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수학·IT 박사··· '한우물 전략'으로 과학고 합격했다
자기주도학습전형으로 과학고 들어간 중학생들
2011학년도 과학고 입시에서는 자기주도학습 전형이 처음으로 시행돼 큰 관심이 쏠렸다. 전국 19개 과학고에서 전체 모집정원의 33%인 521명을 자기주도학습 전형으로 선발했다. 내년에는 전체 모집정원의 50% 이상을 이 전형으로 선발할 계획이다. 자기주도학습 전형으로 합격한 세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광민 (세종과학고 합격)
김광민(서울 장충중3)군에게는 명함이 두 장 있다. 하나는 ㈜한글과컴퓨터에서 준 '한컴마스터' 명함이고, 또 하나는 카이스트 IP
영재기업인 교육원 명함이다. 소프트웨어 전문 리뷰어로 활동하는 '한컴마스터' 중 미성년자는 김군 한 사람뿐이다. 세종과학고 입시에서도 컴퓨터와 IT 분야에서 꾸준히 탐구하며 재능을 보인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김군은 초등 2학년 무렵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가졌다. 사용하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계기였다. "바이러스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컴퓨터 구조와 작동원리를 탐구하게 됐다"고 했다. 초등 5~6학년 무렵,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흥미를 가진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혼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가 관심 있는 분야를 가르쳐주는 학원이 없기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나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구했다. 외국 웹사이트나 영어 원서 등을 찾으며 힘들게 공부한 만큼 한 번 공부한 내용은 쉽게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1부터는 소프트웨어 리뷰어 활동을 시작했다. 새로 출시될 소프트웨어를 미리 써보고 취약점 등을 찾아내는 활동이다. 지난해 7월에는 한국증권전산의 안심패키지에 대한 종합리뷰를 제출해 일등인 우수리뷰어로 선정됐다. 학교 내에서도 학생회 과학정보부장을 맡아 전산실 보안관리를 돕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컴퓨터 공부와 학교 공부를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김군은 수업시간에 선생님 설명을 전부 받아 적은 다음, 집에 돌아와 과목별 전용 노트에 다시 정리했다. 전용 노트에는 교과서와 교재 내용까지 함께 정리해 시험기간에는 노트 한 권만 가지고도 공부할 수 있게 했다. 그는 "과학고에 입학하면 물리, 화학 등을 심도 있게 공부해 이를 IT분야에 접목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싶다. 또 이를 바탕으로 지식경제부에서 진행 중인 IT명품인재양성사업에도 지원할 계획"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김아영 (동대구과학고 합격)
김아영(대구 동부중3)양은 3학년 9월 초순, 뒤늦게 과학고 진학을 결심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자주 쓰러지는 동생을 보
고 희귀병을 연구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 의대에 진학하기에 앞서 먼저 과학고에서 연구수업을 들으며 과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었다"고 했다. 중학교 3년간 수학·과학 성적을 눈부시게 향상시킨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인정받아 합격했다.
1학년 1학기 때 김양의 성적은 전교생 500명 중 104등, 수학은 220등이었다. "수학 때문에 다른 과목 성적까지 나빠질 것 같아 수학을 정복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김양은 1학년 여름방학에 2학기 교과서로 기본개념을 철저하게 공부했다. 2학기 때는 수업을 들으며 개념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기본문제집과 심화문제집을 풀었다. 문제집을 고를 때는 기본개념서는 설명이 알기 쉬운 것, 한 페이지에 5문제가 있다면 2~3문제는 눈으로 봤을 때 풀 수 있는 것을 고르고, 심화문제집은 서술형 문제가 많은 것을 택했다. "공부하면서 답은 하나여도 풀이방법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자 어렵기만 하던 수학이 재미있어졌다"고 했다.
김양은 예습보다 '복습'을 주로 했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의 농담까지 받아 적을 정도로 집중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교과서를 보면서 선생님 설명을 떠올리고, 기본개념서로 다시 한 번 배운 내용을 정리했다. 김양은 "개념을 확실히 깨닫고 문제를 풀며 복습하는 데 하루 3시간 정도를 매일 투자했다. 중요한 부분을 형광펜으로 표시하면서 모두 외웠다"고 밝혔다. 이렇게 공부한 덕분에, 1학년 때 전교 104등이던 성적을 3학년 1학기에 전교 4등으로 끌어올리고, 수학 성적도 상위 1%로 껑충 뛰어올랐다. 김양은 "과학고를 멀게만 느끼는 후배들이 많은데, 수학·과학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누구든 자기주도학습 전형을 통해 합격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성계 (인천과학고 합격)
이성계(인천 제물포중3)군은 수학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노력을 인정받았다. 이군이 중학교 때 했던 탐구활동과 논문은 수학 박사
들도 놀랄 정도이다. 특히 지난 2008년 9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1년여의 연구 끝에 '사각형 종이를 접고 펼친 흔적과 (0,1)-패턴의 관계성'이라는 수학논문을 작성했다. 이 논문은 2009년 9월 한국수학교육학회의 수학교육논문집에 게재됐고, 이군은 한국수학교육학회 학술발표회에서 중학생 최초로 논문을 발표하는 영광도 안았다. 또 올해 11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주최한 국제청소년학술대회에서도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수학 탐구활동을 하면서 자기주도학습 능력이 절로 커졌어요. 특히 '종이를 접으면 흔적이 남는데, 그와 반대로 남은 흔적을 보고 어떻게 접었는지 생각해 보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엇이든 '역발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죠. 친구들과 팀을 이뤄 연구하면서 다른 사람과 지식을 공유하며 더 큰 결과물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도 배웠습니다."
초등 4학년부터 과학고 진학을 꿈꿨던 이군은 중학교 3년간 내신 관리에도 신경을 써서, 전교 10등 이내를 유지했다. 주로 집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시간 관리·유해환경 차단을 중요시했다. 하루 공부계획을 꼼꼼히 세우고, 핸드폰은 1시간30분 단위로 알람을 맞춰 두고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만지지 않았다. 이군은 "모든 과목은 교과서부터 보며 개념을 완전히 이해한 다음에야 문제를 풀었다"고 전했다. 중학교 3년간 학급반장을 맡고, 2학년부터 전교 부회장을 맡는 등 학교생활에도 충실했다.
또 어려서부터 '수학귀신' '생각을 키우는 수학나무' 등 수학 관련 도서를 즐겨 읽었다. 수학 도서에서 궁금한 점이 나오면, 교과서나 교재를 읽으며 궁금증을 풀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학 I 과정까지 공부했다. 이군은 과학고 진학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스펙에만 연연하지 말고 무엇보다 독서에 신경 쓰라. 수학·과학 분야뿐 아니라 인문사회 도서까지 폭넓게 읽으며 사고력을 쌓고, 학교생활을 충실히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선일보 오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