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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미탄면 - 외딴 별천지, 그러나 잿빛미래
별천지가 따로 없다.
보이는 건 손바닥만한 하늘만을 남긴 채 빼곡히 둘러선 산자락. 좁은 계곡에서 급하게
흘러내리는 맑고 깨끗한 물이 있는 곳.
오지라고 말하기조차 조금은 남새스러운(‘부끄러운’이란 뜻의 이 곳 사투리) 인적드문 땅이
평창군 미탄면.군청소재지인 평창읍내에서 평창강을 건너 남동쪽으로 2차선 도로를 따라 20여분 가다보면 맷둔재가 나온다. 이 고개를 넘으면서 미탄면은 시작된다.
예전엔 서울(한양)에서 정선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해 과객들이 많이 스쳐지나던
곳이다. 지금은 고개마루에 터널이 뚫려 구불구불한 도마치고개를 오르내리지 않아도
된다.
제법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사람사는 곳 같은 데가 미탄면의 중심지인 창리.
이곳을 에워싸고 율치리와 회동리, 평안리, 백운리, 한탄리, 기화리, 마하리, 수청리가
마치 삶아놓은 고구마 형상으로 들어앉아있다.
■ 하늘끝 맞닿은 청옥산 육백마지기
태백준령이 허위단숨 남하하다 정선 가리왕산(해발 1천561m)에서 잠시
쉰다.
이내 거친 숨을 잠재우고 다시 벌떡 일어나 남녘으로 치닫다 중왕산(1천376m)을 거쳐
짐짓 태연하게 부려놓은 산이 청옥산(해발 1천249m).
이 청옥산 남쪽 아래로 미탄면이 자리해 있다. 요즘 이 높은 산봉우리 꼭데기까지 차가
다닌다.
이 산에 차길이 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고장 사람들은 이 산을 예전부터 ‘육백마지기’라 불렀다. 무슨 뜻이 있는
겔까. ‘마지기’는 이른바 농사지을 땅의 넓이를 일컫는다. 한마지기를 보통 300평으로 잡으면
열마지기면 3천평, 백마지기면 3만평….
육백마지기면 18만평의 농초란 뜻인데 그렇다면 이 산에 그만한 농사지을 땅이 어디 있단
말일까.
길 옆으로 수백년 이상된 원시림이 우거진 오솔길을, 그것도 차 한대가 겨우 빠져나갈 만큼
울퉁불퉁 자갈길을 1시간쯤 오르면 해답이 저절로 나온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뽀얗게 뒤덮은 청옥산 정상은 말하자면 민둥산이다.
끝간데 없이 펼쳐진 장엄한 고요의 바다. 해발 1천200미터 정상에 끝모를 들판이
널브러져 있었다. 고랭지농업이 이뤄지는 곳이다. 차길이 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원래 미탄에는 산나물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자생산채 곤드레를 비롯, 곰취, 미역취,
참나물, 잔대, 수리취, 더덕, 고사리, 고비, 우산나물, 두릅, 산마늘, 참취….
청옥산 정상에서부터 흘러내린 산자락 곳곳에서 산채와 약초 등이 나와 봄이면 청정무공해
산나물을 뜯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이 때문에 미탄면은 지난 봄을 기해 제1회 육백마지기 산나물축제를 열기도 했다.
옛부터 마을사람들 사이에 구전돼온 ‘미탄아리랑’중에는 청옥산에서 나오는 곤드레만 있으면
흉년에도 까딱없다는 구절이 있다.
그만큼 평탄한 능선에 산채가 많고 또 이곳 청옥산 정상 육백마지기에서 고랭지농업이
대규모로 이뤄져 주민들이 먹고 산다.
해발 1천200미터에서 자라는 청정채소. 그 맛과 향은 경험해보지 못하면 아무도 얘기할
자격이 없다.
■ 열목어·송어의 고향 기화천
미탄 중심마을인 창리에서 정선방면으로 20여분쯤 가다가 백운리로 들기 전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한탄리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기화리와 수청리 마하리 마을은 막다른 곳이다. 이 마을을 거쳐 다른 곳으로
가려면 차를 버려야한다.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면 누구도 이곳 마을 초입새에서 아예 발길을 돌려야한다.
이곳으로 들어서면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집들이 듬성듬성 떨어져 있고 산은 점점
높아간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마침내 기화리 입구에서는 차량교행이 어렵다.
여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현재 약 53가구에 160여명의 주민이 살고있는 기화리.
그나마 동네에 하나뿐인 기화초등학교가 지금은 분교장으로 전락한 채 학생들의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한탄리에서부터 기화리를 거쳐 마하리까지 흐르는 냇물이 있다.
석회암지대라 군데군데 땅속으로 숨었다가 샘처럼 다소 솟아 흐르기를 몇번인가 거듭하면서
영월 동강으로 흘러든다.
기화리 마을을 중심으로 마하리까지 흐르는 기화천은 보리실마을에서 흘러내려온 보리실천과
상수청마을에서 내려오는 상수청천이 합쳐진다.
보리실천과 상수청천은 찰랑거리며 계곡과 암반을 훑고 내려와 기화천에 다다라 제법 무릎까지
잠기는 물길을 이룬다.
굽이쳐 여울져흐르는 곳은 제법 물깊이가 나오는 곳도 있다.
이 보리실천과 상수청천을 포함, 한탄천, 기화천은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물게 열목어와 송어가
자생하는 청정계곡이다.
천연기념물 제73호로 지정된 열목어는 수온이 높은 곳에서는 눈부터 열이 올라 빨개진다는
저수온성 어족으로 차고 맑은 물이 아니면 살지 못한다.
그만큼 이곳 기화천 일대는 깨끗하고 맑은 물을 자랑한다. 평창군 일대에 널리 서식하는 송어 역시 맑고 깨끗한 곳이 아니면 구경하기 힘들다.
무릎까지 감겨오는 기화천 용숫골 앞 냇물에 들어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주인공이
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요즘엔 외지에서 송어플라이낚시꾼들이 주말이면 떼로 몰려와 이곳 일대가 차와 사람들로
붐빌만큼 이미 바깥세상에 노출됐다.
천혜의 경관과 그지없이 조용하고 깨끗한 오지마을 계곡이 서서히 외지인들의 발길에
더렵혀지고 있었다.
■ 잿빛으로 죽어가는 오지마을
한탄리에서 기화리로 들어가다 왼쪽으로 급하게 돌아들어가는 좁다란 비포장도로가 언뜻
보인다.
이곳을 따라 들어가면 옛부터 물이 푸르고 맑아 ‘물푸레마을’이라고 불러온 수청(水靑)리가
있다.
서쪽으로 긴 협곡을 따라 들어간 곳에 민다리와 상수청마을이 있는데 지금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상수청에 있던 수청분교마저 얼마전 폐교돼 교사와 학생들 모두 떠난 이곳 수청마을에 지금은
요란한 굉음과 먼지만 가득 날리고 있다.
석회석을 채굴하는 석회광산 태양석회가 언제부터인가 이곳에 들어와 마을 전체를 희뿌연
잿빛으로 뒤덮어놓았다.
산높이에 버금갈 만큼 쌓아놓은 석회석과 하루종일 마을안길을 드나드는 대형 트럭, 여기저기
석회석 분쇄기와 로울러 돌아가는 소리로 수청리는 이제 더이상 예전 ‘물푸레마을’이 아니었다.
상수청천을 따라 흘러내려오는 계곡물마저 이미 쌀뜨물처럼 뿌연 회색빛으로 변한채 죽어가고
있었다.
이끼하나 없던 계곡 바위엔 이제 덕지덕지 석회가루가 묻어났고 그마저도 대형차량 통행을
위해 마구 파놓은 도로공사로 본래의 제모습을 잃고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천연 원시림을 간직한 채 사람의 발길을 허용치않던 진짜 깡촌, 평창 미탄면의 기화리와
수청리.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순박함을 간직해온 이곳 오지마을마저 이제는 개발의 미명과
외지관광객들의 잦은 발길에 조금씩 파헤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