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우- 푸우- 가뿐 숨을 몰아쉬며 인형 춤을 추고 있다.
여동생이 계속 불고 있었던 고무풍선이다. 나는 그것이 언제 터질지 몰라 가슴 조리며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나타나 동생이 부는 풍선을 빼앗아 내던진 것이다. 푸우-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2년 전 일이다. 큰 조카의 다급한 전화가 왔다. 제부가 다쳐서 구급차를 타고 영대병원으로 갔다는 것이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수술 중이라고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다했다. 어제 저녁에 동생 가족이랑 즐겁게 외식을 했었는데. 오늘 아침에 두 조카가 출근하는 재부에게 “아빠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까지 했었다는 데.
제부의 몸은 마네킹 같았다. 병실에는 회사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수술을 마친 그의 몸은 가스통같이 생긴 산소통과 산소 호흡기를 달고, 여러 색깔의 긴 줄이 달린 동전 비슷한 것을 가슴 곳곳에 붙이고 통나무처럼 누워 있다. 모니터에서는 녹색신호가 파도를 치며 삑삑 소리와 함께 흘러가고 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넋을 잃고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는 동생을 보고 그땐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회사 사람들은 사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점심을 다 함께 잘 먹고 난 후, 고장 난 기계를 고치는 중에 제부의 옷이 벨트에 감기어 기계와 함께 한 바퀴를 돌면서 머리가 땅바닥에 부딪쳤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주위의 사람들도 손쓸 틈이 전혀 없었단다.
제부는 아들 둘을 둔 사십 대 중반의 행복한 가장이었다. 섬유회사에 근무하는 성실하고 유능한 기술자였다. 영천에 있는 부농의 셋째 아들이었다. 어릴 때 약을 잘못 복용한 탓으로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가 조금 불편한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부모님과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한 복덩이였다.
제부는 뇌사판정으로 3개월간 가족들의 애간장을 다 녹인 후 무지개를 타고 떠났다. 한 줌의 재가 그가 이 세상에 온 흔적의 전부였다. 동생 가족은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애틋한 추억을 수골함에 곱게 담아 건천 하늘공원에 안치했다. 동생은 그렇게 사십 초반에 혼자가 되었다.
동생 결혼은 내가 중매했다. 대구광역시 시립희망원에 자원봉사를 하면서 제부를 알게 되었다. 그가 얼마나 착하고 성실하든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해서 한의원에 근무하는 여동생을 그에게 소개한 것이다. 6개월 정도 사귀더니 결혼 얘기가 나왔다. 엄마는 다리는 좀 그래도 착하고 성실하고 서로 좋아하고, 그것보다는 ‘남자 집안이 어느 정도 살만하니 딸 고생은 시키지 않겠다.’고 생각하셨는지 반대는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엄마와 생각이 다르셨다.
“재산이 무슨 필요가 있어. 몸이 성치 않는데.”
결국 동생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자 급기야 아버지도 그들의 결혼을 승낙하셨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더니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해야 한다. 결혼 후 제부는 자기 사업을 하면서 동생과 하루 종일 아니 일 년 내내 메밀 벌처럼 붙어 다녔다. 깨 볶는 냄새가 천리향을 넘어 만리향이었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한다는 속담처럼 일주일이 멀다 하고 처갓집 합천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아들 둘도 쑥쑥 잘 낳았다.
조카들도 제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튼실하게 살고 있다. 그들은 형제 동반 입대로 해병대에 군 복무 중이다. 첫째 조카는 몸이 약해서 군 생활을 못하고 올 것만 같았는데 동생의 도움 덕분인지 생각보다 잘하고 있다. 둘째 조카는 태권도 선수였다. 제부가 떠난 후 그는 관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태권도 선수를 그만두었다. 태권도장에 가면 제부의 얼굴이 먼저 떠올라서일까? 제부는 조카가 훌륭한 태권도 선수가 되기를 바라며 그동안 온갖 정성을 다 쏟았었다.
여동생이 취직을 했다. 재부가 갑자기 떠나자 동생은 자리에 몸져눕고 말았다. 얼마 후 동생 친구가 찾아왔다.
“미희를 그냥 두면 큰일 날 것 같아요. 제가 주꾸미 식당을 하고 있는데 미희랑 같이 하면 안 될까요.”
여자들은 시집가면 고등학교 친구도 없다는데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동생은 뉴기니아 앵무새를 한 마리 분양받았다. 처음은 커다란 새 집이, 다음은 앵무새가, 그다음은 발아 씨앗이 차례로 들어왔다. 앵무새는 커다란 까마귀보다 더 크다. 빨간색 깃털에 목에는 파란색 깃털이 있는 암컷이다. 비싼 것은 천만 원이 넘는 것도 있고, 싼 것이 몇 백만 원을 한단다. 새를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는데 혹시 사고가 나면 어쩌지 걱정부터 앞섰다.
동생은 앵무새에 빠졌다. 매일 새 옆에 붙어 앉아 친해지는 연습을 반복하더니 이젠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 밤낮으로 시간만 있음 붙어있다. 친구, 남편, 자식 등 앵무새가 일인 삼역을 다 해주는 것 같다. 동생은 말이 잘 통하는지 그에게 속마음을 곧잘 털어놓는다. 밤늦게 종이인형처럼 구겨져 퇴근하는 동생이 초인종을 누르면 제일 먼저 앵무새가 반긴다.
“잘 다녀왔니.”
엄마가 자식을 반기듯 두 사람 사이에 정이 철철 넘친다. 구겨진 종이가 되살아나듯 동생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엄마는 지금 후회하고 계신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약하게 태어나 아버지가 새벽녘에 강가에 나가 용왕님께 빌고, 삼신할머니에게 빌어서 겨우 얻었다고 한다. 빌고 빌어서 어렵게 키운 딸을 홀로 만든 엄마는 다 당신의 잘못이라면서 자책을 하신다. 사람의 운명을 엄마들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오직 딸자식이 사랑받고 굶지 않으면 됐지,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랐겠는가.
함께 잠자고 밥 먹고 생활하면서 언니인 내가 동생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엄마 뱃속에서 같은 핏줄로 태어난 자매인데도 앵무새보다 못한 신세가 되었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는가. 낙엽에 숨겨진 얼음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겨울산행을 하듯 나는 동생의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눈치를 살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동생이 불고 있는 고무풍선이 이제 터지기를 빈다. 세상을 향하여 푸우- 푸우- 힘차게 소리도 지르고, 덩실덩실 즐겁게 춤이라도 추면 좋겠다. 그것은 감옥 같은 풍선 속에서 뛰쳐나와 이제 얼마든지 홀로서기가 가능하고 자유인이 되었다는 선언이 아니겠는가.
첫댓글 가뿐->가쁜 첫문장 주어가 명확히 안들어오네요 인형이 주어면 인형이로 하면 어떤가요 추고있다 대신 춘다로^^ 산소통과 산소호흡기 대신 산소통과 호흡기로. 가까이 같은 단어중복은 피하는 것이 좋아요 성실하든지->하던지 해서->그래서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해야 한다.->해야하지 않을까 (단정적인 말은 쓰지않는 것이 좋아요)
네 작가님 맛있는 약으로 알고 다듬어 보겠습니다.^^
정류장 알바도 일이라고 교대로 하다보니 ㅎㅎ
엄마들->엄마인들 기와 결이 잘 이루어지고 결의 처리가 좋아요 문장력도 좋아요~ 자주 글쓰기 해요! 화이팅!
제부의 사고, 동생내외의 단란했던 가정, 동생의 힘든 생활을 꿈을 통해 선생님의 마음과 잘 연결하셨어요.
조카에 대한 내용과 동생의 취업에 대한 부분을 조금 다듬고 보완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총무님 수고많으십니다.^^
잘 다듬어 보겠습니다.
저번에 미라쌤 글보고 마음이 짠하고 아팠는데 오늘 다시봐도 가슴아픈 사연 이네요.
그래도 아픈 마음 글로 승화 하셨으니 평안을 찾으실것 같습니다..
자매가 다정 하게 서로 위로 하며 보듬는 이야기가 정말 감동 적입니다.
글 내용이 아릿하네요.ㅠ
조미라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