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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95년 공주군과 통합되어 공주시가 되었다. 차령산맥 남동쪽에 위치한다. 남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분지상에 입지한 백제의 옛 도읍지로서 백제문화의 중심지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서부 충청남도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경부선이 대전을 지나면서 행정적·경제적 중심이 대전으로 이전되었으나, 서해안 개발시대를 맞아 수려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유적 등으로 더욱 많은 발전잠재력을 가진 도시로 평가된다.
유구읍·이인면·탄천면·계룡면·반포면·장기면·의당면·정안면·우성면·사곡면·신풍면·중학동·중동·반죽동·봉황동·산성동·금성동·교동·웅진동·금학동·주미동·봉정동·태봉동·오곡동·검상동·옥룡동·신기동·소학동·상왕동·신관동·쌍신동·월미동·금흥동·무릉동·월송동 등 1개읍 10개면 24개동이 있다. 시청소재지는 봉황동이다. 면적 940.00㎢, 인구 131,769(2003), 인구밀도 140.1명/㎢(2003).
연혁
475년(문주왕 1) 백제가 북한산으로부터 이곳 웅진(熊津)으로 도읍을 옮겨 538년(성왕 16) 사비성(泗沘城:부여)으로 천도할 때까지 64년 동안 백제의 수도로서 문화의 꽃을 피운 중심지이다.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에도 5방제에 따라 북방(北方)이 설치되어 예하의 군을 관할했다. 특히 1972년 무령왕릉이 발굴됨으로써 웅진시대 백제문화의 수준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는 이곳에 660년 웅진도독부를 설치했으나 신라가 이곳을 차지한 뒤 웅천군(熊川郡)을 삼았다가 685년에 웅주(熊州)로, 757년에 다시 웅주도독부로 개칭했다.
신라 말기에 후백제의 영토에 속했다가 고려조에 들어 940년 현재의 이름인 공주로 바뀌었다. 983년 공주목을 설치했다가, 995년에는 안절군절도사(安節軍節度使)를 두어 하남도(河南道)에 속했으며, 1012년 안무사로 바꾸는 등 지방행정제도의 변화가 심했다. 1018년 지부사(知府事)로 강등되었으나 속군(屬郡)으로 덕은(德恩)·회덕(懷德)·부여(扶餘)·연산(連山)을, 속현(屬縣)으로는 시진(市津)·덕진(德津)·진잠(鎭岑)·유성(儒城)·석성(石城)·정산(定山)·이산(尼山)을 두었다.
1341년 공주목으로 승격했다. 조선시대에도 공주목이 유지되어 충주·청주·홍주와 함께 충청도 4대 고을로 지칭되었으며, 충청우도 중부 이남, 즉 차령산맥 이남의 중심지역이었다.
인조·현종·영조·정조대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별호는 회도(懷道)였다. 1894년 남북접을 통합, 북상하던 동학군이 공주시의 남부 우금치(牛金峙)에서 관군 및 일본군과 싸워 패했다.
고읍(古邑)으로 지금은 대전광역시의 일부분이 된 유성현·덕진현·충순현(忠順縣)·신풍현(新豊縣)·광정현(廣程縣) 등이 있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공주군이 되면서 공주부가 설치되어 27개군을 관할했다가 1896년 13도제 실시로 충청남도 공주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와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공주군의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1932년 충청남도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자 공주는 백제 이래 지녀왔던 충청 지역의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대전에 넘겨주고 성장이 위축되었다.
1931년 공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6년 공주읍이 시로 승격, 공주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민선자치단체장이 선출되는 지방자치시대를 앞두고 실시된 대대적인 행정구역개편으로 공주군이 공주시에 통합되어 도농 복합형태의 새로운 공주시가 되었다.
楊普景 글
자연환경
시의 전체적인 지세는 천혜의 요새를 이루는 분지형이다. 시의 북서부에는 차령산맥이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있어 봉수산(鳳首山:534m)·금계산(金鷄山:575m)·국사봉(國士峰:591m)·갈미봉(515m)·무성산(茂盛山:613m) 등 높은 산이 많다.
시의 남동부에는 대전광역시와 논산시와의 경계를 이루며 계룡산(鷄龍山:845m)이 자리잡고 있다. 전체 모양이 마치 닭의 볏을 쓴 용과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계룡산은 1968년에 지정된 국립공원으로서 산세가 신비롭고 그윽해 일찍이 민간신앙이 싹터온 곳으로 유명하다.
우성면·정안면·사곡면에 걸쳐 있는 무성산은 울창한 혼합림을 이루고 있으며, 고위평탄면을 이용한 고랭지무 재배지역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곳곳에 200~300m 정도의 구릉성산지가 널리 분포하며, 중앙부의 하천유역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어 전체적으로 분지형태를 이루고 있다.
분지형의 천혜의 요새로서 인근 지방과 연결되는 곳에 청양 방면의 솔치고개, 예산을 잇는 차령고개, 아산 방면의 각흘고개, 천안 방면의 장고개·곡두재고개 등 많은 고개가 있다. 전라북도 무주군과 장수군에서 발원해 연기군을 거쳐온 금강(錦江)은 장기면을 지나 공주시 중심시가지를 흐르다가 다시 우성면과 이인면의 경계를 따라서 부여군으로 흘러간다.
금강에는 정안면에서 흘러내리는 정안천(正安川)과 유구읍에서 시작된 유구천(維鳩川)이 흘러들고 이인면으로 빠지는 용성천(龍城川)을 비롯해서 대교천(大橋川)·구곡천(九曲川)·노성천(魯城川)·도천(道川) 등 여러 갈래의 하천이 합류하며, 이들 하천의 양안에 비옥한 범람원이 이루어져 있다. 특히 유구천과 정안천이 금강과 만나는 지역과 계룡면의 노성천 연변에 발달한 저평한 범람원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경작지대를 이루고 있다.
계룡저수지·신원사저수지·한천저수지·운궁저수지 등이 농업용수로 이용된다. 중심시가지의 서쪽에는 반달 모양의 봉황산(鳳凰山:147m)이 봉황동·반죽동·금학동·교동에 걸쳐 있으며, 동쪽에는 봉화대(烽火臺:313m)가 시가지를 굽어보고 있다.
한편 중심시가지에서는 금강이 동서로 중앙부를 관류하면서 공산성을 휘돌아 활처럼 흐르고, 남북으로는 남쪽 주미산(舟尾山)에서 발원하여 정지산(艇止山) 북쪽에서 금강과 합류하는 제민천이 흐르고 있다. 금강 유역의 월미동·쌍신동·신관동·검상동 일대에 발달한 저평한 범람원은 벼농사에 이용되고 있다.
금강 유역은 가을과 겨울철에 금강의 수온에 의해 복사무가 형성되어 안개가 끼는 날이 많다. 통합 전 공주시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3.0℃ 내외, 1월평균기온은 -3.6℃ 내외, 8월평균기온은 27.7℃ 내외이고, 연평균강수량은 1,564㎜로 많은 편이다.
이 지역은 산림대로 보면 활엽수림지대에 속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소나무와 각종 활엽수 및 참나무 등의 혼효림이 탁월하다. 한편 통합 전 공주군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1.3℃ 내외, 1월평균기온은 -3.0℃ 내외, 8월평균기온은 25.1℃ 내외이고, 연평균강수량은 1,329.6㎜ 정도이다.
인구
통합 이전 공주군은 1960년대 이후 가속화된 산업화과정에 수반된 농촌인구의 이농현상으로 1965년 20만 2,707명의 인구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인구감소현상을 보였다.
1990년의 인구는 9만 2,880명으로 1980년의 16만 7,406명에 비해 7만 4,526명이 감소해 44.5%의 대폭적인 인구감소를 보였다.
행정구역이 확대되었던 1970~75년에 감소율이 다소 둔화되었으나 1980년대 이후 감소의 폭이 증대되었다. 특히 1986년 공주읍이 공주시로 승격된 이후 이 지역은 크게 위축되었다.
1990년 현재 인구이동은 전입 7,248명, 전출 1만 1,547명으로 전출이 59.3% 정도 많았으며, 전출인구 중 도외로의 유출인구가 전체의 61%를 차지했다. 한편 1995년 통합 이전의 공주시는 과거 공주읍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인구가 성장해온 곳이다. 1980년에 4만 3,574명으로 1970년의 3만 4,110명에 비해 9,464명이 증가하여 27.7%의 인구증가율을 보였으며, 1990년에는 6만 5,195명으로 1980년에 비해 2만 1,621명이 증가하여 49.6%의 높은 인구증가율을 나타냈다.
통합 이후인 1995년의 인구는 13만 9,101명으로 무려 100% 이상의 인구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높은 인구증가 현상은 인구의 자연증가나 사회증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행정구역개편에 따른 공주군과의 통합에 의한 것이다.
행정구역별 인구를 보면 읍·면 지역에 시 전체인구의 약 58%가 거주하며, 중심시가지인 동지역에 나머지 인구가 거주한다. 통합 이후 전체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농촌지역인 읍·면 지역의 인구감소현상이 두드러진다.
옥룡동(1만 5,469명)·신관동(1만 3,826명)·금학동(5,161명)만이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지역이다. 인구 1만 명이 넘는 지역은 유구읍(1만 3,991명)·옥룡동·신관동이며, 봉황동(5,028명)의 인구는 1990년(9,220명)에 비해 눈에 띄게 감소했다. 금흥동(1,548명)에 가장 적은 인구가 분포한다.
산업·교통
총경지면적 187.04㎢ 중 논이 64.4㎢, 밭이 122.6㎢, 경지율 19.9%로 다른 지방도시에 비해 밭이 많다(1995). 하운(河運)의 쇠퇴, 토지개혁 등으로 전통적인 경제기반이 무너지고 1931년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되자, 충남의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소규모 영세업체를 중심으로 하는 소비지향적 농촌 서비스 중심도시로 기능이 변모했다.
통합시 이전 공주시의 산업구조는 3차산업 종사자가 70% 이상으로, 산업구조의 불균형을 보여 도시 생산기반이 취약했다. 이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학생인 것과 관련이 있었는데 농촌지역인 공주군과 하나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어 산업구조가 개선되고 지역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5년 현재 산업별 종사자를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살펴보면 1차산업종사자가 44.8%, 2차산업종사자가 6.6%, 3차산업종사자가 48.6%이다. 주요농산물은 쌀·보리·콩·감자·고구마·엽연초·목화 등이다.
특히 채소류는 장기면·정안면, 특용작물은 유구읍·계룡면·탄천면, 과실류는 유구읍·우성면 등지에서 많이 생산된다. 유구읍에서는 활석이 많이 생산된다.
제조업체는 총 241개소에 종업원수는 4,524명이다(1995). 주로 섬유업체 등의 소규모업체가 입지해 있다. 중심시가지의 상권이 확대되면서 5일 정기시장은 유구시장·산성시장 등 2곳만 남아 있다.
예로부터 각 지역으로 사통팔달한 육로와 금강을 이용한 수운의 편리함으로 충남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철도는 통과하지 않으나 방사상으로 뻗은 도로망을 통해 천안·예산·청양·부여·논산·청주 등지와 연결되어 교통의 요지로서의 위치는 오늘날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중부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검토하고 있는 보령-공주-안동을 잇는 동서횡단고속화도로와 천안-공주-논산을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공주시는 중부권의 교통의 요지로 부각될 것이다.
1987년 중심시가지의 강남·북을 잇는 공주대교의 완공으로 강북의 신관동 일대가 신시가지로 개발되어, 기존의 강남지역과 균형있는 발전을 꾀하게 되었다. 또한 시 외곽도로의 건설로 도심지역 교통난 해소와 교통의 중심성이 더욱 증대되었다. 도로총길이 480.68km, 도로포장률 76.6%이다(1995).
유물·유적·관광
차령산맥 남동쪽에 있어 계룡산 국립공원을 비롯한 수려한 경관과 선사 및 백제시대의 유적, 그리고 동학사·갑사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시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국보 14, 보물 14, 사적 5),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29, 기념물 16, 민속자료 2, 무형문화재 2), 문화재자료 28점이 있다.
선사시대의 유물·유적으로는 소학동 일대의 구석기시대 유물이 있으며 장기면 장기리의 구석기 유적과 탄천면 남산리의 기반식고인돌, 반포면 상신리의 선돌과 탄천면 송학리 독무덤 등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있다. 또한 공주 신관리 석실고분을 비롯해 박산리·구암리·남산리 등 각지에 백제고분이 있다. 백제 유적인 송산리고분군(宋山里古墳群:사적 제13호)은 무령왕릉을 비롯한 6기의 고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찬란한 백제문화의 모습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특히 무령왕릉은 수많은 국보급 유물을 간직한 채 완전히 보존된 상태로 발굴되었다. 무령왕릉의 유물은 왕과 왕비의 금제관식(국보 제154호)·금제심엽형이식(국보 제156호)·금제수식부이식(국보 제157호)·금제경식(국보 제158호)·금제뒤꽂이(국보 제159호)·은제팔찌(국보 제160호)·청동신수경외(靑銅神獸鏡外:국보 제161호)·석수(石獸:국보 제162호)·지석(誌石:국보 제163호)·두침(頭枕:국보 제164호)·족좌(足座:국보 제165호) 등이며, 모두 공주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백제의 도성으로 추정되는 공산성 내에는 쌍수정사적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5호)·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6호)·공북루(拱北樓: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7호)·광복루(光復樓: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진남루(鎭南樓: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연지(蓮池:충청남도 기념물 제42호)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 갑사의 갑사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256호)·갑사부도(보물 제257호)·감지은니묘법연화경권1(紺紙銀泥妙法蓮華經卷一:보물 제269호)·감지은니묘법연화경권6(보물 제270호)·갑사동종(보물 제478호)·선조2년간월인석보판목(宣祖二年刊月印釋譜板木:보물 제582호)과 마곡사의 마곡사5층석탑(보물 제799호)·마곡사영산전(보물 제800호)·마곡사대웅보전(보물 제801호)·마곡사대광보전(보물 제802호) 등이 있으며 사찰유적인 대통사지에는 당간지주(보물 제150호)와 함께 중동석조(보물 제148호)·반죽동석조(보물 제149호) 등의 유적이 있다.
이밖에 수원사지(충청남도 기념물 제36호), 석굴사원인 남혈사지(충청남도 기념물 제35호)와 서혈사지(충청남도 기념물 제37호)·주미사지(충청남도 기념물 제38호) 등의 사찰유적이 있다.
또한 계룡산마애불·공주구릉사지·영규대사비 등의 불교문화재도 널리 분포한다. 그밖에 신라시대의 효자향덕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9호), 고려시대의 효자이복비를 비롯해 공주향교(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5호)·선화당(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과 봉정동의 동학혁명군 위령탑 등의 유물·유적이 남아 있다.
백제문화의 유물·유적은 주로 공산성·송산리고분군·공주국립박물관에 집중되어 있으며, 대표적인 관광지로 계룡산의 갑사·동학사·신원사·마곡사 등이 있다. 또한 공주시를 가로지르는 금강은 공산성 연변과 곰나루 일대에서 절경을 이루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안온함이 깃들어 있다.
대표적인 관광코스로는 공산성 진남루-쌍수정-왕궁추정지-광복루-영은사-연지-공북루-무령왕릉-곰나루-공주국립박물관-우금치-동학혁명군위령탑에 이르는 코스와 중심시가지-갑사-군자대-동학사에 이르는 코스 등이 있다.
교육·문화
공주시는 교육도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어 현재 학생인구가 전체인구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전통 교육기관으로 조선 초기 설립된 공주향교와 함께 명탄서원·충현서원·창강서원 등이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898년 심기섭이 민족계 사학으로 설립한 공주사립소학교가 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이며, 1905년 미국인 선교사 샤프의 부인 사애리시가 설립한 영명학교가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이다. 그밖에도 1913년에 설립된 유구읍의 유구초등학교, 이인면의 삼흥학교 등이 초창기 근대 교육기관이었다. 199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51개소, 초등학교 41개교, 중학교 16개교, 고등학교 11개교가 있으며, 공주전문대학·공주교육대학·공주대학교가 있다.
또한 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에서도 공주지(公州誌) 발간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민속놀이로는 7월 백중의 마을놀이인 호미씻이놀이와 어린이들의 놀이인 기와밟기놀이, 고니놀이 등이 있다. 유명한 설화로서 〈곰나루전설〉과 〈인절미설화〉가 이 지방의 역사성을 대변해주고 있으며, 노동요와 어희요가 대표적인 구전민요이다.
종교기관으로는 1995년 현재 개신교 교회 165개소, 천주교 교회 10개소, 불교 사찰 107개소 등이 있다. 특히 공주는 충청남도에서 천주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곳이며, 최초의 순교자를 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회복지시설로는 성인 정신질환자 보호시설 2개소가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인 국립공주결핵병원과 충남공주의료원이 있고, 그외 의원 30개소, 치과의원 12개소, 한의원 18개소, 보건소 1개소가 있다(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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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문광장 원문보기 글쓴이: 광장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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