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부터 30일,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떠나기 전 여행자보험과 렌트카에 대한 대물, 대손에 자차보험까지 들었다.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안전망을 다 쳐놓은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작 여행 중 일어날 수 있는 사고로 인한 재산적 손실에 대한 안전망에 불과하다. '고작'이라고 표현했으나 실은 '고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고로 인해 사람이 다치는 것만큼 재산적 손실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니 제주도에는 30분만에 도착했다. 비행로에 따라서 30분에서 50분이 소요되는 시간상으로는 단거리 여행이다.
오랜만에 들른 제주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먹을 거리를 사러 들른 마트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이 주고 받는 대화에서 제주도를 느낄 수 없었고, 빵집에 들러도 내가 언제나 가는 빵집과 다르지 않았다. 렌트카에 달아놓은 네비게이션은 지나는 곳마다 추천관광지가 있다고 알려주었는데, 그 관광지들의 대부분은 제주도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제주도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말이 많다는 것, 열대나무가 식물원이 아닌 도로가에 있다는 것,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것이다.
제주에 도착하여 숙소에 들어가 짐들을 풀어놓고 이른 저녁을 먹고 나니 폭우가 내렸다. 오후와 저녁일정을 취소하고 숙소 근처를 산책하고 느긋한 밤을 보낸 후 이튿날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나섰다. 가장 제주도 다운 곳을 찾아다니자 했지만, 아이들이 있는 탓에 맘 먹은 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산굼부리에 가서 분화구를 보고 그 곳의 절경에 감탄하고 소인국미니월드에 가서 세계를 일주했다. 생각해보니, 에버랜드에서도 배를 타고 세계를 일주했었던 적이 있다. 직접 걸어다니며 글을 읽고 세계각국의 유명한 건물이나 조각품의 모형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피곤했다. 에버랜드에서 출렁거리는 배에 앉아 세계 여러나라의 고유복장을 입은 인형들이 민속춤을 추는 것을 구경하는 것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을 보았음에도 가족들은 에버랜드의 그것에 점수를 더 후하게 주는 듯 했다.
신비의 도로에서 오르막길을 굴러내려가는 차들과 물이 가득담긴 패트병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승마장에 가서 말을 탔다. 렌트카에서 추천하는 식당에 가서 해산물이 가득한 뚝배기를 먹고 테디베어박물관에 갔다. 아이들을 박물관에 보내고 부모님과 남편과 나는 롯데호텔 근처의 산책길을 걸었다.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휴가를 보내도 꽤 멋있겠다는 생각을 한 우리는 그 산책길을 여행 중의 보너스로 생각했다. 서현이가 자꾸 오골계라고 부르는 바람에 우리가 헛갈리기 시작한 외돌개를 지나 천지연에서 쉬었고, 제주민속촌박물관과 섭지코지를 끝으로 그날의 일정을 마쳤고, 다음날 우리는 김녕미로공원과 공함 옆의 용두암을 마지막으로 진주로 돌아왔다.
우리는 여행의 소중함을 여러 곳에서 들어 안다.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체험한다. 비록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해 지구가 많이 좁아져서 이곳과 그곳이 크게 다르지 않다하여도 하늘이 다르고 나무가 다르고 공기가 다르고 바다색이 달랐다. 여행을 하기위해 준비하는 모든 과정들이 여행의 재미를 더해주었고,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외국을 자주 가는 동생이 제주도 여행길에서 낯섦을 느끼는 것처럼 새로운 곳이면 새로운 체험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집에 앉아서 훨씬 깨끗한 화질의 영상화면을 통해 제주도의 풍경을 보고, 백과사전을 통해 제주도 풍물을 이해하는 것보다 피곤하고 돈이 들고, 때로는 단체관광으로 인해 특정지역으로 여행을 했다는 느낌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재미에 더욱 푹 빠졌다하더라도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된다. 과거의 사람들이 과거의 여행을 찬미했다면, 우리는 오늘날의 우리식의 여행을 찬미해도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