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록(征蠻錄)
종 목 보물 제880호
수 량 2권2책
지 정 일 1986.10.15
소 유 자 이진우
관 리 자 국립진주박물관
소 재 지 경북 의성군 (국립진주박물관 보관)
‘정만록’은 조선 선조 때 경상감사의 막하 참모였던 효사재(孝思齋) 이탁영(李擢英, 1541∼1610)의 일기로 건(乾)·곤(坤)의 순서를 단 2권 2책으로 되어 있다. 이탁영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 관찰사)였던 김수(金睟)의 막하로 들어가 참모로 활동했으며, 1593년에는 학봉 김성일의 막하에서 전쟁의 여러 전술을 건의하여 승리에 공헌한 바가 많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나라에서 내리는 상을 굳이 사양하였고, 후에 중추부사에 증직되었다. 그의 생가는 의성읍 상리리 579번지, 현재 그를 기리는 사당인 충효사가 있는 옆 자리에 1962년 복원되었다.
이 책은 1592∼1598년까지의 일기로 건권은 표지 뒷면에 임진왜란 당시 참전한 영상 이하 여러 관리들의 좌목(座目:자리의 차례를 적은 목록)이 있고, 다음에 ‘임진변생후일록’이라는 제목 아래에 그 날 그 날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적고 있다. 다만 임진기사는 날마다 기록하였고, 1593년에서 1598년까지는 연월중심으로 중요한 사건만 적었다.
곤권은 임진왜란의 시작과 하루하루의 기록, 통문 등을 기록하게 된 이유를 적고, 이어 7년 동안에 있었던 중요한 교서, 통문, 격문 등을 고스란히 싣고 있다.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시작된 날로부터 시작하여 그해 연말까지는 약 10일간 기록하지 아니한 것을 제외하면 완전하게 적혀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선조 34년(1601)에 도체찰사(都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이 경상감사(慶尙監司) 이시발(李時發)을 시켜 도내(道內)의 사적을 채집케 하였는데 이 때 이탁영은 이 일록을 재정리하여 제출하였다. 이를 어람(御覽)한 선조가 정만록(征蠻錄)이라 명명하여 계하(啓下)하였다. 이 책은 임진왜란 연구의 매우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며, ‘정만록’이라는 책이름이 선조임금이 정해준 것이라는 점에서 자료로서의 가치가 더해진다.
정만록은 선조조 당시에 이미 친필 원고본 이외에 적어도 2질의 사본이 작성되었으리라 보인다. 본가에 소장한 1질, 경상감영에 수장한 1질, 중앙 관청인 수찬청 수장본 1질이 그것이다. 그 후에 수찬청 수장본 1질은 본가로 환송되었는데 이를 효사재의 후손들은 계하정만록이라 하였다. 이에 본가에서는 본래 정만록 1질과 계하정만록 1질 등 모두 2질을 보관해오고 있었다. 현재는 원고본 1질만이 국립진주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데, 민족의 독립 운동 시기에 정만록을 일제 경찰에 압류당하였다가 반환되는 과정에서 2질 중 1질이 유실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광복이후, 1959년 효사재의 후손들이 정만록의 내용을 개편하여 「효사재선생정만록」이라는 제명으로 6권 3책의 석판본으로 간행하였으나 원본 내용의 첨삭이 심했다. 1986년 10월 보물 제 880호로 지정된 된 그 이듬해에 의성문화원에서 4×6배판 크기의 활자본, 213쪽으로 간행한 바 있다. 1992년 의성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남전(藍田) 이호응(李虎應) 역주로 신국판 485쪽, 500부가 간행되었다가 2002년 12월에 복간되었다. 2001년에는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임진왜란총서에 싣기도 하였다.
정만록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