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시판에서 충분한 대화를 통해 상대방과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사안들은 제한되어 있을 것입니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배우는 것으로 기대하며 시작하지만 간혹 불합의와 불일치가 생기는 것은 어쩔수 없이 용인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성경은 우리의 모든 토론에 재판장이시라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조사와 확인, 과연 그러한가(행 17:11) 하며 상고하는데는 시간도 걸리며 때로는 영적 분별이 안맞는 것으로 끝날 때가 많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우리가 이단들에 대하여는 한두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는 말씀(디도3:10) 이 있지만 서로 누가 옳은지를 가려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뒤로 미루고 보다 나은 정보를 얻은 후에 분별하는 것으로 미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할(Agreeing to Disagree) 수 있습니다! 불합의하기로 합의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볼테르가 이신론자였던 까닭에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한 말 하나는 참 옳은 생각이라고 받아들여졌습니다.
I may disagree with what you have to say, but I sha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Voltaire (1694-1778)
이것은 영어 번역인데 원래 프랑스어 원문으로는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말해야 할 바에 동의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말할 권리를 나는 죽기까지 옹호하겠습니다."
이것은 카톨릭이 종교재판과 종교심문을 통해 고문하며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했던 것과 칼빈이 반대의견을 탄압했던 자세와는 판이하게 다른 반대되는 주장입니다.
볼테르가 그렇게까지 표현의 자유를 수호했는지는 의문이며 말과 행동이 같았으리라고까지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http://timesonline.typepad.com/comment/2009/03/in-this-morning.html
그러나 이런 말들을 통해 하나님은 인류의 조상이 선악과를 따먹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유를 허용하시고 믿음을 강요하시지 않는 분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분이 직접 혹은 천사를 보내어 나타나게 하사
"짠 ! 이 실과들은 못먹지롱!" 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신론자들이 흔히 하는 질문들 중에 하나입니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은 인류가 타락하는 것을 막지 않으셨던가?
그분이 즉각 관여하셨다면, 인간들이 자유의지로서 하나님께 순종하게하며 인간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작은 하나님들 되게 하시려는 그분의 계획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강요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자유를 주셔서 인간들이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시는 것이 그분의 뜻이었으며, 하나님이 일일이 관여하셨다면 인간들은 꼭두각시밖에 안되었을 것입니다. 그분이 에덴동산에서 관여하여 타락을 막으셨다면 창조의 사역은 다시 시작되었어야 하며 인간들의 모든 일에 일일이 관여하기를 계속하셨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하지 않으시고, 그대신 그 인간들의 타락에 대비하여 대비책을 마련하셨으며 그분은 속죄의 방법을 제공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최초로 구원얻은 인간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입혀주셨던 동물 가죽들은 죄없고 흠없는 동물들이 대신 피흘리고 죽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림자였습니다.(창 3:21)
그런 이후에, 수많은 속죄희생을 드렸던 율법시대를 거쳐 예수님은 실물로 오셔서 인생들의 모든 죄들을 담당하시고 대신 죽으심으로 인생들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7-9절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온전케 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기 전에는 온전하신 분이 아니었습니까? 그분은 십자가 이전에도 온전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그분이 온전케 되셨다고 말합니까? 그분이 십자가 지시고 피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인생 모두를 포함하여 온전케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안에서 온전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죽으시기 전에는 예수님 한분만 온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인생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면, 당신도 이 속죄희생의 수혜자들 중에 포함되었음을 믿으시면, 당신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안에서 수많은 신들을 만드시기 원하십니다(요 10:35) 다만 그 신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처럼 온전하며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역이 창대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인생들의 일들에 일일이 관여하신다면 인생들은 꼭두각시에 불과할 것이며 하나님의 성품과 온전하심을 닮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의견을 결코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인생들이 선택한 자유의 결정에는 결과가 따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인생들의 잘못과 죄악을 우려깊게 보시고 항상 대책을 마련하시고 인생들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고 네 집도 그리되리라(행 16:31) 의 말씀은 하나님의 호소이지 강요가 아닙니다. 그 호소에 어떻게 응답하겠습니까? 당신은 그 호소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셨고 믿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매우 훌륭한 결정을 하셨습니다.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과 표현의 자유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첫댓글 참 감사 합니다. 제가 이글을 읽고 이제 마음 편히 제의사를 빍혀도 될것 같습니다. 분별을 깊이 하게 되면 판단으로 나아갈수 있습니다. 다름을 너무 깊이 지적하면 이단으로 몰아 갈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카페에 목사라는 그리스도인들이 와서 이해를 못해서 받아 들이지 못하는것과 아예 이카페의 취지를 무시하는것인지를 분별해서 너무 박대하거나 그들을 너무 이단시 하지 말아 주기를 부탁랍니다. 저는 이카페가 옳고 그름을 초월해서 생명의 방식으로 나아가는 모든이들의 안식처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대의 의견에 절대 동의못한다. 그러나 그대가 그 발언으로 인해 핍박받는다면 나는 가능한 모든 힘을 다해 그대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하겠다. 볼테르의 말을 예를 들어 주신 카페지기님의 넉넉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카페가 모든회원들의 신앙이 발돋음 되는 장소가 되어지는 행복한모습이 연상되기도 해서 한편으로 회원의 한사람으로 가슴이 설레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떠나지 않는 카페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 드립니다
기독교는 결코 허약한 종교가 아니며 일부 학문이나 이론으로 분쇄될 수 있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 분들은 사도행전 5장 35절부터 나오는 가말리엘의 설교를 들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보았을 때 몇 가지 예외를 게시판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는 인정해야 할 것같습니다. 그것은 욕설 등의 경우, 근거없는 인신 비방, 안티들의 공격, 신천지 등의 교묘한 이단의 속임수 등의 경우일 터인데, 거듭남의 신앙고백이 먼저 전제된 바탕위의 토론에 한정되는 것으로 이 게시판 자체는 역할 할것입니다.
예향의 푸른잔듸,재규어,헵시바그리고 분별의 중민아 같은 분들을 말씀 하시는것 같은데 그런분들에게는 지기님과 운영자님들이 빠른대응을 하셔야 겠지요
가이컨님..저도 그들의 근황이 궁금해 거기 들어가보니 최근 그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저는 그들의 비상식적인 활동을 아주 탐탁찮게 여기고 있습니다..그런 사람들의 행위를 카페지기나 운영자가 눈을 감아주고, 오히려 그런 것을 이용한다면 저같은 사람은 그런 곳에서는 댓글 하나 다는 것도 꺼려지는 것입니다..저는 오히려 은총님 같은 분을 더 낫게 생각하며 그분의 영혼에 더 관심이 갑니다.
하토브님의 본문글 요지와 댓글 요지.....그리고 가이컨님의 댓글요지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안티들의 건전한 질문들과 의문들, 그리고 그에 대한 충실하고도 친절한 답변은 남겨두면 읽는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한한 우리 모두는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그런 경험들이 많은 분들도 있을 것이므로 세미한 노력을 요한다 하겠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의 갈증을 느끼지만 진정한 복음을 접했을때 늘 들어오던 전통적인 교훈들과 다른개념에 대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리는 분들이 있다는것입니다. 지기님과 운영자님들은 복음을 먼저 깨닫고 앞서나간분들로 사료 되오니 그런분들에 대해서 힘들더라도 기다려 주면서 이해 시켜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든 그가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세심한 배려로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여겨 달라는것입니다. 그렇게 될때 개인이든 카페든 사도행전 5장 39절 말씀처럼 하나님과 싸우는 자로 드러나지 않게 될것입니다.
이런 글이 유효하게 적용되는 예는 제가 환난 전 휴거에 반대하지만 환난 전 휴거를 믿는 사람들의 글을 용인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네, 저도 보편적인 세대주의(고전적+개정세대주의)에, 분명히 반대하지만,,,,그분들의 주장도 용납하고, 서로 배우는 자세로 토의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어떤 개념`이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지.....사람을 반박하거나, 다른 영``으로 단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랍니다...
하토브님의 그런 모습은 정말 존경스러운 모습입니다. 저 역시도 동감합니다. 환난 통과를 주장하시는 어느 분에게 휴거의 시기를 가지고 적대시하며 저주하는 과격함을 보이지는 말아야한다고 했다가 교만하다며 야단맞고 울며 기도한 적이 있어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서로가 확인한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요~ 나머지는 사랑으로 배우고 가르치며 해결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주장에 틀리다는 것으로 모두를 미워하지말았으면 합니다. 사람은 계속 배워가는 존재니까요~ 이 곳에 더욱 애정이 가네요.
가급적 다양한 의견을 가지신 분들이 참여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게 좋겠습니다..물론 믿음이 누가 뭐라고 한다고 해서 흔들릴 건 아니지만, 내 믿음을 다시 한번 챙겨 볼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저는 수년 전 안상홍 증인회 목사님과 얘기 나누며, 구약의 절기와 히브리서에 대해서는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물론 그분도 저에게서 많이 배웠다고 하더군요..저는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토브님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