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목포문학상』시부문 당선작
보이저 1호 / 양진영
수년 전에 멈추었어야 하는 우주 탐사선
최초로 태양계를 벗어나 미지의 은하계 중심부로 항해 중이다
수명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생각은 지구인의 편견
인공위성은 오늘도 영혼의 전파를 보내온다
반년째 의식불명으로 누워 있는 할머니
간병인들은 정신이 떠났다고 수군대는데
여전히, 숨결을 고르게 내쉰다
식구를 데우려 제 몸을 살랐던 할머니의 일생은 불 이었다
개밥바라기*가 주홍빛으로 물든 해거름
비너스 여신의 고결한 별 하나가 지구에 떨어져 잉태된 할머니는
금성처럼 스스로를 태워 주위를 밝히며 살아왔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반짝대는 샛별을 볼 때마다
수억 킬로미터 너머의 혹성을 꿈꾸었을 그녀
할 일을 마친 잔해는
날아온 궤도를 더듬거리며
안식처로 회항하고 있는지
단내 나는 들숨 날숨을 반복 한다
보이저 1호가 임무를 마쳤는데도 왜 여태 비행하는지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구름 담요가 둥그렇게 달을 감싸 안은 이 밤,
할미별은 캄캄한 우주 공간을 유영하고
밤하늘은 떠나온 행성으로 되돌아가는 영혼들로 반짝이는지 모른다
* 저녁에 보이는 금성이다. 아침에는 샛별, 서양에서는 미의 여신, 비너스로 불린다. 표면 온도가 섭씨 500도에 달해 밝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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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목포문학상』시부문 신인상
스키드 마크 / 나동하 (경기도)
타이어의 진한 울음이 길바닥에 찍혀 있다.
한껏 입 벌린 타이어의 순한 눈망울이 얼비치는 울음은
작정이라도 한 듯
중앙분리대를 향해 길고 곧게 뻗어 있다.
울음의 끝자락이 살짝 비틀린 걸로 보아 타이어는
속도의 고삐에 숨통이 막혀
한참을 컥컥거렸을 것이다.
짧은 반항을 감행하기까지
지문이 닳도록 달린 타이어는
자잘한 살점이 묻은 울음 한 바가지
길바닥에 엎지르고
뒤이어 쏟아지는 눈물을 질끈
삼켰을 것이다.
폭죽 같은 비명소리
하늘로 치솟는 순간
밤하늘이 잠시 환해지며
고요히 떨어지던 별빛들도
덩달아 비틀거렸을 것이다.
몸속 가득한 울음소리
길바닥에 모조리 토해낸 타이어는
또 어디로 고분고분 끌려갔을까?
위로하듯 지나가는 타이어들이
뒤늦게 한 번씩 상처를 어루만져보지만
한번 터진 울음은 조금도 다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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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목포문학상』시부문 본심평
예심을 거쳐 본심으로 넘어온 응모자는 기성 문인이 다섯 분, 신인이 다섯 분이었다. 응모작으로 여러 편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대개의 경우, 한 두 작품만 읽히는 게 고작이었다.
오랜 숙고 끝에 「보이저 1호」를 본상 수상작으로,「스키드 마크」를 신인상으로 추천한다. 올해의 결과는 예년과 다르게 본상, 신인상 모두 신인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기성 문인의 투고 작품 중에는「순천만」등이 이채롭게 읽혀졌으나, 전체적으로 한 세계를 아우를 만한 완성도가 아쉬웠다. 본상에는 들지 못했으나, 시어의 자원으로 방언을 활용하려는 노력은 평가할 만하였다. 한 두 작품만 읽혀져 시작의 수준을 가늠할 수 없었던 것은 「스키드 마크」의 응모자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는 도로 위에 선명한 바퀴자국의 유비(類比)로 삶의 향방을 추적해보여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추었지만, 다른 시편들에서는 성공한 비유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보이저 1호」등의 응모자는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춘 시적 공간을 확보해 낸다. 「보이저 1호」만 하더라도 임무를 마친 뒤에까지 아득한 우주를 헤매는 인공위성의 유비에, 맥락을 놓아버린 할머니의 치매를 겹쳐 보인다. 이 작품 외에도 눈여겨 볼만한 시편들이 다수였다는 것이 특별히 이 신인을 본상에 천거한 이유라 하겠다.
심사를 하면서 목포문학상의 의미 있는 전개를 위해서, 지금처럼 장르별 공모를 지속해 갈 것이 아니라, ‘목포’ 다운 특징을 살
리는 선택과 집중으로 요청되지 않을까, 잠깐 생각해 보았다.
예심위원 신덕룡 (시인, 광주대 교수), 이대흠 (시인)
새로우면서도 완벽한 시를 찾아서
목포문학상의 권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게, 투고된 작품의 편수(151명의 1057편)도 편수이지만, 투고된 작품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데서 확인된다. 기성과 신인을 구분해서 말하자면, 기성 문인 투고 작품들은 시를 빚는 솜씨가 대개 안정되어 있었고, 신선함마저 느낄 수 있어서 심사자들을 즐겁게 하였다. 어느 작품에 상을 주어도 좋을 만큼 고른 작품 수준과 저력이 돋보이는 투고자들이 눈에 띄었다. 「달콤한 잠」, 「순천만」, 「샥스핀」 등은 시를 빚는 솜씨가 안정되어 있어서 오랜 시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또한 「이상의 방」 등을 투고한 시인의 작품은 자칫 모호해질 수 있는 소재를 탄탄하게 끌어간 점이 높이 살만 했고, 「마갈씨의 생애」 등을 투고한 시인의 작품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진 점이 돋보였다. 기성문인 작품의 예심을 마친 후 예심위원들은 낭중지추라는 말을 실감했다. 두 사람의 입을 모은 듯 꼽은 작품이 있었던 것이다.
신인 투고 작들도 만만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발상도 있었고, 문득문득 반짝이는 행간이 눈을 크게 뜨게 하였다. 하지만 제대로 날이 선 작품은 찾기 어려웠다. 시작은 그럴 듯하지만 마무리가 덜 된 작품, 시상 전개는 안정되어 있으나 신선함이 떨어지는 작품, 행갈이는 되어 있으나 굳이 ‘시’라고 말하기에는 함축미나 언어의 정밀함이 보이지 않는 작품, 새로운 인식이 없고 세계에 대한 해석이 진부한 작품, 발랄해 보이지만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말을 나열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 중 「포장마차 왕국」등은 세상을 보는 따스한 시선이 감동적이었고, 「시지푸스 계단」등은 ‘계단’과 ‘유모차’라는 소재로 생의 본질을 끌어내는 솜씨가 돋보였다. 「보이저 1호」등은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할메별’의 반짝임이 신선했고, 「아날로그 대화」등은 ‘시간’을 소재로 시상을 전개하는 힘이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스키드 마크」등은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보다는 그 대상 속에 숨어 있는 서정을 끌어낸 점을 장점으로 볼만 했다. 하지만 신인 투고작들의 공통점은 끝까지 언어의 치밀함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 드물었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 예술에 대한 요구 조건은 변함이 없다. -새로우면서도 완벽할 것.- 그것이 끝내 불가능할지라도 예술가는 그 가능성을 지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