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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 現 起 請 分 第 二
時 長 老 須 菩 리가 在 大 衆 中 하시다가 卽 從 座 起 하사 偏 袒 右肩 하시며 右 膝 着 地 하시고 合 掌 恭 敬 하사 而 白 佛 言 하사대 希 有 世 尊 이시여 如 來 가 善 護 念 諸 菩 薩 하시며 善 付 囑 諸 菩 薩 하시나니
世 尊 이시여 善 男 子 善 女 人 이 發 阿 뇩 多 羅 三 먁 三 菩 리 心 하니는 應 云 何 住 며 云 何 降 伏 其 心 하리이까
佛 言 하사대 善 哉 善 哉 라 須 菩 리 야 如 汝 所 說 하여
女 來 가 善 護 念 諸 菩 薩 하며 善 付 囑 諸 菩 薩 하나니
汝 今 諦 聽 하라 當 爲 汝 說 하리라
善 男 子 善 女 人 이 發 阿 뇩 多 羅 三 먁 三 菩 리 心 하니는 應 如 是 住 하며 如 是 降 伏 其 心 이니라
唯 然 世 尊 이시여 願 樂 欲 聞 하나이다.
반갑습니다.
오늘월요일 5월22일 염화실 인터넷방송 법문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32분 중에 두 번째 法 會 因 由 分을 다음에
善 現 起 請 分 第 二교재는 法 會 因 由 分 第 一, 善 現 起 請 分 第 二 이렇게 표현 되어 있습니다마는 이것은 이제 옛날 목판본의 표현방식이고 지금 식으로 하면 제이는 선현기청분입니다 이렇게 표현해야 옳을 줄 믿습니다.
32분의 설명을 지난시간에 달마대사와 관계가 있었던 양무제이야기를 할려고 했었는데 32분은 양무제 달마스님과 관계에서 있었던 32분 달마스님과 관계에서 참 만고의 표본이 될 만한 일화를 남긴 양무제! 양무제의아들 소명태자라고 하는 분이 금강경을 깊이 연구를 해서 32단락으로 나누고 매 단락마다 넉자로서 설명을 붙인 것입니다.
이게 이제 과목이면서 설명이 되는데 상당히 그 해석을 잘했다고 보고 또 그 뒤로 32분의 근거를 해서 금강경을 이해를 했습니다.
대게 물론 다른 해석 방법도 있습니다만 27단이라든지 18주라든지 아주 교리적으로 꾀 까다로운 그런 그 불교방법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삼십이 분의 분류법에 의지해서 금강경을 공부하기 때문에 32분의 근거해서 공부하게 됩니다.
달마대사와 양무제는 왜 만고의 표방이 될 만한 일화를 남겼는가~ 하며는 우리가 금강경을 이해하는데도 상당히 좋은 열쇠가 되는 그런 그 이야기죠.
양무제는 불교를 아주 좋아해서 사찰을 많이 세웠죠. 전번에도 말씀드린것 같은데 스님들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제도에 의해서 탑도 많이 세우고 부처님도 많이 조성하고 아마 천불, 천사, 천 탑을 조성했다.
이렇게 이제 말씀 드릴수가 있는데 거기다가 수십만 명의 스님들을 당신제위기간에 제도적으로 스님들을 출가시켜서 스님들을 만들었다.
그래서 참으로 훌륭한 일을 많이 했지요 사실은.
그러나 이제 그 공덕을 가지고 달마스님에게 내가 이렇게 이렇게 불사를 했는데 이 공덕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게 물으니까 달마님이 小 無 功 德이라 아무 공덕 되는 바가 없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두고두고 이야기를 할 것인데 벌써 두 번째 이야기죠.
달마스님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그런 공덕 그것을 늘 염두해 두고 불교는 그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불교의 최고의 목적이다.
이렇게 보신 것입니다. 제대로 눈을 뜬 분들은 사실 그렇게 불교를 이해하는 거지요.
새로운 어떤 복을 짓고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공부를 하고 그래서 없던 것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 사람들에게 본래로 갖추고 있는 이미 있는 공덕, 이미 있는 능력, 이미 있는 그런 그 무한한 가능성, 이미 갖추고 있는 복덕, 이것을 이해하고 이것을 개발하고 이것을 깨우쳐서 누리도록 이것을 누리면서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가르침이 불교입니다.
새로운거 만드는거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뭐 양무제가 아무리 왕의 입장에서 불사를 많이 조성했다손 치더라고 양무제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그 공덕에다 비교를 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죠 이루 말할 수 가 없이 크거든요 우리도 불교 공부하는 것이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조사스님들의 평생의 가르침 수많은 깨달음 분들의 가르침이란 한결같이 그것입니다.
만약에 그 종지를 놓치고 다른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다른 이야기에 예를 들어서 불교의 목적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면 불교의 종지를 모른다고 감히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니예요.
양무제와의 달마스님과의 이야기는 아주 간다하거든요 그 달마스님이 무슨 뭐 양무제를 무시해서 그런 말씀을 하실 까닭이 없습니다.
외국에서 와서 일국의 천자인데 천자에게 무슨 무시하는 말을 할 것이며 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시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거죠 분명히 이것은 의미하는 바가 있고 또 근거가 있는 이야기고 사실 눈을 뜨고 보며는 그 사람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공덕에 비교를 한다며는 당신이 천불 천 탑 천사를 건립했다 손 치더라도 별 공덕이 아니라 하는 그런 사실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이야기를 우리가 염두해 두고 불교를 이해하고 금강경을 이해하고, 우리들 인생을 이해하고, 우리들개개인의 삶을 이해한다면 크게 불교공부를 해서 그릇될 일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잘못 가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소명태자 32분을 이야기를 하면서 달마와 양무제 또 그것은 단순한 두 분의 이야기가 아니라 금강경 이해에 아주 열쇠가 되기 때문에 또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第二 분은 善 現 起 請 分 했는데 선은 여기에 부처님과 대화의 상대자가 되는 십대제자 중에 한사람인 수보리지요.
수보리를 선현이라기도 번역을 하고 십대 제자 중 혜공 이라기도 하고 공생 이라기도 하고 그렇게 번역을 몇 가지로 합니다.
이분은 이제 부처님의 십대제자를 무슨제일, 무슨제일 하는데 慧 空 第 一 이라하지요 공의이치를 이해하는 데 제일이다.
그래서 이 금강경은 수보리가 대화의 상대가 되었기 때문에 벌써 수보리 하면은 아! 공의 이치를 모든 존재의 공의 이치를 설하려고 하는 것이구나!
이렇게 이해해도 좋다는 거지요.
금강경의 이해하는데 하나의 또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또 공생이다 이런 표현도 있구요. 어째든 공의 이치와 수보리와는 관계가 많다는 그런 그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앞에서 부처님께서 걸식하고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의발을 거두고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떠~어~억 앉았다.
그런 경우라고 우리가 상상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요.
無 問 自 說 이라고 해서 부처님이 제자가 묻지 않는데도 설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전을 보면 제자가 이런 상황에서 묻습니다. 물으면 그때서 이제 설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법문도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요즈음은 인터넷상으로 우리가 정해놓고 하니까 굿이 그런 게 필요없습니다마는 또 정기법회라든가 강의라든지 이미 정해져 있는것 묻고 이런 형식을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마는 부처님 당시 때는 특히 자연스러운 그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렇게 정기적으로 정해놓고 법문을 청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죠. 그러니까 이렇게 공양 다 마치고 모두 자리를 펴고 떠억 앉아가지고 수보리가 있다가 법을 청하는 기청 선현기청이라 일어나서 법을 청하다 그런 내용이죠.
時에 長老須菩提가 在大衆中하시다가 卽從座起하사
時 에 長 老 須 菩 리 가 그때 그 때가 뭡니까?
자리를 펴고 앉은 너도나도 다 사라진, 온갖 상이 다 사라진 온갖 상황에서 수보리가 장로 수보리! 장로는 불교용어인데 기독교에서 가지고 가져가서 장로장로 합니다마는 어른이라는 뜻이죠.
나이도 많고, 덕도 높고, 학식도 있고, 인품도 뛰어나고, 이런 모든 것을 제대로 갖춘 그 사람을 장로라 이렇게 합니다.
수보리는 그런 분이라는 거지요 장로인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 자리로 돌아오자 偏 袒 右 肩하시며 오른쪽 어깨를 치우쳐 메고 그 이제 뭔말인고 하니 가사를 보며는 오른쪽어깨가 드러나도록 그렇게 치우쳐 멘다 이런 뜻이지요
이것은 인도 사람들의 예법의 하나로 어떤 대화를 정식으로 청 할 때는 혀를 낸다든지 말을 하기 전에는 혀를 크게 낸다든지 아니면 오른쪽어깨를 드러낸다든지 말을 한다든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다든지 하는 이런 것이 진실한 말만 하겠다하는 그런 그 표현이랍니다.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조금도 거짓이 없노라 하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를 하겠노라하고 그런 표현으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右 膝 着 地 하시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그러니까 왼쪽 무릎은 세웠지요.
오른쪽 무릎만 땅에 대고 合 掌 恭 敬하사 합장하고 공경해서 부처님께 고해 말씀하시니라.
而 白 佛 言 하사대
부처님께 고해서 말씀하시니라 힘! 부처님이 아니고 고할 백자지요 말씀입니다.
부처님께 고해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는 천천히 말씀 드리기로 하고~~
우리가 이제 경전을 이야기하다보면 조금마음을 기울여서 가만히 들어보면 전부 자기보고 하는 소리 같아요.
저도 경전 볼 때 경전 이야기는 순전히 나 보고하는 소리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는 법문하고 나서 뒤에 들으신 분들이 스님 그거 나보고 하는 소리지요 하는 이런 소리를 아주 자주 들었어요.
사실은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다면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되는 소리지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조금 정성을 기울여서 정말 귀가 솔깃해서 듣고 있으면 전부 자기소리 하는 것처럼 들리지요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되는 것이지요.
사실을 제대로 듣는 것입니다. 제대로 하신 것이고요~
설법도 그렇게 해야 제대로 하는 것이고 또 듣는 분도 그런 상태가 돼서 듣는 것이고 그래서 나는 그런 소리 들을 때마다 상당히 흐뭇해요.
아~~ 이 참 내가 그래도 법문을 제대로 했는가 보다 최소한도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내가 제대로 했다.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누가 들을지도 모르고 또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고 했지마는~
부처님은 우리 모두에게 모두의 마음을 향해서 했기 때문에 그것을 고대로 제대로 전달했으면 나보고 한소리냐고 이렇게 생각 할 수가 있겠지요.
내가 금강경을 강의하면서부터 이제 그런 이야기를 들어가지고 내가 서두에 금강경서두에 제대로 강의를 하는구나!
금강경을 좋아해서 내 나름대로 금강경을 심취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구나 하는 그런 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성공한 강의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 누구라고 이름을 댈 수는 없습니다만 우리 도반 중에 참 음성이 좋고 경을 잘 읽고 감동적으로 법문을 하는 분이 있어요.
그래서 사형 사제되는 사람이 하도 그 스님 법문을 듣고 울기도하고 웃기도 하고 그렇게 감동적으로 한다 해가지고 법문을 한다고 해서 어떻게 하길래 그런 소리가 들리는가~ 해서 우정 법문하는데 참석을 해서 들어보았다고 해요.
들어보고 내한데 와서 하는 이야기요.
그전에 이야기를 한 소리인데 무슨 소리를 해가지고 사람들을 울리는가 했더니 여기 이제 있다가 그 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가운데 있다가 이런 말을 가지고 만약에 설명을 한다면 음성을 다~ 가라앉혀가지고 감정을 한~것 잡아가지고 있어서는 시에 끝~에 장로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이렇게하드라는 이야기예요.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감정을 잡아서 이제 하더라는 이야기예요.
부처님이 말씀하시는데 거기 무슨 뜻이 있습니까? 그 때 장로수보리가 거기에 뭔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면은 그 소리만 듣고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울드라는 거에요. 자기가 듣기에는 그때 기가 찰 노릇이더라 그런 소리를 그전에 같이 이야기를 나눈 스님이 있는데 ~
그래요 법문도내용도 중요하고 감정을 잘 잡아서 아주 바람직한 음성으로 남을 움직이게 하는 음성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요.
부처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기쁘게 하든지, 또 아주 감동스럽게 하든지, 아니면 눈물을 흘리게 하든지,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든지 이런 강의가 되고 법문이 되야 그래도 좀 우리 마음의 움직임이 약간 있게 하는 그런 강의가 되고 법문이 되야 약간의 동요라도 있으면 그래도 조금 우리 마음에 어떤 약간의 동요라도 있게 될 것이고 약간의 동요라도 있으면 그 효과가 그 파장이 앞으로 상당히 커질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합장공경하고 부처님께 고해 말씀하시되.
希 有 世 尊 이시여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희유 하십니다 아주 특별하십니다. 위대 하십니다 또 훌륭하십니다 아주 대단하십니다. 이런 의미를 다 담고 있는 것이 희유라는 뜻입니다 희유하다 드물게 있다
아주 이건 뭐 인간세상에서 보기 어려운 드물게 있다는 그런 경우입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
세존을 찬탄하는 게예요 부처님을 그만치 안다는 뜻이지요.
옛날 조사스님들은 이 말에 부처님이 안됐다 수보리에게 간파되었다. 부처님도 간파되었다. 수보리의 담이 낮으막해서 수보리가 보기에 넘어서 그 담 안에 있는 집안 살림살이를 다 보고 있다 이런 뜻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 해석이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해석 이지요. 부처님보고 희유 하십니다~ 라고 했을 때는 그 집 살림살이를 부처님의 인격과 공부와 수행과 살림살이를 다 들여다보고 있다 이런 뜻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어째든 수보리가 이렇게 칭찬을 하고 그렇게 희유하다고 하는 뜻은 如來가 善 護 念 諸 菩 薩 하시며 善 付 囑 諸 菩薩 하시나이다.
如來께서 善 護 念 잘 호렴한다 선자는 호렴한다 누구를 ~~여러 보살들을~ 護 念이라는 것은 보호한다 생각한다 그런 뜻이예요 보호하면서 생각하는 것이니까 보살들을 늘 걱정하고 염려하고, 애착을 갖고 애착을 갖는 표현도 좋지요.
모든 중생들에게 대한 자비심이고 또한 애착라고 해도 허물이 될 것이 없습니다.
보살들을 잘 애착하고 늘 생각하고 또 善 付 囑 諸 菩 薩 부 촉 제 보 살 이야 ~제 보 살 들을 선 부촉한다~ 잘 부촉한다. 이것은 잘 가르친다는 뜻이 있습니다.
앞에서 호념!! 염려하고 사랑하고 늘 다독거리고 그렇게 하다보니까 이래라 저래라 가르 칠수도 있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라 이렇게 당부를 하고 있을 수 있고 여러 가지 지시사항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 구체적인 지시사항을 付 囑이라고 하지요.
사찰에서 소임을 임명할 때 부촉한다~ 그래요.
사회에서는 총무나 교무다 하는 것을 임명한다.
그렇게 하지마는~~ 불교적으로 표현하자면 부촉한다 그럽니다.
총무로 부촉하고 재무로 부촉하고 교무로 부촉하고~
나는 우리 염 화실 전 법우님들에게 법사로, 여래사로, 포교사로, 전법운동가로, 그렇게 전부 부촉을 했습니다.
부촉을 했는데 아~모두 열심히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아직 발 벗고 뛰지 않는 분들도 계시고 그래요. 다 부촉했어요. 그렇게 당부하게 부촉할 수가 있으니까 구체적인 당부를 부촉한다. 그럽니다.
여기서 보살이라고 하는 것이 불교에서 제일 자주 듣는 명칭이 보살이라고 하는 명칭인데 한 번 더 집고 넘어가겠습니다.
여러 곳에서 워낙 많은 설명을 들어서 잘 아시겠지마는 일단 보살 하며는 어떤 분이냐~~
上 求 菩 提 下 化 衆 生이다 그랬어요.
우리 법우님들과 같은 경우입니다.
위로는 끊임없이 불교 공부를 하고 기도하고 참선하고 자꾸 경전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아는 것을 자꾸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
그게 하화중생 밑으로는 중생을 교화 한다 그래요.
그래요 내가 직접 말로전하지 못하면 염화실이 어디있다, 염 화실을 안내하기도 하고, 아니면 염 화실 법문을 복사해서 다른 카페나 다른 홈피에다 떠내서 퍼 다가 소개하기도하고 염 화실을 소개하기도 하고 지금 뭐 그런 활발하게 지금 그런 운동을 크게 전개하고 있죠. 한쪽으로는 이렇게 배우고 또 배운 것을 나누는 것.
이것이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 이게 보살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각이 유정이라 깨달은 마음이 담뿍 들어있는 그런 중생 그다음 도심중생 각 유정 도심중생 이런 표현들을 많이 쓰지요 그렇습니다.
조금 이제 인생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면서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게 살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은 보살이에요.
그런 그 사람들~~ 전혀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참 금강경의 범주 안에 금강경 공부의 범주 안에 들기가 조금 쉽지는 않지요 사실은. 그런 마음이 있을 때 금강경공부의 학생이 될 수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세존은 그런 분이다. 이거요
보살들을 잘 호념하시고 보살들을 구체적으로 잘 부촉도 하십니다.
세존이시요 선남자 선 여인은 특별한 의미가 없고 남자신도 여자 신도 그런 뜻이지요.
善 男 子 善 女 人이 發 阿 뇩 多 羅 三 먁 三 菩 提 心하니는 선남자 선 여인이 발 보 리 심!!
발 아뇩 다라 삼먁 삼보리심 한 사람에게 대해서는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심!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 이것을 줄여서 보리심!! 이렇게 말해요.
아뇩 다라 삼먁삼보리라고 하는 말이 자주 나오고 여기는 신자가 붙어서 아뇩 다라 삼먁 삼보리의 대한 마음,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 무 상 정 등 정 각 심 이렇게 말하는데 이것을 쉽게 표현하자며는 최상의 깨달음의 대한 마음 이런 뜻입니다.
그 마음을 낸 사람! 발 그 마음을 낸 사람에게는 이런 말인데 그 마음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 다시 말해서 보리심은 자비심이고 연민심입니다.
깨달음에 대한 그 마음은 곧 자비심과 연민 심으로 이어져야 되는 거죠! 그게 둘이 아닙니다.
제대로 불법을 안다면 자비심이 나게 되어있고 자비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이제 불법에 대한 올바른 사상과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그러 며는 무엇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자비심과 연 민심을 내는고 하며는 다른 게 아닙니다.
굶는다고 해서 연 민심을 일으킬 수도 물론 있어요. 불교에서는 굶는 거 가지고 연 민심을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거 참 냉정하게 들릴 줄 모릅니다마는 이것은 분명하게 말씀 드리면 법을 모른다는데 대해서 연 민심을 일으킵니다.
굶고 헐벗은데 대해서 연 민심을 일으키지 아네요. 뭐 이렇게 해야 되어야죠 그렇게 해야 사람일이고 좋은 일이고요 상식적으로 좋은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불교까지는 들어서 그거 할 일은 아니 예요. 사실은 국가의 복지부에서 할 일이고 다른 종교에서 할 일이고 한데 불교가 요즈음 그런데 많이 이제 나서요~나서는데 좋은 일이기는 하지요.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불교의 종지에는 그것보다 우선으로 하는 것이 있다.
여기서 보리심이라고 하는 것은 곧 자비심과 연민심인데 법을 모른다는데 대한 그런 그 자비심과 연민심이지 굶고 헐벗은데 대한 자비심과 연 민심은 이차적인 것이다 아니라는 뜻은 아니고요 이차적인 뜻이다.
그렇게 알아야 되요 우리정확하게 선을 그어놓고 알아야 됩니다.
이치를 모르는데 대해서 법을 모르는데서 법을 전하는데 대해서 보리심이란 곧 법을 전하는 마음입니다.
깨우쳐주겠다는 마음 어떻게 해서라도 깨우쳐주겠다는 마음입니다.
서두에서 내가 달마스님과 양무제의의 예화를 우정 든 것이 바로 우리들개개인에게는 무량복덕 있는데 그 무량복덕의 이치를 깨우치고 거기에 눈 뜨드록 하는 것, 거기의 이치를 일깨워 주는 것, 그것이 자비심의 발로고 연민심의 발로고 그런 이치를 아는 것이 보리심이고 그런 이치를 아는 것이 곧 깨달음이지요.
보리심을 발한 사람들에게는 운하 항복기심이며 어떻게 마음을 항복받아야 됩니까?
우리도반 중에 경도 잘 읽고 감동적으로 법문하는 사람이 있어서 법을 전하려는 운 하 복기심이라 밀면 법을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하는 이런 마음들이 있는 사람들은 응당히 머물고 어떻게 살며 운하 항복 기심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됩니까?
수보리가 두 가지를 물은것에 부처님에게 사는 곳, 머무는 곳 주소라고 합니다.
머무는 곳이나 사는 곳이나 주자는 사는 모습, 사는 행위, 사는 것이 관심사, 우리의 관심사가 사는 곳입니다.
금강경이 곧 여러분들은 지금 집에 계시겠지만 금강경공부의 귀를 기울이고 계시기 때문에 금강경이 곧 여러분들이지금 사는 곳이고 머무는 곳입니다.
하루 종일 저기 마음이 천리만리 돌아다니는 것이 천리만리 돌아다니면서 밖에 있다면 집에 있는 것이 아니지요.
불교에서는 그렇게 봅니다. 몸뚱이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그 사람이 관심 가는 곳 이것이 사는 곳이다. 그 사람이 관심 가는 곳 그것이 사는 곳. 주자의 의미가 여러 번 이야기되겠지마는 여기서 설명을 드리면 그런 뜻입니다.
應 云 何 住 며 云 何 降 伏 其 心 하리이까 佛言 하사대
어디에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살고 하는 것이며 또 그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 것이냐?
항복이라는 말은 다스린다는 뜻도 되고 그렇습니다.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 것이냐 어떻게 항복을 받아야 되는 것이냐?
좋은 공부를 하고 좋은 공부를 여러사람에게도 전하긴 해야 되겠는데 그런 마음이 준비된 선남자 선 여인들 우리 법우님들 저부터 어떻게 우리가 머물며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항복받아야 되겠습니까? 참 중요한 것을 물었습니다.
수보리가 누구입니까? 정말 중요한 것을 물을만한 분이죠.
불은 하사다 부처님 말씀 하사되
善 哉 善 哉 라 아!! 훌륭하고 훌륭하다 정말 멋진 질문 했다.
정말 중요한 질문을 했다. 이런 의미이지요. 선재 선재라~~
질문을 제대로 하면요 질문을 받는 사람 아주 기분 좋지요.
야~~저 사람이 뭔가 알고 질문을 한다.
질문이 엉뚱하면 참 대답할 맛도 않나지요? 엉뚱하면 뭘 어떻게 설명을 해야 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이해가 가도록 대답을 할 것인가? 참으로 암담할 때가 많습니다.
어제는 범어사 불교청년회에서 자기들이 능엄경을 가지고 독회를 한다고 해요 토론도 하고 소희 롱락도 한다고 그래요.
지금 뭐 궁금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이걸 어떻게 해야될까? 하고 자기들 교재로 삼고있는 일교스님 능엄경 지금 우리 염화실에 올라오고있는 그걸 가지고 하는데 가만히 살펴보니까 무비스님 監修(감수)로 되어 가지고 무비스님이 아직 범어사에 계신데 뭐 물으면 감수의 이름값이라고 할 것 아니냐? 그래서 무턱대고 책을 들고 왔더라구요? 그런데 요즈음 젊은 청년들이 되가지고 읽기도 많이 읽었고 토론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질문하는데 보니까 아주 제대로 하드라구요.
자기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여러 시간을 치다꺼리 하다가 거기서 정재된 질문을 가지고 와서 질문을 턱 던지니까 아주 대답하기가 너무 쉽고요.
또 그 사람들이 금방 알아듣고 하!! 그렇다고 끄덕거리고~~ 공부를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참 괜찮겠데요.
묻고 대답 하는것. 질문을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오래간만에 처음 질문을 받으니까~~
선재 선재라 훌륭하고 훌륭하다.
須 菩 提 야 如 汝 所 說 하야 如 來가 善 護 念 諸 菩 薩하며 善 付 囑 諸 菩 薩 하나니
수보리가 너희에게 말한바와 같이 여래는 여러 보살들을 잘 호념한다.
보호하고 호념하고 늘 걱정하고 여러 보살들을 늘 당부하고 가르치고 명령하고 부촉하고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한다. 부촉한다.
汝 今 諦 聽 하라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너희는 마땅히 들어라 그대들을 위해서 설하리라 수보리 한사람만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도 다 여기에 다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이 보리심을 발한 사람.
수보리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고 수보리 자신처럼 그렇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무수히 많습니다. 앞으로 앞으로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려고 하는 사람이 무수히 많습니다.
지금이순간도 이렇게 많이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야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야 되겠습니까?
참 중요한 질문이고 이것은 수보리의 문제이고 우리들의 문제이고 모든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듣는 분이 자기에게 해당된다. 나보고 했다 잘 법문 잘 들었다고 하는데 오해는 안하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 당시 모든 사람들에게 뜻있는 모든 마음에 울림을 주는 법문이기 때문에 다 나보고 하는 소리같이 들려요.
저는 그래 금강경에 대해서 쓴 책이 교과서 하고 하면몇가지 됩니다. 대여섯 가지 될 거예요.
금강경 쓴 책이 전부 구절구절이 나보고 하는 소리 같아서 그래서 늘 쓸 때마다 가슴이 찔리면서 좋구요. 좋으면서 또 자신이 이제 조금씩 교정이 되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공부라는 그런 것이고 수행이라는 것이 또 그런 것이고 정진 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라서 그래서 좋아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의 교과서다 그렇게 되어 있고 내 욕심으로는 전 인류의 교과서가 되어야 된다.
그런 마음 이지요 정말 이게 사람답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생활 태도, 마음자세 이 문제대한 것이니까요
當 爲 汝 說 하리라.
마땅히 그대들을 위해서 이야기 하겠다.
善 男 子 善 女 人 이 發 阿 뇩 多 羅 三 먁 三 菩 提 心 하니는應 如 是 住하며 如 是 降 伏 其 心이니라 唯 然 世 尊이시여 願 樂 欲 聞하나이다.
선남자 선 여인이 발 아뇩 다라 삼략 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에게는 보리심을 발한 사람에게는 최상의 깨달음의 대한 마음을 낸 사람에게는 應 如 是 住 하며 응당히 이와 같이 머물며, 응당히 이와 같이 살며,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을 지니라,그 마음을 다스릴 지니라.
그 항복이라고 표현을 이렇게 하긴 했으니다마는~ 다스린다 같은 의미입니다.
좀 부드럽게 표현하면 그 마음을 항복받을 지니라.
이와 같이라고 해서 그 말속에 앞으로 이야기들이 될 것이 그 속에 다 함축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이 뒤에 이제 남아있다는 것을 그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요.
그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하는 말은요 그러니까 유연입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唯 然 입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세존이시여 願 樂 欲 聞 하나이다. 원컨대 듣고져 하노이다.
아주 잘 듣고져 하노이다. 좋아할 요라고 해서 워낙 욕 문이다. 틀린말은 아닌데요 예부터 원요욕문하노이다 좋아할 요로 요산요소 할 때처럼~~
세존이시여 원 요 욕 문 하노이다. 원컨대 듣고져 하노이다, 마음이 흡족하게 듣고져 하노이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듣고져 하노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제이 분은 수보리가 일어나서 부처님께 법을 청하는 내용이지마는 청한 그 내용이 두자기로 딱 요약이 되고 그 질문 그 것이 앞으로 이야기 되어질 것이기 때문에 참 그 금강경의 전체 뜻을 간추리기가 아주 좋게 되었습니다.
수보리 질문만 생각하면 질문에 대한 부처님이 답이니까 부처님이 엉뚱한 답을 할 리가 없지요 천하의 부처님인데 엉뚱한 답을 할 리가 없습니다.
그 질문에 아주 적절하게 답만 정연하게 하나하나 구석구석 따져가면서 아마 들려 줄 것입니다.
오늘 금강경 선 현 기 청 분 서두에 달마스님과 양무제이야기 그것은 두고두고 이야기될 것이며 그것은 또 곧 금강경을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가 되고 불교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 진정한 금강경을 이해하는데 열쇠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여러번 이야기가 될것입니다.
특히 보살에 대한 해석은 여기서 정말 적절하게 해석을 해 드렸으니까 잘 염두해 두고 아~~ 우리들이 바로 보살에 해당되는구나! 그렇게 이해를 하시면 될 것입니다.
오늘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_()()()_
※불교의 정법 전법 도량 염화실에서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여천 무비(如天 無比) 큰스님의 염화실 가는 길
http://cafe.daum.net/yumhwasil
첫댓글 희견님 감사드립니다 _()()()_
희견님 고생 많이 하셨어요.고맙습니다._()()()_
희견님! 수고하셨습니다. _()_
희견님 감사드립니다. _()()()_
희견님 수고하셨습니다.성불하십시오.
희견님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염화실의 付 囑 희견님! 감사 합니다._()()()_
희견님,고맙습니다. _()()()_
희견님 감사합니다... 잘 모셔갑니다....^^* _()()()_
보리심이란 곧 법을 전하는 마음이다.... 희견님!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_()()()_
자혜성님, 도류님,대원성님,진성심님,보현님,대해월님, 초연화님, 명성화님, 무영수님.....염화실 법우님들...감사드립니다.....성불하십시요. _()()()_
희견 보살님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공부 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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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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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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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금강반야바라밀........................................................................................佛
보살은 상구보리 하화중생..............보리심;자비심.연민심....나한테 하는 소리입니다.....佛...喜....
원요욕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희견님 좋은 말씀 이렇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잘 모셔가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듣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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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그런 공덕 그것을 늘 염두해 두고 불교는 그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불교의 최고의 목적이다.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보리심이라고 하는 것은 곧 자비심과 연민심인데 법을 모른다는데 대한 그런 그 자비심과 연민심이지 굶고 헐벗은데 대한 자비심과 연 민심은 이차적인 것이다 .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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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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