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저희 아버지께서 일년이 넘는 긴 입원생활을 끝내고 집에 오셨습니다. 올해 83세시고, 천식과 풍으로 한쪽 수족을 잘 못쓰시는 상태입니다. 아버지는 저희 집에서 15분 떨어진 가까운 노인 병원에서 치료와 요양을 해 오셨습니다. 저는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저녁 무렵에 아버지에게 다녀오는 것을 일과로 여기며 지내왔습니다. 몸이 피곤하고 힘든 날에도 저를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거의 매일 병원에 다녀오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일인데, 저를 낳고 길러준 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여기며, 가급적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그렇게 매일 힘들여 찾아가 보았던 분이, 저와 함께 저희 집 식탁에 앉아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날 식사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은한 감동가운데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속한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음을 말씀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해야 할 일들은 말할것도 없고, 때로 역경과 고통속에 있는 것까지도 그분의 은혜안에 있다는 사실이 옴몸으로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짊어지고 있는 모든 무거운 짐이 제 어깨에서 내려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에게 올 여름은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고 어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더위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많은 고민들이 저를 괴롭힌 시간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종류의 생각들이어서 하나하나 말하기도 뭐합니다. 특히 주류를 이루었던 고민이라면 예배당 건축과 그 후에 따를 사역들에 관련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아갈 사람들과 생활의 방식들, 농업과 그밖의 경제사업들,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대안학교가 세워져야할 문제, 복지에 관련된, 특히 노인을 모셔야하는 각 가정의 책임을 보다 효율적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갖추는 일, 등등입니다.
왜 이런 고민들이 이번 여름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왔는지 모르지만, 이런 많은 생각으로 심려하다보니 무거운 짐을 진 상태로 여름을 보낸듯합니다. 물론 말씀도 보고, 기도도 드리면서 이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였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간하고 있다고 확신을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 열망속에는 초조함과 긴장이 숨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랬다가, 내일은 저랬다하는 혼선이 반복되는 상태였습니다. 저 자신의 기대에 의존하다보니 한쪽 구석에서는 절망과 체념이 자리잡고 있음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중에 저희 아버지가 저희 집에 도착하셨고, 그 일을 계기로 제 시간표에 새로운 리듬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가 있던 제 시간이 현재로 서서히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 그래, 오늘을 살자. 그동안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했구나. 내 능력 이상의 문제를 붙잡고 고민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내일 일은 주인께 맡겨야지 ! "
이 고백이 있기까지 많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심정은 제 아버지와 오늘 한집에 있게된 일과 연관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버지와 함께 식사할 때 밀려왔던 은혜의 감동은 제가 저녁마다 고단함을 무릅쓰고 아버지를 찾아갔던 그 하루하루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것일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의 수고가 마침내 한 밥상앞에 마주앉은 결실로 나타났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싱한 것은 그날 그 감동은 결실을 얻기 위해 수고한 제 행위라는 것은 온데 간데 없고, 오로지 값없이 홀연히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너무나 풍성하다는 느낌이 제 마음을 채웠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그 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초조함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니 제가 누리는 모든것이 눈물나게 고마운 것이 되었습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들판의 풀과 공중의 새를 보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얼마나 극진한 돌봄을 입고 사는지를 가르쳐 주셨지오. 그 사실을 마음으로 깨닫기가 참 힘들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느껴봅니다.
첫댓글 "올 여름은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고 어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라는
목사님의 말에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드는 저입니다.
목사님을 괴롭힌 "많은 고민들"의 목록을 저도 제 마음에 Copy해 놓고
짬이 날 때마다 기도하기로 합니다.
목사님 말에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기는 저도 마찬가지이네요
가서 드리는 것도 없이 매번 받아오기만 해서 죄송해요
그렇다구 자주 가지도 못하구요 추석 잘 지내시라고 전화도 못 드렸네요
머가 그리 바쁘다고... 휴.... 죄송해요
저도 요즘 미래의 고민들과 걱정으로 기도하면서 지내고 있었어요
맨 밑의 글처럼 하나님이 저희 가정을 극진히 돌보신다는 것을 깨닫는 추석을 보냈어요
이제는 걱정하지 않고 모든 걸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며 살아야 겠어요^^
이 마음이 오래 오래 갔으면 좋겠네요^^
목사님 글 너무 멋있어요