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1849년 헌종이 후사없이 급서하자 순조비 순원왕후 김씨의 명으로 `강화도령' 원범(元範)이 즉위하였
다. 한때 풍양조씨에게 넘어간 정권은 철종장황제(이하 철종이라 함)가 김문근의 딸을 왕비로 맞음으로
인해 다시 안동김씨에게 돌아갔다. 한편 철종의 치세기간에는 유난히 자연재해가 많아 삼정문란으로 인
해 곤란을 겪던 백성들을 극도의 상황으로 내몰았다. 철종의 애민정신에 의한 많은 구휼정책에도 불구
하고 세도가문에 의해 임명된 중앙과 지방의 관료들은 탐학만을 일삼았다. 이 시기에 오면 민중들은 19
세기 초의 항조(抗租) 투쟁에서 이른바 `민란'의 형태로 폭발하게 된다. 1862년 2월에 경상도 진주를 중
심으로 관리의 혹심한 수탈에 대항해서 일어난 민란은 곧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세도정권의 수탈로 인해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을 잃은 민심은 서학에 대항하여 생긴 동학(東學)에서
안식처를 찾게 되었다. 1894년 농민전쟁과 관계가 깊은 동학이 1860년 최제우에 의해 창도되었다. 프랑
스, 미국, 영국 등의 이양선이 출몰하는 등 외부세계가 접근하여 오고, 정부의 계속된 탄압에도 불구하
고 교세를 꾸준히 확대시켜 나가는 천주교 등이 대외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와 같이 철종시대는 안동김씨에 의한 수탈적 세도정국의 말기였고, 전국에 걸친 민란의 발생 시기
였으며, 대외적으로는 천주교가 유입되고 민족종교라 할 수 있는 동학이 창도된 격변의 시기였다.
조선왕조의 제25대 임금인 철종은 초명이 원범(元範)이고 즉위한 후 변(?)으로 개명하였다. 자(字)는
도승(道升)이고, 호는 대용재(大勇齋)이다. 그는 정조의 아우인 은언군(恩彦君)의 손자이며, 전계대원군
(全溪大院君)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純元王后)의 명으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생
모는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인데 영의정에 추증된 염성화(廉成化)의 딸이다.
철종은 1831년(순조 31) 6월 17일 오시(午時)에 경행방(慶幸坊)의 사제(私第)에서 태어났다. 이날 순
원왕후의 꿈속에 아버지인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이 나타나서 한 어린아이를 바치면
서 그 아이를 잘 기르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왕비는 아무래도 이상하게 생각되어 그
일을 기록하여 두었는데 철종이 즉위할 때 보니 그 모습이 과연 꿈속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거기다가
늙은 궁인(宮人)들이 보니 순조(純祖)의 모습과도 매우 닮았다고 하였다.
2, 3세 때부터 효우가 뛰어나서 어떤 사람이 과일을 바치는 경우가 있으면 반드시 먼저 아버지께 올렸
고, 남은 것이 있으면 큰 형인 회평군(懷平君)과 둘째 형인 영평군(永平君)에게 올린 뒤에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