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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나마라 전 장관의 별세를 보고. 지압은 전쟁意志가 전쟁武器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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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 사이공 특파원으로서 퓰리처 상을 받은 데이비드 핼버스탐 기자는 그 뒤 저술가가 되어 월남전에서 미국의 엘리트들이 실패해간 과정을 다룬 'The Best and The Brightest'를 썼다. 그는 1967년 월남을 다시 방문했을 때 월남전의 본질적인 성격을 정확히 파악했다고 한다. 월남전은 미국의 군사적 우월성과 월맹측의 정치적 우월성 사이의 대결인데 시간은 월맹측의 편에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미국은 언젠가는 철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가 하는 아주 결정적인 부문에서는 항상 미군에 대하여 우위에 서 있었다. 미국 국방장관 맥나마라의 수학 對 월맹 국방장관 지압의 심리학이 대결한 꼴이었다. 그 맥나마라가 어제 93세로 별세하였다. 지압은 90代 말 의 고령인데도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보 구엔 지압과 나눈 대화는 핼버스탐의 문제의식과 그 궤(軌)를 같이 하고 있다. 지압은 "미국은 앞으로 10년, 또는 15년간이나 월남에 60만 大軍을 주둔시킬 수는 없다.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데 그러려면 괴뢰정권, 그것도 강력한 괴뢰정권을 남겨놓고 가야 하는데 이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 월남 괴뢰정권은 미국의 노예로서의 가치도 없다"라고 했다. 수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군인의 머리수는 이곳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25대 1, 6대 1, 3대 1이니 하는 兵力비율은 의미가 없다. 이 전쟁은 全인민이 그들과 싸우는 전쟁이다. 全인민이 들고일어났을 때는 이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저항했고 견뎠으며 우리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모든 인민이 함께 싸워야 한다. 13세기에 유효했던 것이 20세기에도 유효하다. 문제가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월남 사람이기 때문에 모두가 뛰어난 戰士들인 것이다" 이라고 말하고 "모든 것은 군사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미국은 제2의 디엔 비엔 푸를 겪게 될 것이다"고 예언했다. 지압은 또 "우리는 평화를 사랑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평화를 얻어야 한다는 식은 아니다. 우리는 타협에 의한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평화는 완전한 승리, 즉 미군의 완전 철수를 뜻한다"라고 못박았다. 월남이나 한국이나 미군이 떠나면 무너지고 말 괴뢰정권이란 것이다. 두 사람은 또 평화협정 같은 것들은 군사적 결착을 가능하게 만드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그들은 전쟁意志가 전쟁武器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한국이나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人命손실이 많이 나는 전쟁을 감당할 수 없다. 한국정부가 결사항전할 것인가, 아니면 휴전을 제의할 것인가, 최악의 경우 항복할 것인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 정권이라야 수십만 명의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決死抗戰을 결단할 수 있을 것이다. 모택동이나 호지명 같은 동양의 공산주의자들은 民心 장악술에 뛰어나다. 선진국 문턱에 가 있는 한국에 강력한 반대 세력이 활동중이다. 1차세계대전은 화학자(독가스 개발)의 전쟁, 2차세계대전은 물리학자(원자폭탄 개발)의 전쟁, 월남전은 심리학자의 전쟁이었다는 말이 있다. 한반도의 상황은 월남전에 더 가깝다. 좌파정권 시절 누구를 도왔는가? 애국세력을 도왔던가, 반역세력을 도왔던가? |
보 구엔 지압 장군은 베트남을 지켜낸 베트남 영웅이다. 세계 최강 프랑스, 미국, 중국 군대를 차례로 물리치고 베트남의 독립을 지켰다. 그래서 붉은 나폴레옹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교사였고, 신문을 발행하던 언론인이었다. 이름은 방패를 뜻하는 지압 이다. 부모님이 외세의 공격을 막아내라는 의미로 지어주었다. 도대체 제대로 된 군사훈련을 받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전략의 귀재가 될 수 있을까? 별다른 지원이 없이 어떻게 프랑스 미국 같은 대국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
1등 원하면 베트남 지압 장군의 3不을 배워라
박 상훈
적이 원하는 시간·장소·방법 피해
강대국 프랑스와 미국 군대 격파
자신만의 방법으로 승부한 애플
공룡 IBM 누르고 1위에 올라
1950년대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 항쟁이 한참 격화되고 있었다. 베트민(Viet Minh·베트남독립동맹)은 험준한 산악의 지형적 이점을 활용해 북쪽 국경지대부터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프랑스는 베트민군을 척결하기 위해 북서부에 있는 디엔비엔푸를 1953년 말 점령했다. 디엔비엔푸는 라오스와 중국으로 통하는 보급로가 만나는 베트민의 숨통이었다.
프랑스는 이곳을 점령하면 게릴라전을 펴는 베트민이 반드시 대규모로 반격해 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디엔비엔푸는 200m 높이의 산들이 지름 3㎞의 작은 분지를 사방으로 둘러싼 천혜의 요새로, 베트민의 대공세를 효과적으로 격퇴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프랑스 공수부대는 분지 주변의 산등성이에 동서남북으로 포병대를 배치하고, 3개 사단 1만5000명의 정예 병력을 집결해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를 만들었다. 서방 언론은 이곳을 가리켜 '세계 제일의 걸작품'이라고 치켜세웠고, '인도차이나에서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며 프랑스의 승리를 예상했다.
1954년 3월 13일, 예상대로 베트민군이 디엔비엔푸를 공격해왔다. 하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프랑스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됐다. 수만 명의 베트민 군대가 가공할 화력으로 공격했고, 동쪽 요새가 하룻밤 새 점령당하면서 프랑스군은 순식간에 고립당했다. 베트민은 그때부터 프랑스군을 말려 죽이는 작전으로 갔다. 베트민의 방공 포화에 항공 보급선마저 끊기자, 프랑스는 55일 만에 항복했다. 이 전투의 패배로 프랑스는 결국 베트남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 전투를 지휘한 사람이 올해 100세가 된 살아있는 전쟁 영웅 보 구엔 지압(Vo Nguyen Giap·武元甲) 장군이다. 그는 프랑스군의 허를 찌르기 위해 최신 무기가 있어도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정찰을 피해 주로 밤에 무기와 병력을 이동시켰고, 디엔비엔푸에서는 땅굴을 파서 산등성이 바로 아래에다 수만 명의 병사를 주둔시켰다.
지압 장군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일궈냈고, 1979년 베트남을 침공한 중국을 격퇴할 때도 국방부장관으로 전투를 지휘했다. 이런 그를 나폴레옹보다 위대한 장군으로 평가하는 역사학자도 적지 않다. 나폴레옹이 주로 비슷한 나라와 싸워 이긴 반면, 지압 장군은 보잘것없는 국력으로 세계 최강대국을 잇달아 물리쳤기 때문이다.
강대국을 격파한 비결을 묻는 서방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았고, 적이 좋아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았으며, 적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것이 바로 '3불(不) 전략'이다.
그는 미군이 낮에 싸우기를 원하면 밤에 공격했고, 평지에서 싸우려고 하면 정글로 유인했고, 우월한 화력을 앞세워 전면전을 꾀하면 게릴라전으로 기습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르게 싸우라"는 것이다. 지압은 또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도 강조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미국과 전쟁을 치르면서 한 번도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미군을 쫓아내리라 굳게 믿었다. 그들은 미군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든 1965년에 이미 2000년까지 무려 35년간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르게 싸우고 이긴다는 믿음을 갖는다"는 이 두 가지 특징은 기업이 강력한 경쟁회사를 이기거나 선두업체를 추월한 전략에서도 공통으로 발견된다. 강한 상대를 이기려면 남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똑같은 방법으로 2등은 될 수 있을지언정 절대로 1등을 넘어설 수는 없다. 또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이 없으면 남다른 방법을 구사할 수 없다. '우리 주제에 어떻게 이런 방법을 쓸 수 있겠어''이건 글로벌기업에서나 할 수 있는 거야'라는 생각은 전략적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든다.
애플을 창업할 때 스티브 잡스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면서도 세상을 바꿀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런 확신이 있었기에 당시 벤처기업이었던 애플이 공룡기업인 IBM에 기죽지 않고 독특한 PC를 내놓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업계의 룰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이 결과가 바로 아이팟과 아이폰이다.
한국 기업은 전에 없는 경쟁 환경에 직면해 있다. 스마트폰이 휴대폰 산업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게임의 룰이 순식간에 뒤바뀌는 일이 벌어진다. 차곡차곡 쌓아 왔던 시장 지위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과거에는 선진기업을 좇아서 이만큼 성장했지만, 앞으로는 불가능하다.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는 선진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한다고 해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앞으로는 다르게 싸워야 한다. 독특한 자기 것을 만들어야 한다. 지압 장군의 3불 전략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다.
게릴라전을 펼치는 지압에게 미국의 장군들이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땅굴을 파고 있는가"라고 비아냥거렸다. 이에 대한 지압의 대답이 우리 기업에 절실한 때다. "전략이란 당신들은 못하고 우리만 하는 방법으로 싸우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들은 당신들 식으로 싸워라. 우리는 우리 식으로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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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땅굴을 파고 있는가?"
북한도 북베트남과 베트콩처럼 우리 식으로 싸우겠다고 하는 것이다. 국방백서에 분명히 북괴의 남침 땅굴이 스무 개 이상이라고 해 놓고도 찾지 않는 것 같은 나라. 그러면서 민간인들의 땅굴찾기 노력을 깔고 뭉개는 나라. 기계 좋다고 자랑하지를 않나, 좋은 의사 없는 병원에 기계만 있으면 병이 고쳐진다고 하는 것과 같다. 있다고 확신하고 찾는 것과 없다고 생각하고 찾는 것은 그 결과가 다르다. 천양지차다. 한 번 집안에서 물건 찾기 해봐라. 그게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영감 완전히 북한 삘이네 ^ ^, 사람 잡으려고 했던 통일, 안하니만 못했던 통일, 이른바 적화통일, 호지명 삘 낼려고 청산리 대첩마저 무시하면서 주재소 습격사건을 독립운동으로 과대 선전하는 의도는? 가짜 김일성을 진짜로 만들려고 하는데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김일성 진짜설을 퍼트리는 자들은 100% 빨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