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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네덜란드 방문기
변 종 길
2020년 1월 28일(화)부터 2월 6일(목)까지 화란을 방문하고 돌아왔다(7일 오후 도착). 1월 30일(목)과 31일(금)에 화란 기독개혁교회 총회에 고신교회 사절로 참석하고 인사말을 하였다. 2월 2일 주일에는 Apeldoorn에 있는 Andreaskerk에서 오전 예배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루방의 ETF와 Apeldoorn 신학대학과 Kampen 신학대학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판 브루헌 교수님과 사모님을 방문하고 문안하였다.
2020. 1. 28(화)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네덜란드행 비행기를 탔다. 나는 7년만이고 아내는 24년만이다. 대한항공 비행기가 오후 2시 5분 정시에 출발하여 좀 일찍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 도착하였다. 조금 기다리니 김철* 강도사가 왔다. 짐을 싣고 저녁에 아펄도른의 Zenzez 호텔에 도착하니 아직 9시가 안 되었다. 작지만 깔끔하고 좋은 호텔에서 편히 쉬었다.
2020. 1. 29(수)
습관대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를 좀 드리고 기다렸다가 7시 30분에 아침식사를 하였다. 빵과 우유, 치즈 등이 깔끔하게 차려져 나왔다. 무엇 무엇을 먹을 것인지 어제 저녁에 미리 주문을 받더니만 주문한 그대로 나왔다. 하나도 버리는 것이 없이 매우 합리적이다. 이 점에서 화란 사람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빵이 하도 맛있어서 하나씩 더 달라 했더니 갖다 주는데 좀 의아한 듯이 쳐다본다. 나중에 보니 배가 불러서 괜히 더 달라고 했나 싶었다.
오전에 판 브루헌 교수님 댁을 방문하려고 나갔는데 가는 길이 공사중이라 막혔다. 우회해서 가는데 잘못해서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급히 전화하니 교수님이 오셔서 직접 태워 가셨다. 오랜만에 뵈니 교수님은 아직 정정하신 것 같다. 사모님도 허리가 굽은 것 외에는 건장해 보이셨다.
조금 대화를 나누니 시간이 되어서 캄펀에서 김은* 강도사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캄펀의 이충* 목사 집에 가니 한국 유학생 네 가정이 다 모여 있다. 자녀들이 함께 모이니 수북하다. 중국 음식으로 함께 식사를 하면서 한동안 대화를 나누고 나서 화란기독개혁교회가 열리고 있는 넌스뻬이트(Nunspeet)로 갔다. 기독개혁교회 교단에 속한 Jan en Joke H***가 반갑게 맞아 준다. 식사를 대접 받은 후 편히 쉬었다.
2020. 1. 30(목)
아침에 총회 장소(Oenenburgkerk)로 갔다. 이 날은 해외 자매교회 사절들이 다 모이는 날이다. 오전에는 사절들을 Elburg로 데리고 가서 유대인 박물관을 보여 준다. (아내는 총회 장소의 부엌에서 자원봉사하였다.) 이 교단이 유대인들에 대한 관심이 많은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아주 많은 것 같다. 강의하는 젊은 박사는 유대인이 ‘특별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오후에는 해외 사절들의 인사말이 있었다. 13명이 인사말을 하였는데 나는 오후 늦게 하였다. 고신교회의 현황과 지난 몇 년 사이에 받은 축복에 대해 말하고 나서, 여성 직분에 대해서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여성 인력을 활용하는 유연성을 보였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일제 말기에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켰는데, 이것은 성경 말씀에 충성하기 위함이었음을 말하였다. 오늘날 시대는 변하고 문화는 변하지만 우리는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함을 강조하였다. 해외 사절들 가운데 인도네시아 교회만 여성 직분을 찬성하였고 브라질의 선교교회는 선교지의 특수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다 성경을 따라야 함을 강조하였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단히 신앙적이었다. 교회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저녁 순서를 참관하고 숙소에 와서 쉬었다. 총회 사절로서의 나의 임무는 이로써 끝난 셈이다.
2020. 1. 31(금)
오늘 아침 9시 반까지 총회 장소로 갔다. 아내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총회장소 부엌에서 같이 섬기고 봉사한다. 화란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총회 결정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여 뒤에서 총회를 지켜보았다.
여성 직분과 관련한 Unity 위원회에서 다수보고서와 소수보고서가 제출되었는데, 각 보고서에 대해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총회와 노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몇몇 개교회들이 여성 직분을 세우기로 이미 결정해 버린 게 문제의 발단이다. 노회의 권고를 듣지 않는 이 교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 이번 총회의 최대 이슈이다. 원칙대로 단호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다수보고서이고, 관용해야 한다는 것이 소수보고서이다. 그런데 여성 직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교회들은 해방파(31조파) 교단 또는 1967년에 분리된 Nederlands Gereformeerde Kerken 교단과 협력하고 있는 교회들이다. 개교회 차원에서 이들과 협력하면서 자연히 영향을 받아 여성 직분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협력하는 교회 수가 77개로 전체 기독개혁교회 교단 184개의 42%나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원리대로 단호하게 처리하면 최대 42%가 떨어져 나갈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진퇴양난을 해결하기 위해 이런 저런 논의가 오가고 마지막으로 자문위원인 아펄도른 신학 교수들에게 한 사람 한 사람씩 의견을 물었다. 마지막으로 셀더르하이스(Selderhuis) 학장이 발언했다. 그는 다음 결정이 있을 때까지 개교회는 총회와의 약속에 반하는 결정을 하지 않을 것과 이미 결정한 교회는 실행하지 않을 것을 제안했는데,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졌다. 다음 결정 때까지 일단 휴전한 것이다. 모든 총대들과 지켜보던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감사하는 분위기였다. 다 일어서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함으로 이번 회기는 종료되었다. 다음 회기는 3월 24일에 모인다고 한다. (이때 부른 시편 찬송을 내 유튜브 채널에 올려 놓았음)
나는 오전 모임까지 지켜보다가 나왔다. 캄펀에서 김철* 강도사가 와서 차를 타고 아펄도른으로 갔다. 베트남 음식점에 가려고 하였으나 문이 닫혀 있어서 옆에 있는 홍콩 음식점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호텔에 와서 오후에 좀 쉬었다. 오후 늦게 시내로 가보았다. Subway와 Albert Heijn에 가보았다. 호텔에서는 3층 방에 머물렀는데 작지만 조용하고 좋았다. 이런 데서 책 읽고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2020. 2. 1(토)
오전에는 주일 설교를 다시 점검하고 보완하였다. 낮에는 아펄도른 역에 가보았다. 그런데 역 창구가 없고 역 안에 들어갈 수 없다. 교통카드가 없으면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다. 다음 월요일에 벨기에에 가야 하는데 큰일이다. 돌아와서 내 휴대폰으로 표를 끊으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국제 로밍이 안 되어서 인증번호가 오지 않아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된다. 당황하고 있는데 호텔 주인 아저씨가 대신 표를 끊어 주면서 비용은 호텔비에 포함시키겠다고 한다. 친절한 아저씨와 아주머니 덕택에 무사히 벨기에 행 기차표를 끊게 되어 감사했다. 이번에는 휴대폰이 새 것으로 바뀌어서 그런지 국제 로밍도 안 되고 어려움이 많다.
오후 3시에 안드레아스교회의 브론* 목사가 와서 우리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교제를 나누었다. 아주 친절하고 좋은데 너무 친이스라엘적이다. 이스라엘에 가서 5년을 살면서 유대인들과 접촉하였다고 한다. 선교는 하지 않고 그냥 사귀면서 배운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강조한다. 이 교단이 친이스라엘적이라는 것은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이것 하나만 빼면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다.
2020. 2. 2(주일)
오늘은 화란어로 설교해야 하는 날이다. 내가 왜 이런 이상한 일을 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그냥 준비한 원고대로 읽는 수밖에 없다. 마음을 내려놓고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전 8시 45분에 브론* 목사가 왔다. 교회당에 들어가서 당회실에서 조금 기다렸다. 장로들이 하나둘 모이고 기도하고 나서 예배실로 들어갔다. 목사가 예배를 인도하는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잘 인도한다. 환영사와 찬송과 기도 등이 끝나고 드디어 내가 강단에 올라가서 말씀을 전하였다. 요한복음 11:17-44을 가지고 “마르다의 믿음”에 대해 전하였다. 말씀을 전한다기보다 그냥 준비한 원고를 읽어내려 갔다. 똑바로 발음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한 단어 한 단어 끊어져서 발음하였는데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한국의 성도들의 기도에 힘입어 무사히 말씀을 마쳤는데, 이 사람들이 잘 듣는지 어쩐지 반응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무사히 끝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마음이 평안하였다. (이 날 오전예배 전체 녹화 동영상을 내 유튜브 채널에 올려 놓았음.)
예배 순서가 다 끝나고 나니 장로들이 다시 당회실에 모이고 감사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좋은 예배였다고 다들 표정이 좋다. 밖에 나오니 판 브루헌 교수님도 와 계셨다. 제가 “합격했습니까?”라고 물으니 교수님은 “설교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고 하신다. 한 대 얻어맞았다 싶었다. 어떤 할머니 성도는 손을 잡으면서 “내가 마르다”라고 하신다. 예배 후에 다함께 커피를 마시는데 분위기가 참 좋다. 목사도 좋고 장로들도 좋고 성도들도 좋다.
한참을 있다가 브*스 목사가 우리를 호텔에 데려다 주어서 오후에는 편히 쉬었다. 오후 4시 반에 판 브루헌 교수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가까이 있는 해방파에 속한 Koningshof 교회에 가서 오후예배를 드렸다. 좀 작고 분위기가 오전의 교회보다 못하다. 오늘 따라 오후에는 기독개혁교회(아펄도른 측) 목사가 와서 설교한다. 전도서의 어려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한다. 예배 후에 교수님 댁에 가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대접받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2020. 2. 3(월)
오늘은 아침 일찍 걸어서 역으로 갔다. 출력해 준 기차표를 갖다 대니 차단봉이 열렸다. 오전 8시 29분 기차를 타고 Utrecht로 가서, Rotterdam으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Mechelen으로 가서, Leuven 역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예정대로 무사히 가서 Leuven 역에 도착하였다.
신학대학원 제자인 김 목사의 차를 타고 ETF에 도착하였다. 학교 안의 기숙사에 있는 김 목사의 집에 도착하니 식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 이주* 강도사도 와 있다. 식사 후 게스트룸에 올라가서 조금 쉬었다가 오후 3시에 신약한 교수 두 분 곧 Martin Webber 교수와 Jakobus Kok 교수를 만났다. 웨버 교수는 은퇴를 앞두고 있고 수리아역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다고 한다. 콕 교수는 남아공 프레토리아 출신인데 2세기의 외경 ‘솔로몬의 노래’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 모로 뛰어나다고 한다. 그러나 너무 학적으로 나아가고 변죽을 울리는 것 같다. 나는 흐레이다너스의 신학을 계승 발전시킨다고 하면서 작년에 출판된 나의 책 『신약 총론』을 도서관에 기증하였다. 그런데 구약 교수로는 Van Bekkum이 가르친다고 한다. 전에 캄펀에서 여호수아서로 끄*껄에게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기브온에 태양이 머무르고 아얄론 골짜기에 달이 머무른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문학적 표현으로 본다고 한 사람이다. 이걸 보니 ETF는 복음주의라고 하지만 비평도 받아들인다고 생각되었다. 게스트룸이 많이 있어서 박사 후에 리서치로 오면 좋겠다 싶었다.
이어서 오후 4시에 교무처장인 Andreas Beck와 학장인 Jos de Kock를 만났다. 역사신학 교수인 안드레아스 베크는 대단히 겸손하고 실력이 있어 보였다. 학장은 젊은 사람인데 실천신학 교수란다. 이번에 보니 화란도 그렇고 벨기에도 그렇고, 다들 젊은 사람이 장을 맡아서 활동한다. 거꾸로 된 장유유서 같다.
저녁에는 우리와 김 목사와 학장과 교무주임 직원과 함께 시내에서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다. 그 여직원은 화란계인데 중미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화란어, 영어와 스페인어, 불어 등 언어를 잘한다고 한다. 마치고 돌아와서 게스트룸에서 쉬었다. 그런데 여기는 도시라서 시골스런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2020. 2. 4(화)
오늘 아침 9시에 숙소를 나와서 사진을 찍고 김 목사 차로 아펄도른으로 향했다. 낮 12시 30분에 아펄도른에서 셀더르하이스와 약속이 있어서 기차로는 안 되고 이 방법밖에 없다. 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아펄도른에 오니 12시밖에 안 되었다. 아내는 호텔에 내려주고 나는 신학교에 내렸다. 김 목사가 하루 종일 수고해 주어서 고마웠다.
학교에 들어가니 로*마라는 직원이 친절하게 맞이한다. 안드레아스교회의 장로이기도 한데 친절하고 사람 좋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저께 예배가 아주 좋았다고 한다. 좀 기다리니 학장이 나온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우리 학교와 MOU를 맺고 싶으냐고 묻는다. 좋다고 대답하고 우리 학교 원장에게 전하겠다고 했다. 우리 학교는 지금 캄펀과 루방 ETF와 MOU를 맺었는데 아펄도른과는 아직 없다. 그러니 맺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며 늦은 감이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교수 교환과 학생 교환이 있는데, 실제로 우리 학교 교수가 이곳에 오면 숙소 제공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학장은 “가능하다. 숙소는 빌리면 된다.”고 한다. 빌리는 게 어렵지 않으냐고 하니 쉽다고 한다. 학장이 쉽다고 하니 더 물을 것도 없다. 나의 『신약 총론』을 선물하니 도서관 직원을 불러서 전달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도서관에 한국 책을 모아서 진열하는 코너가 조그만하게 있었다. 빨리 내 책이 영어로 번역되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전체적으로 아펄도른이 세 학교 중에서 제일 신앙적이고 좋아 보였다. 학교도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교수진이 좋다. 이 신학교와 교단이 오래도록 신앙을 지켜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곧 작별하고 호텔로 걸어서 왔다. 5분여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호텔 방은 아래 1층 넓은 방으로 옮겨져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서 바로 시내로 나왔다. 수리아 식당에 들어가서 우선 허기를 채웠다. 쇼핑가로 들어가서 약과 선물들을 좀 샀다. 집에 돌아와서 편히 쉬었다. 중요한 일들은 거의 다 끝난 것 같다.
2020. 2. 5(수)
오전 10시 반경에 김은* 강도사가 와서 우리를 싣고 캄펀으로 데려다 주었다. 나와 아내는 보픈께르크를 지나 아우더스트라트 거리를 걸었다. 참 아름다운 거리이고 추억이 담겨 있는 거리이다. 나는 6년 전에 경*이와 함께 와서 보았지만, 아내는 1997년에 오고 나서는 처음이다.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달라지지 않은 것도 많다. 헤이마(Hema)에서 수프를 사먹고 나서 학교 도서관까지 갔다가 나와서 아름다운 공원을 걸으며 추억에 잠겼다. (이때 찍은 캄펀 공원 동영상을 내 유튜브 채널에 올려 놓았음.) 저쪽에 옛날 판 브루헌 교수의 집을 바라보며 다시 옆으로 가서 아우더스트라트로 갔다. 시계탑 앞 광장에서 감자튀김을 사먹고 나서 나는 학교로 가고 아내는 아우더스트라트로 갔다.
1시 반에 도서관에 가서 판 하우*링언 교수를 만났다. 반갑게 맞이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여성 직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 내가 “여성 직분 문제에 있어서 제일 어려운 점은 사도 바울이 창조질서에서 논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고 하자, 그도 그건 맞다고 인정한다. 그렇지만 바울이 지금 이 시대에 살았다면 다르게 말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 시대의 안경으로 성경을 보았다고 말한다. 결국 해석학의 이름으로 성경의 말씀을 무시한다. 바울이 오늘날에 산다고 해서 2천년 전에 한 말과 다르게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오늘날 시대에 맞게 조금 덧붙이고 좀 다르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아담이 먼저 지음받고 하와가 그 후에 지음받았다는 사실을 다르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창조 사실과 창조 질서는 어느 시대에나 어느 문화에나 변화가 없는 것이다.
이어서 룰 카이퍼(Roel Kuiper) 학장을 만났다. 내가 양 교단의 관계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말했다. 우리의 입장은 다음 ICRC 결정 때까지 지켜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결정적 포인트라고 했다. 그러자 카이퍼는 자기네 교단이 동성애를 받아들이자는 것은 아니고 교회 내의 동성애자를 어떻게 목회적으로 돌보느냐 하는 실제적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하게 따져 보면 맞지 않다. 이미 3년 전에 여성 직분과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있는 Nederlands Gereformeerde Kerken 교단과 합병하는 데 있어서 그 교단의 해석학적 입장이 교단 합병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 말은 결국 여성 직분과 동성애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내려와서 학교 로비에서 3시 반에 아내와 함께 하크와 그 부인 리다를 만났다. 반갑게 맞이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보니 옆에 끄*껄과 볼터-로즈도 있다. 캄펀의 신학생들 표정과 분위기가 옛날에 내가 공부할 때에 비해 뭔가 기합이 빠진 분위기다. 도도한 자신감이 없어진 건 좋으나 생동감이 없어 보인다. 신앙이 떨어지니 성령의 역사가 약해지고 얼굴 표정도 시무룩해진다. 4시 반경에 김철* 강도사가 우리를 아펄도른에 태워다 주었다.
조금 쉬고 6시 반에 교수님이 우리를 태우러 오셨다. 사모님과 함께 우리를 태워서 저 멀리 숲 옆에 있는 홀란드 전통음식점으로 데려 가신다. 전통 냄비 소고기를 시켜 먹었는데, 고기는 부드럽고 맛있는데 엄청 짜다. 옛날에는 이렇게 짜게 먹었는가 보다.
2020. 2. 6(목)
오늘은 떠나는 날이다. 오전에 짐을 쌌다. 11시 반경에 다*어가 부인과 함께 왔다. 호텔 주인과 작별하고 나서 짐을 싣고 시내에 있는 Het Oude Kantoorgerecht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다*어는 삐어의 넷째 아들인데 자기 부모와 우리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부인은 Urk 출신이라고 한다. 내가 경건한 도시라고 했더니 웃는다. 옛날에 섬 주민의 99%가 교회에 다녔다던 도시이다. 전에 우륵의 어떤 장로가 우륵도 세속화되었다고 탄식을 하였는데, 곁에 있던 목사가 “왜냐?”고 물으니 전에는 99%가 교회에 나갔는데 지금은 92%밖에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캄펀에서 공부할 때 어떤 목사로부터 들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눈 후 다*어가 우리를 역으로 데려다 주고 짐 가방을 끌고 역까지 친절하게 인도해 주어서 고마웠다.
3시 13분 Inter-City 기차를 타고 직행으로 스키폴공항에 도착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니 바로 공항이다. 출국장 안내를 따라 쭈욱 따라가니 대한항공 카운터가 있는데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도 이렇게 여유 있게 기다리는 게 낫다.
한참을 기다려 수속하고 오후 8시 55분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니 영락없이 정시에 출발한다. 이번에 느낀 건데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들이 서양 사람들에 비해 갸름하고 서비스가 뛰어나다. 전에는 상업적이라 느꼈지만 이제는 서양 항공사들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 사람들이 왠지 기합이 빠지니 얼굴도 좀 버석버석한 것 같고, 이제는 그렇게 뛰어난 것 같지도 않다. 바야흐로 한국이 서양을 추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올 때는 갈 때보다 1시간 이상 빨리 왔으나 그래도 지루하다. 대한항공은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이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이다. 바로 판 브루헌 교수님께 무사히 도착했다고 메일을 드렸다. 그리고 화란에 있는 동안 나와 아내는 아프지 않고 컨디션이 좋았다. 성도들이 기도 많이 해 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계속 일만 하다가 온 기분이다. 휴식다운 휴식을 가지지 못한 게 아쉬움이다. 하지만 총회 사절로 간 일과 안드레아스교회에서 설교한 일과 신학교 세 곳을 방문한 일, 그리고 지도교수님을 방문한 일 등, 모든 일들이 잘 되어서 감사하다. 단지 교수님에게서 큰 기도제목을 얻어 가지고 왔다. 이제부터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힘써 기도해야 하겠다. <끝>
첫댓글 생생한 방문기 기록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