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돌 산행) 2004. 3/27(토)
“시간 됐어요!” 동백이의 다구 침에 눈을 뜨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이불로 머리를 감싸고
“5분만 더”를 중얼거리며 다시 잠에 빠진다. 5분이 30분이 되어 만보 분주 할 수밖에 없다.
머리감는 것은 모자를 쓰면 되고, 산행 후 목욕이 있으니 고양이 세수다.
아침은 우유에 탄 미숫가루로….
아침 일찍 일어나 동백이가 정성껏 준비해준 도시락을 배낭에 넣어 둘러매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용하다 싶던 동백이 왈, “봉섭씨네서 자고 아침 일찍 버스 타고 오지, 심야 택시비가 얼마나 비싼데….”
15,000원 분명 작은 돈이 아니지만 행여 만보 산에 가는데 차질을 빚을까봐 어쩔 수 없었다.
동백이와 함께 가면 참! 좋겠는데…. 아직 완전치 않아 혼자 나서는 마음이 좀 아쉽지만, 다음을 그릴 수
있어 행복한 마음으로 목적지로 향한다.
약속장소인 이북5도청 가는 길목 좌판에는 등산할 때 필요한 갖가지 물건들이 가득하다.
식사 할 때 필요한 돗자리(6인용)를 6,000원을 주고 산다. 선배(송기용) 한분이 도맡아 가지고
오시는데 후배로서 미안도 했지만, 얇고 부피가 작아 배낭 속에 쏙 넣을 수 있어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었다.
만남의 시간 20분전 약속장소에는 벌써 일구 형이 형수와 다정히 서있다. 만보가 돗자리
자랑을 하자 일구 형 또한 필요하다고 하여 다시 빽 이다. 일구 형 돗자리와 등산용 접이
의자(1인용)를 사는 것을 보고 견물생심의 꿈틀거림에 만보 또한 의자(4,000원)와
여름용 모자(9,000원)까지 산다. 없어도 그만인 물건인데 암튼
일구형 안내하며 13,000냥 그냥 날아갔다.
모두 모인 일행(12명)을 확인한 회장님(김형두)의 인솔로 오전 10시에 비봉을 향한 산행은 시작된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비봉 매표소에서 아주 확실한 관리인 아저씨의 검문에 일흔을 훌쩍 넘기신
옥영태 선배님도 검문을 받았다. 젊게 봐주시는 아저씨의 배려?(직업정신)에 선배님은 기운을 내신다.
만보 또한 속으로 ‘홧팅!’을 외치며 박수를 보낸다.
싱그러운 봄바람을 맞으며 오르는 산길은 피곤에 찌들어 천근만근 무겁던 만보의 모든
것을 이미 빼앗아 버렸다. 어제 친구들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적당한 핑계를 대고 땡땡이
치려고 했던 것을 떠올리며 웃어본다. “그래~ 오길 잘 했어! 이렇게 좋은 것을….”
산행시작 10분도 채 안되어 앉기 좋은 바위와 적당히 넓은 곳이 눈에 띠어
1차 휴식을 갖는다.
이건 흰돌 산행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아닐까? 연로하신 옥 선배님을 위한
마음과 모처럼 3명의 형수(강일구, 김용완, 송우용)들이 참석하여 회장님(김형두)이
특별보너스를 주신 것 같다.
춘분을 지난 3월의 끝자락을 잡아 상춘을 느끼고 즐기려는 많은 사람들이 인간 띠를
이루듯 질서정연하게 일렬로 걸어 올라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비봉 오르는 좌측 건너편 향로봉 또한 군데군데 많은 사람들이 물오른 녹색 바탕에
알록달록 화려하게 띠를 형성하고 있다. 산에 한두 번 온 것도 아닌데 시골서 막 올라온
촌 사람처럼 이리저리 둘러보며, 새순이 돋고 봄바람 살랑살랑 거리는
북한산의 정겨운 맛에 흠뻑 젖는다.
그리 오래 걷지 않아 비봉정상 0.8km라는 팻말이 있는 곳, 포금정사터 근처에 일구 형이
준비해온 묘목을 꺼내놓는다. 일구 형이 햇살 잘 드는 곳을 선정하여 적당한 깊이의
땅을 파 놓은 곳에 만보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심었다.
세상에~ 난생처음 만보가 나무를 심었다. 그것도 기네스북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
(연평균 500만명)으로 기록되어 있는 ‘북한산’에 단풍나무를 심은 것이다. 회장님은 근처
약수터에서 물을 떠와 어린 묘목(7주)들에게 촉촉이 적셔주며 사랑을 주신다.
따스한 봄날 식목일(83년)에 결혼식을 올린 만보는 나무대신 엉뚱한 것을 심어 내심 미안
했었는데, 오늘 진정한 마음으로 나무를 심으며 스스로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일구 형 고마워여….
30년 전통에 빛나는 흰돌모임 선배님들 감사해요. ㅠㅠ^^
어린 묘목을 뒤로하고 감정에 취해 오르는 오른편 산자락 바위에는 웬 물개한마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육체 정신 건장한 대~한민국 남자들이 모인 군대에서 싫든 좋든 “물개X” 짝짝….하며 구보를 해 봤을 것이다.
물개거시기(해구신)가 진짜 강정제인지... 내는 모른다. 몬 먹어 봐서….
쉬엄쉬엄 산보 같은 산행을 하며…. 비봉과 사모바위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화백(화려한 백수)선배님들이
닦아 놓은 명당, 평편한 쉼터에 이르고 보니 정오가 안 된 11:30, 점심을 먹기가 일러 자유시간을 갖고,
선배(송기용)님 돗자리와 만보가 새로 산 돗자리를 펼쳐 야외 밥상을 만드니 12명 모두가 삥 둘러앉을 수
있었다. 아니! 11명이었다. 분명 출발 할 때 인원파악은 12명이었는데….
비봉
사모바위 일명 김신조바위라고도...
우리의 ‘흰돌’ 홈피 관리자이며 디카 찍싸 행식(신현식)이 엉아가 “행식이 없다”하는 것이다.
어데로 갔노~ 홈피에 올릴 비봉과 사모바위를 디카에 담으며 그만…. 쯧쯔….
문명의 발달 핸폰의 위력에 금방 연락이 되어 찾아온 행식이 엉아 멋쩍어 하며
만보가 따라주는 술잔부터 받는다.
계획대로라면 비봉 - 승가봉 - 대남문 - 대성암 - 산성계곡 - 구파발을 거치는 산행인데,
옥 선배님을 배려하는 회장님의 마음으로 현재의 위치에서 진관사 계곡으로 하산 길 수정하고 출발이다.
진관사 계곡 상류에 이르러 좌측 건너편 이름 없는 암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에 우리는 묘목(모과나무 1, 단풍나무 3)을 또 심었다.
이름이 붙어 있을 것 같은 건너편 바위를 보고 만보는 물어본다.
“회장님 저 바위 이름이….” “저건 이름 없는 바윈데, 오늘부터 만보바위라고 하지 뭐….”
인심 과하게 쓰셨다. 우리의 흰돌 회장님이 만보바위라면 ‘만보바위’인 것이다.
암튼 우리의 흰돌 막내 ~만보~ 기분 째져 하산 길 ‘룰루랄라’ 콧노래 나온다.
진관사 계곡의 암봉(만보 바위)
진관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넓게 자리 잡은 계곡이 눈에 들어오니 낮이 익어 반갑다.
작년 가을 산행 때 국적불명 외국인과 @#$%^& 얘기를 하던 선배님(송기용)이 생각나서다.
변함없는 계곡에는 봄을 알리는 축제를 하듯 신비하기만 한 자연을 벗 삼아 흐르는
물소리가 멋진 하모니를 이뤄 한층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3월의 계곡물에 발을 살짝
담금에... 금방 차가움이 전해져 살을 애이듯 한다. 선배들이 망중한을 즐기는 바로 옆
고인 물에는 알에서 갓 깨어난 올챙이 떼가 생명력의 신비를 보여주고 있다.
결코 올챙잇적 생각 못하는 개구리가 되지를 말자!
초보 산꾼의 길로 들어선 나는 자연을 벗 삼아 항상 겸손한 만보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근처 명당자리를 골라 일구 형이 파 놓은 곳에 남은 묘목(모과나무 9주)을 심고 흐뭇해하는 만보!
그냥 즐거울 뿐이다.
그 어느 산행보다 뜻있었고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 ~ 만보바위~ 홧팅!!!
옥영태 선배님(정면 중앙 지팡이)
추신 :
옥영태 선배님은 일흔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불구하시고, 이번 산행을 함께 하며 정을 쌓을 수 있어서
넘~ 좋았다. 5년 전 ‘위암’ 수술로 1/3의 위를 절제하고, 얼마 되지 않아 ‘뇌혈전’ 수술을 두 번에 걸쳐
받으시고도 정정하신 선배님의 힘!은 ‘흰돌’ 역사 30년을 같이하면서 산에 오르며 자연을 벗 삼아 쌓은
건강한 육체와 정신 이었다고 생각한다.
옥! 영! 태! 선배님 홧팅!입니다. ‘흰돌’ 선배님들!! 홧팅!!! 입니다.
산을 오르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오로지 정상만을 목표로 하여 묵묵히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들과 과자를 먹으면서
떠들고 즐기며 오르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나는 오로지 산 자체만을 위해
산을 오르지는 않는다.
- 엔도 슈사쿠의 《회상》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