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휴양지 Bali (6일째)
방살부두에 도착한 우리는 3시에 버스를 탄다. 꼬불꼬불한 지대 높은 밀림을 달린다. 원숭이가 무리지어 길 위에서 Sun burn하면서 간식을 즐기고 있다. 롬복의 번화가를 지나 그 유명한 쌩기기 비치에 도착하였다. 롬복 최고의 해변이라고 하는데도 워낙 깨끗하고 한적한 길리에서 잘 놀았던 탓인지 우리 모두는 시큰둥하다. 조금쯤은 지치기도 했었나보다.
쌩기기 비치에는 조잡한 재래식 상점들이 쭉 늘어서 있었고, 싸구려 바틱을 사라고 아우성치는 장사꾼, Tatoo 깃발을 걸어놓고 문신을 하는 사람들, 배구를 하는 청소년들까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특이한 것은 비치의자에 드러누워 폼 나게 즐기는 백인들에 비해, 원주민들은 하나 같이 매트를 깔고 쉬고 있었다. 백사장조차도 펜스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7시 30분 마타람 공항 도착, Muck Sin이 건네주는 전통 목각 탈을 선물로 받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8시 10분 발리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발리에는 순수하고 영리한 Muck sin과는 또 다른, 나훈아 느낌이 드는 잘 생기고 능글맞은 마데氏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사람인데도 한국말을 노랫가락처럼 구성지게 쏟아놓는데 품앗이며 고도리며 모르는 것이 없었다. 마데는 키만 큰 것이 아니라 눈도 크고 손도 크고 발도 크고 목소리도 컸다. 인도네시아 전통복장을 입은 그는 털털하여 시도 때도 없이 발리와 자기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쏟아 부었다.
자기는 닭싸움을 좋아하며, 마눌님이 자기 지갑을 점검하기 때문에 돈내기에 지면 친구에게 돈을 빌려 도로 채워 집에 들어간다는 등…전통복장이 몹시 덥다면서 사롱을 들썩 들어올리기도 했다.
발리에서 우리들이 묵은 곳은 룸메가 자기 딸 이름이라고 반색을 하던 Inna Grand Bali Beach Hotel. 웅장하면서도 오래된 느낌의 그런대로 쾌적한 호텔이었다.
여장을 풀기 전에 우리는 회장님의 급지시로 모두 노천바에 모였다. 린자니 등정성공에 대한 감사 인사말에 이어 차기 해외산행지를 선정(로키 트래킹으로 잠정 합의)했고, 9월부터 입금하기로 했다.
어찌되었든 이 핑계 저 핑계로 이제 마지막이 될 bintan 맥주로 인도네시아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아 우리 여회원들은 남회원들을 먼저 들여보내놓고 마지막까지 웃고 놀았다.
다음날은 발리 관광. 마데의 말에 의하면 이틀 일정을 하루 만에 후딱 해치우는 거라 고달플 것이라고 하던데, 아니나 다를까 발리의 끝에서 끝까지 갔다가 다시 공항으로 오는 일정이었다.
8시 호텔 출발, 4시간 버스를 달려 12시, 발리 최고봉 아궁산(3,142m)이 바라보이는 힌두교 사원인 브사끼 사원에 도착하였다. 우리들은 1달러씩을 내고 전통복장인 사롱을 빌려 입고 들어갔는데, ‘one dollar’를 외치는 잡상인 등쌀에 골머리가 아팠다. 롬복 사람들과 달리 자본주의의 때가 묻은 발리 사람들은 영악하고 악착같아서 젖먹이까지 들먹이며 엽서를 사달라고 읍소하기도 했고, 몇몇 회원은 힌두의 신들에게 경배 드리러 올라갔다가 헌금까지 하고 나왔는데 예배의식을 보조하던 청년들이 팁을 요구해 마음이 상하기도 하였다. 화장실을 사용할 때는 정해진 요금 외에 바가지를 씌우려고 덤벼들기도 했다.
브사끼 사원을 관람한 우리는 1시 해발 1,460m에 있는 낀따마니 호수로 이동하였다. 1963년 아궁산의 폭발로 용암이 분출하여 그 지역 주민 90%가 사망했다는 낀따마니 호수에는 용암이 흐르다 식어 굳은 대지가 끝없이 펼쳐져있었고, 웃기는 것은 그 용암을 지금은 땅주인들이 떼어서 팔아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낀따마니 호숫가 중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 웅우라라이 공항 근처에 있는 울루와뚜 절벽을 보러가기 위해서였다.
깐따미니 호수에서 울루와뚜 절벽까지는 마데가 나누어준 지도를 보니 직선상으로 발리의 끝과 끝이었다. 3시간여를 달려 재래시장을 구경할 때 그림에 관심이 많은 나는 우붓 예술가 갤러리 두어 곳에 들렀다. 인도네시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유화작품이 많았으며, 작품마다 넘치는 생동감과 강한 이미지즘이 원시적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었다. 역시 자연이 사람을 움직이는구나 생각하며 일상에 함몰된 우리의 창의성이 이곳 발리에는 살아있음을 실감하였다.
버스를 타고 또 달려 해가 지고 컴컴해진 다음에야 울루와뚜 절벽에 도착하였다. 밤이어서인지 사롱 빌리는 것 대신 색색의 헝겊끈을 동여매고 사원으로 들어갔다. 사원 지붕 위엔 원숭이들이 조각상처럼 앉아있었는데, 마데가 원숭이 조심, 모자조심, 선글라스 조심을 여러 번 외쳤다. 이곳 원숭이들은 손님들의 물건을 훔쳐서 맞바꾸는 재미를 아는 음흉한 놈들이란다. 그래 그런지 롬복 원숭이들은 자연에서 살아 비쩍 말라 야성이 느껴진다면, 이놈들은 살찌고 기름지고 아랫배가 묵직하고 또 출렁거렸다. 발리의 일정이 빡빡하다보니 그랬겠지만 어둠속에서 바라보아도 울루와뜨 절벽은 뛰어나게 멋졌다. 또한 해안가도 몹시 아름다웠다.
롬복 가이드 Muck sin은 하루에 한마디 할까 말까인데 발리 가이드 마데는 입에 수도꼭지를 달아놓은 듯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하루 종일 버스투어에 심심치는 않았다.
마데의 말에 의하면 발리는 1980년대부터 국제적인 관광지가 되었고, 자카르타에서 발리까지는 카페리로 불과 40분이면 되는데 주민들이 다리 놓는걸 결사반대하고 있다는 이야기, 태국에 쓰나미가 났을 때 수마트라에는 3m 이상의 파도가 덮쳐 반군기지를 휩쓸어 그거하나 좋은 일이었다는 이야기, 인도네시아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고 또 코란에 일부다처가 허용되고 있어 경제력만 있으면 남자들은 여럿 아내를 거느리고 살 수 있다는 이야기, 유명한 인도네시아 국민가수 ‘오마이라마’는 아내가 무려 15명이라는 이야기에 우리 남회원들도 덩더쿵, 마데에게 너는 아내가 몇 명이냐고 슬그머니 물어보기도 한다. 열 여자 마다 하지 않는다는 남정네들의 검은 속마음이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공항근처 중식당에 도착하였다. 마데는 삼겹살과 한식을 이야기했는데 김과장은 혜초에서 업그레이드 된 중국식 식사를 준비 했다는 둥 서로 엇박자를 내더니만 중식당에서 내어놓은 식사는 너무 부실하여 젓가락질 몇 번하고 나니 서로 빈접시 돌리기여서 너무나 황당하였다. 항의하고 나서 나온 닭튀김은 설익어 짜증이 났지만 우리는 bintan 맥주를 시켜 건배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2시간쯤 남아 일부는 마데가 소개한 곳으로 마사지하러 가고, 일부는 발리의 명동이라는 곳을 구경했다. 그러나 이미 밤이 늦어 거리는 파장 무렵이어서 음식점과 바에는 사람이 많았으나 상점은 거의 철시되었다. 하여 하릴없이 밤거리를 배회하다 집결, 11시 40분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12시 40분 우리는 드디어 인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Terima kasih !
7. 인천-김포-부산 (7일째)
기내 1박이어서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참말로 기내숙박은 고문이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해는 떠서 창이 밝아오고, 8시 30분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짐 찾고 리무진버스 타고 김포로 이동, 10시 30분 발 부산 오는 아시아나를 타려니 모두들 바삐 움직여야했다. 가이드뿐만 아니라 함께 여행한 안산팀, 제주팀과 인사 나누기도 바빴다. 그 와중에 나는 리무진 버스에 등산화와 스틱을 두고 내리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다행히 박홍권부부가 우리보다 늦은 대한항공 11시 비행기라 그분들에게 부탁하고 비행기를 타니 미안하고 마음이 뒤숭숭하였다.
김해공항에 도착하니 조수연님과 최재남님이 반갑게 맞아주셨고, 여행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던 박정택님이 “회,회,회”라고 하여 일행은 화명동 물목으로 가서 해단식 겸 차기 해외산행 계획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의논하였다. 그러고 있는데 박홍권 부부가 도착, 분실물에 대해 여쭈어보니 처리를 잘 해두고 오셨다는걸 알았다. 너무나 고맙다.
이제 적을 꺼리가 다 떨어진 듯하다. 거의 3일을 꼬박 작업해서 산행기를 써 올린다. 해외산행 단골 총무인 옥영동님 그리고 묵묵히 뒤에서 보조해주신 조수연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두 사람 다 복 많이 받을 껴! <기록 : 허금화>
첫댓글 린자니의 여운이 많이 남아 자주 들어와서 읽어봅니다. 그런데 사진까지 곁들여야 더 실감이 날듯.... 바쁘시더라도 사진도 빨리 올려주세요.
하루 이틀 미루다가 이제 올렸습니다. 몇 컷을 뽑기 위해 많은 사진을 다 보았지만, 현장감이 없어 판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직 음악 넣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배경음악을 넣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이구 ...무슨 말씀을..... "부겐벨리아, 에델바이스 그리고 원숭이 컷...현장감 충분히 있습니다"
잘 다녀오셨는지요? 올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숭악의 정기해외등반도 잊고 살았군요. 멋진 산행기 덕분에 함께 한 듯.. 느낌이 생생합니다. 전원 무사히 완등하신 것 축하드리며, 숭악인임이 자랑스럽습니다. 비록 늘 오리지만..^^*
숭악으로 이끌어준 그대 ,남다른 감회로 그렇찬아도 연락 함 할까 했어요. 올 여름 정작 본인은 쉬지도 못하고 고생많이했지요? 건강 유지 잘하셔서 시원해짐 산에서 만나요. 경수씨에게도 안부를.............
해외 원정도 두번 하셨지요, 그것도 혼자..! 오히려 저보다 훨~~~씬 잘하고 계십니다. 다음달에 산에서 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보충하느라 떠난 줄도 몰랐는데 산행기를 오늘에서야 그것도 앉아서 읽어도 동행의 느낌이 들 정도로 생동감이 느껴지는 글뒤에 고심한 분에 대한 고마움이 저절로 숙여지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