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배창호
출연: 안성기, 장미희, 최민희
백호빈(안성기 분)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부와 기회를 꿈꾸는 야망의 사나이다. 그는 영주권을 얻기 위해 제인(장미희 분)과 결혼을 한다. 제인은 삭막하고, 이기화된 미국이라는 문명사회에서 고독하게 소외된 여인이다. 백호빈과 동거인으로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제인은 호빈에게 그녀의 삶속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온 빛과도 같은 사랑을 느낀다. 이민국 직원의 까다로운 인터뷰 위기를 넘기고 호빈은 미국시민의 자격을 얻는다. 결혼 계약이 끝나갈 무렵, 호빈의 욕망과 제인의 사랑이 부딪쳐 대립한다. 제인은 계약을 위반하며 호빈에게 사랑을 호소하지만 호빈은 본국의 부인과 아이에 대한 일념뿐이다. 결국 호빈의 감추었던 비밀이 드러나며 광적인 난폭성이 폭발, 제인의 인간성을 짓밟고 만다. 드디어 두사람은 이혼여행의 길에 오르며 죽음과 같은 사막위에 허망한 인간의 욕망과 사랑의 결말이 보여진다.
'깊고 푸른 밤'은 장미희 라는 배우에게 굉장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 된 영화입니다.
알다시피 장미희는 1977년 '겨울여자'라는 영화에서 '스무살 생머리'로 혜성같이 나타난
신예였습니다. 춘향전으로 데뷔하여 다음 작품인 '겨울여자'는 서울관객 58만명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영화 '최고흥행기록'을 세우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여주인공 '이화'역을 맡은
장미희는 대 스타가 되었고, 이후 정윤희, 유지인과 함께 영화와 TV를 누비며 맹활약을
펼쳤으니까요. 장미희는 '제 1대 TV 춘향전'에서 춘향역을 맡는 영예도 누렸습니다.
그런 장미희가 배창호 감독의 '적도의 꽃'을 끝으로 미국으로 홀로 건너갔고, 이후 국내의
TV나 스크린에서 그녀를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팬들의 아쉬움은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올로케'영화인 '깊고 푸른 밤'을 배창호 감독이 연출하면서 미국에 머물고
있는 장미희가 전격 출연을 승낙하게 된 것입니다.
단지 미국에 있다가 영화에 출연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깊고 푸른 밤은 장미희에게
배우가 가질 수 있는 큰 영예를 남겼습니다. 바로 '자신의 영화가 세운 기록을 다시
자신이 깨는' 신기원을 이룬 작품이 된 것이죠. '깊고 푸른 밤'은 명보극장과 이동개봉관인
서대문의 '푸른극장'의 관객까지 합쳐서 60여만명을 동원하여 77년 자신의 영화 '겨울여자'가
세운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8년만에 다시 자신이 주연한 영화로 깬 것입니다.
이로써 장미희는 1990년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이 서울관객 68만명을 동원하여
기록을 깨기 전까지 14년간 최고 흥행영화에 주연한 배우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라이벌 트로이카를 형성했던 정윤희나 유지인의 영화들이 갖지 못한 기록이었습니다
깊고 푸른 밤은 미국에 이민한 두 남녀의 이야기입니다. 제인(장미희)는 화려한 꿈을 안고
미국흑인과 결혼하였지만 딸을 낳고 헤어진 아픈 과거를 가진 여성입니다. 첫 결혼에
실패한 이후 바에서 일하면서 '위장결혼'으로 돈을 버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미스터 백(안성기)는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안고 한국에 아내를 두고 홀로 멕시코를 거쳐
미국에 온 청년입니다. 영주권을 얻고 일을 하기 위해서 제인과 위장결혼을 하고
살아갑니다. 제인은 돈을 벌고, 미스터 백은 영주권을 얻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는
두 사람은 가짜 부부로 생활하면서 어색한 동거를 시작하는데, 제인의 아픈 과거의
상처와 미스터 백의 바람기가 맞물려 어느덧 두 사람은 진짜 부부처럼 사랑을 나누게
되고...................
깊고 푸른 밤은 주요 등장인물이 안성기와 장미희 딱 둘 뿐인 영화이며, 진유영과 최민희가
조연으로 등장할 뿐, 그 이외에는 단역으로 등장하는 외국배우 뿐입니다. 주인공 두 사람의
이야기가 촛점이며,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허무한 영화입니다
꼬방동네 사람들, 적도의 꽃, 고래사냥,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으로 계속 좋은 흥행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배창호 감독, 남자배우 기근에 시달리던 당시 한국 최고의 배우로
우뚝 서며 대종상을 두 번이나 거머쥔 안성기, 그리고 미국으로 떠나서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던 장미희, 이런 조합이니 이 영화의 흥행은 이미 만들어지기 전부터 보장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흥행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얼마까지 관객이 드느냐가 문제였죠.
당시 한국영화의 상황은 서울관객 10만명을 동원하기가 힘든 상황이었고, '애마부인'이후
벗기기 영화가 범람하여 팬들의 식상함을 주고 있었는데 배창호-이장호 감독 쌍두마차
만이 감독의 이름만으로 팬들을 스크린에 불러 모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배창호 감독은 안성기와 호흡을 이루어 만드는 영화마다 화제를 일으켰고, 가장 좋은
적기의 상황에서 장미희가 전격 합류, 결국 최고의 흥행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냉정하게 작품면으로 볼 때 깊고 푸른 밤은 어땠을까요? 일단 두 명의 배우들에 집중하여
단순하게 스토리를 이어가서 군더더기는 그다지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세월이 흐른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건달이며 파렴치한 이라고 할 수 있는 미스터 백에게 제인은 너무
쉽게 빠져들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것이 좀 아쉽게도 보입니다. 제인 역시 꿈을
안고 미국에 온 만큼 허영심과 부에 대한 욕망이 있는 여성일텐데, 미스터백에게 향하는
그녀의 행동은 지나치게 '손해보는 장사'입니다.
물론 이러한 제인의 행동이 동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철부지 나이에 미국에 건너와서
산전수전을 다 겪고 아메리칸 드림이 사막의 모래와 같이 덧없음을 깨닫고 모처럼 만난
한국의 남자(비록 위장결혼이었지만)를 통해서 새 인생을 살려고 하는 몸부림을 보이는 상황이며
아직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되어 허황된 행동을 하는 미스터 백이 자신의 과거에 투영되어
안쓰럽게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다국적 인종이 모여사는 미국이라는 광활한 나라. 사막에서 시작하여 사막에서 끝나는 이 영화는
별다르게 구구절절 메시지를 전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사막의 모습을 통하여 젊은 세월을
미국에서 낭비하는 두 남녀의 허망한 삶을 통해서 아메리칸 드림을 허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인 안성기와 장미희 외에 등장한 다른 한국배우 최민희와 진유영의 삶 역시
두 주인공에 뒤지지 않는 비참한 모습으로 비추어 지면서 미국은 치열하고 험난한 '사막'같은
곳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1985년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을 휩쓸었으며 안성기에게는 3번째 대종상을
그리고 4년연속 백상예술대상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당시 대종상은 '길소뜸'과 깊고 푸른 밤이
양분했으며 여우주연상은 길소뜸의 김지미가 수상하여 장미희는 아깝게 수상을 놓쳤습니다.
그렇지만 정윤희, 유지인 등이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떠나는 시점에서 유일하게 남은 트로이카
장미희의 건재함을 비록 미국에서나마 알리게 된 영화이며, 아직 절정의 나이였던 장미희는
짧은 단발머리의 아름다움과 좀 더 세련된 화술을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깊고 푸른 밤의 폭발적 성공에 힘입은 것일까요? 이후 장미희는 다행스럽게도 약 1년여 뒤에
귀국하여 연예계에 복귀하여 지금까지도 활발히 연기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트로이카 시절에
폭발적 인기를 누리던 시절에 비해서 귀국후 출연한 '황진이' '성야' '불의 나라' '사의 찬미'
'애니깽' 등 '작품'으로 남을 만한 영화들을 많이 출연했다는 것에 깊은 의미를 담을 수 있습니다.
70년대 트로이카 세 배우들의 인기는 비슷했지만, 소위 '작품'으로 남을 영화를 가장 많이
남긴 것이 단연코 장미희였고, '깊고 푸른 밤'이라는 영화는 흥행과 수상내역에 비해서 냉정히
평가하면 덜 세련되고 부족함도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잊혀질 뻔한 '장미희'라는 배우를
다시금 '스크린'으로 나오게 했던 의미깊었던 작품으로 당시로선 드물었던 '미국 올로케'라는
점도 강점으로 부각되었던 작품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소재로, 미국에 정착하여 가족을 불러들여 행복을 이루려는 한 남자(안성기)가, 흑인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이혼한 한 여인(장미희)과의 갈등과 파탄, 비극적 종말을 그린 사회성 짙은 드라마. 최인호의 원작을 배창호 감독이 영화화했는데, 미국 현지 촬영으로 이뤄졌다. 작품성과 함께 과감한 애정 장면 등 흥행 요인을 잘 갖춰 무려 49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대히트작이다. 안성기가 건달 이미지의 연기 변신을 시도하고 있으며, 진유영의 감초 연기가 돋보인다.
85년 제24회 대종상 작품, 감독, 남우주연(안성기), 촬영, 조명상 수상. 1985년 제5회 영화평론가상 작품, 촬영상 수상, 제85년 제21회 백상예술대상 작품, 감독, 남우주연상(안성기) 수상, 제21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대상, 작품, 감독, 연기(안성기), 시나리오상 수상. 1985년 제30회 동경 아태영화제 작품상(배창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