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일본 SF 대작이다. 워낙 추천이 많았고, 내용도 궁금해서 읽어 보았다.
<은하영웅전설>은 은하제국의 야심가 라인하르트와 그에 맞서는 자유행성동맹의 명장 얀 웬리의 승부를 다루고 있다.
서기 2081년 인류는 지구를 탈출하여 알테바단계의 제2행성 테모리아로 정치적 통일의 무대를 옮겨 은하제국의 성립을 선언하고 그 해를 우주력 1년이라고 명명한다. 은하제국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독재로 세워진 국가다. 은하제국에에서는 루돌프의 반대파를 철저하게 숙청하자, 그 반대파 중 몇 명이 도망쳐서 민주공화제를 신조로 삼는 자유행성동맹을 결성한다. 또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 사이에 상업 자유 무역 국가인 페잔 자치령이 세워진다. 은하제국과 행성동맹은 전면전에 돌입한다. 이 전쟁에 젊은 두 영웅이 등장한다. 아름다운 금발과 날카로운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귀공자로서 전쟁의 천재인 은하제국의 로엔그람 폰 라인하르트. 역사학을 배우기 위해 사관학교에 입학했으나 자기 뜻과는 반대로 군인이 되었고 전쟁을 싫어하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동맹군 대장 얀 웬리. 이들은 바로 그 두 영웅이다. 또 이 두 국가의 경제력을 휘어잡아 우주를 지배하려는 페잔의 영주인 아드리언 루빈스키. 그 루빈스키를 조종하는 지구교 총대주교는 인류의 중심을 다시 지구로 돌리려 한다. 이들이 벌이는 음모와 야심과 전쟁과 사랑과 우정이 우주의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얀과 라인하르트의 펼치는 우주 전함 싸움의 전략과 전술이 아마도 이 소설의 재미인 듯하다.
얀은 전쟁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또 전쟁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고 자신의 목숨은 결코 전쟁에 바치지 않는 정치꾼들에게도 냉소를 보낸다.
라인하르트는 위대한 독재자가 되는 야망을 갖고 출세를 향해 돌진한다. 목숨은 중시하지 않고 오로지 승리에 집착한다.
이 SF를 청소년용 SF라고 단순하게 볼 수가 없는 것은 대비되고 있는 정치형태와 등장 인물의 성격이 상당히 진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데, 이 소설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이 정치에 대한 작가의 역사적 통찰력이다.
민주 공화정인 민주 체재인 자유행성동맹와 전체 군정의 독재 체재인 은하제국의 정치적 변화도 눈 여겨 볼 가치가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입맛이 씁쓸했다. 자유 행성 동맹에서 일어난 쿠데타가 우리 나라 정치사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읽을 가치는 충분한 소설이다.
작품의 서술 흐름이 꼭 역사가의 구술처럼 진행된다. 이것은 작가가 마친 얀의 입장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정치에 대한 냉소와 지난 인류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는 것이 작가와 얀이 똑같다.
다음에 인용하는 글을 읽어보면, 이 SF대작이 단순한 오락용이나 청소년용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쟁에 의한 파괴보다 평화에 의한 부패가 더 무섭다.
2권 30쪽
선행을 행하는 자는 혼자서 하기를 원하고 악행을 행하는 자는 여럿이 모이기를 바란다.
2권 33쪽
운명이란 무수한 개인 의사의 집적일 뿐 초월적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2권 110쪽
"신이라는, 괴상망측한 것을 생각해낸 인간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꾼들입니다."
2권 242쪽
인간이 신과 정의를 신봉하는 한 전쟁이 없을 수는 없다.
2권 249쪽
권력은 그것을 획득한 수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행사하는냐에 따라 정당화된다.
2권 325쪽
도둑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폭력을 통해 훔치는 자, 지혜를 통해 훔치는 자, 권력과 법률을 통해 훔치는 자.
4권 138쪽
"독재라는 이름의 칵테일을 만드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잘 조화를 이뤄야 하는 법입니다. 독선적이어도 좋으니까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사명감, 자기의 정의를 최대한으로 표현하는 능력, 적대자를 자기 개인의 적으로 보지 않고 정의의 적으로 보는 확고한 주관 등이 필요한 것입니다."
4권 147~148쪽
절대적인 선과 완전한 악이 존재한다는 사고 방식은, 모르긴 하지만 아마도 인간의 정신을 끝없이 황폐화시킬 것이다. 자기만이 선이고 대립되는 상대는 모두 악이라고 본다면 거기에는 협조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오로지 상대를 패배시켜 지배하겠다는 욕망만이 정당화될 뿐이다.
4권 164쪽
그럼에도, 이 작품은 다분히 일본적인 청소년용 SF대작이다. 다분히 만화적이다. 등장 인물들이 모두 순정 만화에 나오는 사람처럼 묘사되어 있으며, 이름마저 독일 귀족 성을 따르고 있다. 전투 장면이나 영웅주의가 소설적이라기보다는 만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