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고용허가제 도입에 앞서 국내 체류 4년 이상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강제출국' 방침이 정해진 후 합법·불법 이주노동자들을 가리지 않고 인권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KNCC 대구인권위원회·성서공당노동조합·민주노동당 대구시지 등 지역 13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7일 오전 11시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발생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사례를 고발했다.
대국외국인노동상담소 등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발한 인권피해 사례에는 '강제출국' 조처 이후인 지난 12월경 발생한 사건으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업주 등의 인종차별·폭행·체벌 그리고 성폭행 행위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단체들은 '스리랑카에서 온 산업연수생인 두 여성의 경우 사장이 검은 피부색을 희게 해주겠다면서 뜨거운 물로 손을 씻기고 철수세미로 문질러 상처를 입히는 사례가 있었다'면서 '이를 항의하면서 본국에 알린 두 여성 이주노동자에게 일주일 동안 무릎으로 기어다니게 하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장갑도 없이 공장 바닥의 물청소를 시키는 등 체벌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또 '동작이 굼뜬다는 이유로 스리랑카 산업연수생을 회사 직원이 발로 가슴과 배를 때리고 각목으로 폭행하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이를 항의해 피신한 산업연수생을 회사측은 오히려 도둑이라고 몰아세웠다'고 밝혔다.
성폭행 사례도 있었다. 이들은 '베트남 여성의 경우에는 회사 상사가 밤 늦게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가슴을 수차례 만지고 이를 거부하는 여성 이주노동자의 뺨을 때리는 등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고 인권침해 사례로 들었다.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 김경태 대표는 '지난해 11월부터 불법 체류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추방 결정이 나온 이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와 폭행 등의 사건이 과거에 비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면서 '강제추방 방침이 정해진 이후 불법이든 합법이든 모든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범법자라는 사회적인 인식이 퍼지면서 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서공단노동조합 김헌주 이주사업부장도 '최근 들어 현장 사업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지불해야할 임금을 체불하는 사례가 심각해지고 있다'면서 '합법 체류자들에게도 회사측이 '강제송환'을 빌미로 임금을 3~4개월씩 체불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은 또 '회사를 옮기거나 그만두게 되면 보름 이내에 강제출국해야 하는 현실에서 회사측의 임금체불이나 인권침해 등에 대해서 항의하지 못한 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피해를 감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들 단체들은 인권침해 사례가 드러난 회사에 대해서는 2차 피해가 없도록 피해 이주노동자들을 즉각 다른 업체로 옮길 수 있도록 촉구했다. 또 노동부는 사업장 내 인종 차별과 폭행, 성희롱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근로감독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강제추방 방침을 즉각 중단하고 모든 이주노동자들을 전면 합법화하라고 거듭 주장했다.
다음은 17일 대구외국인상담소 등이 공개한 인권침해 사례들이다.
[사례1] 인권피해 본국에 알렸다고 '무릎으로 기어라'
스리랑카에서 지난해 11월 입국한 산업연수생 구마리(33·여)와 닐란띠(32·여)씨는 12월 23일부터 달성군 논공공단의 한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여성 이주노동자는 두려움에 떨다 회사를 뛰쳐나왔다.
이들에 따르면 회사 사장이 피부색이 검은 것을 희게 해주겠다며 여성 이주노동자의 손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는 철수세미로 빡빡 문질렀다고 한다. 또 작업 시간에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
결국 이 사실을 본국에 보고한 후 두 이주노동자는 사장의 '체벌'에 시달려야 했다. 사장은 추운 겨울에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공장 바닥을 물청소하게 했고, 무릎으로 땅바닥을 기어다니게 해고 한국인 직원들은 이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7일간 계속된 체벌로 팔과 다리에는 상처가 났다. 사장은 작업은 시키지 않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쳤다.
[사례2] 회사간부, 동작 늦다고 각목으로 폭행
영천에 있는 한 사출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산업연수생 닥살라(28·남)씨는 지난해 12월 6일 작업복을 빨리 입지 않는다는 이유로 회사 상관에게서 발로 가슴과 배를 걷어차이는 폭행을 당했다. 거기다 각목으로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구타 후 닥살라씨는 피를 토하고 음식물을 토해내야 했다.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했지만 회사측은 묵살했다. 결국 이주노동자 상담소로 피신한 닥살라씨는 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해 회사측의 책임을 물었지만 오히려 회사측은 닥살라씨가 회사의 물건을 훔쳤다고 뒤집어 씌웠다.
우여곡절끝에 회사측을 형사고발한 후 합의가 이뤄져 합의금과 미지급된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와 관리업체는 닥살라씨의 회사교체 요구에는 불응하고 현재는 언제 본국으로 강제송환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사례3] 여성에게 상습적으로 가슴 만지고 폭행까지
뒤에팡(26·여)씨는 한국에서 일한 지 3년이 넘어 지난해 11월 고향인 베트남으로 돌아갔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취업자격을 따낸 여성이다. 지난해 12월말부터 뒤에팡씨가 다니는 회사에 새로 온 한국인 상사가 그를 폭행했다.
관련단체들이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나이 50이 넘은 이 한국인 직원은 밤 늦게 홀로 일하는 뒤에팡씨의 뒤로 와서 3차례 이상 가슴을 만지고 이를 거부하는 뒤에팡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뒤에팡은 그나마 잘 대해주는 이 회사 사장을 떠나기가 싫어 이런 일을 당하고도 참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