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개위에 무동을 서다
해송/ 이상석
농사를 짓지 않아 먹을 것이라곤 없는 우리 집이지만 앞마당과 화단에서 쥐새끼들이 난리법석입니다. 서커스 공연을 하는지 어떤 놈은 나무위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묘기를 부리고, 또 어떤 놈은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지 눈 깜박 할 사이에 스쳐 지나갑니다. 이런 난장판을 바로 곁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백구는 나 몰라라 먹을 것만 탐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아주 귀엽게 생긴 고양이 새끼 한 마리를 얻어와 개 옆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평온한 내 집에 어떤 놈이 침범 했느냐고 기득권을 주장하며 개는 으르렁 대고 고양이도 지지 않으려 괴성을 내며 방어 자세를 취합니다.
‘으르렁 컹컹, 야옹 야옹’, 시끄러워 잠을 이룰 수 없어 어떻게 해야 이들이 친해 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일단은 가까이 접근 할 수 있도록 줄을 길게 하여 놔두었지만 2 ~ 3일이 지나도 경계심만 더 갖는 고양이를 억지로 개에게 접근시켜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지요. 개는 물어 뜯으려하고 앙앙거리고 고양이는 발톱을 새워 순식간에 개 눈언저리에 상처를 내고 말았지요. 꼭 내 주먹만큼 작은 녀석이지만 역시 호랑이 종류의 표독한 성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싸움은 이렇게 지속되었습니다.
나는 마치 동물원의 사육사나 된 것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그놈들을 유심히 관찰하였지요. 개는 조금씩 양보하려는 기색이 보였지만 고양이는 도통 화해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이들의 화해를 포기하고 며칠간 무관심하게 되었지요.
그로부터 보름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개와 고양이가 몸을 맞대고 나란히 누워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정말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지요.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우더니만 이렇게 친해 질 수 있다는 것이.
그 다음 날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미가 새끼를 안 듯 개품에 고양이가 안겨 있었답니다. 마치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기 듯 지극히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지요.
그리고 또 며칠 후 놀랍고도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답니다.
퇴근 후 궁금하여 그곳에 가보니 개 머리위에 고양이가 무동을 서서 만세를 부르고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둘은 형제가 되고 하나가 되었지요. 정말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흔히들 아주 나쁜 사이를 고양이와 개 사이에 비유해 앙숙지간이라고 하며 이들은 어떤 동물보다도 매우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 친해 질 수 없다고 합니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은 반갑다는 것인데 고양이가 꼬리를 세우고 흔드는 것은 적개심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고양이가 엎어져서 그르렁 거리는 것은 기분이 좋다는 표현인데 개가 그르렁 거리면 공격 자세이며, 개가 벌러덩 드러눕는 것은 좋다는 뜻이지만 고양이는 끝까지 싸우자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니 어찌 둘이 친해 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분명 ‘앙숙지간’이 ‘관포지교’로 변하는 현장을 보았습니다.
누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었는지, 누가 먼저 양보를 하였는지, 누가 얼마만큼 손해를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에겐 남북통일만큼이나 어려운 화해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성격이나 생김새가 전혀 다른 개와 고양이의 아름다운 화해를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 얼마나 어렵고 힘든 세상입니까? 지난날에 비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많이 좋아진 것 같지만 사람 사이는 더욱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너나없이 외로운 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들리는 뉴스마다 희망적이고 신바람 나는 소식보다는 절망적이며 가슴 아픈 사연들이 더 많습니다. 내 잘못은 없고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합니다. 잘 한 것은 잘 했다 하고 잘 못된 것은 분명히 잘 못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잘 한 것도 잘 못 했고, 잘 못한 것도 잘 했다고 하며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안타까운 시대, 그것은 곧 주인다운 주인이 없는 암흑의 시대를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 살기 위한 이기적인 것 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보람되게 사는 일이라고 생각 해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간관계가 중요합니다. 가족과의 관계, 이웃 친척 친지와의 관계,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아무리 많을 것을 가졌고 명예와 권력을 지녔다 해도 인간관계에서 실패하면 행복한 삶을 영위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보고 있습니다. 삶에 끝이 있고, 죽음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모든 게 소중하고 겸허 해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고 했습니다. 단 한번뿐인 인생, 개와 고양이만도 못한 삶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고양이도 개위에 무동을 서는데 우리 인간이 안 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진실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용서하고 이해하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풀지 못할 숙제는 없을 것입니다.
고양이 덕분에 소란스럽던 쥐새끼들도 없어졌지요. 고양이가 쥐를 직접 잡지는 않았지만 울음소리만 내어도 혼겁을 하여 나타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생하지 않고 가끔씩 울음소리로만 제 몫을 다하는 고양이.
결코 요란스럽지 않고 그 자리에 존재하고만 있어도 그 빛과 그늘로 어려운 일들이 술술 풀리는 그런 지혜롭고 유능한 지도자들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오늘 저녁엔 나보다 더 나은 개와 고양이 형제에게 고깃덩어리 몇 점을 주렵니다. 끝
첫댓글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침! 오늘은 선일님을 만나러 나주에 갑니다.
가서... 갑장님의 흉을 좀 보고 오겠습니다. ㅋㅋㅋ
고양이와 개가 친구가 된 사연에서 우리들에게 좋은 교훈의 글 감사합니다.
사람처럼 간사한 동물이 없다는 말은 옛부터 전해 오지만 인색해도 욕먹고 베풀어도 오해하는 세상이니 아쉬운 일입니다.
마음을 열면 앙숙도 친구가 된다는 것
깨우치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참으로 좋은 묘한을 선생님댁에 개와 고양이에게 배워야겠습니다.특히 사람과의 인연중에
상처를 입거나 실망을 하게되면 회복하는데 오래 걸리니 인간으로서 오늘따라 그넘들에게 머리가 숙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