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7일 주말법문
슬슬풍송 이요 소소우회 니라 나~~
사자교인 인데 한로축괴 니라 나~~
스산한 바람에 소나무요 소실한 비에 회나무라
사자는 사람을 무는데 사나운 개는 흙덩이를 쫓는다
조주가 어느날, 방장에서 사미의 할참(문안인가) 소리를 듣고,
시자에게 이르기를 “가라고 해라”하였다.
시자가 가라고 해서 사미가 인사를 하고 떠났다.
이에 선사가 말하되
“사미는 문 안에 들어왔는데 시자는 문 밖에 있구나”하였다.
하택 신회선사
한동자(신회)가 나이 13세때에 옥천으로부터 6조를 찾아와
참배하니 6조께서 “선지식아, 멀리 오느라 고생이 많구나,
도대체 근본을 얻어 가지고 왔느냐?
만일 근본이 있다면 주인임을 알 것이니 한번 말해 보아라”하시니
“머묾 없는 것으로 근본을 삼으오니 보는 것이 곧 주인이나이다” 하니
“이 사미야 어찌 그리 쉽게 말하니냐?” 하시고
주장자로 세 번 내리치셨다.(중도,돼지도,사람도,부처님도 본다)
이에 신회가 “화상께서 죄선 하시옵는데 보시옵니까?
보시지 않으옵니까?”하자
“내가 너를 때렸는데 아프냐? 아프지 않느냐?” 되물으시니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나이다”하니
“나도 또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하자
“어떤것이 또한 보기도하고 보지않기도 하는 것이옵니까?”하므로
“나의 보는 바는 항상 내 마음의 허물만 보고 다른 이의 시비와 좋고 나쁨을 보지 않나니
그러므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는 것이니라.
그런데 네가 말하는 아프기도하고 아프지 않기도 한것은 어떤것인가?네가 만일 아프지 않다고 하면 나무나 돌과 같은 것(무정물, 무기성)이고, 만일 아프다면 범부와 같아서 곧 성내고 원한을 일으킬 것이니(둘로봄) 네가 아까 말한 보고 안본다는 것은
곧 두갈래 극단이고(머묾 없는 것. 머묾으로 갈라져 둘임=주인이 아님),
아프다(생: 머묾 없는 주인 아님) 안아프다(멸: 주인)는 것은 이것이 생멸이로다.(생각내고 안냄)
네가 아직 자성을 보지 못하고 감히 그런 희롱의 말(말장난: 아음아리, 지식)을 하느냐?“ 하시니
신회가 예배하고 뉘우쳐 빌었다. 조사께서
“네가 만일 마음이 미하여 보지 못한다면 선지식에게 물어서
길을 찾을 것이요, 네가 만일 마음을 깨달았다면
스스로 성품을 보아서 법대로(무념,무상) 수행할 것이다.
그런데 너는 왜? 스스로 미혹하여 제 마음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나에게 와서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분별을 내는가)
나의 보는 것은 스스로 아는데(반야지혜)
어찌 너의 미함을(분별로 가려봄) 대신하며
네가 만일 스스로 본다면 또한 나의 미혹함을 대신할 수 없는데, 어찌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지 못하고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하시니
신회가 다시 백여번 절을 하며 허물을 사죄하고 부지런히 모시어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어느날 조사께서 대중에게 “나에게 한 물건이 있으니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으며 등도 없고
낯도 없거니 여러 사람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하시니
신회가 나와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본원이고
신회의 부처될 성품입니다”하자
“너에게 말하기를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다고 했는데
네가 이제 돌연 본원이니 부처 될 성품이니 하니
네가 돌아가서 한 지방의 지도자가 되더라도 다만
하나의(그렇게 알음아리-지식으로 알면)知覺종도(무리)를 이룰 뿐이리라”하셨다.
영리하여 아는 것으로 말대답을 한 것을 경책하신 것이나
이러한 경책으로 인해 훗날 이분 하택신회선사는 뒤에 조계의
돈교를 크게 넓히고 ‘현종기’를 지어 세상에 행하게한 큰 선지식이다.
이 현종기는 남쪽 6조의 돈종과 북쪽 신수대사의 점종을
바로 잡으려한 것으로,
무념으로 종을 삼고 지음없음으로(무위) 근본을 삼으며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써 용을 삼으니,
무릇 진여는 곧 무념이니 능히 앎을 생각으로 하지 않고
실다운 상은 남이 없으니(진공) 어찌 육신의 5관으로 볼 것이며, 생각없는 생각(반야)은 곧 진여를 생각함(작용)이요,
남이 없는 남은(무생생:분별없는 지혜작용) 곧 실상이며
머묾 없는 머묾은 항상 열반에 머무는 것(정)이며
행함없이 행함은(무위행) 곧 저 언덕에 오름(청정자성)이니
여여하여 부동이나 움직여 작용함이 무궁한 것이다”하였다
6조께서 입멸에 들기전 유언을 마치자 법해등은 이 모두가
눈물을 흘려 우는데 오직 신회만이 신기와 감정을
움직이지 않고 울지도 않았다.
이에 6조께서 “신회소사가 도리어 선과 불선(善)이 평등함을
얻었고 헐뜯고 칭찬하는데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었으며,
슬프고 즐거움을 내지 않는 마음을 얻었으나,
나머지는 모두 얻지를 못했구나. 산중에 몇해씩 있으면서
마침내 무슨 도를 닦았는가? 너희가 이제 슬피우는 것은
누구를 근심하는 것인가?“ 운운하였다.
하택신회 선사가 대중에게
“한 물건도 생각지 않는 것(부동심)이 곧 자기 마음이니
아는 바로는 지혜가 아니니 다시 달리 행함이 없노라.
여기에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 참으로 삼마제(정혜가 계합된 경계: 진여삼매)이니라.
법은 거래가 없고 전제와 후제가 끊어진 것(시공이 초월된 경계)이니, 그르므로 알라.
무념이 최상승이 되느니라. 모든 배우는 무리들에게 이르노니,
밖(경계)으로 달려 구함이 없어야 되느니라.
만일 최상승선 이라면 응당 짓는(유위:조작)것이 없는 것이니라“하였다.
또 사께서 이르시기를
“무념으로 종을 삼고 무착으로 근본을 삼는다.
대저 진여는 생각 없음이라, 생각으로 능히 알바가 아니요
실상은 나는 것이 없음(진공)이라. 어찌 몸과 마음으로
능히 볼수 있겠는가?
무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곧 진여를 생각(념:반야지혜로)하는 것이요, 무생으로 내는 것은 곧 실상을 내는 것이요(반야작용),
머물지 않는 것으로 머무는 것은 항상 열반(정)에 머물고,
행하는 것이 (무위행)없이 행하는 것은 곧 저 언덕에 뛰어남(반야작용)이라. 생각생각에 구함이 없으며 구하는 것은 본래가 무념(순리에 응함)이라야 하니라“했다.
광보스님이
“눈과 귀가 소리와 빛깔을 반연할때에 비등하여 서로같음이 됩니까? 서로 얼켜 서로 어울림(상호유대의 조직체)가 됩니까?” 하고 물으니
“그것들은 그만두고 너는 어떤 법을 가리켜 소리와 빛깔의 체(바탕)라고 여기느냐?”하시니
“화상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아서 곧 소리와 빛깔을 얻을 수 없나이다.”하자
“만약에 소리와 빛깔의 체가 공함을 요달하면 또한 눈과 귀와
모든 근(6근)과 범부와 성인이 평등하여 환화 같음을 및을 것이며 서로 물음과 엉켜 어울림(공중무색)인 그 이치도 분명해질 것이니라.”
이 말씀에 광보스님이 종지를 알았다.
도솔삼관
석상 선사 → 황룡 혜남 → 보봉 극문 → 법을 이은
도솔 종열선사는 처음에 도오 원지선사를 모시다가 그의 권유에 의해 극문 선사에게 참하여 인가를 받은 이로서
세 개의 관문을 설치하여 수행자들에게 물었음-
“여러 곳을 행각하며 유명한 스승을 찾는 것은 견성하기 위해서이다.
1) 지금 그대의 본성은 어디에 있는가? 자기의 본성을 깨닫는다 면 지금 당장 해탈을 하게 될 것이다.
2) 죽음에 임하여 어떻게 생사를 해탈하겠는가?
생사를 해탈할 수 있다면 즉시 가는 곳을 알 것이다.
3) 육체를 구성하는 4대 요소가 흩어져 죽는다면 어디로 갈까?
자! 일러보시오. 이 세계의 관문을
1)본성은 어디에 있는가? (일출동이요 월낙서라)
2)죽음에 임하여 어떻게 생사를 해탈하겠는가?
(죽음에도 따르지 않고 태어남에도 따르지 않는다)
3)4대요소가 흩어져 죽는다면 어디로 갈까?
(다시 와도 입이 없이 오노라)
무문: 만약 능히 세가지를 바로 이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다음의 일이 가능할 것이다.
어디에서도 주인이 되고 어떤 인연을 만나도 곧 종지를
세울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허술한 식사는 배는 부르나 잘 씹어서
맛을 알고 먹으면 배고프지 않는 것이다.
一念普觀 無量劫 無量劫事 卽如今
일념보관 무량겁 하면 무량겁사 즉여금 이로다 나~~
如今覰破 箇一念 覰破如今 覰底人
여금처파 개일념 하면 처파여금 처저인 이로다 나~~
한생각으로 무량겁을 꿰뚫어 보면
그 무량겁의 일들이 바로 지금일세
지금 이 한 생각을 감파 한다면
지금 간파한 사람(본각)을 간파하게 되(시각)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