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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현장 철원에 다시 가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정기적으로 육지부 산들을 하나씩 답사하자는 의견들이 오고갔다. 사실 추자도 답사 이후 격에 맞는 나들이는 없었던 터였기 때문에 이 제안이 더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마침 황금연휴인 10월 2~3일에 군 동기들과 함께 근무지였던 강원도 철원 지역 방문에 이어 금학산 등산도 계획되어 있던 터였다. 목적지 철원에서 의미 있는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08:30에 금학산 산행을 시작하였다.
금학산으로 출발 - 앞에 보이는 게 금학산 정상
금학산金鶴山)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 있는 산으로서 그 높이는 947m이다. ‘학이 막 내려앉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금학산이라 붙여졌다고 전해오고 있다. 901년에 궁예가 태봉을 건국하고 철원에 도읍을 정할 때, 도선이 이 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300년을 통치할 것이며, 고암산(북한)을 진산으로 정하면 국운이 25년밖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아 18년 통치 끝에 멸망하고 말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기도 하다.
금학산 기슭에 위치한 육군 00포병부대(1974년부터 2년 동안 이 부대에서 복무했던 터라 사전에 부대장에게 부대 통과 허락을 받은 상태임) 연병장에서 부대장의 지시를 받은 장교 2명의 안내로 쉬 등산로에 접어들 수 있었다.
예전에 이 산 일대는 민간인들이 출입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지만 지방자치화 되면서 등산로가 개설되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이 날 등산로에서는 철원군의회 의원팀도 만나 남제주군과의 자매 얘기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정상 1km를 남겨놓은 등성이 입구의 안내 문구가 걸작이다. “정상까지 20대는 20분, 30대는 30분, 40대는 40분. 50대는 50분에 오를 수 있다.” 즉, 산세가 가팔라 60대 이상은 오를 수 없음을 암시하면서 체력을 시험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했으니….
엊저녁의 과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르미들을 포함하여 군 동기들 모두 출발 40분 안에 정상을 정복했으니 그 체력들 칭찬할만하였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말을 잊게 해 버렸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능선, 저 멀리 백마고지 너머 보이는 북한 땅, 아스라이 펼쳐지는 평강고원, 그리고 추수가 막 끝난 드넓은 철원평야 등등.
금학산 정상에서 바라본 철원
부대장은 장교 2명을 심부름꾼으로 보내놓고도 미덥지 못했던지 10분마다 확인 전화까지 하면서 등산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흘러내리는 땀은 금학산 계곡의 약수로 식혀내었다. 출발지에는 예상보다도 무려 30분 일찍 이상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점심은 철원읍내에서 부대장이 미리 예약해 둔 붕어찜으로 해결했다. 일행들 그 누구도 아직까지 한번도 맛보지 못했던 별미였기에 모두들 그 맛에 찬사를 보내며 건배의 잔으로 등정을 축하.
다음 여정은 부대장의 몫이었다. 노동당사~백마고지~월정역~땅굴~도피안사까지. 정성을 다해 준 부대장과의 헤어질 시간, 못 다한 아쉬움만이 남았다.
이어 고석정과 승일교를 지나 문혜리사격장을 돌아 나와 신철원을 지날 무렵 하늘에는 초유의 대장관을 연출하였다. 먹구름으로 그려낸 용상(龍像)과 그 주위에는 형언할 수 없는 성운(聖雲), 그리고 그 너머에 비춰드는 한 줄기의 광명의 빛은 우리들의 여정을 축복해 주는 것만 같았다.
월정역OP였던 곳 - 왼쪽은 DMZ로 들어가는 문
(2005.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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