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처럼 카랑카랑하게 울어대는 저 칼바람을 동반한 겨울밤에 화장실을 가기란 거의 공포스럽기조차 하다. 무서운 살을 칼로 미는 듯한 통증이 동반되는 추위 말이다
집안에 있는 것과 집 밖에 나있는 화장실의 차이란 질적으로 차이가 많이 난다.
화장실과 변소라는 단어가 주는 깨끗함과 청결함의 높낮이처럼 말이다
오래 간만에 저녁상에 올라 온 고추장 양념된 빨간 돼지 불고기가 구미를 당겼지만 밥하고 아침에 먹었던 반찬으로 겨우 삼켰던 저녁 밥이었는데, 이 놈의 습관때문에 또 자정이 넘어서야 변이 마려우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이걸거면 차라리 돼지 불고기로 배나 꽉 채워 넣을 걸 하고 아무 쓸모짝에도 없는 후회를 하면서 내복 위에다 짙은 쑥색의 두꺼운 스웨터 하나를 껴 입고 마루로 나온다
마룻바닥은 말그대로 꽝꽝 언 얼음장으로 변신을 해서 스케이트 신발을 신어야 할 참이다. 재미난 게임을 즐기는 듯 맨 발바닥을 송곳처럼 꾹꾹 찔러대면서 끼득끼득 거린다
양말을 신을까 하다가 귀찮아 그냥 두고 만다.
이럴땐 정말이지 화장실이 집안에 딸린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울 지경이다. 아무 때나 편안하게 들락거릴 수 있는 화장실이 갖고 싶다. 왜 그런 집에서 살수 없는지 일년 내내 부업거리를 쌓아 놓고 사는 부스스한 엄마의 몰골을 보면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짜증나고 아무도 도와줄수 없는 우물에 빠진 것을 인지한 것 같은 상황이다
맨발에 닿는 마룻바닥이 껄끄럽다는 듯 소리를 낸다. 조롱하는 듯 가여운 듯 하지만 실은 고소함을 더해 비웃는 것이 틀림이 없다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래되고 썩어가는 나무 장판으로 깔린 마루 바닥 밑에서 찌익, 찍 하는 길게 이어지는 소리가 차가운 발바닥 밑부터 파고 들더니 꼬리를 뒷꿈치에 달아 놓아 주었다
마루판 밑에는 연탄광으로 쓰여 한겨울이면 늘 시커먼 연탄들이 가득 들여 놓는데 동시에 쥐들의 겨울나기 집이기도 한다 .그나마 여름엔 더위때문인지 밖에서 지내다가 슬슬 추워지기 시작하면 몇 마리씩 떼를 지어 몰려 들더나 급기야는 우리 가족 수보다 많은 쥐들의 서식지가 되어 버린지 오래 되었다. 더럽고 매끈한 꼬리를 가진 쥐새끼들과 한집에서 동거를 해야만 하는 처지가 지금도 발바닥을 찔러대고 있는 냉기와 더불어 길지 않은 인생에 잊지 못할 두려움과 혐오감이란 씨앗을 뿌려 주고 있었다
밖에서 불고 있는 저 칼바람보다 더 몸을 오싹 줄어들게 하는 무서운 게 바로 저 소리지.
바로 발 밑에서 무차별로 공격해오는 저 시궁쥐 소리. 찌이익, 찌익....
시궁쥐는 연탄광으로 쓰이고 있는 마루 밑이나, 부엌 , 화장실 심지어 방에 까지 대낮에도 기어 들어 오는 바람에 동생이랑 나랑 난리를 치고 비명을 내지른 적도 있었다
아무리 한 집에서 같이 산다고 사람이 살고 있는 방까지 침입을 하다니 보통 쥐들이 아닌 것임엔 틀림이 없었다.
저것들은 오래전에 이미 우리집 사정을 꿰뚫고 있어 어디 한번 맞서보자 하고 시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겁을 내지도 않았다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윤기마저 흐르는 쥐들이 그 맨들맨들하고 길쭉한 꼬리를 흔들며 왔다리 갔다리 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머리카락이 쭈삣할 정도로 섬찍하다. 입에서 엄마야 비명소리가 자동으로 흘러 나오게 하는 저 얄팍한 괴력이라니.
그러면 엄마는 ' 저 놈의 쥐새끼가' 하고 두 눈을 부듭뜬 채 듬성듬성한 비를 한 손에 꽉 움켜 쥐고 장농 밑으로 숨어 기어 들어간 간 큰 칩입자를 잡느라 밥푸다 만 주걱도 놓치 않고 애를 써 댔다
숱이 빠지고 한쪽으로 쏠린 빗자루를 장농 밑에다 넣고 들쑤시다 보면 잡혀야 할 쥐보다 먼저 한웅큼 빠져 나오는 매캐한 먼지 뭉치가 먼저 끌려 나온다. 그러면 엄마는 눈을 가늘게 찌푸리면서 기침을 연거퍼 해 대면서도 비질을 멈추지 않고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두고 보자 식으로 쥐가 실신할 때까지 계속 팔을 움직인다.
두렵고 지루한 긴 사투 끝에 엄마의 승리로 맺어지면 명을 달리한 쥐는 머리가 뭉개지고 피를 묻힌채 집게에 들려 밖으로 나가게 된다. 아니,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지 예의 그 길고 매끄러운 꼬리가 파르르 떨리기도 했는데 살아 움직일 때보다 그때가 더 소름이 끼쳤다.
한바탕 요란한 빗질이 끝나기가 무섭게 후다닥 밥상이 차려지곤 했는데 죽어 늘어뜨려진 쥐의 잔영때문에 밥맛이 뚝 떨어져
젖가락을 깨짝거린다고 혼나는 것도 흔해 빠진 일상이다
현관문을 간신히 따고 밖으로 몸을 내민다. 사위는 적막하고 을씨련스럽고 무엇보다 살을 찔러대는 추위에 이까지 달달 떨릴 지경이다
사랑도 개 한마리 얼씬 안하는 거리로 맨 발바닥을 내딛어 본다
남의 집살이만 전전하다가 내집이라고 이사를 왔지만 좋기는 커녕 불편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집이다. 하긴 전에 살던 집들은 모두 화장실조차 공동으로 썼기 때문에 우리 가족만이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생긴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일이긴 하다
그런 과거에 비하면 우리집 식구만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란게 정말 다행스럽고 고마워야 할 노릇이지만 사람들 오가는 한길 가에 허름한 문짝 하나만으로 가려 놓은 재래식 변기 위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 볼일을 보고 있노라면 길 가던 누군가가 냉큼 문을 확 열어 젖힐 것 같은 상상에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엉거주춤 앉아 후다닥 나오는 게 일이었다.
집앞 구멍가게마저 문을 닫고 그 옆 가로등의 불빛만이 사정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간당간당하게 뿌옇고 누런 빛을 빍히고 있을 뿐이다. 실연당한 늙은 여자 처럼 훌쩍훌쩍 흐느껴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불쌍하기조차 하다. 실은 내가 더 불쌍한 처지이지만 말이다.
현관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화장실의 낡은 나무 판자로 된 문을 딴다.
강추위에 얼어 붙었는지 문은 좀체로 열리는 대신 삐그덕 소리만 낼뿐 양보하지 않는다
마치 안에서 사람 만한 쥐가 문고리를 갖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방망이질을 해대고 문고리를 잡고 있는 두 손은 굳어질려고 했다
급기야는 슬리퍼 밖으로 삐져 나온 발가락으로 삭아빠진 문의 밑둥을 탁탁 치면서 마구잡이로 흔들어 대자 삐그덕 소리와 마지못해 열리는 화장실 문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전구를 키고 겨우 볼일을 보고 후다닥 방으로 들어 온다. 손 씻는 것은 포기한다 손을 한번 씻으려면 부엌문을 따고 내려가서 찬물로 씻어야하는 번거로움이 또한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 새로 이사 온 집은 방이 세개인데 안방에서 엄마와 아빠 막내 남동생이 한길로 창문이 난 작은 방은 둘째와 셋째 여동생이 쓰고 나머지 제일 작은 방은 내가 독방으로 쓴다.
난생 처음으로 생긴 오직 혼자만의 방이었다. 하지만 밖에 나있는 화장실만큼이나 민망스럽고 불안감을 조성해주는 방이었다
바깥으로 난 화장실과 부엌 사이에 낀 방은 정사각형의 네모 반듯한 구조로 내 작은 몸 하나 이불을 깔고 누우면 더이상 남아도는 빈자리가 없었다.
죽은 사람한테 딱 맞는 관속이 이럴까. 어린 아이가 누우면 딱 들어차는 사각의 방.
그러니까 화장실과 부엌 틈바구니에 비집고 들어선 방이 바로 내방인 것이다.
오직 나 혼자만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특이하고도 특별한 방.
자다가 그대로 죽으면 저절로 관이 되는 그런 이상야릇한 방을 가지게 된 것을 좋아할수만은 없었다.
방에선 항상 구리하고 들쩍지근한 냄새가 웅덩이의 고인 물처럼 탁하게 고여 있었다.
누군가 이사가면서 버리고 간 냄새나는 사단짜리 옷장과 책상과 의자, 그리고 몸집이 작은 내가 일자로 누우면 방안은 꽉 들어차 버렸다.
사절지만한 창문이 하나 나 있는데 높은 담벼락에 막혀 환기가 잘 되지 않고 본연의 입무를 져버리고 되려 답답증을 불러 일으켰다. 그 너머로 볼수 있는 것은 푸른 하늘과 솜털 같은 구름과 밤이면 빛나는 별 대신 흐린 담벼락과 그 위를 왔다갔다 하는 회색빛의 시궁쥐들뿐이었다.
쥐들의 골목길 내지는 산책길인 듯 두세 마리씩 떼지어 다니거나 모여 앉아 찍찍 밀담을 나누기도 했다.
투명하고 차가운 빛을 쏟아내는 만원을 배경으로 그들의 모습은 엉뚱하게도 기이하고도 그로데스크한분위기를 연출해 내곤 했다.
쥐들은 배우이고 나는 유일무일한 관객이 되엇다
사람과 쥐의 동거를 감수해야만 하는 현실은 헛구역질을 나게 하고 불우한 상상력을 꾸역꾸역 생산해 내었다
그래도 좋은점이 있다면 밤늦게 까지 누구의 눈치볼 필요도 없이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온전히 나만을 의한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일과중 겨우 두 세시 간에 불과했다
에프앰만 나오는 손바닥만한 은색의 가벼운 소형 라디오는 손때가 묻고 은칠이 벗겨져 나간 남의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앞 삼층집에 사는 남자 아이의 것이었다.
그녀보다 두 세살 위로 보이는 남자 아이는 부잣집 막내 아들 답게 귀공자 풍으로 얼굴빛도 여자보다 뽀얗고 호리호리한 큰 키에 병색이 도는 아이였다.
위로 누나 셋에 막내라는 그 남자아이와 몇마디 나누었는데 생기거와는 다르게 성격도 사글사글하니 좋았지만 친하게 지낼수 있는 지속적인 관계가 되기에는 어정쩡했다.
정원이 딸린 내 눈에는 의리의리한 궁전 같은 3층 짜리 집에서 사는 남자애가 뭐가 아쉬어서 나 같이 구질구질한 여자 아이와 말을 나누고 사귈까 싶어서였다.
하필 집 앞에 정원이 딸린 3층짜리 집이 우리집에 비하면 궁건 같은 대저택이 떡하니 서 있을게 뭐람.
남자아이는 현관문 위에 달려 있는 농구골대에서 혼자 나와 공을 가지고 놀다가 나와 마주치면 살짝 웃음을 지어 보기도 했는데 그러면 나는 괜히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만약 나라면 눈길 조차 주는 것조차 피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어느 날 앞집으로 평소 친하게 지내는 아줌마 집으로 놀라 갔다 온 엄마의 손에 들려져 있었는데 처음엔 허름해 보여 고장난 것처럼 보였는데 건전지를 끼워 주자 신기하게도 지지직거리면서도 전파를 탔던 것이다.
엄마는 버리려는 것을 아까워서 가져 왔으니 갖고 싶으면 갖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라는 것이었다.
" 이거 고장난 거 아니야?"
나는 속으로 은근히 기쁘기도 했지만 남이 쓰던 손때 묻은 것을 어쩌면 버리려는 것을 아깝게 여긴 것을 주워 들고 온 것인지도 모를 물건을 사용한다는 게 영 개운치만은 않았기 때문에 목소리가 시시컬렁할 수 밖에 없었다.
" 고장난 것을 왜주냐, 버리겠지. 쓰기 싫으면 니가 갖다 버려라."
무얼 주든간에 감지덕지 여기지 못하고 꼭 한소리 덧붙이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내가 얄미웠던지 엄마는 냅다 소리부터 지르고 만다.
사실 평소 음악 같은, 그러니까 청각이란 감각을 내세워 무얼 듣는다라는 것을 해본적이 없는지라 처음에 받아 든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큰 그것을 덤덤히 받아 들었다.
노래 같은 선율이 단 한번도 집안에서 흘러 나오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리듬이 실린 노래라는 것은 텔레비전에서 흘러 나오는 뽕짝 같은 가요 메들리 밖에 없었으니까.
거기에 한가지를 더하자면 부모님의 악다구니와 고함소리, 동생들이 싸우는 소리와 울음소리 뿐.
사람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울림만이 가득 찬 집에서 자란 탓에 리듬이 담긴 다른 무언가를 듣는 것에 어색할 뿐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흔해빠진 가요나 트로트는 귀에 익었지만 그외 팜송이라든지 가곡, 피아노 연주곡 같은 것들은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학교 음악시간은 재미가 없을 뿐더러 선생님조차 음표를 읽는 것처럼 따분하고 지루했다
온통 모래 뿐인 사막 한가운데에 철저하게 버려진 집 한 채 속에 갇혀 사는 것과 같은 똑같은 날들의 연속일 뿐이었다
그런데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에프앰 라디오가 갑자기 생긴 것이다.
그것이 새로 산 신제품이던 남이 쓰던 구형이던지간에 전파를 타고 흘러 나오는 것은 똑같았다.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한 프로가 있었는데 며칠지나지 않아 열렬한 팬이 되고 말았다.
밤 열시쯤이면 어김없이 흘러 나오는 에프엠 방송의 팬이 되어 버려 이젠 단 하루도 그 방송을 듣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디제이 이문세가 이끄는 ' 별이 빛나는 밤에' 를 듣고 있으면 그래도 막혔던 숨통이 트인다고나 할까, 가슴이 뚫리고 마음은 평온해짐을 느끼는 밤의 두 간이었다.
여느 집과는 다르게 온기와 대화가 부재중인 가정에 유일하게 위로 받을 수 있는 탈출구로 손바닥만한 라디오에 의지하게 되었다.
부모의 애정을 받아 보지 못했지만 손바닥한 플라스틱 소형 라디오는 무한한 사랑과 애정을 밤마다 주었다
두 시간 동안의 노래와 이야기만으로 사막 같은 가슴 밑바닥이 촉촉히 젖어 옴을 느낄 수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를 듣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있는 곳이 화장실과 부엌 사이에 낀 관짝 같은 옹색한 방이 아니라 드넓은 평야에 서있는 목가적인 전원 주택의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있는 소공녀가 된 듯한 즐거운 착각을 주었다. 착각이지만 너무나 달콤하고 근사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두 시간은 폭우 그친 뒤에 흘러가는 구름처럼 허망하게 사그라들기 마련이었다.
밤 열시에서 자정까지 그녀는 매일 같이 머리 맡에서' 별이 빛나는 밤' 에를 들으면서 팝송이란 걸 듣게 되었다.
그 노래가사가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 흐름과 멜로디에 흥얼흥얼 입맛을 다셔 가며 따라 불렀다.
그리고 또다시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주어진 시간 위를 마음껏 날아 다녔다.
오로지 그 순간만이 하루 중 유일하게 살아 있다는 자각에 행복을 느낄수 있었다
" 잠깐 나갔다 올테니까 동생들 하고 싸우지 말고 연탄불 좀 갈아 놔라. 또 깜박이고 꺼트리지 말고. 알았쟈?"
엄마는 외출를 하려는지 허름하고 두툼한 오리털 파카를 껴입고 털목도리를 목에 칭칭 감은 채 굳어 버린 찌푸린 상으로 서 있었다. 겨울 내내 한결같이 입어 대는 파카는 때가 타서 소매 언저리가 시커맿지만 엄마는 본인의 겉옷은 잘 빨지 않고 되는대로 주워 입었다.
엄마는 외출하면서 똑같은 말을 두번이나 되풀이서야 나간다. 똑같은 말을 두번 하는 것이 오래전 엄마의 버릇이 되어 버렸다. 한번은 나한테 또 한번은 자신한테 다짐하듯.
" 언제 올거야?"
" 많이 안 늦으니까 동생들 울리지 말고 잘 데리고 놀고 있어."
두 시간이래도 제법 무게가 나가는 돌쟁이 막내 남동생을 포대기에 업고 있어야 하는 일은 힘든 일이다.
안방과 꺽어진 모양의 ㄱ 자 마룻바닥 한 구석엔 늘 엄마가 끌이고 사는 부업거리가 산만하게 쌓여져 있거나 흩어져 있다.
엄마는 늘 집에서 쉬는 날 없이 일에 매달렸다.물고기가 물을 떠나선 살 수 없는 것처럼 일감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살았다. 그 속에서 숨쉬고 밥을 먹고. 오로지 부업만이 자식보다 소중하고 그것만이 유일한 위로이자 목적인 듯 철저하기까지 했다.
아침에 눈 떠보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늘 마찬가지였다.
마치 그 자리에 앉아 있을려고 작정하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처럼 그리고 오래 전에 그 자리를 위해 만들어진 동상처럼.
고만고만한 자식을 넷이나 키우고 빠듯한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면서도 한순간도 일을 놓지 않는 것이 엄마에겐 필사적으로 보였다.
만약 단 하루도 일을 하지 않을 경우 그녀에겐 감당할 수 없는 벌이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무서운 집중이기도 했다.
부업거리를 놓는 순간 엄마도 물거품처럼 어디론가 사그라들것만 같은 집요한 집념으로 일을 하면서 입속으로 늘 무언가를 계속 웅얼거리며 되뇌였다.
엄마 만이 만들어내고 풀 수 있는 주술이 그럴까?
입으로는 쉴새없이 중얼거리며 손을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귀기스럽기까지 했는데 그럴땐 엄마, 하고 불러도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혼까지 빼놓고 일을 하는 엄마의 유일한 도피처였을까
그때 만큼은 엄마가 아닌 외계인이 엄마의 몸을 빌어 들어와 있을거란 섬뜩한 상상이 걷잡을 수 없이 생기는 바람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방으로 조용히 스며 들기도 했다.
혹시 엄마가 도플갱어는 아닐까 하는 소름끼치는 상상!
오늘도 부업거리를 띠러 나가는 것이 분명했다. 그 외에 엄마가 외출하는 이유는 거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떤 곳이 단 돈 십원을 더 올려준다라는 정보를 약삭빠르게 입수하곤 그 일감을 받으러 나가곤 했다.
아니다. 또 하나의 이유를 꼽자면 아빠때문이기도 하다. 종종 쉬는 날 친구들 만난다고 나간 아빠는 보통 이삼일 씩이나 외박을 했는데 엄마 입장에서 보면 복창이 터지고 홧병이 날 일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유유자적 그게 무슨 큰 대수냐는 듯이 허풍까지 가세해 가며 기마병처럼 당당하게 들어 오는 것이었다.
그래도 며칠 안 보이다가 집이라고 다시 찾아 드는 아빠를 보면 동생들은 벌떼처럼 와르르 달려가 안아 달라고 달라 붙었다.
그런 제일 큰 딸인 나만이 덩그러니 떨어져 동생들의 바보스럽고 천진스런 모습을 멍하니 쳐다 보곤 했다.
약간의 부러움과 시기심을 띤 모습을 그리며. 그녀가 어렸을 적부터 엄마는 늘 집안에서 손으로 무엇가를 하셨다.
옷감 나부랭이 들로 실밥 뭉치와 먼지가 뒤엉켜 공중에 붕 떠오르기도 하고 둘둘 말려 빗자루에 쓸어 담아져 나오는 게 태반이다.
마치 엄마의 근심 덩어리가 집안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가 춤몰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빠가 시간제 택시 기사 노릇을 하고 있지만 다섯 식구 살기에는 항상 부족하고 힘겨웠다.
그도 그럴것이 한달이면 아빠가 제대로 택시를 모는 날은 겨울 해처럼 짧고 빈약했기 때문이다.
본인 차가 아니라 택시 회사의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는 그는 밖에서 빵빵거리는 소리에 깨어 새벽 네시에 나가기도 하고 오전 중에 나갔다가 이른 저녁이 되어서여 들어 올 때도 있을만큼 규칙적이지 못하고 교대 근무인 만큼 고정된 월급이란 게 생기질 않았다.
아무리 남의 차를 굴린다 하지만 착실하게 일하다 보면 엄마가 정물처럼 앉아 부업을 하지 않아도 좋을 텐데 버는 족족 친구들 만난다는 핑계로 일관하면서 처자식을 위해 쓰는 돈은 아까워했다.
아빠는 가정 보다는 집밖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고 점점 그 시간은 늘어만 갔다.
그러다가 아예 영영 집이란 걸 망각하고 찾아오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차라리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간절히 바라고 바랬다
맏딸이건만 그에게 나라는 존재는 없는니보다 못한 늘상 ' 미련한 년 '으로 통했다.
이름을 부를 일이 있으면 "야" 한마디로 축약해 불렀고 무슨 일을 시켜 어벙벙하게 있으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야멸찬 소리 " 저, 미련한 년 좀 보게" 였다.
'야'와 '미련한 년'이라는 말로 아빠라는 사람한테 듣는 호칭에 전부였다.
애정과 관심이 완벽하게 결여 된 야멸차고 차가운 부름에 나날이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아이로 만들어져 갔다.
그럴때마다 엄마는 아빠한테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면서 타박을 했지만 단 한번도 아빠가 그냥 받아 넘긴적이 없었다.
" 저렇게 말귀를 못 알아 들어 먹는 년은 처음보네." 이런 식으로 엄마의 말을 깔아 뭉개고 내쪽으론 싸늘한 눈길을 보냈다.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엄마의 혼잣말과 탄식을 빌자면 한눈을 팔고 다니고 있는 아빠가 벌어들이는 수입에 반은 자신의 몫으로 빼서 다른 곳에다 처 바르고 있다고 했다.
엄마의 표현대로 도대체 어느 곳에다 돈을 처 바르고 다니길래 집에도 잘 안들어고 엄마에겐 늘 푼돈만을 던져 주는 것일까 하고 알듯 모를듯 궁금증이 일곤 했다.
아빠의 부실하고 책임감이 결여된 가장 노릇으로 엄마는 늘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엄마의 얼굴도 음지식물 처럼 탁하고 음산해져 갔다.
햇빛을 받지 못해 꽃잎은 커녕 잎조차 키우지 못하는 누런 화초처럼 늘 누리끼리한 얼굴빛에 엄마 표정은 늘 굳어 익기 마련이었다.
그 기운이 온 집안에 안개처럼 퍼져 집에만 있으면 답답증이 생기는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부업으로 이어졌고 그 돈으로 생계가 유지되었던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만큼 아빠가 일을 해서 엄마에게 쥐어 주는 돈이라곤 엄마가 한달 내내 잠못자고 쉬지 않고 벌어들인 돈에 반도 못미쳤을 것이다
당연히 엄마는 아빠와 돈문제로 걸핏하면 핏대를 세워 서로에게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싸우는 것이 일상의 다반사로 자리매김해 버렸다.
서로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내던지고 결국엔 아빠가 매번 똑같은 욕지거리와 함께 엄마한테 손찌검과 발길질을 끝으로 싸움이 끝날 때까지 동생과 나는 한테 모여 앉아 서로의 눈만을 의지한채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어야만 했다.
아빠가 웃옷을 걸치고 사납게 문을 열어 젖히고 나가면 그제서야 엄마는 참았던 한스런 울음을 복받치 듯 쏟아 냈고 덩달아 우리는 팔딱팔딱 뛰던 심장이 제자리를 찾고 서로 눈치를 볼 수 있었다. 꺼억꺼억 피울음을 토하던 엄마는 뭉기적거리며 일어나어지러진 방안을 주섬주섬 치우는 것이었다.
몇 번이고 셀 수 없는 똑같은 연극을 본 후 처럼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가 안가고 절망감만 더해 갔다.
" 어이구, 내 팔자야, 내 팔자야. 내가 미친년이지, 내가 죽일년이지."
그리고 늘 똑같은 넋두리로 내뱉고 코를 풀었다.
이 모든게 절묘하게 정해진 순서였기 때문에 어떤 누구도 흐트러 놓을수 없는 규율 같았다.
사네 안사네, 이혼하네 마네 늘 똑같은 말로 서로를 잡아 먹을 듯이 싸우다가도 어쩔수 없이 같은 사는 부부답게 서로 화해도 하면서 평온하게 잘 지내는 날도 있었지만 일주일이 멀다 하고 지리멸렬한 부부싸움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삐질삐질 흘러 나왔다. 저주받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누구처럼
나는 여동생 둘과 막내 남동생까지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집안에 박혀 보고 있자니 좀이 쑤쎠 왔다.
이제 막 돌을 지난 막내 동생은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다니다가 잡고 일어서 겨우 몇 발짝을 걷다 쓰러지곤 했다.
마음에 안들면 소리치고 머리채를 잡아 당겨 입에 가져다 넣었다
하나뿐인 막내 남동생을 보기 위해 딸만 셋을 주르르 나았다는 엄마의 한숨 섞인 푸념이 떠올랐다.
" 니들 어디 나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언니는 엄마오나 보고 올테니까."
" 나도 따라 갈래, 언니야."
둘째 동생이 따라 나서려고 하자 그 밑에 동생은 약삭빠르게 냉큼 웃도리 먼저 집어든다.
" 니들은 집에 있어. 지금 밖에 나가면 추워서 안돼. 언니만 금방 나갔다 올게 알았지?"
그녀는 막내 남동생만 포대기로 업히고 큰 수건으로 둘러 씌인 다음 두 여동생들에겐 손꼽놀이를 하라고 일러두고 밖으로 나왔다.
추운 날이라 개나 고양이 조차 눈에 띄지 않고 오가는 사람들조차 옷깃을 최대한 여미고 바삐들 걸어갈 뿐이다.
너무 추워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마음과는 달리 발걸음은 시장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세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엄마는 왜 안 오는 걸까?
엄마한테 혼날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헤지고 얇은 여름 운동화 때문에 열발가락이 꽁꽁 언 발을 멈추진 않았다.
포대기에 업고 방을 빙빙 돌아도 울고 젖병에 분유를 타서 입에 물려 줘도 싫다고 때깡만 부리는 어린 동생을 때릴수도, 소리 지를수도 없게 되자 밖으로 나오고 만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 동생이 가엽다는 연민과 동시에 부럽다는 욕심이 들기도 했다.
시장통 입구를 지나 문방구 점 앞 공터에선 사내 아이들이 축구를 하면서 욕지기를 퍼붓고 있었다.
" 야, 씨발아! 너 빨리 빨리 안하면 쥑인다."
싸움을 하는건지 축구를 하는건지 분간이 안되는 상황 속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가 들어 왔다.
같은 반 짝궁 아이였다.
그 아이가 갑자기 발로 차 올리려던 자세를 멈추고 축구공을 가슴에 안은 채 헐레벌떡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 바퀴처럼 갑자기 뛰기 시작하는 심장 박동 소리에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필 지금 이 때 저 애와 부딫쳤을까 .정말 재수 없는 날이로군.
눈이 마주친 이상 등을 돌려 내뺄수도 없는 노릇이다.
" 야, 너 여긴 무슨 일로 온거야? 나한테 맞고 싶어 제발로 찾아 온거야? 하루 안 맞으니까 내 생각나서?"
남자애는 찬바람 속에 한참을 뛰었는지 거친 숨을 내몰며 양볼이 상기되어 있었다.
장난기로 똘똘 뭉친 두 눈빛을 거칠게 빛났고 입김이 허옇게 뭉개져 나왔다.
" 아냐. 엄마 기다리는 중이야."
"그래?"
남자애는 축구공을 그대로 가슴에 안은 채 주먹으로 그녀의 정수리를 두번 세게 내리 찍었다.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아팠지만 그보단 저쪽에서 무슨 일인가 호기심에 부푼 모습으로 이편을 바라보면서 히죽거리는 남자애의 친구들 때문에 얼굴은 아까보다 더 붉어졌다
빨리 엄마가 왔으면, 그녀는 속으로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 야, 너 내일 각오해라. 알았지?"
뭔 각오하라는 건지는 한마디로 안하고 작게 찢어진 눈을 번들거리며 비웃음을 날렸다.
남자애는 한번 더 그녀의 머리를 세게 쥐어 박더니 그것으론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 미친년' 하고 쌍욕을 내갈기곤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 쪽으로 재빨리 뛰어 갔다.
' 미친 놈' 속으로 욕을 해댔지만 쿵쿵거리는 울림은 쉽게 가라앉지 못하고 되새김질을 해댔다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울고 싶었지만 당장은 참아 내야 한다
학교 가는 싫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저 짝궁 놈 떄문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저런 놈과 같이 앉혀 논 담임 선생님이다.
반에서 제일 악질인 놈과 제일 만만한 나를 짝궁으로 앉혀 놓고 그걸 즐기고 있는 여자 담임은 아빠 다음으로 싫은 인간이다
때마침 저편 골목에서 엄마의 후줄근한 밤색 외투 자락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 햇살을 등지고 걸어오는 엄마는 패잔병처럼 지치고 곧 쓰러질거 같은 모습이었다
나갈 때보다 더 지치고 불안한 엄마의 얼굴을 보자 괜히 나왔구나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젠 돌이킬수 없는 일이다.
이래저래 일이 잘 안 풀린 모양이다.
엄마를 보자 혼난다는 생각보다 먼저 울컥 서운한 마음에울고 싶어지는 마음이 비어져 나왔다.
방금 전에 축구공으로 얻어 맞은 정수리께나 더욱 아파왔다.
그녀는 포대기 밑을 손으로 튕기며 막내 동생을 어르고 발을 동동 굴렸다.
" 아니, 너 왜 추운데 나와 있는거냐? 동생 감기 들게 할려고 작정했냐?"
저만치 보이던 엄마가 황급히 뛰어 오더니 다짜고짜 그녀의 머리통부터 갈기고 본다.
" 엄마가 너무 늦게 오니까 그렇지."
나는 겨우 기어들어가는 떨리는 목소리로 항변을 했지만 입이 굳어 그 소리조차 불분명했다.
" 아이구, 이년아. 그렇다고 추운데 얇디 얇은 수건으로 덮고 데리고 나오면 어떻게 하냐. 어이구, 이 미련한 년아."
엄마는 한번더 그녀의 머리통을 눈물이 쏙 빠지게 할만큼 쥐어 박고는 앞장 서서 바삐 걸어 갔다.
아빠랑 엄마랑 똑같다라고 생각이 든다.
그녀는 자꾸 밑으로 내려오는 포대기를 위로 치켜 올리면서 엄마 뒤를 따라 뛰다시피 걸어 갔다.
얼굴을 추워서 빨갛게 달아오르고 장갑도 끼지 않은 두 손은 거의 얼다시피 움직임도 둔하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는 포대기에서 남동생을 훔치듯 꺼내 가더니 안색부터 살피면서 그녀에겐 미련한 년이라고 또 한바탕 지청구를 늘어 놓는다.
집에서 얌전히 놀고 있으라던 두 동생은 싸웠는지 막내 동생은 머리가 엉클어진 채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녀는 동생들 앞에서 혼나는 것도 분하고 언니 말도 안듣고 싸운 것이 미워 두 동생을 째려보고 만다.
내 예상대로 엄마는 나갔던 일이 제대로 안 풀렸는지 얼굴색이 어둡고 입술은 갈라져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째 부재중인 아빠로 인해 더욱 엄마의 상태는 불안정하고 아슬아슬하다.
괜히 잘못 걸려 들었다가 된통 혼나기 십상이다.
머리는 일년 내내 퍼머기가 풀려 부스스한 상태로 변함이 거의 없고 얼굴빛도 누렇게 가라앉은 엄마를 보면 나 역시 똑같이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한 엄마에겐 무슨 낙이 있을까?
결혼한 여자의 인생 따위를 고민하거나 생각할 정도로 조숙함이 있는건 아니었지만 늘 똑같은 모습과 옷차림에서 한숨과 연민이 불쑥불쑥 생기는 것이었다.
분위기를 파악한 동생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이 방 귀퉁이에 차려진 소꼽놀이 판으로 가서 끼득거리며 놀고 엄마는 물을 데워 남동생에게 젖병을 물려 주었다.
그녀는 연기처럼 아무 소리없이 빠져 나와 책상 의자에 앉아 동화책을 뒤적거린다.
아빠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내달리고 엄마는 부업에 매달려 살았다
그런 부모를 위해 해 줄수 있는 일이란 어떻게 하면 눈에 띄지 않고 신경 거슬리는 일을 되도록이면 하지 않고 모든 일을 자기 선에서 스스로 풀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한살 두살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한 가정의 맏딸로서의 사랑과 기대, 관심 대신 냉대와 방임 속에 내팽겨져 혼자 만든 외딴방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녀는 열한 살이 되도록 가족 여행이라는 것을 한번도 한 기억이 없었다.
김밥을 싸들고 창경궁과 어린이 대공원에 간 적은 있었지만 무박이언정 여행이라는 듣기만 해도 설레고 붕 떠오르는 그런 경험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여행이란 늘 먼 나라처럼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섬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가족끼리 오돈도손 밖에 나가 외식이라는 것도 해본적이 없었다. 가족 단위로 음식점엘 들어가는 광경을 보면 딴 나라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생경스럽기까지 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왜 우린 남들 다 하고 사는 것처럼 여행이라든지 외식을 못하는 것일까.
그녀가 바라는 그 흔하고 평범한 소망들이 오로지 한 남자때문이라는 것을 진작에 깨쳤기 때문이다.
자신을 낳아준 아빠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를 아빠라는 당연한 호칭 대신 나쁜 남자라는 새로운 용어를 지칭했다.
그렇게 하면 조금은 그 나쁜 남자를 이해하고 용서까지 해 줄 수도 있다는 너그러운 마음이 생기곤 했기 때문이다.
엄마도 아빠로 인해 히스테리를 내며 그녀에게 몽땅 스트레스를 푸는 식으로 매를 들때마다 속으로 나쁜 여자, 미친년 하고 욕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엄마의 중독성 강한 매질을 꿋꿋히 견디어 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엄마한테 해줄수 있는 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부터인가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하고 소원했다.
그래서 이 집을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열한 살짜리 그녀에게 자유란 욕을 하고 이유없이 때리는 부모에게서 벗어나는 길이었다.
" 가게에 가서 라면 좀 사오너라."
엄마는 오늘도 라면을 끓여 줄 모양이다. 벌써 며칠째람.
점심으로 라면을 끼니로 때운지가 벌써 나흘인가 하지만 엄마는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자식들 점심 끼니쯤 라면으로 대충 해결하는 게 무슨 대수라는 듯이.
매운 떡복이랑 오뎅 국물이 무척 먹고 싶어 군침이 돌았지만 말 한마디 못하고 엄마한테 잔소리를 듣기 전에 후다닥 구멍 가게로 뛰어가 라면 봉지를 사 온다.
개다리 소반에 라면 네 그릇이 시어 빠진 김치와 함께 놓여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라면 국물에 까만게 둥둥 떠다니고 있다.
이게 뭐지 하는 궁금함에 고개를 숙여 가까이 들여다 보니 개미 떼가 몰살을 당해 있었다.
개미가 라면 국물 속에 빠져 죽어 있다. 도대체 엄마는 무슨 정신으로 라면을 끓였을까.
어떻게 펄펄 끓어 오르는 열탕 속으로 개미떼가 들어가 죽을 수가 있을까.
" 엄마, 라면에 개미 들어 있어."
" 뭐라구?"
부엌에서 엄마는 물어 왔다.
" 개미가 죽어 있다구. 아주 많이."
엄마는 먼 일인가 싶어 후다락 방으로 듫어 오더니 라면 그릇속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그리고 놀랬다.
" 아니, 이게 뭔 일이래? 어떻게 개미가 펄펄 끓는 물속에 들어가 죽어 있대"
라면을 끓인 엄마 자신도 많이 놀란 듯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떻게 해나 잠깐 고심하는 기색이다.
한 두 마리도 아니고 떼거지로 약속이라도 한 듯 죽어 둥둥 떠있는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하도 기가 차서 할말이 없었다.
그녀의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하도 어이가 없는지 쓴웃음을 웃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라면 세 봉지지만 기껏 죽 쒀서 개 주는 꼴에 비유할 수 없는 노릇 앞에 망연자실하나 보았다.
아무리 어른이라지만 죽은 개미가 떠있는 라면은 목 먹겠는지 아깝다는 표정없이 엄마는 그대로 하수구로 줄줄이 흘려 보내고 나는 또다시 가게로 꽁지가 빠지게 달릴수 밖에 없다.
다시 끓여 온 라면엔 이번엔 개미가 죽어 있지 않았지만 엄마는 별로 입맛이 당기지 않는 표정이었고 그녀와 두 여동생은 신물이 난 말도 한데 배가 고팠던지라 쩝쩝 소리를 내며 면을 빨아 올렸다.
그녀는 안다. 엄마가 라면 세 봉지가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라 일주일 동안 연락조차 없이 들어 오지 않는 아빠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엄마가 점심 때마다 라면을 끓일 수밖에 없도록 만든 장본인이 정말 싫고 저주스러웠다.
나 같으면 그런 아빠를 기다리지 말고 그냥 편하게 살면 될 것을 왜 괜히 사서 고생하나 싶어진다.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정적이지도 못한 아빠를 왜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지 이해불가 였다.
아빠라는 작자는 꼬박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그래도 집이란 걸 잊지는 않았는지 들어왔는데 겉모습으로 봐선 아침에 일 나갔다가 퇴근해 들어 온 사람처럼 조금은 피곤하고 덤덤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사람의 모습을 하고도 저런 뻔뻔한 모습을 할수 있을까 할 정도로 태연했다.
아빠는 신발을 벗자마자 안주머니에서 꾸깃하고 누런 봉투를 꺼내더니 거만스럽게 엄마한테 안겨 주었다.
" 일 때문에 바빠서 들어오지 못했어도 하루 빠지지 않고 다 나가서 일해 번 돈이다."
아빠는 무슨 큰 일이라도 치르고 온 사람처럼 큰 소리로 뻐기기까지 하며 허풍을 풍겨 냈다.
당장에라도 나가, 니가 인간이냐! 하면서 아빠에게 온몸을 던지다시피 달려 들 것 같던 엄마는 왠일인지 두툼해 보이는 봉투를 손안에 쥐고 침을 발라가며 정성스럽게 돈을 세고 또 한번 세어 보더니 속으로 뭐라 혼잣말을 한 뒤 저녁은 먹었냐고 부드럽게 물어보기 까지 하는 것이었다.
역시 돈의 위력은 대단하기 까지 하다. 돈 몇 푼에 엄마는 자존심이고 그간의 속앓이고 모두 망각을 한 듯 싶었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일주일 동안 꼬빼기도 안 보인 남편이란 작자를 돈 몇 푼에 저렇게 쉽게 받아주고 용서해주는 엄마가 미련스러웠지만 조용히 무마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미련한 건 엄마지, 내가 아니라구. 알기나 해? 나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집에 안 들어오는 동안 어디서 먹고 자면서 일을 했을까 하는 것은 엄마가 알고 있는 것 만큼은 나도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결혼 한지 일년이 지난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진행중인 아빠의 바람기가 좀 잠잠하다 싶더니 또 새로운 물줄기가 터져 그칠 줄을 몰랐다.
강물기가 바다로 흘러가듯 아빠의 일생은 늘 바깥으로 나돌며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가족들을 등한시하고 괴롭혔다.
얼핏 들은 이야기지만 예전엔 둘째 동생을 잃어 버릴뻔 했다고 한다.
매정한 아빠 때문에 그랬다는 엄마는 허허 맥빠진 웃음까지 지어 보이며 어디서 주워 들은 재미난 이야기를 하듯 풀어 놓았다.
" 세상에 애가 없어 이리저리 찾으러 다디다가 길 한복판에 우는 애를 버려두고 사라져 버렸다니까."
한참 딴 여자를 사귀던 중 동생을 보고 있던 아빠는 그 새를 못참고 길가에 버려두고 혼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올법한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엄마가 때를 맞춰 나타났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동생은 천하 고아가 되어 앵벌이 신세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린 내가 듣기에도 소름이 돋고 기가 차고 친부가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어이가 없을 정도였으니 엄마가 그때 당한 충격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녀는 아빠가 싫었다.
장녀인 큰 딸은 아빠는 언제부터인가 미련한 년, 이라고 이름 대신 입에 담더니 심부름을 시킬 때면 매번 그렇게 부르거나 성까지 붙여 남의 자식 부르듯 정나미 뚝 떨어지게 불렀다.
그녀는 아빠가 그녀를 싫어할 뿐 아니라 거부하고 있다는 것 까지 간파할 수 있었다.
자연히 그녀는 아빠 그림자만 봐도 기가 죽어 말소리도 소리죽여 내고 움직임도 둔해져 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겁고 흉측한 족쇄를 양쪽 발목에 찬 것 같은 느낌 속에 그녀는 십대를 보낼수 밖에 없었고 아빠라는 다정한 말도 입밖으로 감히 큰 소리내어 불러 보지 못하고 늘 모기만한 소리로 흉내만 내다 지쳐 갔다.
" 아니, 남들은 큰 딸 이쁘다고 그러는데 당신은 왜 저 애를 못마땅해하는지 모르겠네."
아빠가 너무 티나게 자식을 차별하고 유독 그녀만을 또아리 틀고 있는 구렁이를 보는 것처럼 차갑게 쏘아 볼때면 엄마가 더욱 무안해져 거들고 나설 때도 있었다.
" 미련한 년이니까 그렇지. 말귀를 제대로 알아 듣기나 하나 공부를 잘 해."
맏딸로서의 구실을 변변히 해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아빠는 또 한번 그녀 쪽으로 싸늘한 눈총을 보냈다.
그녀는 단박에 뜨거운 눈물이 쏙 빠져 나오더니 쉴샐없이 흘러 내렸다.
공부도 못하고 미련한 나는 왜 태어 났을까, 그녀는 부모가 원망스럽고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빠가 이뻐하는 자식은 네 명 중 둘뿐이었다.
세째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
둘째 동생은 그녀보단 심하진 않았지만 자상하게 부정을 느끼게 하지도 않았다.
동생은 눈치 빠르게 아양을 떨며 밑에 두 동생들과 섞여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고 지칠줄 모르는 노력을 했다.
그런 동생이 그녀는 연민스럽기도 하는 반면 부럽기도 했다.
두 동생들은 작은 방에서 놀고 있는지 끼득끼득 거리다가 다투는지 투탁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막내 여동생 하나가 기어이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항상 사이좋게 못놀고 꼭 저런식이다.
" 누가 또 싸우냐. 조용히들 해라."
엄마는 저녁 준비를 하느라 부엌에서 쌀을 북북 씻으며 버럭 소리를 질러 댔다.
그녀는 큰 방에서 엄마가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막내 동생을 봐야만 했다.
싫지만 그녀 밖에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부득이한 과제물이다.
안아주다가 실증을 내고 떼를 쓰면 포대기로 업어 좁은 방안을 빙빙 돌기도 하고 또 다시 내려 안아 주었다.
이럴 때면 왜 하필 제일 먼저 태어난 것에 화가 난다.
매캐한 연탄불 냄새가 온 집안을 스멀거리고 곧이어 상하기 직전인 자반 고등어 굽는 비릿하고 역거운 내음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연탄불 구멍이 두개 나 있는 재래식 부엌에 딸린 판자문이 걸려 있는데 그 문을 열면 옆집 담벼락이 가로막혀 있다.
여름엔 수도꼭지에 긴 호스를 대고 그 곳에서 어정쩡하니 스거나 앉아 샤워를 했다.
겨울엔 큰 고무 대야에 물을 데워서 추위를 감수하고 후다닥 해치워야 했다.
동생들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부엌 안에서 일일이 엄마가 씻겨 주었지만 그녀는 예외였다.
그녀는 생선 같은 것은 아예 입을 대지 않았기 때문에 냄새 그 자체만으로도 울컥 토기가 올라오는 것을 가까스로 침을 삼켜 참아내고 있었다.
엄마가 준비해 온 저녁 밥상 위에 아침에 먹고 남은 홍합 미역국에 신 김장 김치와 역시 시어 빠져 백김치와 군 고등어 자반 반토막이었다. 잰 김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그녀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맛이 동하지 않았다. 아님 계란 프라이라도 있었으면.
" 엄마, 잰 김 없어?"
" 아침에 다 먹고 없다. 넌 왜 생선도 안 먹냐?"
엄마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그녀를 보지도 않은 채 타박만 한다.
" 반찬 타령 좀 어지간히 해라. 제일 큰 것이."
엄마는 불에 구웠음에도 불구하고 반토막뿐인 흐물거리는 생선살을 동생들 밥그릇에 떼어 주었고 그녀에게도 주었지만 그녀는 몰래 상 위에 내려 놓고 먹지 않고 백김치 국물에 밥을 말아 후다닥 먹고 먼저 일어 났다.
엄마가 저녁 설거지를 하는 동안 그녀는 또 막내 동생을 어르고 달랬다.
아홉시가 되어 엄마가 동생을 받아 안고 저녁 뉴스를 볼 때야 비로소 그녀는 자기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큰딸이라 어쩔수 없이 맡겨진 임무지만 그녀는 때때로 밥 먹기가 무섭게 놀기에 바쁜 동생들이 부러울때가 있다.
그녀는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만화였다. 그동안 빌려 봤던 만화 속 여자 주인공들을 떠올리며 그리는 게 그녀의 취미였다.
긴 웨이브 머리에 왕눈알사탕처럼 큰 눈과 날카로운 콧날, 그리고 큰 키에 여자 주인공들은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셈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혼자 독백처럼 말을 하는 것도 그녀들과의 대화였다.
그녀는 열시가 될때까지 똑같은 생김새의 여자를 그리고 시간이 되어 '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에프엠 방송을 이불 속에 들어가 엎드려 들었다.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편하고 좋았다. 시큰한 냄새가 항상 고여있고 좁은 방이지만 유일하게 위로 받고 안식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친한 친구도 없고 재미있는 선생님도 없는 학교에서의 무료한 시간이 끝나 집으로 오면 동생들은 길거리에 나와 놀고 있고 엄마는 부업을 하거나 막내를 데리고 동네 아줌마네 집에 놀러 갔는지 집안엔 부업거리만이 그녀를 맞이해 주고 있다. 책가방을 벗어 던져 놓고 책상에 앉는다.
학교에서의 따분한 시간이 집에 와서도 멈추지 않을 때면 동생들이 놀고 있는 밖으로 나가 스카이 콩콩을 탄다.
두 발을 스프링 위에 모아 올려 놓고 뛰면 콩콩 점프를 한다.
땅을 향해 힘을 주는 것만큼만 통통 뛰어 오르는 스카이 콩콩은 재미있다.
내 모습을 보자 손꼽놀이를 하던 동생들도 자기도 한번 타보고 싶다고 옆에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짧은 순간이지만 하늘 위로 솟구칠 때마다 느껴지는 희열때문에 금방 내려올수가 없다.
기다리다 지친 동생들은 엄마한테 이른다며 징징거리며 떼를 쓰기 시작할때쯤 그녀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동생들에게 스카이 콩콩을 건네준다.
대낮이지만 동굴 속처럼 어둑하고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방으로 들어와 낮게 드리워진 형광등을 킨다. 스케치북 위에 연필로 만화 속 여주인공들을 그려나간다. 금방 한장이 채워진다.
라디오와 만화 그리기가 나에겐 위로의 도구였지만 엄마는 이해는 커녕 잔소리의 대상이었다.
" 또 그놈의 만화 그리냐. 숙제는 한거야?"
언제왔는지 방 문 밖에 선 엄마는 엎드린 채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녀에게 잔소리부터 늘어 놓는다.
아직 마흔도 채 되지 않은 얼굴이지만 잔주름이 늘어지고 칙칙한 얼굴빛은 오십은 넘어 보인다.
심하게 구겨진 두꺼운 종잇장 같은 엄마의 얼굴은 항상 그늘이다.
가정을 배반하고 사는 남자랑 사는 여자의 히스테리는 아무리 두껍게 화장으로 은닉해도 결코 감출수 없을 것이다.
" 숙젠 다 했어."
그녀는 아쉬움을 남기고 책가방을 집어 든다. 내일 시간표로 책을 바꾸어 놓고 국어와 수학 숙제를 한다. 재미도 없고 잘하지도 못하는 공부를 하는 것은 큰 곤역이다. 그렇지만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꾹 참고 할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딱히 공부를 안할수도 없다.
공부는 못하지만 하지도 않는 큰딸을 보면 그 속이 어떨지는 훤히 알기 때문이다. 자기까지 덤으로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음이다.
무능력하고 처자식 돌보는 대신 밖으로만 나도는 남편때문에 힘들고 고된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 엄마한테 큰딸까지 동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공부라도 열심히 해서 엄마 얼굴에 웃음꽃이라도 피워내고 싶지만 공부에 영 자신도 없고 매달리고 싶지도 않으니 고민일 따름이다.
부모님 말씀따라 도대체 나라는 여자 아이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나 자신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답에 머리가 띵하니 마음만 무거워졌다.
사건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아주 엉뚱하고 극히 사소한 부주의로 인해서 말이다.
돌이 갓 지난 막내 동생은 아직 잘 걷는 대신 방바닥 기는데는 선수격이다.
어찌나 빨리 기어다니는지 걸어 다닐수 있는 내가 그런 동생을 붙잡을려고 하면 진이 빠질 때도 있다.
그날 엄마는 부엌에서 배추 겉거리를 버무리고 있었고 난 당연히 동생을 돌보라는 명령에 큰 방에 같이 있었다. 그때 텔레비전에선 재미있는 만화프로를 하고 있었고 내가 잠깐 깔깔대며 방심한 사이 방을 나가 부엌 쪽문 쪽으로 기어나간 게 화근이었다.
그때 만약 펄펄 끓어 오르는 큰 냄비만 없었더라면 동생은 단순히 머리나 박아 멍이나 들고 상처만 났을 것을 그래서 나도 죄의식에 빠지지 않아도 되었을 일은 전연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엄마는 양념에 간을 맞추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고 동생은 그저 엄마 모습만 보고 앞으로 죽 기어 갔을 것이다. 부엌에 들어 온지도 모르고 있다가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를 듣고 보니 동생이 냄비안에 기우뚱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나와 동생들은 막내 동생의 혼절할 듯한 울음 소리를 듣고 부엌으로 몰려 왔도 엄마는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숨도 안쉬고 울어대는 동생을 안고 어쩔줄 몰라하고만 있었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나를 쳐다보며 악다구니를 쳐댔고 그제서야 올바른 정신이 돌아왔는지 동생을 포대기에 싸안고 맨발인 채로 밖으로 뛰쳐 나갔다.
미친 여자처럼 하고 나간 엄마 모습에 두 동생은 크게 울지도 못한 채 울먹거리기 시작했고 텔레비전에 빠져 동생 하나 간수 못해 돌이키지 못할 큰 일을 저질러 버린 나는 오줌보가 터질 것 같은 상태로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 있어야먄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병원에 갔다 왔을 동생은 오른볼이 발갛게 익은 상태로 번들거리는 약을 바르고 오른팔은 붕대에 감겨 있었지만 낮이나 밤이나 끊임없이 고통을 호소하며 울다가 지치면 깜박 잠들었다가 또 깨어나면 울어대는 시간을 보냈다.
펄펄 끓어 오르는 물에 여린 살을 녹인 어린 동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자기 표현은 오직 자신의 고통을 울음으로 내보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루가 엿자락처럼 길고 끈적거리게 이어졌고 동생의 고통이 묻어나는 울음 소리로 언제 그칠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두 귀가 잘려 나갔으면 하고 바랄 절도로 아기 울음 소리는 공포로 다가왔다.
내가 왜 그랬지 오직 그 생각만으로 똘똘 뭉쳐진 머릿속은 암흑에 묻혀 버렸다.
정기적으로 엄마는 동생을 안고 심각한 표정으로 병원을 다녔지만 화상이라는 게 빠른 시일 내에 치료될 수 없는 처지라 별 차도도 보이지 않았고 그만큼 엄마와 동생은 하루하루를 똑같은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터진 후 엄마는 나를 사람 취금하지 않고 죄인으로 치부해 버렸고 눈만 마주치면 동생도 하나 못보는 년이라면서 몇 분이씩이나 하나마나한 잔소리를 해댔다. 그것으로나마 나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어 나가는 듯 싶었다. 아빠는 분에 못이겨 실성이 나간 사람같은 폭군으로 돌변해서 발차기로 내 배를 강타를 했는데 하마터면 나는 그 자리에서 '나 죽는다'라는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 이, 미친년아! 보기도 싫으니까 나가 죽어."
배를 싸안고 시름을 하고 있는데 멍멍한 두 귀로 들리는 아빠의 악다구니가 들려 왔다.
두 부모의 냉담하고 싸늘한 눈초리에 기가 질린 나는 밥도 먹는 시늉만 한 채 밥상에서 물러 나와야 했고 웃을수도 없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형벌을 받고 살았다.
토실토실 귀여운 아기곰 같던 막내 동생은 그 끔직한 화상 이후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못자고 늘 울기만 한 덕분에 살이 쭉 빠져 더 가여워 보이기만 했다.
돌사진 속에 막내 동생은 일흔 살도 넘은 노인네처럼 비쩍 말라 울상을 짖고 있었다.
사진 속에 동생은 다시 원래되로 되돌일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사건 당일을 떠올리며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 그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환상적인 상상에 붙잡혀 맹한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허무맹랑한 생각만이 현실을 도피해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 였던 암울한 시간들은 더디게 흘러만 갔다.
그 사건 이후 한살 한살 나이를 먹은 남동생은 오른쪽 볼과 오른팔이 벌겋게 쪼그라 든 모습이 되었다.
좀더 커서 피부이식을 하는 방법 밖에 없으니 피의자가 할 일이라곤 없었다.
애처로운 볼을 가지게 된 남동생을 보면서 하루 빨리 커서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으로 동생의 오그라진 붉은 볼을 깨끗하게 수술해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가 저리 만들었어, 라는 생각이 들때마다 내 볼과 팔에 붙은 생살을 뜯어 동생의 볼과 팔목에 붙여주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렇지만 한참 어리고 자신의 처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동생은 자신을 잘 돌봐주지 못한 큰 누나를 원망은 커녕 전보다 잘 따라 주었다. 그런 순진무구한 동생에게 나는 억지로 웃어가며 재미있게 놀아주는 것 밖에 해 줄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