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비에 새길 우리동네 유래입니다.
꼼꼼이 보시고 고견을 댓글로 올려주세요. 아는게 없어서 미약하고 볼품없으나
우리 같이 마음과 머리를 맞대고 다듬어 보자구요.
운암은 "운중발용"이란 명당의 터로 산세가좋아 관청이 들어설수있는 대지였다.
농토가 넓고 물이 풍족하며, 화평한기운이 모여 큰 부자가 나오고 남여가 수명이길며, 크게 번창할수있는터로,앞에 휘감아도는 높은 봉우리가 구름위에 솟았으니 황금문이 열렸고,활같이 굽어흐르는 남양강은 사람의 시름을 풀어주며,호연지기를 기를수있는 전망이좋은 장관이었던 양지바른 곳이었다.(결록 참고)
1914,2,28까지는 용담군 남면이였으며, 면소재지가 있었던 곳이다.1914,3,1진안군 정천면 용평리운암이 되었고,1987,1,1상전면용평리 운암마을로 되었다. 이남면 사무소 자리는 1975년까지 옛 건물이 있었으나,1980년 용평초등학교 관사로고쳐지었다.
마을북쪽 띠작고개를 넘으면 오리목 마을로가는 중간지점 오른편산에 커다란 바위가마치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형상을 하고있어 "구름바우"라 불렀으며, 그래서 운암이라고부르게 되었다.주막뜸,강변뜸,골뜸,중뜸,아래뜸,둔부골,중산,상여집골 등으로 한때 70여가구가 오순도순 살았던 곳이다. 아래뜸에서 눈물랭이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에있던 둔부골은 하루종일 볕이드는 따뜻한 곳으로옛날 절터가 있었고, 1996년봄 유적발굴 조사단에의해 3,000년전의 돌도끼가 출토된것으로 미루어 운암마을은 선사시대에도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있다. 마을동쪽 주막뜸위에있던 용평초등학교는 1946,10,1정천초등학교용평분교로 새벼루에세워졌다가 1951,1,1승격하였으며 1958,12,5운암리로 옮겨졌다.
호랑이가 편이앉아 쉬고있는 형상의 뒷동산아래, 한일자로 옹기종기 자리잡은 마을터에 살고있는운암리 사람들은 수제비 한그릇도 나누어먹을줄아는 후덕한 인심으로, 어느한집에 경사가 있으면 너나없이 제일처럼 좋아하며 기쁨을 같이하였고, 혹시 한사람에게 힘든일이 닥치면 우루루달려가 십시일반도우며 기쁨과 슬픔을 항상 같이나누어가졌고,봄부터 가을까지 앞냇가 맑은 물속에서 멱감고 물고기잡아 천렵하던 물좋고 인심좋은 곳이었다.
비옥한 농토는매년 풍년을 이루어 풍족한 생활을 할수있어,한가족처럼 정답게 지내다가 2001년 용담댐 완공으로 물속에 잠기는 고향을 뒤돌아보며 어쩔수없이떠나 흩어지게되었고, 그때는 황망중에 세우지 못했던 망향비를 향우들의 뜻을모아 2011,10월 절 절한 향수와 그리움을 모두담아 여기 망향비에 새기게되었다.
이제는 고향을 잃고 각처에 흩어져 살고있을지라도 운암에 뿌리를둔 향우및그자손들은 한시도 고향을 잊지말고 돈독했던 옛정을 더욱 깊이다져 대대손손 전통이 이어지고 자랑스럽게그뜻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노라. 서기2011년 10월 일.
첫댓글 내가 살던 고향이 이런 아름다운 전설이 있는지는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정말 인심좋고 아름다움
고장 자랑스럽습니다... 애많이 쓰고 계시는군요 오빠 ~~~
경치좋고 물좋은 인심이 넘쳐흐르는 고향으로만 알고있었는데 운암마을에 전설을 알고 보니 옛정이 더욱그리워지네요
망향비에 새겨질 고향에 흔적을 되세기며 여러어르신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오빠 ~아름다운 전설 감사해요 건강 하셔요 ^^***
스쳐만가면 간지러워요.
관심좀 갖고 많은 참여 부탁합니다. 너무나 무감각 한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