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목) 둘 째 날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일행은 중국 현지 안내인 2명이 추가 되었다. 한 분은 상해시 양선생님이고 또 한 분은 정선생님이다. 정선생님은 상해 국제 공사 외교부에 소속되어 있는 중국 가이드이시다. 나의 일상은 아침 일찍 5:40부터 시작된다. 주변은 나의 파트너인 신대근군이다. 국민대학교에 재학 중이며 국민대학교 설립자이신 신익희선생님에 대한 자료 수집 차 대학 총장님의 추천을 받아 이번 여행에 이지영양과 동행하였다. 신군은 나와 같이 의정부 출신으로 의정부 고교를 졸업하고 양주시 백석읍에 거주하고 있어 아주 반가웠다. 신군과 같이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호텔 주변에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되어있으며 5층 정도되는 아파트로 이루어져있다. 아파트에는 에어컨이 약 80%설치되어 있으며 특히 LG에어컨이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홍콩에서 보아온 베란다에 긴 막대기로 이용하여 옷들을 걸어놓았다. 갓 갓이 옷들로 장대에 매달려 있다. 겉옷뿐만 아니라 속옷까지 스스럼 없이 매달려 있는 것이 신기해 보였다. 서둘러 출근하는 모습이 우리네에 모습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서서히 자본주의로 개방되어 가는 중국의 모습인 것 같다. 우리 일행 중 이신성 부산대학교 교수님이 이 곳에서 1년간 교환교수로 와 있었다고 한다. 마침 제자들이 2명 일찍 찾아왔다. 7시에 만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아름다웠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로 8시에 호변촌으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첫 날 일정 중 총영사관 만찬으로 항저우에 저녁 일정을 소화 못해 급히 서둘렀다. 항저우에는 윤봉길의사 사건으로 잠시 임시청사가 머물렀었다. 항저우시는 중국 저장성 성도이며 인구가 180만명 정도 되며 시후호를 끼고 있어 상당히 아름다운 도시이다. 남송 시대 수도였으며 난징조약으로 상해가 개방되어 상해가 중심이 되어 변경되었다. 그리고 룽징차로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녹차의 생산지이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도 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으로 오고 있다. 그리고 시후호는 중국 10대 명승지 중 하나이며 아름다운 호수를 자랑하고 있으며 소동파가 줄지어 시를 읊었던 것이며 특히 호수 중앙에 있는 삼담인월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호수 안에 있는 섬으로 누각과 정자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고 있어 시후호 제1의 명소로 꼽힌다. 그러나 우리는 아쉽게도 시후호를 지나쳐야 한다. 우리 순례단은 임정에 발자취를 쫓는 일정이 벅차 주변에 명소도 관광할 수 없는 빠듯한 일정이다. 한량없이 즐길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우리는 아침이 되니 항저우시에 공보실 관계자가 미리 우리를 마중 나와 있다. 우리는 현지 가이드와 같이 호변촌으로 이동하였다. 호변촌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현지에서 거주하고 있는 분에 말씀도 중국어 통역을 통해 들었다. 모든 건물은 지은 지가 오래돼 상당히 낡았으며 거의 쓰러져 가는 수준에 건물이었다. 시 관계자가 개 보수 예정이라 출입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임시정부요인 거주지로 이동하였다. 우리 순례단은 플랜카드를 앞세우고 10여분 거리로 이동하였다. 중국인들이 보고 내용을 본다. 플랜카드에는 한글과 한자로 내용이 있으나 내용은 일본 영사관에 전달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어 금방 알아본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단체 소속인지 잘 몰라 궁금해한다. 다음에는 전부 한자로 표기한 플랜카드가 필요하다. 중국공안에서 플랜카드를 보고 반일데모로 시국이 어려워 플랜카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단다.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청사로 이동 하였다. 이 청사는 인화로 22호이며 상당히 낡은 건물로 되어있고 주변에는 음식점과 일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역시 건물은 출입할 수 없어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을 방문하여 내용을 보았다. 건물 구조는 전실, 거실, 부엌과 다락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실은 간단한 구조로 되어있으며 거실에는 침대와 가재도구가 있었다. 식탁, 화장대, 옷장 등이 무질서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부엌에는 간단한 조리기구가 설치되어 있으며 부엌 위에는 다락방으로 이루어져있다. 상당히 건물이 낡아 초라한 모습이 그지없다. 청사를 들르고 밖으로 나오니 공안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아마 시민의 신고로 공안원들이 출동한 것 같다. 우리는 호변촌 청사방문을 마치고 자싱 지역으로 09:30에 출발하였다. 그리고 하이옌시에 11:30에 도착하여 재청 별장으로 이동하였다. 자싱시는 저장성 북부에 있는 도시로 350만의 인구이다. 자싱시 일대는 운하가 잘 발달하여 호수와 강들이 모두 연결되어 운영하고 있다. 자싱에는 김구선생님이 윤봉길 의사 의거 후 일제에 검거를 피하기 위하여 피난하였다. 중국인 추푸청의 도움을 받아 그의 며느리를 동반하여 며느리 친정인 하이옌 현의 남북호가 보이는 재청 별장으로 피난하였다. 그리고 최근에 중국작가 샤넨성은 백범과 처녀 뱃사공에 관한 자싱 피난길을 소설화하여 “선월”을 출간하였다. 김구선생님의 피난처였던 별장은 남북호가 바라보이는 멋진 호수에 위치하고 있었다. 피난처는 입구에 안내 판이 잘 설치되어 잇다. 현대적인 글씨와 옛 나무로 잘 만들어져 있다. 들어가는 입구는 도로에서 50m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잘 가꾸어져 있었다. 선생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현대적인 시설물로 김구 전시관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 관계자도 상주하고 있었다. 안에는 김구 선생님이 거주하고 있던 침실, 응접실, 책상 등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부엌도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수고하시는 관계자 분에게 김인수 단장이 사례금을 전달 하였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은 현대적으로 잘 꾸며져 있으며 식당과 모텔을 겸하고 있었다. 주변에 환경도 좋아 잘 정리되어 있어 보기가 좋았다. 그리고 점심을 마친 뒤에 김구 선생님이 재청 별장으로 피난 올 때 운하에서 배에서 내려 걸어온 길을 걷기로 하였다. 고갯마루 턱에 올라가니 아름다운 정자로 잘 꾸며놨다. 그 고갯마루에는 정자와 태극무늬를 이용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한글로 김구선생님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우리도 그 길을 걸으며 김구 선생님의 어려운 피난길을 생각해보았다. 이 어려운 고난의 길을 한 김구선생님의 착잡한 심정이 되살아 난 듯 하다. 조국을 잃고 일제의 경찰의 감시망을 피하며 어려운 발걸음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일제의 침략 야욕과 무너져 가는 중국……….. 우리의 지금은 너무나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한다. 아마 이동한 거리는 4km정도 되지 않을까 한다. 지금은 정자 옆에는 차 밭에서 햇차를 따느라 한창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차 밭으로 이루어져있다. 말 없이 차를 따느라고 야단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하이옌시가 개발되어 신흥 주택가로 변하고 있다. 재청빌딩은 아름다운 호숫가 이어서 주변에 별장들이 많다. 저 멀리 산에는 팔각정 누각도 보인다. 우리는 별장을 뒤로하고 김구 선생님 피난처로 옮겼다. 이 건물은 자싱시 2005년 5월에 새로 단장해 놓았다. 건물 안에는 김구선생님을 비롯하여 우리 독립운동가에 거실 등이 잘 꾸며져 있었다. 건물은 2층으로 호숫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들어가는 정문에는 김구 선생님의 흉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우리는 선생님과 독립운동가들을 위하여 잠시 묵념을 올렸다. 주변에는 새로 개발되느냐고 한 창 개발 붐이 일고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임시정부요원 주거장소로 옮겼다. 바로 300m 떨어져 있는 이 건물에는 제일 끝 건물로서 메이완지에 76호이다. 이 별장은 추푸청의 수양아들 별채였다. 2층에서 1층으로 비상구가 설치되어 주애보의 배를 이용하여 호수로 피신 할 수 있었다. 건물을 살펴보니 바로 뒤로 이동하면은 배가 한 척 있었다. 배는 길이가 5m 폭이 1m 50cm 정도되는 작은 목선으로 중앙에는 햇빛을 피할 수 있도록 가리개로 가려져 있었다. 일경들의 검거를 피하기 위하여 김구 선생님의 탈출로 이용하는 작은 목선이었다. 윤의사 의거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기 전에 김구 선생님은 자신이 배후였다고 공개하였다. 그리하여 김구 선생님의 검거에 현상금을 중국에 3개 성을 살 수 있는 커다란 금액을 걸었다고 한다. 그렇게 일경들이 검거에 나섰으니 김구 선생님의 피난은 더욱 힘들었을 것 같다. 김구 선생님의 피난에는 중국 정부에 헌신적인 노력과 중국민들의 사랑으로 도움이 커서 무사하였다. 그러나 하이옌도 영원한 피난처가 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메이완지를 뒤로하고 남호(호수)를 관람하였다. 이 곳에서는 임시정부 관계자분 들이 일경을 피해서 수시로 임정국무회의가 열렸던 것이다. 그리고 호수를 관람한 뒤 자싱시 만찬장 다이아몬드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에는 자싱시 관계자분과 추부청 손녀도 와있었다. 이 다이아몬드 홀에는 다양한 음식으로 제법 고급 음식점다웠다. 저녁 만찬에는 시 관계자 분들의 환영 인사와 중국인들의 도움에 의하여 축배를 제의 하였다. 그리고 내 외빈에 대한 소개 말씀도 있었다. 그리고 관계자 분들에게 성금도 전달 하였으며 나 역시도 친일파 청산에 대하여 “친일파! 청산!”하고 축배 제의를 하였다. 저녁 만찬은 즐거운 분위기로 끝이 났다. 그리고 저녁 늦게 호텔 내에 있는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여 사진 자료를 송부 하였다. 1시간 이용료는 30원 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호텔 내에 TV에서는 우리 방송 KBS1이 위성으로 방영되고 있어 참으로 멋졌다. 그리고 어제 우리가 방문한 일본 총영사관에 관한 뉴스가 3개 TV 9시 뉴스에 소개가 되었다. 우리가 일본영사관에 방문할 때에는 TV카메라가 없었는데 9시 뉴스에 방영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연합신문 특파원이 방송사에 소개를 한 것 같다. 그리하여 우리 일행들은 깜짝 놀랐다. 자세한 것은 귀국 후 알아 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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