도로변에는 우산 소나무
를 심어 이정표 역할을 하게 했다고 한다. 지금도 로마주변 도로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가로
수가 있다고 했다.
복숭아 밭 매실 농장을 지나니 나폴리 공항이 보인다. 나폴리 주위에는 넓은 평야지대인데
농가는 허름한 집이 많고 세금내지 않기 위해 마무리 정리가 안 된 집들이 많이 보인다.
버스에서 보이는 나폴리는 산비탈에는 작은 집들이 옛날 창신동 판자집같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평지에는 오래된 3-4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나폴리를 조망할 수
있는 고개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데 용달차에 마후라를 가지고와서 남대문 동대문 시장
에서 하던 "골라 골라"를 연발하며 물건을 팔던 기억이 생생하다. 도로위에는 집과 집을 연결
해 빨래 줄을 매고 빨래를 걸어 길 위에서 보면 하늘이 빨래만 보이던 빈민가의 모습이 지금도
그대로 있는지 궁금하다. 3-4층 아파트 지붕위에는 안테나선이 거미줄 같이 엉켜 있다.
이곳에도 우산 소나무들이 가로수나 정원수로 서 있다. 터키의 에게해 근처를 지날 때도
이 우산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자라고 있었다.
나폴리 만 남쪽이 소렌토이고 소렌토 뒤에가 폼페이 가 있고 북쪽으로 나폴리가 있으며
나폴리만 가운데 카프리섬이 있다, 카프리섬은 소렌토에서 배로 20분 나폴리에서 40분
걸린다고 한다. 나폴리 만은 잔잔한 호수 같고 나폴리나 소렌토는 경치가 빼어났다.
(3) 비극의 도시 폼페이
버스에서 내리니 햇빛은 쨍쨍하고 날이 무척 덥다. 자동차와 사람이 범벅이 된 길을 가이드
놓치지 않으려고 등만 보고 따라 갔다. 10년 전에 왔을 때와는 사뭇 외부환경이 달라졌다.
집들도 많아 졌고 관광객도 엄청나게 많다. 옛날에는 귀족들의 휴양지로 각광 받던 곳이라고 한다.
서기 79년 8월 번영하던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도시 전체와
2만 명의 주민이 화산재에 파묻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비운의 도시라고 한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할 거라는 경고를 듣지 않고 머물러 있다가 손써볼 겨를도 없이 화산재와 독가스
로 고대 이집트의 미라와 같이 되었다. 폼페이는 로마제국 도시 중에서 가장 번영하던 도시로
귀족들 사이에 인기 높은 휴양지 였다고 한다.
기원전(BC) 62년에 대지진으로 파괴되어 시민들 힘으로 겨우 재건하여 제 모습을 갖추었는데
141년 만에 다시 화산이 폭발하여 10m의 화산재에 묻혀버렸다고 한다. 화산 폭발 후에 계속
비가 내려 화산재가 응결하면서 도시 전체가 용암 속에 묻혀버렸다고 한다. 폼페이란 도시는
이름과 함께 사람의 기억과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17세기부터 시작된 발굴 작업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발견된 유적과 유물 통해 그 당시
호화로웠던 생활과 문화 예술 건축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유적의 발굴을 통해 드러난 도로,
하수시설, 목욕탕, 시장, 극장, 원형경기장, 음식점, 대장간 귀족 집 등 2000년이 지난 현대와
비교해 뒤질 것이 없는 도시였다. 이곳에는 네로황제 부인이었던 Popaea Sabina의 집이었던
Oplotisrk 있어 일년에 수천만의 관광객이 다녀간다고 했다.
우리일행을 재촉해서 정문 입구를 통해 들어가니 무너진 벽돌집이 길 앞에 나타난다.
목욕하다 미라가된 사람을 목욕탕 볼 때 잘 보라고 한다. 허물어진 벽돌사이에 잡초와 꽃이
피어 무상한 세월을 느끼게 해준다.
11시에 2000년 전 폼페이 시가지로 들어섰다. 우리 일행이 본대로 정리 했다.
① 도로-인도와 수레도가 다니는 도로가 구분되어 있고 도로 군데군데 건널목이 있다.
마차의 폭이 제한되어 있고 바퀴가 닫던 곳이 패여 있다. 도로는 돌로 포장되어 있다.
② 제우스 신전과 광장-대중이모여 연설도하고 상거래도하던 거리 광장과 기둥만
남은 제우스 신전이 멀리 베수비오(여기서 10km) 화산을 굽어보고 있다.
③ 마차 출입금지 표시-신전 입구에서 중심상가 까지 마차통행을 금지한 돌이 길
가운데 놓여 있다.
④ 일반가옥-견고한 벽돌로 지은 2-3개의 좁은 방과 부엌을 갖춘 서민들 집이 있
고 공동 우물터가 있다. 현대가옥보다 방이 좁은 것이 특징이다.
⑤ 홍등가 표시의 신 자국-가장 오래된 직업이 매춘이라고 한다. 매춘할 수 있는
나이를 신발 크기로 구분하여 출입을 시켰다고 한다. 터키의 에페소 유적지에
홍등가 입구에 이런 신발자국이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홍등가를 가보니 동양
에서 팔려와 매춘을 강요당하며 고향이 그리워 벽에 가족사진도 그려보고 고향
이 그리워 글을 쓴 낙서가 벽에 새겨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애절하게 했는데
이번에는 시간에 쫓겨 보지 못하고 가게 되어 아쉽다.
⑥ 상점-좁은 상점에는 작은 방이 하나 딸려 있고 문은 미닫이 문이다.
⑦ 마을 우물터-물이 넘치면 하수구 통해 내려가게 만들었고 잘 보존되어 우리가
어려서 학교 다닐 때 학교 두레박 우물을 생각하게 했다.
⑧ 게시판-동리사람들에게 알리는 게시판은 유리로 되어 있다. 그 때도 유리가 있
었다니 문화 발달을 짐작케 했다.
⑨ 목욕탕-잔디밭에는 수영장이 있고 사각형으로 된 목욕탕에는 대중탕에서
가족탕, 원형의 냉탕 온탕까지 갖추고 있고 옷장까지 마련되어 있다.
벽에는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대중탕에는 목욕하다 미라가 된 두 사람의
미라가 보존되어 있어 애련한 마음으로 보았다.
⑩ 빵집과 맷돌-맷돌은 한국의 맷돌과 비슷했다.
⑪ 골목에 창고와 마차길-골목골목을 마차 길로 연결되어 미로 같기도 하지만 바
둑판처럼 잘 계획된 계획도시라는 인상을 준다.
⑫ 주점 거리와 스탠드바-테이블 앞에 공연장 시설 까지 갖추고 있다.
⑬ 원형 극장-돌계단을 쌓아 만든 원형극장으로 가운데가 무대가 있다 터키 에페
소 유적도시에서 본 극장과 똑같은데 규모가 작다.
⑭ 검투사가 훈련 받던 대광장- 로마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시합을 할 선수를 길
러낸 곳이라고 한다. 지면 죽는 검투사의 모습이 머리에 클로즈업 된다.
⑮ 납골당-나오다 보니 시내가 흐르는 절벽에 유골을 모실만한 크기의 구멍을 뚫
어 납골당을 만들었다.
사람도 많고 시간에 쫓겨 화려한 색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부자 집을 보지 못해 아쉽다.
부자 집에는 본부인과 첩의 방에서 목욕실 방앗간 등 현대 부자 보다 더 호화롭게 살고 있었
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미라 실에는 아이밴 미라의 모습도 어머니가 애를 꼭 껴안은 미라도
있는데 보지 못하고 나와서 아쉽다. 사람 틈에서 사람 때문에 지치고 더위에 지쳤다.
나오다 보니 우산 소나무가 운치 있게 서 있고 유두화가 곱게 피고 선인장들이 자태를 자랑하며
자라고 있다.
(4) 점심
식당에 들어오니 대만원이다. 폼페이 향토 음식인 해물 스파케티와 해물튀김 점심과 가이드가
제공한 피자로 점심을 먹는데 1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 식당에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다.
예약하지 않고는 식사가 곤란 하다고 한다. 날씨는 무더운데 계속 빨리빨리다. 오늘 옵션으로
가는 카프리섬 일정에 맞추느라 모든 일정을 거기에 맞춰 진행되고 있다.
① 카프리섬으로
점심을 재촉해서 먹고 11시 50분에 식당을 나서니 날이 몹시 덥다. 기차를 타기위해 역으로
가는 오르막길에서 노점상들이 ‘물 많이 있어요.’ 외치며 물을 사라고 한다. 한국관광객인
것을 아는 것 같다. 길가 가게에는 오렌지와 여러 종류의 과일 바구니 들을 매달아 놓고 팔고
있다. 사람이 많아 서로 앞뒤사람과 연락을 하며 역으로 달려갔다.
② 기차역
기차역에 도착하니 가이드가 예상시간보다 30분 먼저 기차를 탈 수 있다고 했다.
기차역은 작은 간이역이고 개찰구도 없이 정거장 옆길로 기차 탑승구에 도착했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데 역 앞에는 보라색 나팔꽃이 피어 있고 노송과 삼나무
몇 그루가 서 있고 주위에는 유두화가 피어 있다. 갑자기 떴다 소리가 나서 보니 허름한
월남치마를 입은 아이를 안고 10여세 된 아이를 데리고 집시가 나타났다. 아이를 던지고]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고 지갑을 빼간다고 한다. 사람이 적어서 인지 접근하지 않는다.
가이드가 동전 몇 닢을 주었다.
잠시 후에 5칸을 단 미니 기차가 왔다. 기차에 타고 보니 옛날 서울서 타던 전차 같은데
크기는 전차 반 만 하다. 나무의자에 시대에 뒤진 고물 기차다. 기차는 터널을 지나고
유두화가 피어 있는 주택가를 달리고 있다. 비키니 수영복차림의 뚱보 여학생과 남녀
학생 5-6명이 얼마나 떠드는지 상식이 모자란 중학생 같이 보였다. 박회장님이 꼬레아
라고 일러주니 꼬레아를 외쳐 단다.
길옆에는 폐허가 된 구시가지도 보이고 새로 조성하는 신시가지도 보인다. 길옆 가정집
정원에는 잔디가 깔려 있고 장미가 곱게 피어있다. 배추밭 감자밭도 보이고 야자수가
시원스럽게 서 있는 집도 있다. 산중턱가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도 보인다.
4-5층 자리 아파트 베렌다에는 꽃과 화분으로 장식되어 있는 집들이 많이 보인다.
앞자리에 앉은 여자들도 아이를 데리고 있는데 시끄럽게 떠들어 기차 안은 소란스러웠다.
앞자리에 품위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백인 여성이 못 마땅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다.
긴 터널을 자주 지나는 기차는 3-4분 달린후 역에 섰다. 중간에서 떠들던 학생들도
내리고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가이드가 가지고 있던 신형 삼성 핸드폰을 떠들던 아이들이
바라보고 부러워하며 삼성제품이라고 해서 삼성이 어느 나라에 있느냐고 물으니 일본이라
고 대답했다고 한다.
(5) 환상적인 휴양도시 소렌토
"돌아오라 소렌토로(Come back to Sorrento)" "오! 솔레미오(O Sole Mio)" 등 친숙한 가곡들
의 고향이다. 쪽빛 푸른 바다와 오렌지 숲으로 쌓인 소렌토는 평화와 낭만의 천국이다.
별장 같은 집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잘 지은 집안에는 귤 오렌지가 탐스럽게 열려 있고
시원한 야자수도 팔을 벌리고 서 있다. 방갈로 같은 집도 보이고 저택들도 보인다. 바다를
끼고 층암절벽 위에 자연과 인공이 조화된 집들을 감상하며 한참을 가니 우리가 내릴
소렌토 역에 도착했다. 나폴리만을 안고 층암절벽 위에 있는 이 아름다운 도시가 소렌토
라고 한다. 12시 50분 소렌토 역에서 내려 버스로 좁고 복잡한 소렌토 시내를 빠져나왔다.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오토바위를 타고 가는 사람에 자동차 행렬 시민들이
짜증이 날 것 같다. 시내 좁은 도로가에는 빽빽한 집들이 숨이 막히게 들어서 있는데 곳곳에
거목들이 운치 있게 서있고 쪽빛 지중해가 감싸 안고 있어 풍치가 매우 아름답다. 주택에는
자몽, 귤, 오렌지와 이름모를 과일들이 많이 열려 있는 모습이 정겹다. 조그만 시장 골목 같은
거리에는 가게들이 있고 노점상들도 보인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는데 베렌다에는 갖가지 꽃과
화분으로 장식되어 있다. 버스가 시내 골목을 누비며 내려오는데 호프집 노점에는 야자수 그늘
아래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1시에 항구에 도작했다.
① 항구에서 본 절경 소렌토
글로 표현하기는 힘든 절경이다. 쪽빛 바다에 수천 길 낭떠러지 절벽위에 날아갈 듯 지어진
호텔과 별장과 저택들이 그림같이 보였다. 바다 가에는 벌써 수영을 하고 해수욕장 준비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절벽 군데군데 이름모를 꽃들이 피어 있고 절벽 위에 운치를 자랑하는
우산 소나무와 바닷가 주변에 시원한 가지 늘어뜨린 야자수는 이국의 정취에 흠뻑 빠지게 했다.
이곳에서 승선할 시간까지 30분 여유가 있어 이곳 저곳을 구경했다. 해변가에서 수영도하고
운동도하는 아이들과 가족들도 보인다. 절벽위에 빅토리아호텔이라는 호텔이 보이는데 역사
가 깊은 최고급 호텔이라고 한다. 항구에는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오토바이 수백
대가 주차장에 세워져 있다. 아름다운 소렌토를 뒤로하고 카프리섬으로 가는 배에 승선했다.
② 환상의 카프리섬으로
1시 40분배에 승선을 했다 1시 45분 배가 소렌토 항을 출발하는데 배에서 본 소렌토는 더욱
환상적이다. 모두 멀어져 가는 환상적인 소렌토를 바라보고 있다. 층암절벽위에 호텔, 별장,
저택들이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그림 같다. 2층으로 된 페리는 4-500명 쯤
태우고 물위를 날고 있어 요동이 매우 심했다. 배가 카프리섬에 도착하기 5분전부터 사람들이
출입구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강부신부회장이 외국인 앞으로 나오며 빨리 빨리 하니 외국인이
따라서 빨리빨리 따라 해서 한바탕 웃었다. 여러 카페리가 같은 시간에 도착해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내려 사람에 밀려 항구의 모습을 스케치 할 겨를도 없이 버스정류장까지 밀려왔다.
(6) 지상낙원 카프리섬
우리 팀이 빨리 잘 따라와서 먼저 버스를 타고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2대의 미니버스로
나누어 타고 리프트를 타는 곳까지 가는데 카프리섬에서 바라본 지중해와 나폴이, 소렌토
모두 환상적이다. 카프리섬은 하얀 집과 푸른 숲과 갖가지 꽃과 쪽빛 바다 만들어낸 교향곡
이라고나 할까!!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말하고 싶다.
카프리란 흰 바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꼬불꼬불한 산길은 겨우 차가 두 대 피해 다닐 수
있는 길인데 기사는 버스를 급하게 몰아댄다. 백두산 천지에 올라가는 길과 비슷하다.
버스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환상적이지만 마지막 한고비 수천 길 낭떠러지 위를 아슬아슬
하게 달릴 때는 몸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오싹함을 느끼고 버스 안에서 "아 ~"
하는 환성이 나왔다.
가슴을 조이며 3-4여분을 오르니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선물가게도 있고 음식점도 있다.
리프트는 1인용이라 고공 공포증이 있는 우리 일행 몇 사람은 매우 두려워한다. 산에는
온통 좌이니라 꽃이 덮여 노란 옷을 입은 것 같고 산전체가 향기로 가득 차 있다. 산중턱
에는 모두 흰색의 집들이 수백 채 모여 있어 쪽빛 바다와 흰색 집과 노란 좌이니라와
푸른 숲이 조화를 이루어낸 환상의 섬이다. 리프트를 타고 정상에 오르는데 리프트는
수목사이를 오르고 있다. 뒤 리프트에 강부신부회장이 타고 있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노란색 좌이니라가 흰 바위 푸른 숲과 조화를 이루어 더 아름답다. 흰색바위 흰색의 집과
푸른 하늘과 초록의 숲과 쪽빛 바다와 흰갈매기 떼 들이 만들어낸 유토피아였다.
시드니의 붉은 지붕과 푸른 숲과 쪽빛 바다가 만들어낸 색의 조화도 이곳을 모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산 정상 밑에까지 별장 같은 집들이 있는데 농사를 짓는 집도 보인다.
밤나무 꽃이 피고 있고 집에는 포도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다. 정원에는 여러 가지
꽃이 피어 있고 연못에는 금붕어들이 놀고 있다.
지중해가 작은 바다로 생각했는데 끝없이 넓다. 쪽빛 바다에 서너척 배가 가물가물 떠가는
모습이 평화롭다. 600m 정상에서 리프트를 내리니 내 명찰을 보고 리프트 관리인이
이계성이라고 이름을 불러 준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쪽빛 바다는 너무 맑아 바다 속이
다 들여다 보인다,
하와이에서 물 속에 노는 물고기가 다 보이던 바로 그런 바다다. 모두 "야 ~"하고 환성을
지른다. 바다 밑에까지 흰 바위가 깔려 바다의 색깔이 쪽빛에서 부터 흰색까지 여러가지
색깔이 나타났다. 정상에는 고원 같은 넓은 평지가 있는데 화단에는 선인장 서광, 유두화가
피어 있고 측백나무가 몇 그루 서있다. 산 정상까지 좌이리나 꽃향기가 가득하다.
모두들 아름다운 경치를 담아가려고 셔터를 눌러 댄다.
쪽빛 바다위에 떠있는 백색의 카프리 섬은 나폴리만을 안고 북쪽에는 나폴리, 남쪽에는
소렌토와 삼각의 환상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정상을 한바퀴 돌아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의 극치라 할 만하다. 눈이 부신 푸른 하늘, 쪽빛 바다, 녹색의 숲,
노란 좌이니라로 덮인 산, 하얀 집, 유리보다 더 맑은 바다를 떠가는 배, 흰 갈매기와 흰 바위
섬 인공과 자연이 조화된 낙원이다. 우리가 염원하던 낙원 에덴동산이나 무릉도원이 여기보다
더 아름다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섬에 있는 그림 같은 하얀 집들을 보면서 이 집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생각했다. 여기에서 살면 늙지 않을 것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에 쫓겨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오는데 리프트 안내하는 아저씨가 또 내 이름을 부르며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고마워요 한다, 이곳에 까지 많은 한국 관광객이 오고 있는 것 같다.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다 보니 작은 집 채마밭에서 강낭콩, 완두콩, 옥수수, 감자들이 자라고
있어 문득 한국 농촌에 온 환상에 빠졌다. 집은 작지만 낭만 속에 사는 사람들 같다.
집주위에는 무화과나무, 호두나무도 있고 열매가 까맣게 열린 체리나무도 보인다. 울안에는
개와 고양이가 정겹게 낮잠을 자고 있다. 참새소리와 개짓는 소리가 자연과 조화되어 교향곡
같이 들린다. 작은 집 앞에 60년대 한국에 돌아다니던 삼륜차가 서 있다. 작은 집에서 가장
많은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 같다. 욕심 없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작은 집이 낙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3시51분 버스로 갈아타고 선착장으로 내려 왔다. 선착장에서 잠시 맑은 바닷물에 손을 담갔다.
바닷가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즐기고 있다. 돌도 던지고 거닐기도 하면서 10여분 휴식을 하고
카페리에 올랐다. 늦게 타는 바람에 자리가 없어 외국인 부부가 탄 옆에 앉았다.
잠시 박과장님과 내일 일정에 대해서 논의 했다.
4시 30분 환상의 섬 가프리를 출발해 나폴리로 향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서있는 관광객이
많았는데 한국관광객이라 젊은이들은 자리를 양보하고 섰다. 갈 때는 모두 기쁨에 차 있었는데
올 때는 피곤에 지쳐 모두 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아 조용하다. 배를 타니 소나기가 퍼부었다.
다행이다. 5시 26분 나폴리에 도착하니 세계 3대 미항의 자취는 찾을 길 없이 쇠퇴해가는 구식
항구로 변해가고 있다.
(7) 나폴리
나폴리는 배에서 내려 버스정류장 까지 가면서 느끼고 지나가는 관광이었다. 나폴리를 한번
돌아보았으면 하는 바램이 무산되었다. 신시가지라는 신 항구에만 고층 건물과 물류 센터가
있을 뿐이고 조금만 들어가면 빈민가에 강력범죄가 설치고 뉴욕 할램가 같은 모습이라고 한다.
수십만 톤의 호화여객선 빅토이라호가 정방해 있다. 나폴리에서 고속도로로 나오는 길옆에는
고색창연한 집들이 보인다. 죽기 전에 한번 꼭 가봐야 한다던 나폴리가 갈려면 너 혼자나 가보
라는 도시로 변했고 나폴리에서 산다고 신분을 밝히기를 꺼려한다고 한다.
"창공에 빛난 별 바다에 떠 있다."고 노래한 미항이 빈민들이 모여 사는 추한 도시로 변했다고
한다. 길에 500cc 작은 자동차가 지나간다. 이태리는 이런 차가 종종 있는데 한국에 가지고
가면 자동차로 등록이 안 된다고 한다. 가이드도 피곤한지 고속도로에 들어오니 영화감상
하라고 유명한 이태리 감독이 자기 부인을 주연으로 내세워 만들었다는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영화를 비디오로 틀어 주었다.
① 로마로
5시 46분 비가 내리더니 개였다. 길에는 우산 소나무가 가로수로 서 있다. 서 있는 모습이
운치 있게 보인다. 수관이 배어난 특이 종이다. 6시 36분 고속도로 달리는 버스 안은 깊은
잠에 빠져 있고 몇 사람만 비디오를 보고 있다. 비를 맞은 신록이 한껏 푸른빛을 자랑한다.
숲 속의 허름한 농가들은 가난해 보이지만 평화로웠다. 검은 구름 사이로 가끔 햇빛이 쏟아
진다. 6시 50분에 길이 막혀 자동차 들이 꼼짝을 않는다. 주말을 즐기고 로마로 들어가는
사람들 때문인지 사고가 났는지 알 수가 없다. 얼마를 지나니 막혔던 길이 풀려 버스가
힘차게 달린다.
내일 우리가 보게 될 로마 유적은 기원전 753년에 로마시대가 시작되어 1200년간 지켜온
곳이라고 한다. 7개 언덕 중의 하나인 팔라마 언덕에 에투루스키 족이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고 살았는데 라틴족(로마인)들이 에투스키족의 식민지로 살도록 허락 받았다고
한다. 라틴족은 점차 힘을 키워 기원전 509년에 독립하고 에투스키족을 몰아냈다고 한다.
그 때부터 공화정치를 시작해서 국민대표를 귀족 중에서 2명 선출 하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2명의 집정관을 뽑았다고 한다. 집정관을 감시할 원로원(국회) 300인을 귀족 중에서
뽑았다. 평민들의 불만으로 반란이 일어나 귀족들이 평민들은 로마를 떠나라고 했다.
평민들은 대표 2명(호민관)을 뽑고 평민회의를 조직해서 공화정시대를 열었다.
모든 일은 로마로 통한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전쟁위해 로마에서 사방으로 많은
길을 만들어 길이가 8500km에 달했다고 한다. 로마는 길로 정복하고 길로 망했다고 한다.
기원 146년 카타고와 포에니 전쟁을 벌여 로마가 승리하면서부터 적의 것도 수용하는
로마식 개혁을 단행했다고 한다. 2차 포에니 전쟁 때에는 카타고의 카니발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코끼리를 타고 "아무도 알프스를 넘지 못했지만 나는 넘을 수 있다."며 알프스를
넘었다. 로마가 풍전등화에 처해 있을 때 로마의 시저는 카타고에서 도망 나온 자들로
카니발 장군의 후방을 역공하게 하여 승리한 로마의 최고 실력자가 되었다.
카니발 장군의 승리는 책략가 시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저는 유명한 전략가,
웅변가, 정치가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한편 시저의 인기에
놀란 원로원에서는 시저의 작위를 박탈하고 군인들의 무장해제를 위해 루비콘 강을
건너라고 했다. 군대가 루비콘 강을 건너려고 무장해제를 하려 할 때 시저가 군사를 향해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군사들을 회군하여 원로원을 해산했다. 로마에 입성한 시저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믿는 부하에게 암살당했
는데 마지막에 "부르투스 너 마저"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시저가 죽은 후 그의 측근 안토니우스가 정권을 잡았는데,원정 중에 만난 클레오파트라
에게 빠져 로마까지 바치려 했다고 한다. 옥타비아누스가 클레오파트라를 물리치고
안토니우스를 쫓아내고 실권을 장악했다고 한다. 실권을 쥔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
티누스 초대 황제가 되어 공화정이 끝나고 제정시대가 되었다.
이 황제 때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예수의 탄생으로 BC(기원전)에서 AD(기원후) 시대로
바뀌었다. 전성기는 트라이누스 황제 때이고 5현제 때 태평성대를 누렸는데 명상록을 쓴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5현제 중의 하나라고 한다. 유럽 영토 대부분과 서남아시아
까지 영토가 확장 되었으나 인재 양성에 실패하여 북방 게르마니아 민족의 대 이동 때
멸망했다. 서기 476년에 1200년의 로마 역사가 막을 내리고 1000년간 중세 신의 세계가
열리게 되었다고 한다.
(8) 저녁-8시 10분
어제 저녁 먹었던 초원의 집이라는 한글 간판이 붙어 있는 한국인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었다.
된장찌개와 불고기가 입에 맞았다. 상추가 나오는데 한국의 배추 겉잎처럼 억센데 맛은 있었다.
오늘도 올리브기름과 올리브비누를 팔고 있는데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
8시 50분 음식점을 출발해서 호텔로 돌아왔다. 밥 인심은 좋은데 물 인심은 나쁘다.
제공된 물 외에는 더 주지 않는다. 밥 인심보다 물 인심이 후해야 생활이 편할 것 같다.
(9) 호텔도착
11시 30분 호텔에 도착했다. 너무 피곤해 샤워하고 자리에 누었는데 강부회장이 오늘
일요일이라 천주교 신자 모임을 갖고 있는데 같이 참여하자고 하는데 너무 피곤해 사양했다.
박회장은 술 한 잔 하시고 싶어 강부신부회장을 오라고 했는데 모임을 갖는다고 하니 혼자
맥주 한잔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같이 대작을 못해드려 죄송했다. 건강위해 취침과 기상시간
을 지키려다 보니 인색한 사람 같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