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클럽, 척 팔라닉, 책세상.
글세요, 소설가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두 가지가 있다면 뭐겠습니까? 하나는 여행이고 두 번째는 영화가 아닐까요? 실제로 저는 이 두 가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신혼 초에 아내와 시내에 놀러 갔다가 영화를 한편 봤는데, <파이트 클럽>이었습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무척 놀랐습니다. 정말 재미있었고, 특히 영화를 볼 때마다 스토리에 의문을 가지곤 했는데, 이 영화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마치 저에게는 옛날 벤허같은 대작을 볼 때처럼 사건과 대사가 아주 적절하게 조응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폐점하는 비디어 가게에 가서 영화 <파이트 클럽> 테잎을 사기도 했지요. 영화의 감독은 이전에 <세븐>으로 유명해진 데이빗 핀처 감독이라고 해서 <세븐>도 구해서 봤지요. 그런데 세븐은 전혀 좋은 영화가 아니어서 당황했습니다.
하여간 <파이트 클럽>의 기막힌 감동 때문에 내친 김에 원작소설도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를 소개해보려고 하는데, 구체적인 이력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소설차제의 파격성처럼 작가도 어둠에 싸여있는 듯합니다.
겨우 책에서 소개된 것으로 대신하자면, 척 팔라닉은 기차의 엔진 수리공이었다고 합니다. ‘화요일 밤 작가 워크숍’이란 모임에서 습작을 하고 발표를 한 것 같습니다. 파이트 클럽 외에 <질식> <서바이버> <다이어리>등이 현재 번역되어있습니다. 그는 첫 번째 소설이 너무 파격적이서 출판업자들로부터 거부를 당하자 보란듯이 좀더 충격적으로 글쓰기를 했다는 겁니다.
소설 <파이트 클럽>은 책의 제목처럼, 영화에서 보여지듯이, 정말 파격적입니다. 신랄한 조롱과 냉소적인 시선, 핏빛 어린 남자의 육체가 소설과 영화 속에 득실거립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자동차 회사의 리콜 심사관입니다. “리콜”이라는 직업 차제가 어떤 문제를 환기시키지요? 맞습니다. 그는 집요한 가구 수집벽을 가지고 있고, 역시나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그는 일 때문에 매일이다시피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갑니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 생각에 젖어듭니다.
“나는 비행기가 난기류에 휘말려들기를 기도한다. 펠리컨 따위가 터빈에 빨려들어가기를, 볼트가 풀리거나 날개에 얼음이 들러붙기를, 활주로를 박차고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보조날개가 위로 꺽이고, 시트에 앉은 승객들은 바씩 긴장에 떨기를, 활주로의 끝이 빠른 속도로 휘어지고, 나는 여전히 비행기가 그대로 추락해버리길 간절히 기도한다. ....”
나는 어느날 비행기에서 타일러라는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타일러는 호텔 웨이터이지만 한눈에 “나”의 파괴적인 심리를 가진 자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두 사람이 동질의 인물인 거지요. 그날 내가 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자 우연하게 집에 불이 났고 나는 임시 거처할 곳을 위해, 타일러를 찾아가게 갑니다. 다시 만난 타일러는, 나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나를 때려줘.” 때려줘!!.
내가 놀라워하자 타일러가 나에게 주먹을 날립니다. 이로써 자학적이고 파괴적인 타일러와 함께 나는 파이트클럽을 결성합니다. 서로 싸움을 하고 세상을 경멸하고 파괴를 꿈꾸고 또 실현하는 공동체를 만든 거지요.
소설 <파이트 클럽>은, 작가가 엔진 수리공답게 전통 소설을 완전히 분해해서 뜯어고쳐놓은 소설입니다. 시제의 빈번한 이동, 불규칙하게 바뀌는 행간, 갑작스러운 대화. 단 한줄의 단락... 이런 것들이 가득 차있어서 글이 쉽게 읽히지가 않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불규칙한 행간과 시제의 빈번한 이동이, 권투선수의 날렵한 <잽>과 <풋웍>처럼 어떤 리듬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페이지를 넘기면 일종의 독서법이 생깁니다. 이른 측면에서 이 소설은 독자에게 특별한 책읽기의 체험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파괴적인 욕망을 다룬 이야기인 만큼 좌충우돌하는 소설의 기법도 한번 눈여겨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첫댓글 투쟁(부정)은 엄청난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지만 평화는 에너지가 없어 소멸한다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상기됩니다.
실패자가 아닌 경우에도 저런 '파이트'에 대한 욕망이 생길까요?? 어떤 유형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근본욕망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