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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긴장이 되었다. 오늘이 “드디어 가는 날 이구나.” 하고 생각이 들고 내가 외국인이 된다는 생각에 두려움 반 호기심 반 이였다. 인천공황에 도착하고 게이트를 들어가는데 작년 수학여행 때문인지 비행기가 낯설지 않았다. 한 번더 탔을 뿐인데 긴장의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비행기가 뜨고 창밖에 일본땅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고도의 긴장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직접 일본이라는 나라가 직접 눈의 들어오니 낯설기도 하고 긴장이 밀려왔다. 드디어 나리타 공황에 도착! 간판이 모두 일본어로 되어있고 카메라 검색대로 통화하면서 아직 일본이라는 나라가 몸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황을 나가서부터는 작년의 갔던 선배의 이야기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쓰레기가 눈에 보이지 않았고 담배꽁초 하나 보이지 않았다. 흡연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흡연구역에서 피고 그 자리에서 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일본 로타리안 분들이 준비해주신 버스의 탄 뒤 일본의 집들을 구경했다. 지진 때문인지 집들이 낮은 편 이었고 고층건물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어느 호텔에 도착하여 일본 로타리 의원님들과 대면식 및 환영회를 갖게 되었다. 서툰 일본,한국 말로 인사하는걸 보면서 친근감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다시한번의 긴장의 시간이 찾아왔는데 그것은 홈스테이지를 배정하는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한명씩 한명씩 불려나가고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려졌다. 반갑게 나와 진홍이를 웃으면서 반겨주시며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나는 혼자가 아니였다. 또하나 우리가 행운인것은 우리에게 통역사분이 계셨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편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식식장으로 갔다. 들어가자마자 직원들 모두가 인사를 해주었고 너무나 친철하게 우리를 테이블로 안내해주셨다. 메뉴를 보자마자 고민되었다. 메뉴가 너무너무 많았고 맛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일본이니까 초밥과 소바를 먹기로 했다. 그밖에 반찬 튀김과 달걀찜이 같이 나왔다. 원래 나는 초밥을 좋아하는편이 아니 였지만 이번에 먹은 초밥은 정말 맛있었다. 정말 일본초밥이 유명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소바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음식을 먹다가 놀란 것은 달걀찜 이였다. 한국은 보통 새우젓을 넣는데 일본일식 식당의 달걀찜은 새우가 통째로 들어가 있고 은행과 버섯,닭고기 까지 들어가 있었다. 즐겁게 식사를와이야기를 하고 기념사진까지 찍은 뒤 우리는 홈스테이지로 향했다. 나는 홈스테이지로 가면서 긴장을 늦추면 안된 다고 생각했다. 자칫 잘못행동하면 한국을 욕보이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홈스테이를 묶는 곳은 그쪽 주인아저씨의 어머니 집이였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공손하고 진철하게 우리를 맞아주셨고 ‘곤방와’ 라는 인사가 오고갔다. 티비에서만 봤던 다다미와 고타츠를 볼 수 있었다. 그 분들은 ‘스미마생, 아리갓또 고자이마스’ 등을 말씀하실때마다 사용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주시는 모습이 눈의 보였다. 통역사분이 가시고 우리의 방에 와서 이부자리를 폈다. 얼마 뒤 주인집 아저씨의 누나께서 오셨다. 그 분은 한국어를 배우는 책을 사오셔서 우리에게 물어보시고 서로 답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또 얼마 뒤 아저씨의 아들 히로유키가 테니스 클럽에서 돌아왔다. 우리는 한국 군대와 교육,문화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시단은 깊어갔다. 아저씨와 아저씨의 누나 그리고 부인분과 히로유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추억을 쌓았다. 그러다가 한국라면 이야기가 나오고 아저씨가 일본라면을 먹자고 하셨다. 조금 걱정을 했지만 거절할 수 없었고, 솔직히 먹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저씨의 벤츠를 타로 유명한 라면집을 갔다. 그 집에서 가장 유명한 라면은 이미 다 나간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일반 라면을 시켰다. 라면이 나왔는데 라면이 하얗고 딱봐도 느끼해 보였다. 한입먹으니까 곰탕맛이 났다. 하지만 계속먹다 보니 느끼해서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나는 공손히 ‘스미마생’ 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그 분들은 괜찮다면서 아무 내색안하셨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 아저씨와 기념사진을 찍고 편의점에 들려서 콜라를 사왔다. 우리가 콜라를 좋아한다니까 아저씨께서 3일치 콜라를 사주셨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벌써 하루가 지나갔다. 우리 홈스테이지 분들께서 친절하게 해주셔서 정이 많이 들것같다. 앞으로 남은 시간 파이팅!
11:50분
1월 10일
오늘은 아침 일찍 씻고 어른들이 깨어나길 기달리면서 어제 하루를 생각했다. 하루 지냈을 뿐 인데 정말 편했다. 어른들이 일어나시고 ‘오하요’ 이라고 인사를 나눈 뒤 아침식사를 위해 테이블에 앉았다. 이분들은 녹차를 즐겨 마시고 또한 꼼꼼하신 분들이었다. 밥과 반찬 디져트 까지 모두 챙겨주셨다. 식사 중에 그 분들은 우리에게 낫토를 주셨고 나는 먹다가 버리는 바에야 안먹는 것이 낳겠다고 생각했기에 공손히 ‘스마마생’ 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진홍이는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일본인 같았다. 8:30분에 로타리 의원님(사이토상)이 도착하시고 인사를 주고받으며 역으로 이동했다. 아침에 아게오 거리는 무척 화창했다. 일요일아침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각각 자기의 클럽활동을 하고 있었다. 시간을 정말 잘 쓰는 것 같다. 역에 도착하고 오늘 우리의 관광가이드를 해주실 하정일형이 인사로 ‘오하요’를 건네셨고 우리도 인사를 했다. 처음에는 한국말을 잘 못하실 것 같았는데 말을 하다보니 한국인 맞다! 우리는 오후6:00까지 아게오 역으로 돌아올 것으로 하고 전철을 탔다. 처음에는 모든게 신기했다. 구경을 열심히 하는데 자세히 전철안을 둘러보니 전화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본에서는 전철안에서 전화를 하지 않은단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갈 때나 올라갈 때 왼쪽으로 줄을서고 오른쪽으로 다니는 것이 철저하게 지켜졌다. 우리는 일본에 예절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긴 전철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드디어 도쿄타워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일본어가 지나가고 다시한번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쿄타워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래도 그 많은 사람중에 새치기하는 사람이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도 줄을서서 엘리베이터를 탄 뒤 위로위로 올라갔다. 올라가니 전부다 보였다. 희미하지만 디즈니 랜드까지 볼 수 있었다. 꼭대기 까지는 1시간이 더 걸린다고 해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간단한 기념품을 사고 우리는 다시 전철을 타야했다. 형은 우리나라의 거의 안오셔서 지금의 한국의 대해 질문을 많이 하시고 땅은 비록 일본이라는 나라지만 한국인으로서 한국이야기는 즐거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하라짓쿠 거리가 보였다. 역시 책에 나올만한 거리였다. 유명한 브랜드도 많이 있었고 상점,음식점 등이 눈길을 끌었다. 더욱더 눈길이 가는 것은 일본인들의 의상이였다. 정말 우리나라 보다 개성이 강했다. 머리부터 발까지 개성으로 가득하다고 말할정도였다. 우리는 음식점을 찾다가 포기상태에 이르렀다.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지역 아이들을 만났다. 우리는 이산가족을 만나는 것처럼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홈스테이지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중을 기약하며 헤어져야 했다. 우리는 간신히 한국음식점을 찾았고 가벼운 식사를 한 뒤 다시 걷기 시작해서 여러 가게와 옷, 건물 등을 관광했다. 개성 넘치는 거리였다. 그 다음거리는 신주끄 거리였다. 사람이 도쿄타워의 10배는 더 많이 있었다. 조그마한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과 큰 건물들이 모여있는 것들까지 어른아이 할거없이 정말 활기찬 거리였다. 거기서도 다른 지역의 아이들을 만났고 다시 헤어졌다. 가게들을 들르면서 디자인, 다양성, 예절, 물건의 창의성을 감상했다. 기념품을 사면서 일본 물가가 비싸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모든 관광이 끝나고 또 전철을 타니 잠이 몰려와서 잠시 졸았다가 깼다가를 반복했다. 아게오 역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오늘 저녁 환영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호텔에 들어갔더니 우리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대접인것 같았다. 정성을 다해 주셨고 우리도 정신을 차려서 자기소개와 한국과 일본에 대한 문화 교류를 하였다. 정말 한분 한분 우리에게 예의를 갖춰 주시면서 우리의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다 먹은 뒤 기념품과 기념 찰영을 한 뒤에 돌아와서 히로상의 딸 카오루코짱과 히로유키군과 닌텐도윙 게임을 같이 하였고, 한국 라면을 먹으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한국 라면을 잘 드시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즐거웠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간것 같다. 내일도 알차고 보람된 시간을 보내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1월 11일
세이진 호이(명절) 이날은 일본에서 큰 행사인가 보다. 20세 되는 남/여자 분들을 축하해주고 선물도 주고 기모노를 입는 날이다. 그래서 오늘은 밖에 나가는 것이 훨씬 기대가 됐다. 오늘 아침은 참치와 달걀말이 등등 우리의 입맛에 조절하여 차려주셨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사이도상이 오셔서 밖으로 출발! 너무 예쁘고 멋진 기모노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이쪽 지역 로타리안 회장님께서 기모노를 입은 여자분과 기념촬영을 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으로 왔던 호텔로 가서 환영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작년에 만났던 신도오 요시아가 인사를 해주었다. 매우 반가웠고 서로 안부를 물으면서 친목은 더욱더 두터워졌다. 우리 지역들 아이들과 만나고 서로의 홈스테이지의 평안함과 느낀점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환영식이 시작되고 웃어른들의 인사가 끝나고 장기자랑 시간이 왔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가야금과 같은 것으로 멋진 연주를 해 주었다. 역시 준비가 철저한 나라여서 틀리는 것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장궁을 보는 것과 멋진 단체댄스까지 너무 즐거운 시간이였다. 투지댄스는 일본의 개성을 한번 더 일깨워 주는 춤이였다. 그다음 드디어 우리 한국의 시간이 오고 한명씩 준비한 자랑을 선보이고 평소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서 일본사람들도 만족하는 모습이였다. 드디어 우리 안산∙화성 지역의 ‘sorry sorry’ 춤이 시작되고 최선을 다하였다. 긴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동작을 무사히 하나씩 잘 넘기고 마지막 동작이 끝났다. 박수소리가 엄청 컸다.요시아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제일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연습한 보람이 있었고 덕분에 4층홀 교류회 시간에 사진을 진짜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짧은 교류회가 RMx나고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했다. 1시간뿐 이였지만 우리의 추억은 가슴 깊숙이 간직될 것 이다. 나와 진홍이는 아게오 고등학교 학생들과 아게오 역 까지 같이 왔다. 여러 가지 서로에 대해 물어보고 웃으면서 친근해졌다. 시간이 너무 빨리갔다. 일본인들은 우리의 행동에 대해 기쁨의 미소를 지어주었고 우리도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시간도 빨리 흘러가는 듯 했다. 우리는 다시 돌아와서 샤브샤브를 먹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차려주시니까 너무 감사해서 도우려고 했지만 사양하셨다. 매우 맛있었다. 그 국물의 우동까지 마지막으로 먹으니 매일 밥을 먹을 때 마다 풀코스로 먹는 것 같다.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가라오께(노래방)을 갔다. 이곳의 마지막 밤이라 그런지 매우 슬펐지만 웃으면서 즐겁게 행동했다. 노래방은 음식점과 마찬가지였다. 음식과 술 등등 안파는 것이 없었다. 나는 한국노래를 부르고 홈스테이지 가족들은 일본노래를 부르면서 정은 더욱더 깊어졌다. 우리는 오다가 마트를 들렀다. 우리는 이미 홈스테이지 가족들에게 선물을 받은 상태였지만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라고 하셨다.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는 돈으로 살 생각이었지만 홈스테이지 가족분들은 괜찮다고 하시면서 대신 돈을 내주셨다. 우리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다른 홈스테이지 집으로 가게 되지만 거기서나 여기서나 최선
을 다하며 일본을 체험하겠다.
1월 12일
오늘은 히로상의 집에서 나오는 날이다. 이제 막 적응하려고 하는데 헤어져서 너무도 아쉬웠다. 그래도 슬픈 기색을 안하시고 웃는 모습으로 보내주셔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선물을 너무 많이 주셔서 주는 것 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았다. 아쉬운 이별을 마치고 우리는 사이토상의 집에 짐을 잠시 맡기고 호텔로 가서 디즈니랜드로 갈 준비를 했다. 어제도 만난 친구들이지만 역시나 안반가울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버스를 타고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맨 처음에는 ‘커봐야 서울랜드 정도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생각은 100% 틀렸다. 규모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건물 하나에서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야말로 동화속에서 지내는 듯 했다. 캐릭터들의 코스프레와 일본학생과 기념촬영 등 너무도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아쉬운 작별을 한 뒤 나와 진홍이는 새로운 홈스테이지를 갔다. 스마지리상은 우리의 새로운 홈스테이지의 아버지이시다. 치과선생님이신데 너무도 젊으시고 잘생기셔서 깜짝 놀랬다. 부인과 아이들도 너무 즐겁게 맞이해주셔서 너무도 감사했다. 우리는 서로의 대해 물으면서 친목을 쌓았고 저녁으로 버섯전골을 먹으면서 더욱더 친근해졌다. 이틀밖에 안남았다는 것이 무척 아쉽지만 내일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최선을 다해 최대한 웃음을 드려야 겠다.
1월 13일
오늘은 일본의 유명한 절과 가옥들이 있는곳으로 관광을했다. 역시나 그곳에는 쓰레기가 보이지 않았다. 가옥들이 있는 거리에는 전깃줄을 볼 수 없었는데 통역사분께서는 그 줄이 지하에 있다고 하셨다. 정말 딱 봐도 오래된 건물 뿐이었고 우체국도 볼 수 있었다. 전통과자를 전문적으로 파는 거리도 있었다. 통역사분께서 우리를 위해 과자 몇몇을 사주셨다. 너무 받는거 같아서 죄송했다. 그래서 더욱더 활기찬 모습으로 사진도 찍고 질문도 많이했다. 그렇게 여러군데를 다니면서 우리는 서서히 아게오 고등학교를 견학할 준비를 했다. 예상외로 시간이 촉박해지자 우리는 덴부라(덮밥)를 먹었다. 숟가락이 없어서 불편하긴 했지만 너무 맛있었다. 사이토상은 우리가 너무 급하게 먹은게 아니냐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평소스피드였다. 맛을 좀 더 음미못하게 조금 아쉬웠을 뿐 이다. 우리는 그렇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학교로 갔다. 우리는 먼저 1가지의 수업을 각각 다른 반에서 들어야 했다. 나는 수학 진홍이는 역사시간 이였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인사를 했고 거기에 있는 학생들도 처음엔 의아해 했지만 어느새 금방친해지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쉬는 시간이라 금방 수업 시간이 찾아왔다. 그런데 거기 고2학생들의 수학은 우리가 중학교때 배우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천천히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교육이 얼마나 강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아게오 로타리클럽 학생들과 환영회를 하면서 우리는 친목을 다져갔고 여러 클럽활동을 돌아보면서 일본 클럽활동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 우리는 라운드1이라는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거기는 건물 자체가 운동경기장과 레스토랑,오락실,노래방 등 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자유이용권만 있으면 모두 누릴 수 있었다. 우리는 밥먹을 새도 없이 놀았다. 사격,농구,야구 등등 열심히 놀고 마지막으로 스티커 사진도 찍었다. 마지막으로 헤어질때가 되니 너무나 아쉬웠다. 아게오 학생들이 우리에게 사랑한다구 소리쳤다. 정말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 헤어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추억이 많이 생겨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헤어진 후 우리는 다시 홈스테이지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에 우리는 온천에 갈 예정이었기에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가야 했다. 온천에 레스토랑에 가서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느마지리상의 가족분들은 내가 준 라면을 저녁으로 드셨다고 하셨다. 가족이 전부 매운것을 잘드셔서 매우 맛있게 드셨다고 하셨다. 난 거기서 돌솥비빔밥을 먹었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한국 떢볶이와 잡채,막걸리를 팔고 있었다. 한국의 음식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 돌솥비빔밥이 나오고 긴장된 마음으로 한입 먹는 순간! 너무 행복했다. 일본에서 한국 음식을 맛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그렇게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온천에 들어갔다. 몸을 녹히면서 피로를 풀어가는데 갑자기 어느 여자 직원이 남탕을 왔다갔다 하시면서 일을 하시는거였다. 나는 켄타군에게 민망하여 물어보니 이것은 일본에 문화라면서 이해 해달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이것도 문화라니깐 이해 할수밖에 없었다. 근데 한국에서는 한번 씼고 나오는데 느마지리상과 아들들은 다시 온천으로 들어가시는 거였다. 그래서 물어보니 일본은 씼고 온천하고 씻고 온천하고 이것을 5번정도 반복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나와 진홍이도 5번할려고 노력했지만 3번이 한계였다. 4번을 할려니 너무 피로가 풀려서 더 이상 온천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즐거운 온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진홍이는 마지막 게임을 즐기고 나는 곤히 마지막 일본 밤을 보냈다.
1월 14일 마지막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리는 마지막 아침인사를 하면서 아침 식사 테이블로 앉았다. 정말 아쉽고 슬펐지만 우리와 홈스테이지 가족들은 슬픈 내색없이 웃으면서 즐거운 식사를 하고 식사뒤에는 커피를 마시면서 서로의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정말로 일본이라는 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같다. 짐을 챙기고 드디어 헤어질 시간 우리는 서로 감사하다는 인사와 잘지내세요 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마지막 차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일본거리를 보았다. 왠지 또 새로워 보이는 일본이였다. 시간이 흘러 호텔에 도착하고 우리지역애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이제 정말로 일본과 일본아버지 어머니를 이별해야만 했다. 송별회를 하면서 하나,둘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잘해주시고 정이 들었기 때문에 눈물없이 이별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안오셔서 눈물로 헤어지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계셨으면 나도 울면서 헤어졌을 것이다. 우리지역과 한국 학생들은 눈물을 머금은채로 버스에 탑승하고 손을 흔들면서 가족들과 이별했다. 끝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니 더욱더 아쉬운맘이 남았다. 공황에 도착하고 우리는 지난 홈스테이지에서 있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있었고 어제 온 것 같은 일본을 이제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아쉬운 마음이 남았다. 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한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노을지는 모습이 더욱더 일본과 일본가족들을 생각나게 하였고 지난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드디어 인천공황에 도착! 날씨부터 한국이었다. 우리는 서로 한국을 칭찬하면서 내렸고 이제 지역아이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 ........ 이제 각자의 학교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하는일만 남았다. 3월달 일본아이들이 한국에 왔을때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우리는 헤어졌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선물을 풀었다. 어제 출발했던것 같은 일본일정이 끝나고 이제 일본에서 받아온 선물을 풀고있다. 추억이 절로 생각났고 일본에서의 푸짐한 인심과 정이 아직까지도 남아있고 앞으로 내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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