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T사 참배기
정석준(수필가)
11월 첫째 주 토요일, 동기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T사를 찾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색(山色)은 빛이 바랜지 오래였고, 추수를 끝낸 들판 여기저기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볏짚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차를 주차장에 세워 놓고 물소리, 솔바람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한 참 오르니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고 숨결이 가빠온다. 오ㆍ육십대까지만 해도 산행에는 뒤지지 않았는데, 나이는 속일 수가 없는가 보다. 일주문, 천왕문을 지나 불이문(不二門) 앞에 이르니 앞서 가던 청년 몇 명이 불이문의 뜻을 두고 갑론을박(甲論乙駁)을 하고 있었다.
“문(門)이 둘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문이 둘이 아니라면 일문(一門)이라고 하면 되지, 왜 불이문이라고 했을까?”
청년들의 이야기를 우연찮게 엿듣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불이(不二)란 말 속에는 불교사상의 깊은 뜻이 담겨 있어요. 불이문이란 성(聖)과 속(俗)이 둘이 아니며, 생(生)과 사(死)가 둘이 아닌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는 문이란 뜻입니다. 이 말은『유마경』이란 대승경전에 나오는 말인데, 불이(不二)란 그 차별(二)을 인정하고 나서 그것을 다시 부정한 개념입니다. 이를테면 A와 B가 존재한다고 할 때, A는 A자체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B와 대립함으로써 A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B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므로 A와 B는 똑같지도 않고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A도 B도 독립ㆍ고유한 존재가 아니라 B와의 관계 속에서 A가 존재하며 A와의 관계 속에서 B가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를 살펴보면 순간과 영원, 만남과 이별, 생과 사(死), 낮과 밤, 색(色)과 공(空) 등 모두가 대립적ㆍ상대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순간이 있으므로 영원이 있고, 만남이 있으므로 이별이 있으며, 생이 있으면 사가 있고, 낮이 있으므로 밤이 있고, 색이 있으므로 공이 있는 것처럼 모두가 상대에 의존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이(不二)라 하는 것이지요.”
나의 자상한(?) 설명에 청년들은 잘 알아들었다는 듯, 연방 고개를 꺼떡인다. 불이문을 지나니 이윽고 대웅전이 그 웅장한 자태를 들어내었다.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3배를 올리고 부처님을 우러러 뵈오니 부처님은 언제나 미소로 반갑게 맞아 주신다. 법당을 나와 사찰경내를 한바퀴 돌아보니, T사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다. 극락전과 천불전을 새로 중수하였고, 지금은 성보박물관 공사가 한창이다. 종무소에서는 여자 신도 몇 명이 불사 시주금을 접수하고 있었다.
문득 달마대사와 양무제의 일화(逸話)가 생각났다. 달마대사는 인도 천축국 향지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고 반야다라존자로부터 법을 이어받아 28대 조사가 된다. 그가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배를 타고 중국에 온 것은 양 무제 보통 원년(AD 520년). 달마대사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무제는 대사를 궁궐에 초대하여 잔뜩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 수많은 절을 짓고, 경을 쓰고, 스님들을 양성한 것이 셀 수도 없습니다. 짐의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달마대사는 일언지하(一言之下)에“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어찌하여 아무런 공덕이 없단 말이요?”하고 무제가 다시 묻자, 달마대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는 인간과 천상의 작은 결과를 받는 유루(有漏)의 원인일 뿐이니,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아서 있는 듯 하나 실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사(佛事)에 시주를 많이 하면 그 과보로 금생과 내생에 복을 많이 받고 소원을 성취를 한다는 불교의 기복사상은 1,500년 전인 양나라 무제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전국 어느 사찰을 가 보아도 그 사찰의 유래나 불교교리, 신앙상담 같은 것을 해 주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사찰 중창불사ㆍ범종각 건립불사 등 각종 불사 시주금을 접수하지 않는 곳이 없고, 그 시주금이 어떤 사찰에서는 수십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불사에 시주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시주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찰 살림살이가 그만큼 넉넉해지고, 불교발전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복이란 아무리 많이 지어도 다함[有限]이 있는 것이어서, 천상세계에서 마음껏 복락을 누리던 사람도 그 복이 다하면 다시 추락하게 마련이며, 달마대사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과 천상의 작은 결과를 받는‘유루의 원인’일 뿐이다.
기복(祈福)이 없는 종교는 없다. 기복은 종교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기복으로 끝난다면 이는 사도(私道)를 행하는 것이다. 기복은 정법(正法)으로 이어져야하며, 만약 기복만을 조장하는 무리가 있다면 이는 부처님의 이름을 팔아 호구지책(糊口之策)을 도모하는 마구니에 다름 아니다.
불교신앙의 목적은 어디 있는가? 그 까닭을 서산대사 휴정은『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가 불교를 믿는 것은 일신의 편안함이나 안락을 구해서가 아니라 번뇌를 여의고자 함이며, 깨달음을 얻어서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깨달음을 떠나서 불교는 존재할 수 없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성철스님은『백일법문』에서“깨달음이란 일체만법의 본원 그 자체를 바로 아는 것을 말한다. 일체만법을 총괄적으로 표현하여서 법성(法性)이라하고, 개별적으로 말할 때는 자성(自性)이라고 하는데, 이 본원 자체를 바로 깨친 사람을 부처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으로 태어나 우주와 인생의 실상을 바로 꿰뚫어 보고, 나고 죽음을 뛰어넘어 대자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가치있고 장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바램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눈 푸른 납자들이 깊은 산사에서, 선방에서 혹은 외진 토굴에서 청춘과 목숨을 걸고 면벽참선하며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깨달음을 최초로 성취한 분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셨다.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은 그대로 열반에 드신 것이 아니라 45년이란 긴긴 세월을 하루도 쉬지 않고 동가숙 서가식(東家宿西家食)하며 불법을 널리 전파하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귀의와 찬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왜 일체중생을 구제해야 하는가? 그것은 일체중생과 나는 본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체중생과 내가 어떻게 하나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립ㆍ독존하는 것이 하나도 없고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작도 없는 옛적부터 삶을 살아오면서 때로는 축생의 몸도 받았을 것이고, 때로는 날짐승의 몸으로, 때로는 사람의 몸도 받았을 것인 즉,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구제하는 것이 되며, 이는 불자의 당연한 도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한국의 불자들은 아직도 기복이 눈멀어 있다. 참된 불자라면 부처님의 삶을 자신의 삶의 본보기로 삼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부처님은 왕위가 보장된 태자의 자리도 버렸다. 부처님은 모든 인간들이 갈구해 마지않는 부귀와 영화ㆍ권세 그 모든 것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가진 것이라고는 가사 한 벌과 발우 하나뿐! 그런데도 오늘 한국의 불교도들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돈인가, 권세인가? 돈이란 있다가도 없는 것이어서 믿을 것이 못된다. 설사 억만 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권세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란 한바탕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아침 이슬과 같은 것. 인간이 진실로 알아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설사 백년을 산다고 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산문(山門)을 나서니 어느 덧 하루해가 서편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일행들과 서둘러 귀향길에 올랐다. 오늘 T사 참배는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수와 수필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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