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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영준 박사(소설 속에서 생물반도체를 발명)가 연간 십조원 이상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보상에 대해 “나는 단 한푼의 돈도 바라지 않소. 하지만 내게 돌아올 돈을 이렇게 써주었으면 좋겠소. 이 땅의 모든 학생들이 법대나 상대가 아닌 이공대로 가고 싶어 하도록 만들어줄 수 있소?”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불두덩이가 솟아 올라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글썽거렸어. 그리고는 순간적으로 주위를 돌아보았지. 주위의 누구에게 나의 눈물을 보이지 않았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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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오십이 가까운데 소설을 읽다가 눈물을 글썽이다니… 내가 생각해도 주책이야. 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불두덩이가 솟아 올랐을까? 소설 속에 나오는 나 영준 박사의 애국심이 나에게도 일시적으로 전염이 되어서 일까? 나의 어느 곳에 애국심이 숨어있었단 말인가? 매일의 뉴스를 접하다 보면 한국이 곧 망할 것이라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들지 않아? 그리고 이러한 나라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아주 불쌍해져. 정치나 사회 현상을 보면 몰락해 가야 하나 실제적으로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고 있단 말야. 그래서 어리둥절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몰락 과정인가 아니면 발전 과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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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4강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때에 4년 만에 터키에 갔소. 보스포러스 해협에 있는 카페에서 물결이 흐르는 것을 보고 있다가 현지인에게 물어보았어. 항상 흑해에서 마르마나海로 흐르냐고. 표면의 흐름은 흑해에서 마르마나海로 흐르지만 속에는 여러 가지 흐름이 있고 표면과는 반대의 흐름이 주류(main stream)라는 설명을 들었어. 그 순간 보스포러스 해협의 깊은 곳을 흐르는 물살 소리가 들려 왔어. 아주 거세고 활기 찬. 그러면서 붉은 옷을 입은 거대한 물결이 오버랩 되고 있었어. 아, 깊은 곳에서는 표면을 흐르는 물결과는 다른 물결이 흐르고 있고, 그 흐름이 갑자기 표면에 드러날 때 붉은 악마의 물결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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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을 어떻게 설명해야 되겠니? 민서의 말대로 “자신이 속한 공간을 지키는 것은 그 안의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얘기야. 도를 닦는 것도 결국 그 안의 사람들과 같이 행복하자는 거야. 휴머니즘과 애국심은 전혀 다른 것 같지만 결국은 본질적으로 같은 거라는 뜻이지.”일까? 그럼 우리 모두에게는 휴머니즘이라는 지하수가 가슴 속에 깊이 흐르고 있는 것일까? “자신은 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버리고 죽음의 길로 자진해서 들어서는지 모르는” 정 의림 기자처럼 ‘고급인간’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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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로이 재단 회장의 독백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비춰 볼까? “한국은 썩은 나라야.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나라는 먹고 사는 것 밖에 모르는 나라야. 모두가 돈에만 관심 있고 역사니 문화니 하는 것은 껍질밖에 없는 나라야.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나라지. 세상에 한국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어. 우선 한국인 자신들이 스스로를 모르지. 한국인은 역사를 상실한 민족이거든. 그들은 고통 받고 있지. 되찾아야 할 역사가 있다는 것은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법이야. 가장 뛰어난 사람들인데도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어리석음에 나는 분노하고 있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결국 인류의 공동 재산이기 때문이오. 즉 한국인들은 자기 몫을 못하고 있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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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되찾아야 하지? 아니 역사만 되찾으면 되는 거야? 앞으로의 역사는 어떻게 쌓아가야 하지? 우리의 몫을 어떻게 해야 달성할 수 있나? 어떻게 우리는 ‘고급인간’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하지? 집에 가서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을 보았을 때, 거기에 희망이 있고 길이 있는 것 같아. 그래도 우리가 초입(初入)을 발견해야 하지 않겠나? 정상에 오르는 것은 그들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