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明) 나라 왕징(王徵)의 자는 양보(良甫), 호는 규심(葵心)이다. 벼슬은 첨사(僉事)에 이르렀다. 관서(關西) 사람으로 갑신(甲申)에 순절(殉節)하였다.
그가 지은 《기기도설(奇器圖說)》의 서문에 “내가 성(省) 안의 땅속에서 비석 하나를 파냈는데, 비의 이마에 ‘경교유행중국비송(景敎流行中國碑頌)’이라고 씌어 있었다. 이는 바로 당(唐) 나라 곽자의(郭子儀)가 새긴 것으로 1천 년이 지났으면서도 어제 만든 것처럼 새로웠다.
이 비의 내용이 지금 전하는 천주(天主)를 공경하는 교와 하나하나 모두 같아서 부절(符節)을 맞춘 듯하다.
여기 실려 있는 것이 당 태종(唐太宗) 이후의 여섯 임금인데 서로 이어받아 높이고 공경한 것이 매우 독실하였으니, 지금 뿐이 아니라 옛날에도 또한 그러했던 것이다.” 하였다.
매문정(梅文鼎)의 자는 정구(定九)이고 선성(宣城) 사람으로 청(淸) 나라 강희(康熙 청 성조(淸成祖)의 연호) 연간의 공생(貢生)이다.
그가 지은 《역학의문보(曆學疑問補)》에 말하기를 “서양 사람도 처음에는 회회교(回回敎)처럼 불교를 섬겼다. 당(唐) 나라 때 파사국(波斯國) 사람이 이곳에 살면서 대진사(大秦寺)를 세웠으므로 지금 전해오는 경교비(景敎碑)라는 것에 그 사람 스스로 ‘중[僧]’이라고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