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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기행-1
5명이 타고 북미대륙의 최고봉인 매킨리 산의 계곡을 굽이굽이 누볐던 세스나기
우리내외는 오전에는 풀밭에서 오후에는 뒷마당을 전전하다보니 흑인.
알래스카 기행-1
알래스카(Alaska, 발음부호는 얼래스커:?l'æsk?)라는 이름은 “거대한 땅(Alyeska)" 이라는 말에서 연유된다.
1799년 러시아는 이곳에 성을 쌓은 후 자기네 영토라고 천명했고 터키, 영국, 프랑스 등과 승패 없는 크리미아 전쟁으로 20만불 빚이진 쇠잔한 러시아는 1867년 영국의 알래스카 강점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청하여 미국과 교섭한 후 팔게 되는데 미국국민들은 이 쓸모없는 동토 흥정을 한 미 국무장관이름을 따서 “스와드의 바보스런 짓(Seward's Folly)이라 빈정거렸단다.
1853년. 크리미아전쟁 후 라이타(영어로 cigaret lighter)는 한 손 밖에 없어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기가 곤란한 상이군인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1897년 지명 클론다이크(Klondike)골드러쉬가 시작되고 1941년 일본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1957년에 오일러쉬가 시작되어 땅속에 숨어있던 블랙골드가 솟아나오니 알래스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소련과 냉전이 되니(55마일 거리)한 계급 더 승격 된 후 다시 뒤늦게 49번째 주로 다시 한번 더 승격 총 4번 승격이 된다.
나는 연휴 끼인 7월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이곳을 8박 9일(대게 5박6일+골핑) 여정으로 크루스를 타지 않고 알뜰여행을 위하여 비행기로 계(契)모임을 같이 하는 고등학교 동기 부부와 찾게 되었는데 미스터 조는 낙천가이어 마음에 든다.
어느 정도냐 하면 세탁소2개를 소유 육체적 노동 않고 경영하 데 월급쟁이에서 전업을 한 것은 계속 봉급만타다가 나도 한번 봉급 주는 사람이 되어 보고픈 이유 하나이었고 살적에도 전 주인에게 “밥은 먹습니까?” 하고 물으니 “밥은 먹습니다.” 하니 “그러면 됐습니다.” “내가 사지요.” 했다는데 필요 없는 기억은 간직불필요이니 그 당시 얼마를 지불 했는지 기억을 해야할 필요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단다.
나 자신도 불필요 한 것은 간직해봐야 골머리만 아프고 성인병으로 연결되니 백해무익인 셈이니 곧 잊어버린다.
북쪽으로 나는 비행 중 내려다 본 뭉게구름은 낮게 떠 있어서 바람이 없으니 솜사탕 같았고 한편은 타면기에서 금방 나온 이불솜같이 포근하게 보여 뛰어내려도 좋을 것 같은 충동이 생겼는데 단 쳐다보는 높이뜬 구름은 빠르게 흐르는 제트기류 때문에 흩어져 시야를 흐릿하게 했다.
탑승공항은 덜레스와 발티모어공항으로 달랐지만 쉬카고의 미국에서 최고로 바쁜 오헤어 공항에서 합류를 했는데 느낀 것은 탑승객중 정장 차림은 열에 하나도 안 되는 편한 옷차림이 한국 국내선승객과 비교 된다.
‘오헤어 공항’은 2차 세계 대전 때 에이스 전투기 조종사 ‘부치 오헤어’의 이름에서 따왔단다.
원래 시카고의 공항 이름은 ‘Orchard Depot(정거장) Airport'이었는데 트리븐신문 주필의 건의를 받아드려서 1949년 지금의 국제공항 ’O'hare International Airport'로 바꾸었다.
그는 미국항공대의 일원으로 출격을 했는데 간밤에 하사관이 비행기에 그름을 넣어주지 않아서 부족하다고 편대장에게 보고를 하니 항공모함으로 돌아가라고 지시를 내렸단다.
내가 타본 소형비행기는 종이에 적힌 목록을 일일히 체크를 하고 출발하는데 위의 이야기로 보아서 연료 게이지를 점검하는것은 기본이기때문에 의문이 앞선다.
오는길에 보니 일본공군기들이 항모를 향하여 돌진을 하는데 항모에는 모두 출격을 나가고 텅 비어 있었는데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종횡무진으로 몸을 놀려서 3대를 격추시켜서 그들이 진로를 바꾸게 했는데 무비카메라에 잡힌 촬영물을 현상 해서 스크린에 그비춰 본 후 확인을 하고 그의 공을 찬양하게되는데 본토에 있는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를 대신하여 그의 아네 뤼타의 목에 메달을 걸어 주었단다.
그의 아버지에디는 변호사였는데 마피아의 두목인 알카폰의 변호를 맡아서 사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그의 탁월한 두뇌를 이용하여 법망을 빠져나가게 하여 공을 세우니 큰 부자가 된다.
그렇지만 항상 죄책감에 시달렸고 아들에게 많은 돈은 물려줄수가 있는데 '명예로운 이름과 참다운 인간의 모범'은 보여줄 수가 없었는데 아들에게 정직성을 전하려고 국세청에 비행을 고발하는 바람에 알카폰은 구속이 되고 센프란시스코의 알카츠레즈 섬 교도소에 갖히게 된다.
그는 부하에게 시카고의 공원에서 1939년식 제퍼를 타고 가는그를 반자동 권총으로 죽이는 바람에 차는 그대로 굴러가서 부딛혀서 파손되고 그는 46세에 즉사 했단다.
헤어(hare)라는 말은 산토끼를 뜻하는데 오클락(O'clock), 오닐(O'neal)등 'O'에다가 점을 찍으면 영국계통이 된다.
그가 4F4 와일드켓 제작회사에 1,150보로의 럭키스트라이크 담배(지금도 팔고있다)를 사서 선물을 하니 회사에서는 비행기에 로고인 ‘적옥(아까다마:赤玉)를 그려 넣어 주었단다.(허리띠는 실로 짠것이아니고 가죽제품이란다)
그는 편지를 썼는데 ‘당신들이 만들면 우리는 날 것이고 우리들 사이는 서로가 부딛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단다.
1943년11월26일 필리핀 동쪽에 있는 마리아나군도의 야간 공중전에서 그의 동료는 그의 애기의 헤드라이트가 꺼진 후 서서히 움직이는 물체를 보았는데 아마도 낙하산으로 바다위로 탈출한 것으로 추측 된단다.
내가 전자비행기표(Electronic ticket)를 컴퓨터로 웹 사이트에서 사면서 풀네임을 사용해야 되는데 나의 실수로 미들내임을 빼 먹는 바람에 동명이인이 많아 보안관계상 관계관청에 조회를 한다고 발티모어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시간이 따로 더 걸리었기에 이 글을 통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덧 붙여 고지하려 한다.
시차는 동부시간과 4시간이고 호텔을 가는 동안 느낀 것은 저녁 11시인데도 해가 있었는데 문을 닫은 시내 건물들은 사람들이 안 보이고 주차장은 비어 있고 조용하여 어두울 때 까지 문을 여는 상점에 길들여진 나에게 처음대하는 이곳은 낮인데도 시내의 거리는 죽어있으니 꼭 이야기 속에 나오는 유령의 도시거리에 들어온 것처럼 조금은 으스스했다.
통계자료에 보면 이곳면적은 남북한의 8배에 해당하고 미국의 1/5에 해당 하는데 수산, 관광, 원유로 유명하며 인구는 64만 명이 되지만 시니어를 빼면 사람이 없다고 하며 40%가 앵커리지에 사는데 독일인이 최고로 많고 한국인은 약 8천명이란다.
다른 지방에서 관광 온 그룹과 조인트 했는데 한국노인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동네를 찾으니 건물 뒤편 노는 땅에는 미 본토에는 없는 까치가 있어서 한국의 고향을 잠간 느꼈다.
고향을 그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조그만 텃밭을 수십 개 일구어 아욱, 근대, 상추, 파, 열무, 호박 등 야채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아파트군의 주인도 이방인(그들에겐)들의 특별한 기호에 동조 인간미 있는 배려로 수돗물을 공급하니 밭들은 노인들의 소일거리가 되며, 비록 작긴 해도 밭을 일군사람이 임자가 되는데 잡조가 자라는 묵전(묵는 밭)은 아마도 주인이 한국으로 고향방문을 갔을 거라고 했다.
알라스카 국회의원인 앤소니 다이몬드에서 따온 앵크리지의 다운타운에 위치한 객실 109개다이몬드(Dimond)호텔은 기러기 깃털(dawn)을 넣은 푹신하고 보들보들한 고급 이불과 7피트길이의 큰 욕조가 있었다.
인디언 원주민의 소유라는데 호텔주인격인 한국할머니가 관장하는 대륙적 아침(continental breakfast)은 뷔페인데 2분만에 구워내는 셀프써비스 벨기에 와플(Belgium waffles)을 굽는 기계, 바이트사이즈로 잘라 만든 사과 샐러드등이 있으니 보통이상은 되며 한국인관광객들이 반 이상 찾는데 차로 5분 거리에는 한국식품점, 한국식당 등이 몇 개 있었다.
만약 한국식당이 없었다면 나에겐 식사 패턴이 깨지니 난삽한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고래와 고래의 턱뼈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만년설을 눈으로 알았었는데 목전에 두고 보니 눈이 아니고 완전히 얼음의 결정체이었다.
100피트의 눈이 오면 밑의 눈은 다져져 10-15피로 결빙으로 변하여 빙하가 되는데 30년 전만해도 만년설이 산에 쌓였었다지만 기온이 3도 상승하니 지금은 윗부분에만 남아 있는 것을 볼수 있는데 4개월 동안 눈이 내리고 8개월 동안에 녹으니 만년설이 해마다 사라져 눈 녹은 산중턱에는 업 타운(평지의 땅은 낮기 때문에 번화한데 다운타운이라 함)이 조성되어 비싼 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있다.
그전에는 최고기온이 60℉ 이어 주택에 냉방시설이 필요 없었지만 몇 년 전 부터는 온도가 올라가니 새집을 지으면 압숀(option)으로 에어컨디셔너가 등장 한단다.
저지대에는 100마일을 난다는 포플라의 솜털씨앗이 날아 와서 자작나무와 더불어 낙엽수 군락지가 형성되니 더디 자라는 침엽수(삼나무 등)를 잠식하고 있는데 활엽수 지천(至賤)인 넓은 평지를 관광객이 보노라면 모두가 지구온실화에 대한 공감대를 확실히 느끼게 된다.
자작나무에는 암에 좋다는 크디큰 차가버섯이 자라는데 말린 것은 파운드에 $25이다.
차가버섯 채취를 전문으로 하는 분 가게에도 잠시 머물었는데 한국MBC TV방송에 게제 되었던 비디오를 보여 주었으며 거친 숲 속을 달릴 수 있는 올 휠 드라이브 차도 보았는데 소련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복용하면 당뇨, 항암효과, 아토피 등에 좋다고 했단다.
산 중턱에는 흐드러지게 핀 파이어 위드(fire weed; 빨강색의 야생 꽃, 주 상징 꽃은 물망초)가 있고 고사리도 낫으로 벨 수 있을 정도로 많은데 단 넝쿨식물은 볼 수 없으니 포이슨 아이비는 아예 없어 안심이다.
더 위쪽에 위치한 얼음에 눌려 있던 7부 능선 툰드라지역(凍土帶)에는 야생 불루베뤼들이 쫙 깔려 있었는데 곰들의 양식이 된다고 하며 겨울잠을 자기 전에 수백 만 개를 먹어서 기름을 피하에 저축하여 겨울을 난단다.
단 1917년 매킨리 대통령 이름에서 따온 맥힌리는 1980년 ‘드날리(Denali)국립공원 및 보호구역’으로 바뀌었지만 그대로사용하는 매킨리산 만은 해발 6,194m로 해발로 잴때는 에베레스트 산이 더 높지만 땅 바닥에서 재면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높은데 백두산(2,774m)보다 2배도 더 높아 위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는데 정상(頂上)은 구름위에 위치한다.
세스나기로 1시간이상 최고의 감동을 선사하는 태고의 신비로움으로 덥혀 있는 이 웅장한 산을 조망을 갖는 시간도 있었는데 다른 팀은 산소통이 장착된 새 비행기가 되어 거의 정상을 날았지만 동기생 부부와 우리 부부 4명이 탄 비행기는 더 낮게 날았다.
고공이어 산소 부족을 느꼈고 공랭식엔진의 온도가 급속히 내려가서 공기중의 분자가 많아지니 휘발유가 더 많이 들어가라고 조종사는 긴 엔진 초크(choke)레버를 당긴 후 실내 환기구멍을 닫고 만년설과 웅장한 수직의 바위절벽사이를 오가며 굽이굽이 날았다.
커브를 돌 적에는 기체가 옆으로 기우니 눈에는 가끔 바위산이 머리위로 덮여서 모습을 드러내니 위가 더 넓은 이등변 삼각형을 거꾸로 세운 것 같은 착시 현상이 나타났다.
아마도 미국의 금강산쯤 되는 것 같았고, 여러 개의 구슬색(玉色)빙하호는 습기가 없으니 맑은 공기를 투시하여 발아래로 너그럽게 태고의 신비를 공개하는데 보통의 육지를 흐르는 화이트 뤼버(white river)와는 대조적인데 너무도 아름다워 비디오로 담아 왔다.(이것도 다음에 동영상 올리는 방법을 알면 올려볼 예정)
이 산은 한국인 산악 등반대원 8명이 2006년 5월 20일 한사람을 마지막으로 여러 해에 걸쳐 사망한곳이기도하며 그중 한국인 최초로 1977년 히말리아 정상을 정복한 산(山)사나이 고 고상돈 산악인의 사망기념 동판도 있는데 다른 한국산악인의 묘는 산 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언제나 정상이 보이니 어쩌면 그들이 여기에 묻힌 것이 영원한 행복으로 연결될는지도 모른다는 나의 생각이다.
드날리 국립공원(600만 에이크)의 알라스카 산맥(Range)에 있는 매킨리산은 무인지경이어서 길이 없으니 켐프까지는 반드시 경비행기를 이용해야 되는데 등반 중 만약 기후가 갑자기 바뀌어 강풍(최고 초속 140마일)이 불면 당할 재주가 없으니 산악인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2천 미터 아래로 떨어져 죽는단다.
알라스카 호수의 세스나 경비행기들은 눈에서는 큰 바퀴를 달고 활주로에서는 작은 바퀴를, 호수 위에서는 플로트를 갈아 끼워 사용하고 있는데 하루 800여대의 비행기가 이착륙을 한단다.
이 공원에서 몇 시간만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페어뱅크스인데 미국 최대의(8개 회사)민간자본으로 만든 다리위에 올려놓아서 8.5도의 강진에도 견딘다는 1.22m의 송유관은 북쪽 알래스카에서 나는 원유를 789마일의 파이프라인을 설치하여 하루에 11500만 배럴을 남쪽항구로 수송 한단다.
이곳에는 대학교에서 모은 화석 박물관, 관절염 치료의 온천, 팬닝(panning)으로 모래를 제거하고 얻는 재래식 사금체취 방법 등이 있다는데 안내원은 빠뜨리고 더 낳은 코스라며 앵크뤼지 부근에서만 맴돌게 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곳은 연어의 고장이기도 한데 세계연어의 79%가 이곳에서 그물에 잡힌다고 하며 7월이 이곳의 봄과 같아서 연어는 긴 여정을 끝내고 얕은 물까지 도착하게 되며 높은 폭포 밑에는 배가 불러 폭포를 거슬러 오르지 못한 여러 마리의 사람다리 크기의 핑크연어(실은 진홍색)연어가 모여 있었으며 “물 반, 고기 반” 이라 할 정도인데 지역마다 다르게 정해진 연어를 잡는 날은 수 만 명이 몰려온단다.
연어는 순류의 강에서 역행을하니 넓은 강에서는 모터보트로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달리며 뜰채로 떠올리는데 시장에 내다 팔지 못하게 잡은 즉시 즉석에서 꼬리를 잘라야 하며, 단 영업용은 만에서 큰 그물을 사용하여 가둔 후 진공으로 물과 함께 빨아 올린 후 물을 제거하면 생선만 남는단다.
이곳에는 흙이 없고 검은 모래와 진흙의 중간인 침니(silt)가 주를 이루는데 산을 끼고 만든 골프코스는 엎 & 다운이 많아 재미로 연결되지만 색깔이 희이어야 할 샌드 벙커 해즈드(sand bunker hazard)는 이전에는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청석을 빻아 만든 시커먼 모래로 되어 있으니 사람으로 비교하면 연상(聯想)어릴 때 보았던, 평생 닦은 일이 없고 타르(tar; 댓진) )에 찌던 동네 할아버지들의 누렁이빨 같이 추하고 약간은 험상궂게 생겼다(금이 부존 하지 않는다 함).
1909년 골드러쉬가 시작된 후 사금과 지금을 캐다만 화강암지대에 위치한 금광의 산 역사, 폐 광산굴속으로 들어가 보고 건물에도 들어가 보았는데 지금도 3층으로 된 그 당시 광부의 숙소와 무너진 작은 철도, 장비수리소, 바위를 분쇄할 때 사용한 디젤엔진, 압축공기 장비로 사금을 파는 소(小)철도 위의 강철로 재작된 기계 버킷 날과 수레, 바위를 뚫는 장비, 온도가 0℃의 갱도 입구, 내가 어린시절 물지게에사용해서 늘 보아왔던 직6면체 5갤런들이 양철석유통 등이 즐비하게 방치 되어 있었다.
알래스카 기행-3
야후백과에서 펀 모레인 사진
이 광산은 태평양전쟁이 나자 금보다 전쟁무기를 더 필요로 하니 사람들은 공장으로 나가게 되고 전쟁이 끝나자 망간 등 강철장비들의 가격이 올라 지금까지 폐광으로 남게 되었다고 안내소에서 근무하는 안내원 이야기가 있었다.
7월이라도 추워 벽난로를 피우는데 그는 조그만 병에든 반짝거리는 사금가루샘플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보여 주었는데 나는 이곳에서 안내원이주는 사금이 섞인 모래를 정골 냄비 같이 생긴 펜으로 직접 일어서 난생처음 사금을 채취해 보았다.
금은 무거우니 차츰차츰 갈아 앉는데 꼬부라진 개울 바닥의 모래 밑 바위위에는 사금이 몰려있는데 어느 한국인이 채취하여 거금을 벌었단다.
내가 어린 시절 손목시계도 갈아 앉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넓기도 하고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바닥으로 된 내를 건너서 이동영화구경을 가던 김천시에서 시골 큰집으로 나들이를 온 총각이 손목시계를 물속에 빠뜨렸는데 무릎까지 차는 물속이고 어두운 밤이어서 찾지 못하고 포기를 한 상태에서 며칠이 되었는데 아버님께서 찾아보려고 시도를 했다.
새낏줄을 약 100m 길이로 냇물을 가로 질러서 쳐 놓은 후 줄을 따라가면서 철사로 된 갈퀴로 강 바닥을 야금야금 긁은 후 다시 새낏줄을 약 2m 옮겨 놓고 다시 긁으니 3번째에서 시계가 철컥 하고 걸려서 나왔다.
영원히 없어질 뻔 했던 그 당시의 비싼 시계를 찾아주었으니 지당한 사례가 있어야 했겠지만 시계의 주인으로부터 약한 보답이 있었다.
변소에 갈 때와 올 때는 다른 것일까?
본론으로 돌아와, 버스를 이용하는 다른 코스로 가면 모래 섞인 사금을 사서 팬으로 인후 갈아 앉은 금으로 목걸이 등 장신구를 즉석에서 만들어 준단다.
옛날 북쪽에서 이글루에 살던 에스키모족은 키가 작고 몽고반점이 있으며 불을 사용하지 않아 연어 고래나 물개로 생식을 하는데 비타민이 없으니 20살만 되면 모든 치아를 잃게 되며 30살이면 죽는다고 했다.
순전히 육식만하는 사자는 동물의 내장을 먹음으로 장기속의 풀에 섞여있는 비타민을 간접적으로 먹는 다나?
그전의 에스키모는 카약을 타고 다니다 숨을 쉬려고 물위로 잠간 올라오는 물개를 작살을 던져서 잡았지만 지금의 그들은 엔진달린 보트를 타고 22구경 총을 쏘아 잡는다.
보우해드(bowhead)고래(약 15m)는 북서 알라스카에 약 1만 마리가 사는데 원주민만은 포경은 허락이 된단다.
그전에는 로프달린 대포알을 쏘아 잡은 후 저민 고기를 눈 속에 보관 했지만 지금은 수류탄을 쏘니 명중률이 최고로 높은데 여러 개의 파편은 신경계통을 마비 시켜 15분 만에 죽게 만든단다.
안내원 이야기로 에스키모들은 물개를 썩힌 후 고이는 버터를 먹는데 어느 한국인 관광객이 보내달라고 편지가 와서 몇 병을 사서 보낸 후 덤으로 한 병을 더 사 먹어 보았더니 곧 변소에서 오토바이(diarrhea; 설사)를 탔다는데 에스키모 사람들은 하루에 한 파운드 씩 먹어도 열로 변하여 고혈압이 없다니 상한 음식이 그들에게만 한정 되는 전통식품 같다.
와실라에서는 눈이 없는 여름에는 러시아 원주민들이 오래전에 본토로부터 들여온 8마리의 개가 끄는 썰매대신 4인용 골프카트 같은 수레를 사용하는데 개들도 영리해서(돈벌이를 알고)빨리 가자고 괴성을 지르며 줄을 당기는데 비록 눈썰매가 아닐지라도 관광객이라면 한번쯤 의무적으로 타 줘야 되는 것은 수입원이 관광객이 대상인데 끄는 개사료도 사야 될 것이고 종업원 월급도 줘야할게 아닌가? 도네이션을 겸한 1인당 10불씩을 받는다.
여름에는 낮이 길어 저녁8시에 백야(白夜)골프 투와이라이트(twilight)가 시작되는데 여름한철은 거의 낮이 계속되는 반면 겨울 한철은 밤이 계속되는 곳이어 한국인들이 이사를 왔다가는 3개월을 못 넘기고 떠나니 한국인의 인구유입이 한계점에 달했다고 하며 주세가 없고 매년 10월이면 주정부에서 돈(2005년에는 1인당 800불)이 조금씩 나오고 여름에 벌어서 어두운 겨울을 실업자로 살아야 한다니 돈을 모으기가 어렵단다.
나 자신도 태양이 하루 종일 산위를 돌아가면서 머무니 그림자가 종일 계속 길었으며 밝기는 일식을 할 때와 같이 침침한데 태양의 고도와 조사각도가 바뀌니 이 고장에 대한 거부반응이 일었다.
빻은 돌을 깔아 만든 산책로는 올해 처음으로 만들었다는데 걸어서 빙하에 올라가보았는데 공원측은 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위험하다고 쓰 놓은 것 같다.
빙하가 크디큰 바위들을 큰 힘으로 수 만년 동안 떠다밀어서 빙하 옆 양쪽 계곡 옆으로 큰 바위들(moraine:빙퇴석(氷堆石)이라 부름)을 겹겹이 흡사(恰似)어금니(molar)들처럼 즐비하게 쌓아 놓았는데 어금니라는 단어가 이 ‘모레인’에서 온 것은 아닐까?
다른 코스는 기차를 탄 후 다시 빙하유람선을 타고 Whitter Inset(위러 수로)빙하의 직전 까지 가보았는데 바로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떨어져 나오는 얼음덩어리는 대포를 쏘는 듯한 극장의 입체음향 같은 굉음을 내며 철퍼덕 물장구를 치며 바다로 떨어졌다.
먼지 낀 파란 빙하의 밑에는 얼음 녹는 물이 계속 흐르는데 이 현상은 강한 압력을 받는 수억 톤의 얼음덩이가 바위와 닫는 곳은 압력이 높으니 기온이 영하일지라도 온도가 영상으로 올라가게 되어 얼음이 계속 녹아 시내를 이루어서 맑고 찬물이 계속 흘렀다.
내가 사진을 많이 찍어서 컴퓨터에 보관을 했었는데 모두 지워져서 아쉬운 마음뿐이다.
작년이 되는데 인터넷이 불능이 되어 버지니아의 한국인이 많이 사는 에난데일의 컴퓨터 가게에 가지고 가서 보여주니 체크를 해보는데 40불이라고 했다.
체크를 해 보더니 고칠 수는 없고 새것을 사야 된다고 했다.
인터넷은 안 되지만 서류 같은 것은 잘되니 헌것을 돌려주면 이웃집에라도 주겠다고 했다.
4일 만에 주문을 한 새것이 왔다고 전화가 와서 찾아 온 후 연결을 시켜보니 역시 마찬가지 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광 캐이블의 스위치가 꺼져있었는데 고장이 아니었다.
헌것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더라면 저장이 된 사진이나 글 같은 것들을 고스란히 옮겨올 수 있을 텐데 그대로 돌려주면 거짓말 한것이 탄로가 나게 되니 새것을 팔기위해서 헌 컴퓨터에서 ‘C'드라이버(250기가 비트)를 빼먹고 되돌려주었으며 게다가 또 거짓말까지 보탰는데 장기를 빼고 시체를 돌려준 셈이며 아직도 헌 컴퓨터를 그대로 보관을 하고 있는데 많은 정보와 사진들은 파기되어 영원히 찾을길이 없어졌으니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 30년 동안에 알래스카의 빙하는 두께가 많이 낮아진 반면 해운대의 건물은 많이도 높아졌다.
1974년 맏처남과의 마지막이별이 되는데 미놀타 셀프타이머로 담았다.
해운대 수영장 저 멀리 극동호텔이 보이고 가까이에는 홍합들이 바위에 많이 붙어 있는데 지금은 매립되어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으니 아쉬울 뿐이다.
일어로는 써스끼 정비복이라 하고 영어로는‘coverall’이라고 하는데 한국어로는 적함한 이름이 없다.
알래스카 기행 -4
컴퓨터의 핵심인 ‘C' 드라이버를 빼어 먹히는 바람에 알래스카의 실체사진을 볼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인데 결국 독자에게 직접으로 손해가 가는 셈이다.
단 디지털 비디오로 담은 것만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데 움직이는 순간을 사진으로 바꿀 수가 있는지에 대해서 문의를 해보기로 하고 다음기회로 미룬다.
사람을 속이는 같은 줄기로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선 스트립 샤핑센터 중간에 있는 가게들 사이에 세를 든 내가 아는 이발하는 가게는 하필이면 최고로 더운 어느 여름날 에어컨디셔너가 고장이 났단다.
건물 주인에게 연락을 하니 세를 들 적에 작동이 되면 작동을 유지하기 위한 고장수리는 세든 사람이 고쳐야 한다는 말을 하며 임대계약서(lease paper)를 읽어보라고 하더란다.
편한 것이 한국어이니 한인 주소록에서 찾은 한국인 냉난방 수리공 세 사람을 부른 후 견적을 내보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지붕에 올라가보고는 컴프레서가 나가서 작동이 안 되는데 교환을 하려면 7천 불, 8천 불, 최고 만 2천 불까지 든다고 3명의 가격이 모두 다 다르더라는 말을 했단다.
그 후 다시 미국인에게 전화를 하여 점검을 해보라고 했더니 조그만 부속 값 120불에 공임 130불을 합산하여 250불이라고 해서 고쳐졌는데 너무도 고마워서 300불을 지불했다고 했다고 말했는데 한국인 3사람의 견적이 모두 굉장히 비싸니 한국인의 정직성에 관계되는 이야기이다.
내가 상용건물을 살적에 시티개스로 작동되는 난방시스템이 전 주인이 메인 밸브를 잠가놓아서 완전히 까져 있었다.
파일롯트 불을 켜야 가동이 된다는데 빨강색 스윗치를 누르고 30초를 기다린 후에 놓으면 되는 것을 나는 모르고 금방 놓으니 불이 꺼지는데 문외한인지라 고장이 난 줄 알고는 한국인 냉난방 수리공을 불렀더니 너무 오래되어서 수리는 불능이고 새것을 4천불을 주고 사야 된다고 했다.
수많은 수리공들이 있지만 자기를 선택해서 잡을 주려고 하면 감사해야지 오히려 손해를 보이려드는 그들을 이해 할 수 가없다.
구장에 나갔다가 우연이 생각이 나서 친구에게 물으니 30초 이야기를 해서 시도해보니 아무런 고장도 없었는데 10년 동안 아무 고장 없이 지금까지도 잘 사용이 되니 두 얼굴(영어:two faces)이 된다.
햄버거와 소다 이라면 어느 가게를 가든지 거의 평준화되어 있는 적정의 가격이 있지만 전문계통은 이현령비현령이니 반드시 제2의 견해(2nd opinion)를 들어보아야 한다는 데는 이론(異論)의 여지(餘地)가없는데 조심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부정행위에 관한 이야기로 엊그제의 수요일 수 만 부가 팔려나가는 H일간지에 공공연하게 6월29일 시카고 체전에 보낼 선수명단에 타주의 선수이름을 올려놓은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아무도 모르게 비밀로 살짝 참가 시켜야 할 것을 신문을 통해서 미리공개를 해버렸으니 자승자박이 되고 또 한 번 뱉은 말은 도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것이다.
매2년마다 열리는 전 미주체육대회 때 서로 믿고 신분증 확인을 안 한다고 해서 다른 주에서 전직 한국대표팀 선수를 빌려와서 사용한다면 스포츠정신의 정직성은 완전히 와해되는 것이다.
워싱턴DC는 미국의 얼굴이고 세계의 얼굴인데 그런 일이 생기려 하면 정통성을 유지하기위하여 막아할 모 부서의 회장이 일등이라면 부정도 불사하고 비리를 자처하고 있으니 차탄하지 않을 수 없다.
상금이 걸려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매2년마다 동호인들이 각 주 마다 돌아가면서 만남의 장소를 마련하여 페어플레이를 해서 서로간의 친선을 돈독히 하는 운동회인데 부정을 척결해야 할 장짜리를 좋아 하는 회장이 머리를 짜내어 부정을 자진해서 저질려는 행위는 이해가 안 간다.
한 두 사람의 고의적으로 저지르는 부정행위가 이미 전회원의 얼굴에 먹칠을 한 셈이다.
학창시절 일년에 4번치르는 고사때 커닝(cunning:부정행위)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는데 한글사전에서 찾아보니 ‘상대방을 기만하거나 음모 술책 따위를 꾸밈을 이름’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는데 내가 격은 의료계통과 치과계통에 대해서 억울한 경우도 있었기에 다음기회에 열거해보려고 마음을 먹고 있다.
빙하의 절벽아래까지 갔었던 선상(船上)에서 보여주는 것으로 실험용 얼음덩이위에 철사의 양쪽 끝에 주먹만큼 큰 쇠뭉치를 매달고 얼음위에 걸쳐 놓으면 철사와 얼음이 닿는 곳은 압력이 높아 온도가 올라가니 얼음이 녹아 골이 깊이 파여 얼음덩이가 2쪽으로 끊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빙하(glacier)는 눈이 쌓여 된 것 인데 10m깊이의 비중(1입방cm의 물의 무게, 물은 4℃일때 가장 무거움)은 0.6이지만 깊이 200m의 것은 0.91이 되어 거의 물과 같으므로 빙산은 10%만이 물위로 올라와 있단다.
큰 빙산(iceberg, 15ft이상)과 작은 빙암(growler, 3-7ft)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물속의 유속과 방향이 다르기 때문인데 남극에서 최고로 큰 빙산은 길이 400km에 넓이가 40km나 되고 어떤 것은 벨기에 크기라는데 남극의 빙하는 대륙위에 떠 있는 것 이어서 모든 빙산이 다 녹으면 해수면이 60m나 높아지니 상해와 뉴욕은 해수면 밑으로 잠겨버린단다.
빙하의 윗부분은 물방울이 섞여서 흰색으로 보이지만 밑쪽의 것은 물방울이 압력을 받아 작게 뭉쳐서 아름다운 푸른빛을 낸다.
기록사진을 TV로 보아오던 빙하폭포절벽을 현장에 가서보니 산위에는 검은 바위가 노출되었고 빙하는 이미 반 이상 으로 줄어서 산의 아랫부분에만 얇게 남아있으니 마음이 상하는데 내 생각으로 얼음의 녹는 속도가 너무 빠르니 빙하관광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30년 전에 와본 관광객은 적설은 산꼭대기에 있지만 두꺼운 빙하는 아래쪽으로 몰려서 지금은 반도 안 되니 인간이 스스로 묘혈(墓穴)을 파는 셈 이어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앵커리지는 가로수대신 둥근 생화들(꽃으로 둘러싸여 화분은 안보임, 위는 노랑꽃, 아래는 덩굴 보라꽃)을 길옆 철제기둥에 매어단 것이 이채로웠다.
반원형 영화관의 스크린은 입체효과를 내고 입장료 8불을 받는데 같은 건물의 기념품가게물건을 산 후 영수증을 보여주면 8불 할인을 받으니 공짜의 영화 관람이 되는 셈이다.
마지막 날 가본 벼룩시장에는 기념품가게가 많았었는데 주로 모피, 크디큰 고래 뼈나 무스 뿔 등으로 된 조각품등 주로 알라스카토산품과 수공예품, 입속에서 살살녹는 농축 불루베뤼 차컬릿등을 팔고 있었는데 관광안내원으로부터 주어진 1시간을 기념품구경에 몰입 하다가보니 시간이 모자랐다.
나의 눈을 번쩍 빛나게 한 것은 빙하기에 얼음 속에 묻혀 버린 기록영화로만 보던 골동품보다도 더 귀한 매머드 코끼리(12,000-8200전에 멸종)의 크기도한 상아와 한길도 더되는 길기도한 고래의 아가미 날개(조름)가 있었는데 사야 되나 말아야 되나? 운반을 어떻게 한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으니 일찌감치 주차장의 벤 안에 앉아서 기다리면서 나한사람 때문에 늦어진다고 손전화기가 평상시보다 더 강렬하게 외치는 느낌이니 내가 어쩌지 못하는 아쉬움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는 벤을 향하여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흑 곰은 영리해서 미끼를 놓아 놓으면 처음에는 주위를 세밀히 관찰만 하고 먹지 않는다는 것이고 총알을 맞으면 앞발로 가리고 지혈을 하며 멀리 도망을 하니 활을 사용하기도 해야 한다는데 화살의 날에 살이 찢어지면 지혈이 안 되니 핏자국을 따라가면 빈사상태인 곰을 발견한다고 하며 이곳은 4륜구동 오토바이가 큰길 옆으로 나란히 가는 좁은 서비스 로드(service road)로 합법적으로 다닌다.
알래스카 기행-5
메킨리 설산
백곰은 발바닥이 오톨오톨하여 얼음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되고 털은 희어 눈 색인데 유독 그의 코만은 검으니 노출을 꺼려 앞발로 코를 가리고 먹잇감을 가까이 오게 만든단다.
직접들은 곰 사냥 이야기로 내 또래의 전직 사격협회장의 형은 버지니아의 우드브리지에 사는데 집 뒤가 내만(內灣)이어 뒷마당에서 배를 띄우며 기러기가 와서 둥지를 튼다는데 총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알라스카는 한국인 부자들이 곰 사냥을 온다는데 그는 미국영주권 자격이며 수렵면장(지금은 200불)을 사고 현지인에게 부탁 하는데 나무위에 큰 드럼통을 얹어놓고 옥수수(지금은 식품점에서 팔다 날짜가 지난 남은 식빵 등을 사용한단다)를 넣어 놓고 맞은편 나무위의 원두막에 홀로앉아 기다리는 중(2시간 후에 안내원이 오기로 됨)발밑으로 시커먼 흑 곰이 지나가는데 그에게는 흡사 큰 배가 발밑으로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단다.
나무위에 올라가 드럼속에서 옥수수를 꺼내먹는 곰을 쏘아 땅에 떨어뜨렸는데 약 600kg정도이며 안내원의 이야기로 아마도 카운티의 ‘기록을 깰(break record)’ 정도로 큰넘이라고 그에게 말을 했단다.
머리는 박제 집에 부탁한 후 선금을 주고 왔는데 집으로 부쳐 온 것은 자기가 잡은 곰의 것이 아니고 더 작은 것이어서 장거리 전화로 욕을 한마디 해주었다고 했다.
그는 처음 간 사냥이어 모르고 모기약을 준비하지 않아 종아리를 많이 물렸다고 했는데 내가본 그곳의 모기는 모두 굉장히 큰 왕모기 들이다.
그의 이야기로 웅담이 몸에 좋다고 하여 술에 타서 먹어보았는데 아무런 효과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 계군도 한 마리를 사서 곗날 여러 사람들 에게 나누어 주었다는데 몇 달이 지난 후 어는 곗날 곰 이야기가 나았는데 나는 먹어 본적이 없다고 했더니 나의 아내가 처음으로 비밀을 말하는데 우리도 얻어와서 육개장을 만든 후 나도 먹어 보았다고 했는데 나는 기억에도 없다.
아내가 나에게 곰 고기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내가 먹지 않을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사실 또한 그러 했을 것이고…….
내가 한국에 살적에는 고기가 귀하여 노루, 꿩, 오리 등이 식품으로 보이어 먹었지만 미국은 고기가 흔하니 구태여 먹을 필요는 없으니 소, 닭, 돼지고기로 한정된다.
초창기의 미국선조들은 진취성과 신대륙의 신비에 에 이끌려서 이민선을 타지만 그 후에도 후손들도 뭔가를 해보려는 개척정신은 살아 있었나보다.
1867년 빙하로 덮여서 사용을 못하는 남한 총면적의 15.5배인 동토 알라스카를 그 당시 러시아로 부터 에이커 당 2 cent(2/100불)씩 계산을 해서 7백20만 불에 판 후 블랙 골드가 나오니 소련(1991년 붕괴, 지금은 CIS;독립국가연합; The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15개국)은 배를 앓았단다.
인구밀도(per square/mile)는 가장 높은 뉴저지 주의 1,097.6명에 비교되는 1.1명이 되며 지구온난화가 오면 동토의 이곳은 혹시 살기 좋은 온대의 천국이 될 것이 아닌가?
빙하에 얽긴 이야기로 얼음 두께가 최고 2마일이나 되는 아이스 랜드에 사는 사람은 얼음이 싫어서 그륀 랜드(Greenland)라고 이름을 지으니 푸르고 좋은 땅인 줄 알고 덴마크가 정복했고 얼음이 없는 아이스 랜드는 큰 나라들이 쳐들어 올까봐 일부러 Iceland(얼음땅)라고 이름 지었다나?
북극양은 바다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앞으로 여러 개의 국가간에 마찰이 생길 거란다.
그륀랜드는 80%가 얼음으로 덥혀 있는데 내륙지방에는 얼음에 눌려 땅이 300m나 바다높이보다 낮단다.
지금은 공기가 건조하여 눈이 적게 내리니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이 7m가 상승한단다.
그리고 북극양에 얼음이 녹으면 얼음을 깨며 가는 쇄빙선(碎氷船)이 필요 없고 북서항로 운하가 개통되어 일본에서 미국동부로 오는 항로는 현재의 파나마 운하로 오는 것보다도 더 가까워진단다.
1943년 1500마일의 고속도로가 페어뱅크스에서 캐나다 쪽으로 완공되고 1959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49번째 주로 뒤늦게 승격시켰는데 태평양 전쟁 때 인구가 늘었다가 전쟁 후 줄었다가 냉전 중에는 다시 교두보가 되니 군인수와 가족에 의하여 늘었는데 이곳은 인구가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한단다.
알래스카 매입에 공헌한 미국 국무장관이름에서 따온 한국의 남해같이 생긴 시워드에는 피오르드(fjord 노국어)식 해상공원이 있어 수 십 명이 배를 타고 다도해(무인도)사이를 오가는데, 배영(背泳)을 하며 재롱을 부리는 해달(sea otters), 바위에 사는 수를 헤아리지 못하는 군락지의 물새 떼, 바위 위에서 쉬는 여러 마리의 물범들, 크릴새우를 먹고(한번 먹으면 며칠을 견딤)사는 고래의 분기(憤氣)와 잠간 수면위로 보이는 꼬리, 그리고 배 옆으로 지나가는 크디큰 고래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해변에 겹겹이 쌓인 검정색의 조약돌들은 볼만했는데 천연석인지 옮겨온 것인지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는데 이곳무인도에서 관광객을 위해서 무제한으로 재공 되는 미국식 식사는 구운 연어가 곁들여 제공 됐다.
한국의 유신정치시절에는 국회의원들을 문모 목사가 초청하여 자기의 어장에서 바다낚시를 하는 배려를 했었는데 잡힌 가자미가 최고로 큰 것은 200파운드짜리가 잡혔다고 그 당시의 신문에 난적도 있었다.
한국서 부자들은 이곳으로 비행기로 곰 사냥과 바다낚시를 온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고 수상경비행기로 호수에 랜딩하면 기다리는 보트에 오른 후 낚시를 하고 시간이 되면 비행기가 다시 태우러 온단다.
이곳에는 여러 동물들의 두개골이 전시 되며 이름을 써 붙이지 않았는데 설명하는 파크 폴리스 여자 공무원이 관광객들에게 알아 맞혀 보라고 했지만 아무도 알 수가 없었는데, 그는 곰과 물범이라고 설명을 했다.
언뜻 내가 그렇다면 두 짐승의 차이는 잡식과 육식 사이이니 절굿니(절구처럼 약간 움푹함, 초식동물에만 있음)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더니 두개골의 옆을 자세히 들여다 본 그는 감탄하며 자기는 그동안 몰랐었던 사실이라고 솔직하게 말 했다.
거의 투명한 크릴새우는 프랑크톤을 먹고사는데 배위에는 현미경으로 유리통에 넣어 해엄치는 프랑크톤을 볼 수 있었고 도표에는 각각 모양이 다른 27가지모양을 보여 준다.
길이 없던 시절 유콘강 수로를 사용하던 백인들이 일찍 문호를 개방하여 인디언은 낫 톱 등 공구사용을 했고 미국이 이 땅을 사들이기 전에 이곳에 살던 뤄시아(Russia)정교(正敎)를 믿는 원주민들은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이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고 믿어 교회 앞의 평면무덤마다 위에 관보다는 조금 더 크게 송판으로 집을 짓고 화려하게 페인팅을 한 것이 이채로웠는데 조그만 정교회 목사는 자락이 발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검을 망토(manteau,불어)를 입고 있었다.
오는 비행기 안에서 비상탈출도어 칸에 앉게 되었는데 이곳은 앞쪽의 의자사이의 공간이 더 넓어서 다리를 쭉 펼 수가 있으며 개찰하는 여자가 나에게 스페셜 아일(aisle, 발음 부호 ail)에 빈자리가 있는데 영어를 이해하느냐고 물어와 그렇다고 한 후 왜 묻느냐고 물어보니 바빠서 ‘자기의 의무’ 라고만 짤막하게 말 했는데 내가 앉은 후 이륙 전 스튜어디스가 안내말 하는 것을 들으니 비상탈출구문을 열기위해서는 영어를 아는 사람이 앉아야 한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녀는 작동설명서는 등받이 파켙 속에 들어있다는 보충설명도 곁들였다.
옆자리에 앉은 몸에 털이 많고 반바지를 입은 한 미국인 의사는 페어뱅크에서도 더 북쪽에 위치한 극지(pole)부근에 산다고 했는데 겨울이면 17피트(약5m)나 내리는 눈 때문에 길이 없어지니 동네가 고립되어 겨울이면 매해 동네마다 의사가 배치된다고 했다.
이곳에는 미국각주에서 선생들이 전근을 오지만 오래 근무하지 못하고 계속 바뀐다고 하니 모두들 기후가 체질에 맞지 않는 셈이다.
그의 큰아들은 햇볕 때문인지 대학을 포기하고 19세에 해군에 입대했다고 하며 정복을 입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의 15살난 둘째 아들은 간 이식수술을 받은 후 특별한 의약과 스페셜 케어를 받으며(9살 난 막내아들 때문에)부모 곁을 떠나 샌디에고 에서 투병생활을 하는데 기후관계로 현재는 홀로 떼어 놓았지만 그래도 홈씩에 걸리지 않고 잘 견디니 착하다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목 멘 소리로 말했다.
그의 약점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내가 혹시 열악한 기후 때문이 아니냐? 고 차마 확인 문의는 할 수 없었지만 어쩌면 6개월은 밤이고 6개월은 그림자가 길쭉한 낮이 계속되니 진정(眞正)그 소년의 병은 오랫동안 버려졌던 툰드라 기후환경과 관계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가능하다면 빙하가 녹아 없어지기 전에 한번쯤은 찾아보아야 할 가치가 있는 땅이라고 나는 곁들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