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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청거린다는 것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딴청을 부린다는 것이고 굼실거린다는 것은 느리고 더디다는 것이며 택견의 품밟기, 활개짓, 발질이 모두 이 능청맞고 굼실대는 몸짓을 근간으로 이루어진다.' 91년 어느 잡지에 실린 충주택견 지도자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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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는 명사로서의 '능청'을 아주 능갈치게 남을 속이는 태도, 자동사 '능청떨다'를 능청맞게 굴거나 아무일 없다는 듯이 딴청을 부리다, 형용사로서 '능청맞다'를 마음속은 엉큼하면서, 겉으로는 천연스럽다로 풀이하고 있다. 위의 기사 택견의 능청거리는 몸짓을 위에 열거한 국어사전의 해석대로 이해한 듯 하다. 그러나 같은 국어사전에는 자동사로써 '능청거리나'를 줄이나 막대기 따위가 자꾸 휘어져 흔들리다라고 하고 이 보다 작은 말로써 '낭창거리다'를 싣고 있다. 택견의 능청은 세로로 길게 생긴 사람의 몸이 탄력성있게 위어지는 모양을 묘사한 말이므로 능청떨거나 능청맞은 것이 아니고 '능청거림' 또는 '능청 능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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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생님은 몸을 능청거려라는 주문대신 '뱃심을 내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신성생님 역시 '뱃심내기'를 강조하셨는데 품내밟기를 하면서 뱃심을 내는 동작을 능청거린다고 하셨다. 뱃심이란 복부의 힘이라는 말이다. 뱃심을 낸다는 것은 이른바 하단전(下丹田)에 기운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품을 밟을때 처럼 움직이는 상태에서 뱃심을 내려면 한쪽발을 앞으로 내디딜 때 아랫배를 함께 내밀어야 한다. 이때 몸 전체는 마치 활처럼 휘게 된다. 이런 동작이 연속으로 이루어질때의 몸짓이 바로 능청 능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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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청이 신체를 팽창 또는 신장이키는 동장인데 반하여 굼실은 신체를 오무리는 동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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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는 명사로서의 굼실은 없고 자동사로서 '굼심거리다'가 있는데 '작은 벌레따위가 느릿 느릿 자꾸 움직이다'로 풀 수 있다. 굼실거리다 보다 센말로는 꿍실거리다가 있고 작은 말로는 꼼실거리다 > 공심거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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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작은 벌레가 어떤 종류인가에 따라 움직이는 모양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택견에서의 굼실거리는 몸짓은 배추벌레가 주식으로 기어가는 모양을 상상하면 된다. 배추벌레는 길쭉한 몸체를 오무렸다가 쭉 펴는 것을 반복해서 기어오른다. 택견에서의 굼실은 서있는 다리를 굽혔다 폈다하는 동작이므로 배추벌레 기는 모양과 닮은데서 이런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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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생님은 굼실거리다라는 말보다 '굼실을 넣어라'고 하신 것을 미루어 보면 굼실이 명사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송선생님은 굼실을 넣는 것을 '오금질'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굼실 또는 굼실거림은 전체몸짓이라기 보다는 다리기술에 치중된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송선생님의 가르침은 항상 굼실은 오금에 넣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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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는 몸전체를 구부렸다 일으켰다하는 것을 '굼닐다'라 하고 동작이 둔하거나 느린 것을 '굼뜨다', 무겁고 느리게 움직이는 모양을 굼적거리다, 또는 꿈적거리다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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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에 굼실을 넣는 것은 순발력과 탄력을 증진시키는 최적의 동작이다. 즉 능청의 효과를 극대화 하는 이상적 예비동작인 것이다. 그러므로 굼실은 느리고 더딘 것이 아니며 빠르고 강한 힘을 함축한 부드럽고 가벼운 오금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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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의 의미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택견의 구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앞에 소개한 잡지 기사 내용처럼 깊은 생각없이 사전을 일별하는 경박함으로 택견을 해석해 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더욱이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한 번 잘못해 버린 해석은 수정이 쉽지 않을 뿐더러 그 영향력만큼 폐해는 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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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운동생리학적으로 볼 때 사람의 모든 동작과 힘의 이동은 근육의 수축작용에 의해 이루어 진다. 몸을 움추릴 때는 근운동의 등장력 강도가 약가고 몸을 펴면 등장력은 증가한다. 따라서 택견의 능청과 굼실은 운동생리학적인 근등장력 강도의 변화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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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을 기(氣)의 작용으로 보면 설명은 보다 델리케이트 해진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인체에 혈관계, 신경계, 임파계와는 또 다른 계통인 경락(經絡)이 있다고 믿어 왔다. 1960년대 북한학자 김봉한은 현대 과학장비를 이용하여 경락의 실체를 규명하였다. 김봉한 학설에 의하면 경락은 12개의 주선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전신에 퍼져있는 초미세관이다. 경락의 내부에 흐르는 고단위 에너지 액체는 신체 각 조직과 기관에 영양소를 공급하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경락의 외부에는 전기가 매우 빠르게 흐르고 있어 일종의 방어기능을 가지고 있다. 경락을 따라 흐르는 고에너지 액체와 전기가 바로 기(氣)를 구성하는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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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심리상태에 따라 체력과 운동능력등이 크게 변화하는 것은 사람의 의지가 경락 외부의 전기를 자극하여 경락내부의 고에너지 액체를 신속하게 필요한 신체 조직과 기관에 공급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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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무예에서 정신적 수련을 중요시하고 기공의 기초훈련이 기를 감지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모두 경락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때문이다. 최근 단전호흡, 또는 명상법등이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끌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경락을 활성화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경락의 주요 지점인 경혈(經穴)을 발견하고 이곳을 자극하면 사람의 운동능력과 심지어 생명까지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동의학에서는 경혈을 이용한 침구법을 개발하여 의료기술을 발전시켰다. 경락이나 경혈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무예나 동의학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택견의 모든 기법도 경락활성법이다. 택견기법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능청과 굼실은 간단하면서도 경락활성의 모든 지혜를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실제로 택견을 해보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게 된다. 능청과 굼실을 품밟는 동작으로 설명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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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쪽 다리에 중심을 옮기며 오금을 굽힌다. 이때 허리를 최전시켜 상체와 하체를 비틀 듯이 꼬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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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굽혀진 오금을 펴서 몸을 일으키는 반동과 비틀린 몸이 복원되는 반동으로 한쪽 발을 앞으로 내딛는다. (여기까지가 굼실, 또는 오금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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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딛는 발이 착지할 때 허리는 뒤로 제끼며 아랫배를 앞으로 내민다. (능청, 또는 뱃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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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몸이 활처럼 휘었다 싶으면 활시위를 놓듯이 순간적으로 긴장을 풀어버리고 1.과 동일한 자세로 돌아간다. 1.의 굼실은 부드럽기는 하지만 느린 동작은 아니다. 그렇다고 속도를 의식하여 힘을 가하면 근육이 경직되어 오히려 순발력과 힘의 작용이 저하될 수 있다. 굽히는 정도는 다음에 취할 동작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사람마다 신체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적인 이상적 각도는 무릎끝과 발끝이 지면에 대하여 수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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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허리의 비틀림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다음 동작의 형태에 따라 나타난다. 다음 동작이 단순히 품을 바꾸어 밟는 것이라면 허리의 역할이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굼실에 이은 능청이 는질러 차는 것이라면 허리의 회전력이 대단히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다음 동작이 미리 작정된 것이 아니라면 굼실에서 언제나 허리를 꼬아 주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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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는 굼실이 오금을 오무렸다 펴는데 까지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굼실의 기능이 근육수축운동의 복원력을 이용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흔이 이런 것을 운동 물리학적 작용과 반작용의 반동력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인체생리학적으로 보면 복원력이라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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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실을 넣은 다리는 오금을 중심으로 아랫부분의 근육을 수축하고 윗부분 근육은 이완되거나 팽창된다. 우리 몸의 근육은 뼈와 관절을 중김으로 동작을 일으키는 주동근(主動筋:Prime mover)과 주등근이 수축할 때 이완되는 길항근(拮抗筋:Inpagonists)과 주동근의 운동효과를 도와주는 협력근(Synergists) 등이 있다. 우픔 아래근육의 주동근이 수축했을 때이완된 길항근이 원상태로 복원하려는 작용이 일어나게 되고 이와 동시에 무릎 위쪽의 팽창된 근육도 신속히 복원하려는 작용이 일어난다. 이때 오금을 너무 많이 구부린다거나 구부린 상태의 시간이 오래 지속되어 부하가 적청리를 넘게 되어 근육의 피로도가 높게 되면 복원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오금질은 무릎관절의 적당 각도와 적당시간의 굼실(굽혔다 폈다)이 관건이다. 이것은 이론적 이해에 앞서 동작의 연습을 통해서 저절로 터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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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과 4.는 능청 동작이다. 한쪽 발을 한걸음 가량 내딛었으나 머리 무게는 뒤쪽에 놓인 다리에 얹혀 있다. 머리의 위치는 인체 중심이동의 결정적 역할을 하므로 항상 유의해야 한다. 이때 턱의 각도 유지가 중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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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청의 동작은 전신이 활처럼 휘어져 있다. 이때 망문 주변의 괄약근은 잔뜩 오무라들고 낭심이 위쪽으로 바짝 당겨져 올라간다. 흔히 말하는 단전호흡의 양생법과 동일한데 단전호흡이 정태적인 반면 택견의 능청은 매우 동태적이다. 그래서 택견을 동적 단전호흡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아다시피 항문주변은 경락의 가장 요충지인 회음부가 있고 이곳을 자극하면 체내에 기가 축적되고 자연회복력이 증진된다. 특히 남녀 공히 성기능이 향상된다. 상문 주위에 성기능 관련 근육이 집결되어 있다는 것은 서양의학에서도 이미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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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청의 동작에서 유의할 것은 의도적으로 뱃심을 내거나 낭심을 끌어 올리거나 둔부 근육을 수축시키려고 하지 않도록 한다.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한 것이다. 굼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부터 힘을 가하면 몸이 굳어 버린다. 굼실과 능청의 목적은 순발력이고 그 생명은 부드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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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의 동작은 특히 팽팽히 당겨진 시위를 탁놓아 버리듯이 하면서 허리를 살짝 꼬며 엉덩이를 뒤로 빼며 몸의 중심을 뒤에 놓인 다리에 신속히 옮긴다. 이 동작에서 팽창했던 항문 주변 근육이 이완되면서 위로 당겨져 있던 낭심이 아래로 툭 떨어지게 된다. 이런 운동 현상은 굼실과 능청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므로 일부러 이런 부수적 운동효과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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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실과 능청의 동작을 찬찬히 살펴보면 상반된 두 동작에 공통점이 나타난다. 두 동작 모두 종작의 완성 지점에 못미쳐서 기를 거두어 들이다. 멋을 부려 표현하면 칠용삼여법(七用三餘法)이다. 몸을 구부리고 펴는 신체의 가용 기능을 70%정도만 사용하고 30%쯤은 남겨두는 것이다. 생리학적으로 보면 근육의 이완 또는 팽창이 크면 수축 반응도가 높아져 힘이 증가된다. 그러나 근수축운동에 과부하가 생기면 역효과가 생긴다. 틀어올리는 운동을 할때 너무 무거우면 동작이 느려지고 나무가지를 잔치게 많이 휘게되면 부러지거나 복원되는 속도가 오히려 감소한다. 따라서 오랜 체험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택견의 동작이 70%의 기능만 사용하는 것은 근육 운동의 효율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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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근육운동의 효율성은 운동량을 전체에너지 소비량으로 나누고 다시 100을 곱한 수치이다. 보통사람의 효율성은 20-25% 정도이지만 고도로 훈련된 사람은 40%까지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 택견에서 가용 운동 능력의 70%을 사용하는 것은 굼실과 능청의 운동적정율과 거의 원활한 운행에 필요적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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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생님은 생전에 '품밟는 것이 택견의 전부'라고 누누이 강조하셨다. 사실 품밟기의 운동요령은 거의 모든 택견 기술에 적용되는데 그 핵심이 바로 굼실과 능청인 것이다. 현재 협회에서 가르치는 기본적인 품밟기는 택견의 원리를 규명한 이후 굼실과 능청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숙달시킬 수 있는 동작을 취하고 있다. 때문에 일주일 이상 택견을 배운 협회 회원이라면 누구나 굼실과 능청의 중요성을 인지하게끔 되어있다. 그러나 한켠에서는 엉뚱한 굼실, 말도 안되는 능청을 배우면서 그것을 전통이라고 주장하고 또 그것을 막무가내로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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