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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승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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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덕스럽게 툭 자른 나무를 기둥이라고 세워 놓은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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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승열 |
| 묘적사를 생각하면 언제나 그 정갈함이 먼저 떠오른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늘 그만한 높이로 쌓여 있는 요사채 뒤 편의 장작, 갓 쓴 듯 싸리비질 자국이 선명한 마당, 승방 댓돌 아래 졸졸졸 흐르는 맑은 도랑물. 천연덕스럽게 나무를 뚝뚝 분질러 기둥이라 우기며 척 기와를 얹어 놓은 곳!
금강산에서 '사면기둥 붉게 타!' '석양 행객 시장타!' '네 절 인심 고약타!'며 비아냥거렸던 김삿갓이 묘적사에 들르면 무어라고 말할까?
진정 감탄해 마지 않으며 '그 절 기둥 요상타!'라고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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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앞의 아담한 칠층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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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승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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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지도 않은 마당에 당당히 자리잡은 은행나무 줄기에도 이끼가 가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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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승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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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나무들을 도끼로 툭툭 잘라다 얼기설기 황토를 바르고 기왓장을 얹으면 건물이 한동 완성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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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승열 |
| 묘적사는 1300여년 전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께서 창건하여 조선 세종 때 학열(學悅)이 중창하여 180여칸의 웅장한 불사를 이뤘으나 임진왜란으로 전 사찰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사적기(寺跡記)에 의하면 승려들의 무과 시험을 위한 훈련장으로,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께서 승군을 훈련시키는 장소로 쓰였으며, 왕이 비밀 명령으로 보낸 무사들을 승려로 가장해 무예를 가르치는 도량이었다고 한다.
1895년까지 폐사지로 남아 있던 이곳에 산신각을 중건하고 산왕신상(山王神像)을 모시고 중건한 이가 규오(圭旿) 스님. 또 다시 1969년 화재로 모든 전각이 소실된 것을 1971년 자신(慈信) 스님이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적기를 읽다보니 픽하고 웃음이 번진다. 이곳도 어김없이 원효가 등장한다. 여느 절집을 가든 사적기에 원효나 의상이 등장하지 않는 곳이 별반 없다. '나 무섭지'라는 표정으로 왕방울만한 눈을 부라리며 한껏 위엄을 부리는 동구 밖 장승을 만난 것 같이 반갑고 친숙하다. 경향 각지 구석 구석 창건에 관여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참으로 공사다망했던 두 스님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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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 입구 연못. 바람결에 흩날리던 벚꽃이 가득하다. 벚꽃이 걷히면 왕올챙이와 소금쟁이와 수련이 이곳을 가득 메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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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승열 |
|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 진행되던 시절. 천박할지라도 크고 화려한 것만 좇던 70년대에 이처럼 단아하고 품위 있게 절집을 꾸민 스님네들의 안목에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갓 30년이 지난 건물도 이 시대의 모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보여준다. 절집을 감싸고 있는 은밀하고 묘한 분위기가 절 이름 묘적(妙寂)과 딱 어울린다.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승려로 가장한 채 심신을 닦고 무예를 익혔을 나무 울타리 너머 공터, 하늘을 찌를 듯한 전나무가 한 치 하늘도 보여주지 않는 빽빽한 전나무 숲, 마당 가장자리에 도랑을 쳐 물길을 잡아 절집 어디에서나 들리는 물소리, 넉넉한 물로 인해 언제나 촉촉하게 이끼가 자라는 마당, 넓지도 않은 터에 당당하게 자리 잡은 은행나무 두 그루.
울퉁불퉁한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앉으면 나도 그대로 풍경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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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우소 가는 흙길에는 언제나 싸리비 자국이 가지런히 패어 있다. 싸리 담장 너머 공터에서 화살촉이 자주 발굴되었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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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승열 |
| 졸졸졸 흐르는 도랑 물을 따라 절 입구 연못으로 발길을 돌린다. 담장 밑을 지나 마당 가장 자리를 돈 물길 한 갈래가 이곳 연못에 모인다. 이 넉넉한 물들이 한 여름 절 마당을 온통 푸른 이끼로 덮으며 절의 그윽한 맛을 더해준다.
연못 입구 수로에 때늦은 벚꽃잎이 눈송이처럼 날리며 수북히 쌓인다. 꽃이 지고 난 자리를 올챙이가, 소금쟁이가, 수련꽃이 한여름 가득 채우리라.
언제나 갓 쓴 듯 선명한 자국이 나 있는 흙마당, 한 치의 오차도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절제된 곳에서 흐트러져 부유하는 꽃잎을 보니 사람냄새가 나는 듯해 아주 반갑다.
여느 저자 거리와 다를 바 없는 조금만 들여다보면 남루한 일상이 그곳에도 존재하리라. 지글지글한 일상이 없는 생활은 먼지와 같다고 만해 스님은 말했다. 묘적사의 적막함, 단아함이 돋보이는 것은 남루하고 때론 벗어나고 싶지만 언제나 돌아갈 일상이 존재하기 때문일 거다.
그림자가 더욱 깊게 절마당을 덮고 기둥 너머로 부서지던 햇살이 공중에서 잠시 빛을 바라다 사그라진다. 초사흘을 갓 넘겼을 초생달이 점점 또렷해지고 밤 냄새와 함께 온 푸름이 군청색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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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강, 초록의 촌스런 연등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고 방문이 환히 밝혀졌다. 기둥에 앉아 밤 냄새를 맡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초승달이 벌써 기울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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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승열
출처 오마이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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