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분대 분대장의 추천과 소대장의 가라는 명령
으로 1970년 5월 중순 경 나는 그간 6개월 가량
근무하던 3대대 11중대 3소대 화기분대의 화기사수
임무를 뒤로하고 월남어 교육대(월교대)에 입교를
하게 되었다
당시 청룡부대 월교대는 베트남의 중부 다낭
근처의 호이안에 위치한 청룡부대의 여단본부
안에 있었고 일개 기수의 교육생은 40명 가량이
되었다
필자가 입교햇던 당시 월남어 교육생은 학사
출신의 장교 2명 ,부사관 십여명 및 사병인 나를
포함한 사병 이십여명으로 구성되어 잇었다
당시 월남어 교육은 12주(3개월)이었고 매일
8시간(오전 4시간, 오후 4시간)을 받았는데
오전에는 일반회화를, 오후에는 군사술어 및
군사회화를 배웠으며 매주 토요일에는 일주일
공부 분량을 가지고 회화 및 필기 시험을 보았
으니 매주 시험을 보아야하는 혹독햇던 교육은
비록 군대라 할지라도 공부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선진국의 일류대학 수준 이상의 것이엇다
M-60 사수로 험난한 전투생활의 시간을 보냈던
나로서는 모처럼의 이 교육기간이야말로 참으로
쉴만한 시간이엇다 공부도 해야했지만 정말
쉬고 싶엇다
적당히 공부하며 이 삼주를 보내며 평생 처음
으로 공부해야하는 환경에서 공부안하며 농땡
이(?)를 치니 참으로 편안하고 좋앗다 그러다
보니 매주 발표되는 나의 성적이 그저 중간 쯤
되엇고 성적은 신경도 안쓰고 잇엇다
1 등과 2 등은 학사장교 출신의 대위 한분과
중위 한분이 늘 하셧고 다음 차 상위권은 부사
관들이 그리고 하위는 사병들이 차지하고 잇엇
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성적도 계급 순
이엇다
그러던 어느날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에 나 보다 서너기수 아래인 후임자인
J 해병이 나에게 닥아와서 할말이 잇다했다
뭐냐고 물으니 그가 뜻밖의 말을 햇다
"김수병님, 제가 보니까 김수병님께서는 공부를
하실분 같은데 안하시네요"
졸병이 좀 기합빠진 말한다 싶었지만 너그럽게 내가
대답했다
"응 소총중대에서 M-60 메고 박박기다가 여기 오니
살것 같아 이젠 두다리 좀 뻗고 쉬려고 해 근데 왜?..."
그러자 그가 참으로 나의 폐부를 찌르는 말을
햇다
"김수병님, 우리가 여기서 계급이 졸병 아닙니까?
계급이 졸병이라고 해서 성적까지 졸병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응???!!! ........................
나는 참으로 놀랏다
그가 그런 멋진 생각을 하다니 ???!!!~~~~~~
나는 순간 마음에 감동이 일엇고 그리고 순간
반사적으로 결심을 햇다 그리고 힘주어 말햇다
"좋아!~ J 해병!~~ 우리 같이 열심히 공부해서
너하고 나하고 1 등과 2 등을하자 !~ 자 !~ 우리
악수!~~~ "
그와 나는 사나이로써 굳게 손을 잡고 굳은 약속을
하였다 그날 부터 나의 생활은 180도 변하엿다 정신을
통일하고 눈에 불을 켜고 참으로 공부에 매달렸다
1등과 꼴등을 하는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매주
시험에 늘 100점을 받아서 매주 1등만하면 1등이
되고 매주 시험에 늘 0점만 내면 꼴등이 되니 일등과
꼴등은 목표가 과연 잇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그날 배우는 진도를 몽땅 다 외웠다
다 외우기 전까지는 잠을 자지 아니햇다
필기시험도 치루니까 연습장에 그날 배운 학습
분량을 쓰고 또 썼다 당시 공부는 고3 때
대학입학시험 준비하느라 잠을 4시간만 자가며
코피 쏟으며 공부할 때 보다도 더 열심히
한 셈이다
사병은 사실 공부할 시간이 장교나 부사관에
비해서 부족하다 교육장과 숙소 주위 청소에 식사
당번에 빨래에 야간 2 시간의 경계근무에 등등을
할애하고 나면 사실 상 개인적으로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하려고만 들면 이미 환경은
문제가 아니다 야간 2시간의 경계근무 시간에도
무전기 밧데리에 작은 전구를 달아 불을 켜놓고
모래 바닥에 깔아놓은 철모에 앉아 소총은 어깨에
기대 놓고 그날 공부한 것을 외우고 또 외우고 쓰고
또 썼다
여긴 여단본부이며 전쟁터에서는 후방이므로 안전
지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나 사실은 당시 근무자
로써 근무에 충실치 못했던 셈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공부를 안하면 나는 공부할 시간을 얻지
못하는 환경이엇다
드디어 매주 성적 발표를 보니 모든 과목 만점이
나오며 1등의 연속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몇주가 흘렀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그렇게 야간 근무시간에 땅바닥에
철모를 내려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 소총을 어깨에
기댄채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함께 교육을 받고 잇는
부사관 한분이 갑자기 나타나셧다
"야 !~ 김 해병!~ 너 근무시간에 뭐해?!~ "
나는 놀라 일어나 경례를 부쳣으나 군기가 칼날 같이
엄정한 해병대에서 근무를 제대로 서지 못햇슴에 당황
하엿고 송구스럽게 대답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니가 어쩐지 자꾸 1등 한다 했더니..."
그는 그 뒤에 다른 말 없이 돌아갓고 그 다음날 교육대
대장이신 K 대위께서 내가 또 앉아서 공부하는 야간 근무
시간에 갑자기오셨다
놀라서 일어나 기합들게 경례를 부치며 해병대 특유의
기합으로 소리쳤다
"근무 중 이상 무!!!~~~~~~~~~~"
그는 손을 뒤로하고 고민하는듯 햇다 여긴 군대이자
군기가 생명인 해병대인데 사병이 근무 시간에 근무를
안 서고 공부를 하면 안돼는건 당연하다 그러나 저넘이
계속 일등을 하고 잇는 비결이 저렇게 근무시간에도
공부를 하는건데 저걸 어쩌나....
교육대장은 몇분을 말 없이 서 계시더니 그러나 결국은
말 없이 돌아서서 가셨다 나도 모르겟으니 고발이고 뭐고
니가 알아서 공부하라는 뜻이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엇다
드디어 12 주 교육을 마치고 발표 하루 전날이 되었는데
교육대에서 나를 오라고 호출이 떨어졌다
교육대로 달려가 들어가보니 교육대장님과 선임하사님께서
계셨다 경례를 부치고 나니 선임하사님께서 입을 여셨다
" 야~ 김해병 니가 일등이다 축하한다!~ 그리고 2등은
P 대위다 "
벌 대신 상이엇다 순간이지만 기뻤다
모든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순간 또
들어오는 생각이 잇엇다
나는 3년만 근무하고 제대할 사병이다 ...
그러나 P 대위님은 직업군인이다 그에게는 이 같은 교육대
에서의 1등 상이 그의 진급에 막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나는 1등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다 그도 1등 하려고
참으로 열심히 공부하던 것을 나는 알고잇다 그에게 1등을
양보하리라 순간 생각했다
사실 상 내가 야간근무를 제대로 서면서 공부햇다라면
나는 1등을 할 수는 없엇을 것이니 나의 1등은 교육대장이
공부할 수 잇도록 배려해주신 덕분아닌가 !~ 결코 내가
잘나서 1등을 한 것은 아니엇다 나는 곧 힘주어 말씀
드렷다
" 감사합니다!~ 그러나 1등은 P 대위님에게 양보하겟습니다!~ "
그들은 놀랏다
"뭣?!~~ 너 김해병 정말이냐?!~ "
"옛!~ 저는 1등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족합니다 상은 필요치
않습니다!~~"
선임하사님은 감격하여 내 손을 잡앗다 그러나 그 뒤 나의
청원은 청룡부대 여단장까지 올라가는 결제 과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앗다
당시 청룡부대 참모장이신 고 대령님의 명령으로 사병이라도
1등 이면 사병에게 가야한다고 하신 바람에 결국은 1등 상을
내가 받게 되었다
참고로 나를 격려하던 J 해병은 3등을 했다
시상식날 청룡부대 참모장이신 고 대령님 앞에서 1등 상을
받게 되엇다 6.25 전쟁을 소대장으로 치루시며 북한군과의 수
많은 전투에서 백전백승의 승리를 거두시고 인해전술로 새까맣게
몰려오는 중공군들을 1/10 도 안되는 적은 수의 병력으로
그들을 단번에 궤멸시키신 역전의 용사이신 고대령님 앞의 나는
그야말로 서치라이트 앞의 촛불도 안되는 존재엿다
나팔수의 <임석상관 입장> 밴드음악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입장하시고 시상식 단상 앞에 서 계신 얼룩무늬 군복 차림에
해병대의 팔각모를 쓰시고 또 썬그라스를 쓰신 그 분의 멋지
고도 당당한 모습에 나는 매료되엇고 그 분 앞에 나도 이 월남전
에서 M-60 화기사수로 죽을둥 살둥 전투도 좀 했노라고 해병대원
답게 허리를 세우고 기압들게 서 있으려햇으나 갑자기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누군가가 내 양 옆구리를 치는 느낌을 받앗고
곧 허리에 힘이 빠짐을 느꼈다
그 때 나는 배웟다 .....
말 없이 서있는 영웅의 위엄과 그 힘을 ...
나는 대한민국 해병대를 사랑한다 육군이 활로를 찾지 못할 때
육군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생겻을 때 해병대가 그걸 해결해야
하고 가능하게 해야한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조국수호에서 삼군에 앞장설 뿐만 아니라
이 같이 부하사랑에도 상하 계급이 없이 하나로 단결한다
그로부터 37년........................
37년 이 지난 이 즈음에도 나는 가끔 J 해병의 그 한마디의
말을 추억한다
"계급이 졸병이라고 해서 성적까지 졸병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의 이 말은 두고 두고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그 한마디 말에 의한 1등의 개념은 해병대를 제대후 대학에
복학하여 공부할 때나 대학 졸업 후 기업에서 근무할 때나 모든
상황에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노력해야하는 면에서 채찍이
되어주었다
J 해병... 이젠 그대도 오십대 후반일 텐데...
어디 사는지 몰라도 건강하고 행복하게나 ...
그리고 당시 사병인 나에게 그대로 1등 상을 주라고 지시하신
이제는 팔순을 훌쩍 넘기셧을 당시 청룡부대 참모장이신 고 대령님을
추억하며 대한민국 해병대의 당당함과 공정함을 긍지로 여긴다
(월남전 당시 월남군 총사령관으로 부터 훈장을 수여받는 고대령님)
청룡부대 참모장이셧던 고 대령님... 당신의 공정하신 인격을
존경하며 당당하셧던 모습이 지금도 제 눈에 삼삼합니다
부디 언제나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십시요
첫댓글 끝까지 읽고보니 눈이 침침하구나 세월은 속일수가 없네 .. 넌 지금도 건강하겠지~~~~~~그시절을 생각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