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그리스도론)
작성자: 야간 1학년 배시창 에발도
新約에 있어서 하느님의 나라
1. 하느님 다스림의 神論的 특성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나라가 다가왔다”라는 말씀에는 하느님나라의 종말론적 의미와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의미와 더불어 하느님나라의 神論的 특성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가. 첫째: 하느님이 주님이라는 사상
하느님이 주님이라는 사상은 구약의 창조신앙에서 고백되나 신약에서는 그 사상이 창조신앙을 훨씬 능가하고 또 새로운 차원에서 설명된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우리 주님 되시는 이유를 사랑의 至高性과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는 犧牲精神 그리고 자신 안에 존재하는 하느님임을 보여주셨다. 하느님과 우리가 가까워진다는 의미는 그분이 우리를 사랑으로 지배하고 다스리며 그리고 우리의 주님으로써 그분의 영광이 어떠한 구속을 받지 않고 온전한 자유 속에 사랑과 용서를 베푸는 분이기 때문이다.
나. 둘째: 하느님의 다스림
하느님의 다스림은 인간의 노력이나 도덕적 성취나 정치적 투쟁을 통하여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 자신이 내리신 공짜 선물과 그분께서 주신 遺産으로 다스려지는 것이다.
다. 셋째: 하느님의 다스림에 순명하는 행위
하느님의 다스림은 하느님이 내리신 至高한 선물이다. 이 다스림을 받기 위해서는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하느님께로 온전히 맡기고 요구되는 신앙으로 회개하고 존재의 근거를 하느님 안에서 찾아야한다. 회개는 적극적인 신앙의 삶을 통하여 드러나며 회개라는 의미는 인간 내면 본성에 하느님이 자리하여 하느님의 다스림에 순명하는 행위이다.
하느님 안에서 자기존재의 근본인 신앙이 확립되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과 그 나라의 도래에 관한 응답을 얻게 될 것이며 이러한 응답이 현실화 될 때 비로소 하느님의 말씀은 그 의미성을 찾게 되고 동시에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도 찾게 된다.
2.하느님사랑의 救援的 특성-하느님 사랑의 군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구원의 개념은 하느님나라에 참여함으로써 얻게 되는 생명과 동일한 구원이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가난한 자, 소외받은 자들에게 하늘나라의 도래와 더불어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왔음을 선포하였다. 희망이 없던 그들은 하느님이 삶의 전부라고 믿었으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구원을 청했다.
하느님나라의 구원은 죄의 용서와 하느님의 끝없는 자비에 있으며 인간은 무조건 하느님에게로 받아들여지고 끝없는 사랑을 받게 됨을 체험하게 된다. 이 체험이 바로 인간자신이 하느님으로 부터 받게 되는 구원의 체험 즉 용서의 체험이다. 구원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며 이 참된 구원의 기쁨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사랑의 삶을 살게 된다.
예수께서는 현실에서 당신의 말씀과 기적행위를 통하여 하느님나라의 구원을 보여주셨다. 전 인간의 영혼뿐만 아니고 죄의 용서와 병자들의 치유를 통해 총체적인 인간존재의 구원을 실행하신 것이다. 그리고 구원에서 나오는 사랑의 힘이 세상의 모든 악의 세력을 근본적으로 타파하고 세상의 모습을 근원적으로 개선 할 수 있는 유일한 힘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 안에서 다스려 질 때 현존하는 구원으로 세상과 인간은 그 완성을 기대 할 수 있다. 인간들 사이에 그 사랑이 군림하지 못하면 분열과 갈등 대립으로 세상의 질서와 평화는 파괴 될 것이다. 바로 이 사랑의 힘으로 비폭력적인 개혁을 통해 인간의 인간화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3. 하느님 다스림의 종말적 특성
하느님 다스림의 종말론적인 배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급 사건과 쓰라린 역사적인 체험을 통하여 하느님 다스림에 대한 그들의 신앙과 주어진 그 들의 현실사이에서 큰 갈등을 겪게 되었고 이러한 갈등으로 그들의 신앙을 종말론화로 이끌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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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종말론적인 하느님나라에 대한 희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는데 종말이 먼 훗날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과 더불어 종말론적 희망이 실현되고 있음을 선포하였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사회적으로 어두운 면과 부조리를 안고 있었고 예수라는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았고 제자들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였기 때문에 그 당시로써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라는 말씀은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만이 밝힐 수 있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등,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계시해 주셨다.
하느님의 다스림도 세상모르게 현재의 삶속에 숨어서 몰래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으로써 현 세상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다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다스림은 감추어진 상태로 시작했지만 현재와 미래 사이에 긴장을 초래하게 한다. 하느님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 완성은 아직 이루지지 않았고 절대 미래에 성취될 것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에 이미 와서 어딘가에 숨어 있거나 또는 드러날 것이라는 종말론적인 긴장 속에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