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구정 무이산 여행기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 이번에는 교주님이 중국여행 사진 올린 블로그에서 불법 무단 사진 복제하여
이번에는 교주님처럼 사진이 쪼까 있는 쭝국 여행기 올려봅니다..
재미있고 맛깔스런 글로 교주님이 게시판을 장식하여 주셔서 저는 이곳에 살짝 올립니다..
교주님 여행 후기 실력이 엄청나게 향상되어 이제 더 이상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끌려 다녀야겠습니다!!
교주님 하산 하세용???***
프롤로그..
3년전 구정 계림 여행에 이은 또 한번의 가족여행..
이번에는 우리 가족 4명에 마교주 가족이 동반하여 총 인원이 7명!!
제약된 여행을 하지 않기 위하여 개별 여행을 택하였더니 비행기 삯이 만만치가 않다!!
구정이라 예약자가 많아서 표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한국 여행사에서 또 몰표를 구한 탓에 쉽지 않다는 이바구로 생각된다!!
넉 달 전에 일정을 확정하고 표구하기에 나서나 값싼 표가 아예 없다..
여행사가 거대화되면서 과거와 달리 예약 캔슬료를 직접 감당한다고 하던데 정확히 맞는
이바구인지는 모르겠다..
아침 6시 30분 울산을 출발하여 부산 도착..
8시 50분 출발하는 비행기에 오르니 빈 좌석이 거의 절반 이상이다!!
그런데도 성수기라고 항공권 금액은 내려가지 않으니 어떻게 이런 일이...
앞으로는 여행사 대행 시킬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항공권을 구입하는 방법을 택해야겠다!!
그래도 서울 쪽은 저렴한 항공권을 구하기가 쉽던데 지방 출발은 하늘의 별따기..
불합리한 여행사 우선 관행이 없어지면 여행 환경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되는데
지방 항공기의 경우 탑승 승객의 대부분이 여행사 팩캐지 관광객이니 어떻게 이런 애로 사항이 해소될 수가 있겠노???
중국 국내선 항공은 중국내에서 구입 시에는 그래도 할인표가 많이 돌아다니니 중국내 거주
교포들을 이용하면 저렴하게 구입이 가능하다(인터넷 elong.com)!!
이번 무이산 항공권도 동방항공에 링크한 금액은 18만원대..
중국내 할인표를 이용하니 10만원이 조금 넘는다!! 8만원이면 엄청난 차이죠???
제 1일 상해 주마간산 답사
10시 상해 공항을 빠져 나오니 비온다!!
기다리기로 한 픽업 기사도 보이지 않고..
공중전화로 민박집 전화하려고 하니 동전 전화기는 보이지 않고 몽땅 카드 전화기..
카드 자판기도 몽땅 50원 권만 판매..
그것도 100원 권을 넣으니 환불 보턴이 없어 2장을 구매..
나중에 확인하여 보니 그 카드조차 아주 작은 글씨로 상해에서만 사용 가능이라고 적혀
있다!!
망할 놈의 중국 서비스 시스템!!
아니 자판기 하나로 바가지 상혼을 발휘할 작정을 하다니!!
그 것도 명색이 국제공항에서..
이와 비슷한 시스템이 중국내에서는 비일비재하다..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황을 확실히 파악하기 전에는 절대 돈을 넣거나 내지 않아야 한다..
가령 버스 정류소에서 버스표를 발권할 때 시간표를 확인하지 않고 행선지만 확인하고 돈을 내면
당일표가 아닌 내일 표만 있어도 버젓이 발권을 한다!!
그리고 고객이 항의하면 취소 수수료를 제하고 환불을 하여 주고..
우리의 상식으로는 통하지 않는 일이지만 중국내에서는 그 것이 상식이란다!!!
그런데 그들도 그와 같은 이유로 항의하는 것을 비일비재하게 본다..
“관례”라고 하는데 우리의 잣대로 보면 정말 이상한 나라,,
전화를 하여 보니 이 친구 공항 입국 문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출입문에서 기다린다!!
황당.. 우리말만 할 뿐인지 사고방식은 중국인과 똑같은 조선족이니 내가 참자..
그래도 구렁이 알 같은 돈 백 원은 어디에서 하소연하노???
인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너무 많고 명절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여 렌트를 이용..
마침 비까지 추적하게 내리니 아주 탁월한 선택을 하였다고 생각해야겠다!!
뒤에 짐칸까지 넉넉한 8인승 승합이라 그다지 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상해 시내를 거쳐 구시가지에 위치한 예원 도착!!!
들어가는 입구에 상가가 밀집한 상해 예원은 명나라 시대의 상해 출신의 고관이 만든 정자로 효자인
그는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정원을 만들었는데 1559년에 만들기 시작해서 완성까지 18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용의 모양으로 올린 담을 경계로 하여 몇 개의 블록으로 구분된 담과 문들이 조화를 이룬 중국 특유의
문양과 모양으로 되어 자연스럽게 중국스러움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원의 명물은 절묘하게 배치되어 천연적인 그림을 연상시키게 하는 다양한 형태의 문들과
태호석이라는 돌로 만들어진 석가산등의 돌장식, 분재와 어우러진 꽂나무 등인데 하늘로 삐쭉하게 솟은 건물지붕들과
조화를 이루어 제법 좋은 그림을 만들어 냅니다..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건물과 주루 그리고 연못들은 장식하여 여백의 미를 느끼기에는 뭐가 미진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현대적인 공간만이 자리하고 있는 상해에서는 그래도 뭔가 고풍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공간으로는 손색이 없습니다!!
진입로 상가의 다양한 풍물과 먹거리 그리고 구정을 맞이하여 장식된 중국풍의 장식들도 눈요기 거리로 부족한
다른 부분을 또 한번 충족하게 하여 줍니다!!
상해 구경도 식후경!!
상해의 유명한 딤섬을 경험하기 위하여 기사인 흑룡강 출신의 양씨(양용길, 35세)에게 부탁하니 부족한 경제 사정으로
그다지 맛있는 음식을 경험하지 못했는지 체인점인 “피풍당”으로 간다!!
샤오롱바오, 춘권, 오리요리 등 일품 요리로 다양하게 먹는다!! 엄청 먹네???
상해 최고의 구경거리가 “상양시장”이라는 짝퉁명품 시장인데 이 시장이 올림픽 개최라는 행사에 맞물려
작년에 폐업되어 버렸다..
상인들은 이리저리 흩어져서 다시 장사를 시작한다고 했는데 그중의 하나인 상해기술관 지하의 짝퉁시장 방문!!
과거의 명성은 현저히 줄어버렸다!!
행정 당국의 단속이 심한지 종류도 줄어 버렸고 브랜드 명을 사용하는 것도 많이 자제하는 분위기..
명품을 모아놓은 으슥한 지하 쇼핑몰이 사라져 버리고 나니 별로 살 것이 없네??
그래도 젊은 애들은 좋아한다!! 큰아들, 작은아들 그리고 교주님 댁 둘째 공주까지..
안 가려고 하는 분위기 달래서 해산!!
비는 심하게 오지는 않아도 하루 종일 올 분위기..
상해의 랜드 마크인 동방명주는 안개에 가려 위쪽은 아예 보이지가 않는다..
황포강 보고 방문한 상해 박물관의 마감 시간은 오후 4시,, 건물을 보는 것에 만족..
서커스 예약 시간은 오후 7시 30분.. 현재 시간은 오후 5시..
남는 시간을 상해의 최고 번화가인 난징 도보로에 올인..
엄청나게 화려한 분위기를 보이는 건물이 즐비하나 큰길을 벗어나면 헛깨비..
명품을 판다고 광고판은 엄청나게 붙어 있으나 상점 안은 뭔가 허접!!
중국에서 이런 엉성함이 사라지고 나면 우리 다음 세대는 어떻게 살아갈꼬???
안보면 섭섭하고 보면 그저 그런 상해 서커스 관람.. 150위엔(1인당)
상해 서커스의 백미는 오토바이 곡예!!
조그만 원통에 미친 놈들 다섯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가 목숨 걸고 지랄병을 하는 것..
보고나니 저녁 9시..
차량 보내고 나니 우리끼리 헤매야 한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교주 집 먼저 난징루로 보냈는데 만나기로 한 장소..
보이지가 않는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면서 혼자서 서툰 행동에 대한 반성하며 오동방정..
다행히 정확한 방향 감각을 가진 교주와 장여사 유유히 도로를 건너서 오네???
죽은 아버지를 만나는 것만큼 반갑네??
상해 난징루도 구정연휴 영향으로 밤이 늦어지자 파장 분위기..
삐끼들 도움으로 겨우 밥 먹고 비가 추적하는 날씨 탓에 외탄 야경 구경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민박집으로 귀가!! 지하철타고 걸어서 돌아오니 거의 한밤중이네???
숙소 700위엔
제 2일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슈조우!!
아침 일찍 식사!!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소주 가는 고속도로 타고 소주로 간다!! 약 2시간여를 달려서 호구탑 도착..
소주의 상징인 7층 48미터 높이의 운암사탑(일명:호구탑)!!
“와신상담”, “오월동주”등의 고사로 유명한 오나라왕 합려 또는 그 아버지의 묘였다고 전해지는데
호구라는 이름은 장례를 지낸 삼일 째에 하얀 호랑이가 나와 언덕위의 무덤을 지켰다고 하여 호구(虎邱)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호구 탑에는 소주 지방에 옛날부터 유명한 검이 만들어 졌다는 것을 증명하듯 오왕 합려의 검을 만든 대장장이가
검을 시험하기 위하여 단칼에 갈랐다는“시검석”과 진시황이 합려가 숨겼다는 보검 3천 자루를 찾기 위하여 팠다가
예의 호랑이가 나타나 도굴의 포기한 자리에 물이 솟아 나와 만들어졌다는 “검지”등 검과 관련된 유적과
서시에 대한 유적이 많으나 일개 방문객인 우리의 눈에는 그게 그런 장소일 뿐이다!!
다른 상해의 정원과는 달리 넓은 공간에 풍요로운 운하와 동양의 피사의 사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삐딱하게 기울어 언제가는 넘어갈 것처럼 보이는 호구탑과 절묘하게 어울러져 피어있는
매화와 도화가 그저 아름다울 뿐...
호구탑을 내려와 소주의 상징인 운하를 따라 걷는 길도 제법 풍류가 있다!!
소주의 운하를 따라 배를 타고 구경하는 야경도 대단하다고 하던데 시간 없는 배낭 여행객이
언제 그런 호사까지 경험하겠노??
호구탑을 내려와 소주의 유명한 절인 한산사로..
한산사 그런데 관음암이라 이름 붙어 있는 입구의 돌과 법당이 있는 곳에 세워져 있는 탑
그리고 중간 중간에 있는 글이 적힌 비석 외에는 별 볼 것이 없습니다..
절도 너무 답답하고 왜색풍이 많이 납니다!! 중국인 관광객은 엄청 많습니다만..
다녀와서 인터넷으로 확인하여 보니 한산스님과 습득스님의 일화 그리고 시인 장계가 한산사를
중국인에게 유명하게 만들었네요??
1)한산스님과 습득 스님(옮긴 글..)
어느 해에 홍수가 졌는데.... 습득스님이 물에 떠내려가는 종을 건지려다가 행방불명이 됩니다...
한산스님은 습득스님이 죽은 줄 알고 상심을 합니다...
그러나 습득스님은 종을 배삼아서 바다를 건너 일본에 당도합니다.... 현재 일본에 습득사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산과 습득은 서로의 그리움을 멀리 서로 호응하는 종소리를 통해 표현했다고 합니다...
정말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한산사의 종은 명나라때 주조된 것이 있었으나 청나라때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약탈해 가고...
그 종도 행방을 모른다고 합니다...
1905년 한산사 중건때 야마다(山田)라는 일본사람이 당나라식의 종을 기증하고...
1906년에 다시 주조를 하여 매년 섣달 그믐날 밤에 108번의 타종식을 한다고합니다...
정확히 12월 20일 11시 42분에 주지스님이 타종을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타종 수를 다 같이 센다고 합니다....
108번의 종소리가 울리고 나면 하늘에 폭죽이 쏘아올려지고 떠들썩해진다고 합니다...
그런 일본과의 인연 때문인지 한산사는 다섯 번 불타고 현재의 모습으로는 1911년에 중창 되었다고 하는데
일본인들이 엄청나게 많은 투자를 한다고 합니다!!
혹시 습득 스님 일화도 일본인들이 만든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일본 교과서에도 나온다고 하니..
2) 장계의 시(옮긴 글..)
장계..... 정확하게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나라 현종(713-756년) 때의 인물이라고 합니다....
당나라 현종.... 양귀비하고 짝짝꿍하고 놀던 양반이죠....
당나라가 점점 망할 징조를 보이던 시기입니다....
여기 소주 근방 강남에 살았는가?????? 열심히 공부하고....
과거시험이 있으면... 부지런히 당나라 수도 장안에 올라가 시험을 보았으나 낙방.... 낙방...
그리고 3번째 낙방하고 장안에서부터.... 걸어서...
또는 대운하의 배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길입니다...
배를 타고.... 소주에 도착하고...
밤이 되자 그를 태운 배는 풍교와 강촌교 사이의 여객선이 드나드는 부두에
정박하게 됩니다....
해가 지고.... 배에 있던 승객들 일부는 배에서 내려 인근 숙박시설을 찾아갔겠죠...
그러나 장계는 과거에 낙방하여 이 아름다운 소주에서 술한잔 하면서 미인들과 히히낙낙 거릴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너무 울적합니다...
이때.... 풍교야박이란 시를 한수 남깁니다...
장계.... 이 시 한편으로... 대박입니다...
청나라때는 건륭황제가 이 시에 나오는 이 한산사를 찾으니 그야말로 대박 중에
대박아닙니까...
중국인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는 이 詩를 볼까요....
月落烏啼霜滿天(월락오제상만천)
달은 지고 까마귀 우는데 하늘 가득찬 서리 내리고...
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
강촌교와 풍교의 고깃배 불빛을 마주해 시름 속에 자는데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외한산사)
고소성 밖 한산사로부터
夜半鐘聲到客船(야반종성도객선)
한 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이르네....
뭐 잘 모르겠고 뭔가 미진한 구경거리에 입맛만 다시면서 식사하러 소주 신시가지로..
중국 가면 반드시 한번은 경험해야 하는 요리가 훠궈!!
훠궈(샤브샤브)는 사천요리로 중국 곳곳에 엄청나게 많은 식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과거 중국에서는 궁중 요리로 사랑을 받았으며 건륭황제와 서태후는 훠궈 매니아로
1550개의 훠궈를 차려놓고 5,000여명을 초대해 잔치를 벌였다고 합니다.
별다른 요리가 아니라 우리 샤브샤브로 생각하면 됩니다..
맵고 짠 두 개의 육수가 나오는데 이 육수에 고기류(주로 양, 소고기)와 어묵, 야채류, 국수 등을 넣어서 끓어먹는 음식인데
맛이 절묘합니다!!
특히 백주(중국 빠이지우)와 곁들이면 아주 맛있습니다..
상해등 대도시에서는 제법 비싼 음식인데 이곳에서는 뷔페식으로 일인당 15원(2,000원..)
싼 만큼 맛도 조금은 엉성.. 그래도 백주에 곁들이니 환상적이네???
백주에 조금 째리뽕이 되어서 소주의 마지막 관광지인 졸정원으로..
졸정원은 “왕헌신”이란 관리가 좌천하여 지었는데 소주를 방문한 사람이 몽땅 방문할 정도로 유명합니다!!
“왕헌신”의 일화가 재미있어 옮겨봅니다!!
졸정원을 설명하면 역시 왕헌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우리가 알고 있는 비단장수 왕서방이 바로 이 사람이라 합니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틀리게 왕헌신은 명대 어사라 합니다.
졸정원과 왕헌신에 대한 글입니다.
졸정원은 명대 어사 왕헌신(王獻臣)이 중앙 관직에서 좌천하여 지은 것인데,
졸정원이라는 이름은 스스로를 형편없는 관료라고 자학해서,
拙(졸렬할 졸) 政(정사 정)자를 사용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영어 이름또한 'Humble Administrator's Garden'이다.
하지만 속뜻은 자신을 중앙에서 지방으로 좌천시킨 무리들을 비아냥거린 것..
왕헌신에게는 망나니 외아들이 있었다.
이 아들은 공부는 하지 않고 주색잡기를 밥먹듯 했다고 한다.
어느날 왕헌신이 현묘관(玄妙觀) (도교의 사찰로 현재 소주시 중심가에 위치)
앞에서 점괘를 보았는데, 점쟁이가 뽑으라고 내어 놓은 산괘중에서 왕헌신이 뽑은 것이
바로 “졸(拙)”자였다.
그 점쟁이는 왕헌신에게 해석해 주기를 "이 글자는 손(手)을 흔들면 모두 빠져나가게(出)
된다" 라고 알려 주었다.
원래 이 점쟁이는 왕헌신이 병 때문에 근심하여 온 줄로 알고서 “손을 흔들면 병이 낫게
된다”고 이야기 한 것이었는데 왕헌신은 본래 자기가 지은 졸정원이 자신이 죽은 뒤에도
자손대대로 자기 집안의 정원으로 남을 수 있는가를 물으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점쟁이가 “손을 흔들면 빠져나간다(잃는다)”라고 해석을 해주니 기대와는 반대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오래지 않아 왕헌신이 죽자 그나마 훈계하던 아버지가 없어진 외아들은 제 세상을 만난듯이
매일 도박과 음주를 일삼았다.
어느날 졸정원을보고 있던 외아들은 졸정원이 너무 작아서 답답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들여 정원 밖 서편의 대지를 사들여서 추가로 확장공사를 했고 새로 확장한 정원
호수위에 큰 대청을 지은 후에야 만족해하였다.
그러나 그 많은 돈도 도박에는 당하지 못하는 법, 마침내 어느 날 호화 도박판에서 하룻밤만에 졸정원을 잃고
알거지가 되고 만다.
정작 자신의 18년에 걸쳐 짓고 3년밖에 살지 못하고 아들은 도박으로 알거지가 되었다고 하나
지금은 소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으니 뭔가 아이러니하죠??
문헌 상으로는 졸정원은 동원, 중동원, 서원, 주거 건물로 나뉘는데..
주거건물은 현재 위안린박물관 전시홀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동부는 밝고 명쾌하게 트여 있고,
평평한 산등성이와 먼 산, 소나무 숲과 초원,
대나무 마을과 굽이져 흐르는 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되어 있는데 아무것도 몰라도 그냥 볼만 합니다!!
절묘하게 조성한 수로도 아주 아기자기하고 돌 하나 나무 하나에도 정성이 가득합니다!!
그다지 넓은 공간인것 같지도 아니한데 걷다보면 중복되는 공간이라고 느껴지는 곳을 거의 발견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각도뿐만 아니라 시간 그리고 계절에 따라 졸정원은 엄청나게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고합니다..
단지 한번 방문으로 그런 기분까지 느낄 수는 없으나 졸정원의 전시관에 걸려 있는 사진과 여행객들이
블로그에 남긴 사진들을 보면 내가 본 졸정원과는 전혀 다른 풍광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때는 연못에 연잎이 만발하기도 하고 어떤 곳에는 형형색색의 꽃이 만발한 장면으로..
아마 여러분 중의 누가 또 다른 시기에 졸정원을 방문하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왕좌왕하며 졸정원 관광을 마치고 나니 소주 관광도 끝!!!
다시 상해로 돌아오며 차안에서 졸다보니 양선생이 차에서 내리라고 합니다!!
해산물 요리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아직 이른 시간에 식사하자고..
그래도 맛은 보자는 생각에 내리니 엄청나게 넓은 식당인데 예약이 완료되어 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중국 애들 먹는데는 정말 목숨 바치는 민족입니다!!
무이산 항공까지 남는 시간 보내기 위하여 발맛사지하려고 하였더니 구정 연휴로 폐점..
짝퉁 시장가니 거의 대부분의 매장이 폐점하고 좀 남은 곳도 상해기술관 시장과는 달리 엄청나게 빡빡하게 굴어서
그냥 물건 구경만 하고 해산..
그리고는 식사하려고 하였더니 기사는 그냥 가겠다고 하네??
그래서 계산하고 빠이빠이, 짜이찌엔!! 상해 600위엔, 소주 관광 800위엔
식사 압권이다..
닭요리에는 닭발, 오리요리에는 오리 머리가 그대로!!
중국식 건강 요리점이라고 한다!! 그래도 맛은 있네???
건강식으로 느끼한 속 달래려고 커피점을 찾아서 커피 시켰더니 한잔에 18원!! 띠용..
커피 값으로 식사 대금의 절반을 지불한다.. 이제 홍교 공항으로 이동.. 무이산 출발!!
한 시간 비행으로 무이산에 도착하니 가이드 “장화김”씨가 기다리고 있다..
무이산 통털어 조선족 가이드가 단 두 명인데 몽땅 구정 휴가로 귀향..
장선생은 영어가 가능한 가이드라고 하는데 영어 하는 것을 보니 구경하는데 지장은 없겠다!!
무이산 이틀 숙박(3성급) 그리고 차량 관광비까지 755위엔.. 식사는 아침만!!
숙소 들렀다가 교주님과 간단하게 맥주 한잔하러 인근 술집으로..
맥주 한잔하며 논고동, 생선구이, 벌집 튀김 먹었는데 벌집튀김 값이 비싸서 실랑이..
무려 180위엔으로 전체 금액이 290위엔.. 억지로 깎아서 200위엔 지불..
중국도 많이 비싸졌다!!
슐 한잔 하는 중간에 자정이 지나는 시점부터 중국 폭죽놀이가 시작된다!!
동네 전역에서 폭죽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전쟁이 나도 이만큼 시끄럽지는 않겠다!!
귀 막고 있다고 조금 조용하여 지는 시점에 돌아오는데 온 동네가 화약 연기로 자욱하다..
그런데 이 폭죽 금액이 만만치 않다!!
불꽃놀이가 되는 것은 중국돈 500위안!!(한화 65,000원)
평균잡아 큰 매장은 한집에서 거의 50만원어치 폭죽을 터뜨린다!!
손님도 많이 오고 액운도 날려버린다고.. 통 큰 중국인들..
이 대단한 폭죽 놀이는 밤새도록 이어지다가 우리가 오는 날까지 계속 쭈욱..
구정 여행의 새로운 구경거리라고 해야겠다!!
제 3일 무이산의 백미 천유봉 등정과 무이구곡 유람..
아침 일찍 기상 달리러 나왓더니 또 비온다!!
무씬 겨울 날씨가 이렇노,,, 왕 짜증,, 운동화는 완전 장식품이다!!
무이산!! 주희의 무이구곡가와 신선 이바구, 그리고 도교 관련 설화로 유명한 곳..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자연 문화유산 지구로 풍경구와 자연 삼림구로 나누어진다!!
풍경구는 무이산 최고의 경치로 치는 대왕봉, 옥녀봉 그리고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모두가 등정하는
선유봉과 무이구곡 등등이 있다!!
우리가 이틀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여 관광할 곳..
그리고 자연 삼림구..
오늘 처음으로 이동하는 곳이 무이산 육곡에 위치한 엄청난 규모의 바위로
이루어진 선유봉..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주자가 세운 무이정사(주희원)!!
우리나라의 “이황”, “이퇴계”선생에게 대단한 영향을 끼친 정신적인 스승..
그가 지은 무이구곡가를 들으면서 얼마나 많은 성리학의 대가들이 무이산을 그렸을까???
조금 엄숙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선유봉으로 가면서 옥녀봉, 대왕봉등 사연들이 많은 바위들을 지나가자니 주자가 이 지방
소수 민족들의 관으로 생각하며 3곡가에서 언급한 가학선관이 있었다던 바위인 험준한 바위인 소장봉이 보이는데
전설의 의하면 가학선관(架壑船棺)은 신선이 하늘로 날아가면서 남긴 배(舟)로서 배안에는 유골이 있었다고 하는데,
비바람에도 썩지않고 천년을 그대로 있다고 한다..
이 가학선관은 오후에 무이구곡 통나무배 유람이 끝나고 무이궁을 관람하면서 친견할 기회가 있었는데
용도는 그렇다고 쳐도 그 높은 바위틈까지 어떻게 올렸는지 하는 의문이 될 정도로 규모가 대단하다..
그림 상으로는 밧줄을 타고 등 뒤에 메고 오르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무게는 그렇다고 치지만 깎아지른
절벽에 밧줄은 누가 걸었는고??? 정말 궁금하고 요상타!!!
입구에 까지 다다른 선유봉..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 커다란 바위가 달랑 하나의 바위라니 황당???
선유봉을 오르는 길은 황홀경을 지나 천상을 오르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비가 간간히 뿌리니 오르는 내내 구곡의 물은 보였다 말았다 반복..
선경을 연상하게 하는 바위산들은 구름 속에 가렸다 나타났다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교주님은 오르는 내내 부슬부슬 뿌려대는 비속에서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중국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천유봉은 높이로 말하면 삼앙봉에 미치지 못하고,
우뚝한 모습으로 말하면 대왕봉에 미치지 못하고,
수려함으로 말하면 옥녀봉에 비치지 못하고, 험한 것으로 말하면 접순봉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천유봉은 육곡에 위치함으로 절경이 제일이다고 말한다!!
그만큼 구곡 중에서도 육곡의 경치가 으뜸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천유봉을 오르지 않고는 무이산을 구경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을 천유봉을
무이산에서 첫 방문지로 방문한 곳이면서도 나 또한 긍정한다!!!
물론 나중에 몇 번이나 그 말을 번복했지만 돌아와서 글 적으며 생각하면서 또 긍정!!
그래서 천유봉에 오르면 도교의 이상세계인 봉래선경(蓬萊仙境)에 들어선다고 했다.
천유봉 정상에 있는 천유각(天遊閣)은 도교의 천궁(天宮)을 본따서 만든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 천유각의 이층에 송미령이 춤춘 곳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송미령!!
장제쓰의 둘째 부인으로 미국 웨슬리 대학을 나온 중국 광동성 재벌 집안의 막내딸..
장제쓰가 서안 사태로 감금되었을 때 단독으로 주은래와 담판을 지은 대단한 여인..
그 장제쓰의 둘째 부인이 이 곳에서 경망스럽게 춤을 추었다고 안내하는 간판으로 중국인들의
국민당 정부에 대한 시각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천유각을 보고 하산 길로 택한 곳에 장제쓰가 중국에 일본인이 들어온 것을
환영하였다는 패방이 보이고 이 길을 국민당길로 부른다고 한다!!
아주 넓은 계단으로 조성되고 비교적 완만하여 천유봉을 오르는 가마꾼들이 주로 이용하는 길인데
육곡의 풍광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고즈넉하고 조용한 길이다..
이 길 역시 관광로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국민당길로 부르면서 조롱하는 듯한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천유봉을 내려오는 이제는 출출한 시간이나 좀 더 걸어서 계곡을 오르려고 하니
오후에 대나무 땟목으로 내려오면서 볼 수 있다면서 가이드가 만류한다!!
비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마테호른과 융프라우도 벗긴 우리 교주님의 위력이 여기서도 발휘되어 이제 더 이상 비는
경험하지 않는 관광이 이어진다!! 땡큐 교주님..
천유봉을 내려와 무이산 시내로 들어와 무이산 별식으로 식사!!
무이산 버섯, 물고기, 사슴고기, 야채 등등.. 그런데 식사 후에 계산서가 없다..
장난치지 말고 계산서 달라고 하였더니 따로 금액 내역은 없이 요리만 나열하고 합계 얼마!! 황당하네???
당연히 디스카운드!!
오후는 무이구곡 뗏목 유람에 나선다..
뗏목이 육인승이라 할 수 없는 나는 혼자 헤어져서 유람..
주자가 유람을 하면서 구곡가를 읊었는지 모르지만 한 구비를 벗어날 때 마다 또 다른 경관이 끊임없이 보인다,,
(무이구곡가 읽어볼만 합니다.. 인터넷에서 확인해 보세용???)
구곡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9곡에서 내려오면서 마주치는 6곡과 5곡..
거대한 선유봉이 마주치는가 하였더니 또 한 구비를 돌면서 가학선관의 발굴 흔적인 절벽의
나무 구조물이 보이는 가 하였더니 뗏목 유람 중 마주치는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는 옥녀봉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중국 처녀 뱃사공은 관광객들을 친절하게 배 앞에서 안내하면서 사진도 찍어주고 이런 저런 설명도 부지런히 하고
강에 먹이를 던져 먹이를 따라 몰려드는 고기들을 보여 주기도 한다!!
배타는 것이 조금 지겨워질 즈음에 배는 1곡에 다다른다..
일곡의 상가에는 또 여러 가학선관 실물 등 조형물들이 있어 이리저리 구경을 하다 보니
하루해가 훌쩍 간다..
바로 눈앞에 대왕봉이 있건만 어두워지는 날씨 관계로 등반은 생략!!!
관광 후 방문한 곳은 무이산의 고급 차 판매점!!
“대홍포”라는 우이암차가 유명한 고장이 되어서 인지 시음용으로 나오는 차의 맛이 너무나 우아하다..
풍류를 아는 교주는 유명한 “대홏포”차를 거금을 주고 구입..
그리고는 또 식사를 하러 이번에는 무이산의 대나무로 너무나 깔끔하게 꾸민 식당으로 이동..
무이산 전통 고기, 생선, 야채, 술까지 망라해서 만찬을 즐긴다!!
만찬 후 시내로 이동하여 꼬치구이에 술 한잔!!
중국인들과 같은 분위기를 느껴보기 위하여 폭죽사서 터뜨리면 호호 하하 깔깔깔!!!
던진 놈(?)도 귀가 얼얼한데 옆에서 꼬지 먹는 중국인들은 눈 하나 깜짝하는 놈이 없다!!
제 4일 무이산 일사천 동굴 호령봉 그리고 또 다른 볼거리..
밤중에 늦게 까지 돌아다니고 아침에 모닝콜도 없어 거의 아침 식사 시간이 되어서 기상..
아침 밥먹고 또 무이산 구경에 나선다!!
오전에 갈 곳은 큰 바위가 과거에 지진으로 쪼개어져 생겼다는 동굴..
동굴이 절묘하게 쪼개어져서 하늘이 손톱만큼 보이면서 이동 통로도 사람하나 겨우 끼어서 지날 갈 정도의 틈밖에 없다!!
관광객이 몰리니 당연히 정체가 생기고 시끌벅적!!
이런 분위기에서 폭죽 터뜨리면 어떤 분위기일까 상상은 하여 보나 감히 터뜨리진 못한다!!
구경하는 우리도 힘든데 이 좁은 틈에 계단 놓은 사람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고개를 들면 빛도 들어오지 못할 정도의 틈으로 하늘이 보이는데 이것을 일사천(壹絲天)!!
“한줄 실의 하늘”이라고 표현하였으니 표현력 정말 멋들어진다..
일사천 관광 후 무미건조한 산길과 차밭을 따라 한시간 정도를 걸어가는 또 하나의 무너질듯 솟아있는 바위산 하나가 보인다!!
호령봉!! 호랑이가 나타나 울부짖음으로 부쳐진 이름이라는데 앞으로 무너질 듯 솟아있어 바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호령봉의 관광객이 많은 곳 반대편으로 또 폭죽 장난!!
계곡 아래로 던지면 온 계곡이 울리고 바위 돌 틈에 던져 넣으니 산에서 메아리가 다시 울려서 귀를 멍멍하게
할 정도로 위력이 대단하다!!
이 폭죽 장난은 나중에 청룡 폭포에 갈 때 까지 하루 종일 계속된다!!
물속에 던져 몰려드는 물고기 놀라게 하고 계곡에서 아래 관광객들에게 던져도 보고 바위틈 갈라진 계곡
아래도 던져 보고 나중에는 쓰레기통에도 던져본다!! 다 큰 개구쟁이들..
호령봉 정상까지도 돌계단을 조성되어 있다..
깎아지른 절벽 같은 바위에 정으로 돌을 쪼아서 관광객이 올라갈 수 있도록..
관광 중국!! 무이산에는 없으나 중국의 산들에는 케이블카, 가마, 배, 모노레인, 리프트 등
다양한 관광 시설을 만들어 놓아 늙고 힘없는 사람도 돈만 두둑히 가져오면 일반인과 똑 같이 관광이 가능하다..
이 엄청난 상술과 개발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중국의 자연들은 엄청난 몸살을 앓고 있기는 하지만..
호령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선유봉과 무이구곡에서 바라보는 무이산과는 또 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내려가는 것이 아까워질 정도의 선경으로..
멀리 보이는 선유봉의 천유각!! 우리가 오늘 곳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호령봉을 뒤로 하고 시내에서 조금 아쉬운 식사,,
이제 공식적으로 마지막 관광 장소인 대홍포암과 수제동을 향한다..
대홍포암!!!
무이산의 유명한 차로 워낙 차맛이 훌륭하여 황제가 고급관리나 입는 홍포를 하사하여
“대홍포”라는 이름이 붙여 졌다고 하네??
대홍포차!! (옮긴 글)
천년 묶은 고차수로 복건성 무이산 동북부 절벽아래 영락선사 절벽위에 달랑 4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 차나무들은 천년이 넘은 나무들로 명나라때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갈 때 병이나서 스님이 절벽에서
자라는 차잎을 우려 선비에게 마시게했다.
그후 몸이 나은 선비가 장원급제하여 장원급제로 받은 홍포를 나무에 걸쳐주었다고 해서 이차나무의
이름이 대홍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무이산 대부분의 찻집에서 대홍포차를 파는데 4개의 차나무에서 무성생식해서 얻은 것이라고 한다.
차나무가 천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중국인들의 풍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대홍포 나무가 자라는 대홍포동은 길이 몽땅 차밭이고 산을 올라가는 기슭도 몽땅 차밭!!
원시인들이 살았다는 절벽위의 암거도 보고 비가 내려면 대단한 낙수 커턴이 생긴다는
“수제동”을 보고 나니 공식 무이산 일정을 끝이다!!
수제동은 경치 구경이라고 하기 보다는 분위기를 구경하면서 걷는 구역으로 보아야 겠다!!
가이드에게 파장이 아쉬워서 인터넷에서 보았던 “청룡폭포”를 이야기하니 무이산 풍경구가 아닌
자연구에 있다고 하는데 따로 비용을 지불하여야 된다고 한다..
차렌트 350원, 입장료 7인 280원, 진입 차량 이용료 70원!!!
언제 다시 오겠노??? 의논 후 청룡 폭포로 향한다!!
우리가 이용한 무이산풍경구를 가로질러 지나고 나서도 끝없이 상류로 상류로 올라가더니
더 이상 차가 올라갈 길이 없는 곳에 “청룡 폭포” 매표소가 있다..
무이산 관광지에서 약 40km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하네???
이 자연구에는 청룡폭포 외에 용천대협곡 등 여러 계곡이 있는데 계곡은 우리의 지리산,
설악산 계곡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나 청룡폭포는 위용이 대단하다..
총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입구에서 계곡을 1시간 30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과 산에 조성된 도로를
이용하여 차를 타고 오르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시간 절약과 일행들의 떨어진 체력을 감안하여 차로 오른다..
거의 산7부 능선까지 차가 구불구불 오르더니 멈춘다..
멈춘 곳 바로 아래에 폭포가 위치!!
수량이나 규모가 대단하여 구경하는 내내 등산로에 물보라가 몰아치면서 물소리도 장관..
차가운 물의 영향으로 한기도 오싹 오싹!!
이 곳에서도 폭죽을 터뜨려보나 물소리가 대단하여 다른 계곡에서 보다는 위력이 미미..
이 청룡 폭포 관람을 끝으로 무이산 관광은 끝!!!
나와서 다시 시내에서 그동안의 피로 풀려고 발맛사지하고 가이드와 같이 마지막 만찬
즐기고 나니 이제 상해로 돌아가야 할 시간!!
이 친구 별 불만 없이 안대해 준 것만도 고마운데 얼마인지 모르지만 방문해줘서
고맙다면서 차를 무려 4통이나 선물로 내민다!!
어째 그냥 가겠노?? 감사의 표시로 300워안 팁으로 전달...
에필로그
무이산 공항에서의 교주표 커피 사건, 상해 민박집에서의 아들과 이별!!
430km로 달리는 자기부상열차 탑승 상해 푸동 공항행을 마지막으로 귀국!!
돌아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 언제 다시 갈지 모를 무이산 관광..
또 언제 모여서 다시 한번 할지 기약 없는 가족 관광이 마감된다!!
다시 돌아온 일상!!! 또 열심히 살아야겠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